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 가운데의 종”
(사도행전 27:27~37)
다음 주일은 계속해서 말씀 드렸던 대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또 남전도회 헌신예배로 이날을 기쁨으로 맞이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기도하는 가운데 뜻 깊은 주일을 더 아름답게 맞이하도록 준비하시는 줄로 압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하나의 온전한 주님의 백성이 탄생하는데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역사 하여 주시는 다섯 가지 중요한 내용을 대하여 상고하였습니다.
① 거듭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요 3:5).
②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 3:16).
③ 한 몸이 되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2:13).
④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보증, 확증을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고후 5:5).
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라 인 치심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엡 4:30).
이상의 다섯 가지가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내용적인 변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불같은 일생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율법주의자들은 그를 고소했습니다. 이때 그는 성실하게 자신이 전하는 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주이심’을 변호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대로 무죄로 석방되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최후로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들어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밝혀주기를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엄한 군대의 호송을 받으며 로마로 가는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그의 모습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그는 완전하게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분명하게 성령에 사로잡혀 그 인생의 행로를 180도로 바꾸어 불처럼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을 택한다면 모세를 들 수 있고,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성령강림주일에 임했던 것처럼 타오르는 불에 자신의 모든 과거를 태워버리고 새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고갯길에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바울은 지난주에 살펴 본대로 거듭난 인생, 하나님의 전, 한 몸 되어, 보증과 확증으로, 인치심을 받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 이와 같은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없는 줄 압니다. 다음 기회에 바울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순간 어떤 과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준비를 했는가에 대해서, 모세와 바울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잠시라도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의 모습이 어떤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로마로 끌려가는 바울을 태운 배의 상황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이때 로마로 끌려가면 자신은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였던 것 같습니다. 역시 그는 로마에 가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네로가 바울을 사형시킴으로 기독교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신호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배에 실려 가고 있는 바울, 그를 싣고 가는 배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배는 여러 속국에서 공출한 곡식들을 로마로 싣고 가는 배였고, 로마 황실의 직속이 되는 군대 지휘관이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든든한 배였습니다(행 27:12).
그때 기후는 항해하기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항해를 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든든한 배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도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면 선원들은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파선에 이른 이 상황을 한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것 가득 쌓아놓은 인생, 황제라는 거대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생, 힘의 상징인 군대, 더 나가서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던 반동자라 이름 붙여진 거추장스런 인물을 잡아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는 그들, 이렇게 하여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안심하며 만족하는 그들,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가는 만족한 한 척의 배였습니다. 이 가운데 네 가지만 이루어지면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먹을 곡식을 위하여 얼마나 수고들 합니까? 그래서 심지어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허드레 말도 있습니다. 이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는 슬픈 사연들이 많습니다. 지금 한 일간지에 첨예하게 쟁점으로 등장한 이야기 중 하나로, 수많은 한국의 젊은 여인네들을 위안부로 끌어갈 때 일본은 첫마디가 ‘먹을 것 많이 줄께’, ‘돈 벌게 해줄께’라는 구호였습니다. 그래서 철없는 어린 것들, 먹을 것에 이끌려 역사의 참담한 흔적을 남긴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을 비유하여 일깨워 주셨습니다(눅 12:20).
이 배는 바울이 예언했던 대로 큰 풍랑에 휩싸여 수라장이 되었습니다(행 27:43). 배는 완전히 파괴되어 겨우 생명만을 건졌습니다. 세상에는, ‘이제는 다 되었다’, ‘안심한다’, ‘즐기자’는 세상의 수단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인생살이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경우가 수없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풍랑 속에 함께 있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배는 죄인을 싣고 가는 배였습니다. 그러나 이 풍랑을 만났던 배와 모든 사람들은 바울에 의하여 죽음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행 16:30).
바울을 죽이기 위하여 끌고 가던 그들이 오히려 바울을 향하여 자신들의 구원에 대하여 질문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서도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며, 죽임을 당할 사람이 자신을 죽일 사람들의 구원과 영혼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숭고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바울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와 배에 속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까?
①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죄인으로 사형장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했던 권면(살전 5:16~18)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배의 운명을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행 27:10).
그렇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주님의 백성들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늘 계속할 때 모든 사람에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② 이 배가 풍랑을 견딜 수 없어 싣고 있던 모든 물건들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곡식들을 다 버렸습니다. 군대의 모든 무거운 병기들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만 물 위에 떠다니던 조그만 나무토막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꿈이 무너지고 부서진 현장입니다.
③ 마지막으로 이렇게 철저하게 부서진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확신을 가지게 하고 확신은 길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일이면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원히 살았던 바울의 모습을 간직하고 승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