“하나님의 주권적 회복”
[에스겔 37:15~28]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이 땅위에 다시는 그러한 국난이 없기를 소원하면서,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전 597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주민의 우수한 자 약 일만 명이 포로가 되어 느부갓네살 왕궁이 있는 바벨론으로 잡혀갑니다(왕하 24:14). 이 때 부시의 아들로 제사장이었던 에스겔도 1차 포로에 포함되어 잡혀갔습니다(겔 1:1). 그리고 포로생활 5년, 그러니까 주전 593년, 바벨론 달력의 다무드월에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놀랍게도 여호와의 이상(異象)을 접하게 되고, 이때부터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아 활동하게 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면서 예언자로서 주전 593년부터 571년까지 이 예언서를 기록합니다. 기록 내용은 극히 정연한 형식에 맞추어서 종합적인 예언들로 되어있는데 그 핵심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머리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시작됩니다. 정확한 장수를 밑줄치자면 1장에서 24장까지이며, 그 다음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방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5장에서 32장까지입니다.
그리고 말머리는 33장에서 48장까지 인데요,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예언이 숨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속한 33장에서 37장은 여호와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취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에 관한 말씀으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정의와 자유로운 주권 행사를 보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인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사랑은 의에 입각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의가 서기 위해서는 반역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은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적용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이 되었으니 마음대로 살자! 마음대로 산들 하나님도 어쩔 것이냐! 선민인데….” 이런 민망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선민이면 선민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 뿐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스타일로 만들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아 보이도록 멋지게 삽시다.
말씀의 범위를 조금 좁혀서 본문 15~28절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잠깐 12절과 14절을 거처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15-28절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약속 성취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14절입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 말씀을 12절과 연결해 보면 전체의 그림이 명확해 집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12절).
여러분은 14절과 12절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해골 같은 절망적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여호와의 영이 막 부어져 새로운 생명력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은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15-28절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14절과 12절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에스겔에게 이곳에서 표상적 행동을 하도록 명령합니다. 그 표상적 행동은 이렇습니다. 16절에서 17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일 왕국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남왕국을 대표하는 유다와 북왕국을 대표하는 요셉을 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왕국으로 회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분단된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통일 왕국을 만들어 가실까요? 계속해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통일 왕국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은 그 옛날 감히 아무도 넘보지 못할 막강한 다윗의 통일왕국 시대로 회귀시키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지혜와 명성과 부귀가 있던 솔로몬의 부귀영화의 시대로 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예루살렘은 꽃이 피는 봄날 이었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와서 한눈에 반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얼마나 예루살렘 성전이 아름답게 보였던지 성경은 열왕기상 10장 4~5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스바 여왕도 감동을 받았던 그 시절로 회귀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립습니다.
이웃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노래처럼 들리며, 거리는 거래하는 상인과 소비자가 왁자지껄 했던 그 시절로 돌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입니다. 이것은 멸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선민이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이 눈감아 주실 줄만 알고 오만가지 교만으로 악이란 악은 다 행하며 살아왔던 그들이 멸망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습니다. 성은 그 위용을 잃고 여러 나라의 조롱거리로 잔존하고 있으며, 성전도 집도 다 불에 타 하루아침에 거지도 웃고 지나갈 모습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포로로 이국만리 바벨론까지 잡혀오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웬말입니까? 통일 왕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그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합니다. 33장 11절입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에스겔은 목이 터지라 외치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악인은 반역의 백성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는 것 보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임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에게로 다시 돌아올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아니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열과 반목으로 서로에게 상처만 주었던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아무런 힘이 없는 분단된 모습으로 “앗수르야 와서 우리를 집어 삼켜라, 바벨론아 너도 와서 우리를 찍히고 상하게 하여 삼켜 먹어라”는 식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싸웠습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라인데, 그 사랑을 버리고 악을 행하다니 그러하고도 교만과 잘난 척은 바벨탑을 능가합니다. 그 바벨탑과 네 교만 중에 누가 큰지 보여 주시려고 바벨론으로 잡혀오게 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타고 오는 법입니다. 22절입니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어디 그 뿐입니까? 25절에서는 또 어마어마한 희망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결코 조롱과 멸시의 자리에 오래 있지 않도록 하십니다. 다만 내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돌아오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돌아오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시대로, 부귀와 영광의 시대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보석 같은 것임을 잘 압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 사랑과 행복을 악행의 전당포에 담보잡히지 맙시다. 거지가 되었던 탕자를 본받읍시다. 그가 비록 거지가 되었지만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던 모습을 말입니다.
6.25 전쟁이 있은 지 60년이 되었지만, 이 민족은 아직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히려 죄악이 더해만 가니 이 분단된 민족을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언젠가는 남쪽의 파란색과 북쪽의 붉은색이 합쳐져서 꽃자주색 태극기가 펄럭이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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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종 목사 설교집, [거룩한 강단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