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은 없는 것이 없지만, 소채(蔬菜)가 특히 강하다. 부산에서는 물론이고 영남에서도 알아준다. 전국 산야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나물과 채소는 이곳에 다 모인다.
봄 나물을 보러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을 찾은 것은 지난달 28일 오후. 한 며칠 푸근한 날씨가 이어지는가 했더니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봄나물이 나와 있을까'란 의문은 부전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말끔히 씻겨졌다. 1층 채소부에는 '갖추갖추' 봄나물들이 파릇파릇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향긋한 나물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흙냄새같기도 하고, 풀냄새같기도 하다. 나무냄새 또는 바다냄새같기도 했다.
#입춘 인사하는 냉이
"어서 오이소~. 뭘 좀 주까예."
채소부 들머리에서 '안동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이순자(여·50)씨가 손님을 맞는다. 목소리가 푸성귀처럼 싱그럽고 풋풋하다. 이씨는 부전시장에서만 20년째 나물장사를 하고 있다.
-냉이가 나왔습니까.
"요게 냉이 아임미꺼? 작년 연말부터 조금씩 나옵미더. 많지는 않아예."
냉이가 놓인 쪽으로 다가가자 상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냉이는 새 봄의 대명사로 어린 순과 잎, 뿌리는 나물로 그만이다.
-요새 먹는 냉이가 좋다면서요.
"엄동설한을 이긴 것들 아임미꺼. 요새 것은 뿌리를 잡아보면 부러지지 않심더. 심이 없어예. 자연속에서 얼고 녹고 하다보니 향도 참 좋고예."
-냉이도 하우스 재배를 합니까.
"냉이는 노지(露地·지붕 같은 것으로 가리지 않은 땅)에서만 된다 캅미더. 하우스 재배한 것은 보면 바로 표가 납미더. 하우스는 때깔만 좋았지 힘이 없어예."
-다른 봄나물은 어떤 게 있습니까.
"달래, 머구나물, 돈나물, 울릉도 산나물, 참나물, 봄동, 시금치, 부추(정구지) 같은 게 모두 봄나물이지예. 쑥도 있었는데 지금은 안보이네예."
-이 나물들은 산지가 어딘가요.
"냉이와 쑥은 경남 남해나 한산도, 진주 등지에서 옵미더. 대량 재배한 것은 별로 없고 대부분 노지라 캅미더. 촌에 있는 할매들이 바구니 들고 캐 모아 갖고 온 기라예. 시금치는 기장 쪽에서도 오는데, 통영 남해 것이 더 달고 맛이 있심더."
-저기 봄동은 배추하고 비슷한데.
"배추 사촌 쯤 되지예. 봄동은 쌈이면 쌈, 국이면 국, 나물이면 나물 다 해 먹습미더. 김치 겉절이로도 좋고예."
-달래도 노지에서 캔 겁니까.
"두 종류라예. 길고 미끈하게 생긴 것은 재배한 거고, 짧고 헝클어진 것은 노지임미더. 보기는 그래도 된장 끓일 땐 노지 끼 최곰미더."
#나물 장사 20년
인터뷰 중에도 손님들이 계속 오고 갔다. 젊은 주부들은 보통 2000원어치씩 사 갔고, 중년의 주부들은 1000원어치씩을 사 갔다. 이것저것 물어만 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저울에 올리지도 않고 1000원어치를 어떻게 압니까.
"한옴큼 잡으면 1000원어치고, 두옴큼 잡으면 2000원어치지예. 손이 저울 아임미꺼.-몇시부터 일을 나옵니까.
"몇년전 납품을 할 때는 새벽 2시30분쯤 돼서 나왔는데, 요즘은 새벽 4시쯤 나옵미더. 그래갖고 7시쯤에 마치고 들어갑미더."
'아침 7시냐'고 되묻자, 이씨는 저녁 7시라고 고쳐준다. 새벽에 부전종합상가 중도매상들로부터 나물을 받아 가게에 보기좋게 차리는 것으로 이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아침 점심은 시장에서 해결한다. 앉아있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많다. 하루 15시간 장사는 기본이라고 한다. 이씨는 20년간 그렇게 해왔다. 나물장사를 가르쳐주고 대물림해준 시어머니는 지금 와병중이라고 한다.
벌이를 묻자 이씨는 "말 안할랍미더"라며 손사래를 내쳤다. 다시 묻자 "수입은 나도 몰라예. 계산을 안하고 삽미더"라고 말한다. 그래도 좀 알수 없겠느냐고 재차 묻자, 이씨는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연다.
"잘 될때 100만원 정도라예. 모아놓은 것도 없어예. 그러나 빚은 안지고 삽미더. 재산이라면 딸 둘 키운 거라예. 저거끼리 밥 챙겨 먹고 공부하고 그래 컸어예. 지금은 둘다 전문대꺼정 나와 취직해 있심더."
'하루 100만원?'하고 되묻자 이씨는 "무슨 소리? 월 수입이 그렇다"고 고쳐준다. 2평 남짓한 가게에 월 점포세가 60만원이고 운영비, 밥값, 차비 등을 빼고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함께 가게를 꾸려간다는 이씨의 남편 김형국(54)씨가 가게로 들어서며 한마디 했다.
"입춘 취재라카이 하는 말인데, 재래시장 좀 살아나게 써주소. 부전시장 대길(大吉)이 되게 말이오." |
첫댓글 네 반갑습니다. 취재 내용의 글을 보니 10년전 왕성한 활동이 짐작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루 15시간씩 20년이라~
이번 입춘때는 부전시장으로
나물구경가야겠습니다
즐감하고갑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