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돌아오라!”
[요엘 2:12~17]
가을인가 싶었더니 설악산에 벌써 첫 눈이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참 좋은 가을에 우리의 믿음도 풍성한 결실이 있기를 원하면서, 오늘 말씀은 <요엘> 2장을 중심으로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말씀을 핵심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요엘서는 “야웨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요엘이라는 예언자에 의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브두엘의 아들인 요엘의 예언은 ‘12소예언서’ 가운데 두 번째에 있는 책으로 연대는 B.C. 약 835년경이었는지, 아니면 B.C. 약 440년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팔레스틴 지방에 그들이 ‘누리’라고 부르는 황충의 때로 인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요엘은 이때를 하나님의 경고로 보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큰 복을 받는다고 예언하였고, 그 내용이 책으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이 예언하던 그때의 이스라엘은 어떠했을까요? 한마디로 비참했습니다. 먼저 1장 9절을 보면서 그 때의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는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전에서 제일 중요한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져 슬퍼하던 때입니다. 하나님께 헌물을 더 이상 드릴 수 없는 슬픈 시대,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최대의 슬픔으로 여겼던 때인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이 주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에도 유대인은 이 헌물을 하나님께 계속 드렸으나 마침내 그것을 드릴 수 없게 된 것을 가장 슬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습니다. 왜? 끊어졌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1장 4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장 10절에는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릴 것이 다 메말라서 끊긴 것입니다. 이는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슬픈 애가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1장 11~12절입니다. 들어봅시다.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듣고 보니 어떻습니까?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논을 갈고 밭을 개간하면 뭘 합니까? 수고에 대한 소득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재앙인 것입니다. 자! 이쯤 되고 보니, 요엘은 이스라엘에게 바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제라도 돌아오라!”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16절) 그러니 “이제라도 돌아오라!”
여러분! 이 비참한 일들이 왜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한 까닭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현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하나님의 날의 징조이며,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였던 것입니다(1:15).
대재앙은 인간에게 만은 아니었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재앙. 인간과 식물의 재앙, 인간과 자연의 재앙이었던 것입니다. 이 재앙으로 기름진 초원을 황폐한 땅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1:16~20). 요엘은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재앙을 만난 자는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재앙이 변하여 행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재앙이 없어지고 행복으로의 방향은 오직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돌아오는 것입니까? 1장 13~14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이것은 곧 회개의 집회를 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은,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회개 할 때, 여호와의 용서와 화해는 그 힘을 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황충의 때가 심하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모든 것은 행복으로 변해 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에덴 같은 곳이라도 여호와를 멀리하면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하나님의 전에 헌물을 드릴 수 없는 슬픈 상황이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업이 황충이로 말미암아 메마른 들판처럼 변해 있다 할지라도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으니 이제라도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금식하고 애통하며 마음을 다하여 돌아옵시다. 여기서 더는 지체하지 맙시다. 돌아오되 제대로 돌아옵시다. 13절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주께 나아가면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13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14절)
그렇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님께 넘치도록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 전에 헌물을 드리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 전에 헌물을 드리는 그 때가 행복한 때입니다. 그 때를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이 바로 그 때여야 합니다. 여호와로 인한 축복이 넘쳐나서 성전에 마음껏 헌물 하는 때가 지금이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 재앙의 피해로 인한 슬픔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우리는 재앙의 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의 날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비참함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하고서야 참 성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돌아오는 자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회복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2:19).
성도 여러분! 흡족하게 삽시다. 여호와께로 돌아와 넉넉하게 삽시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러면 더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드리면서 넘치도록 채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데 드릴 것이 없던 때를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얼마나 슬펐습니까? 하나님께 마음껏 드리는 성도가 한없이 부러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성도를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 성도처럼 기쁨으로 넘치게 드릴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는 행복한데 나는 불행할까?’ 생각한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불행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옵시다. 슬픔과 불행을 끝내버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 기쁘고 즐겁게 나아옵시다. 그리할 때 재앙으로 인한 메마른 땅이 기름진 땅으로 변화는 것을 볼 것입니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낼 것입니다(22절).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13절).
우리를 위하여 내리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이 되어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쳐나게 하실 것입니다(23절). 이것이 우리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옵시다. 자녀들이 즐거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여호와께로 돌아옵시다. 마당에 밀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도록 여호와께로 돌아옵시다.
우리의 우선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모두 여호와께 나 자신을 드립시다.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섬깁시다. 그리고 지난날을 회개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우리에게 분명 암울한 시기입니다. 무엇 하나 힘이 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생활의 여유도 없습니다. 가정마다 행복 지수는 떨어지고, 자살률은 높아만 가니 안타까운 시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벌을 가진다 하여도 취업하기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메말라 갑니다. 수입이 메마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이제라도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절망은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메마름은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갑시다. 희망도 없는 메마른 곳에서 괜한 수고 그만하시고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암울한 시기에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으로 시작하여 재앙의 날을 우리에게 주신 것 같지만, 그러나 이제라도 돌아오면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심한 환란이나, 기근이나, 절망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가면 그분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으로 충만케 하셔서 다시는 비참한 날이 오지 않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시간이 되어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그리고 결론에 즈음 하여 3장 20~21절을 기쁘게 읽어 보시겠습니다.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어떻습니까? 이 말씀이 힘이 되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멀리하던 전에는 우리의 고통을 갚아 주지 아니하셨지만 여호와께로 돌아온 이제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마시고 이제는 여호와께로 돌아오셔서 그분으로 인한 행복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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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종 목사 설교집, [거룩한 강단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