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 16년 차인 46세 커리어 우먼입니다. 오늘 저의 고민은 부부 문제인데요, 남편이 결혼하고 5년쯤 지나서부터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습관처럼 이혼을 하자고 말해요. 시아버님께서 시어머님께 이혼하자는 말을 자주 하면서 시어머님을 힘들게 하셨다고 들었기에 자라면서 아버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술버릇처럼 하는 말이라 생각해서 그 동안은 흘려듣고 참고 살았는데, 요즘에는 ‘왜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계속 살아야 하나’ 고민도 되고, 무엇보다 점점 제 마음이 멀어지고 혼란스럽습니다. 남편의 입버릇을 고칠 자신도, 맞추고 살 자신도 점점 없어지고요. 이혼이 최선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어떻게 하면 이혼을 잘 할 수 있을까 요즘 고민 중에 있습니다.”(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애들은 몇이에요?”
“아이는 둘이에요.”
“애들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의논 한번 해보니까 뭐라 그래요?”
“아들한테 얘기하니까 엄마랑 아빠랑 마주 보고 대화를 좀 하라고 하더라고요.”(모두 웃음)
“애 시근머리(지혜, 분별력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어른보다 낫네요.(모두 웃음) 남편이 ‘이혼을 하자, 이혼을 하자’ 하면서 지금까지 몇 년을 살았어요?”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이혼할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데 처음에는 그냥 술 먹고 알콜성 치매 증세처럼 말을 하고도 그 다음 날 기억을 못 했는데, 요즘에는 술 안 먹고도 한 번씩 그 말을 해요.”
“이혼을 할 사람이라면 질문자한테 이혼하자고 말하기 전에 딴 여자를 만나든지, 아니면 서류를 마련해서 법원에 제출하든지 할 거예요. 그런데 말만 그렇게 하지 아직 한 번도 무슨 행동을 안 하고 있잖아요. 그건 이혼을 할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예, 없네요.”
“아이고, 저는 안 살아보고도 금방 말 듣자마자 알겠는데(모두 웃음과 박수) 질문자는 16년을 살아놓고 그걸 모르면 어떡해요? 진짜 이혼해야겠어요.”(모두 웃음)
“스님, 그런데 요즘에는 제가 이혼하고 싶어요.”(질문자 웃음)
“그거야 질문자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되죠.(모두 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데 왜 저한테 물어요?”
“남편 입버릇이 싫어요. 이혼하자는 소리를 안 해줬으면 저도 이런 마음이 안 들텐데...”
“아니에요, 질문자가 이혼하고 싶으니까 괜히 남의 말을 핑계 삼는 거예요. ‘이혼하자, 이혼하자’ 하는 건 정말로 이혼하자는 뜻이 아니라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 이런 간절한 바람의 표현이에요.(모두 박수) 남편한테는 지금 아내의 사랑이 부족해요. 그래서 좀 매달리는데, ‘나 좀 사랑해줘’ 이 말은 자존심 상해서 차마 입에서 안 나오는 거예요. 남편이 경상도 남자죠?”
“네.”(모두 웃음)
“아이고, 경상도 남자 체면 때문에 어떻게 사랑을 구걸을 하겠어요? 물에 빠져 죽으면 죽었죠.(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걸 거꾸로 ‘이혼하자, 이혼하자’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혼하자’ 이 말은 ‘여보, 나 좀 사랑해줘. 나 좀 예뻐해줘. 나 좀 봐줘’ 이런 소리예요.
그러면 ‘아이고, 여보. 당신 없이 난 못 살아. 당신 어떻게 그런 소릴 할 수 있어? 난 당신 없으면 못 살아. 나는 죽더라도 당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죽을 거야’ 이렇게 얘기하세요.(질문자 웃음)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러지 말고요. ‘난 당신 없으면 못 살아’ 이렇게 얘기하고 관심을 좀 보여주세요. 질문자는 애들한테만 관심 갖고 자기 직장 생활에만 관심 갖지 남편한테 지금 관심을 안 둬서 그래요. 외로워서 지금 하소연하는 소리예요. 그런데 체면 때문에 그렇게 못 하니까 거꾸로 ‘이혼하자! 이혼하자!’ 그렇게 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이혼하자’ 이 말을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 이렇게 들어야 해요. 술 먹고 그러면 등도 두드려주고 ‘아이고, 내가 바빠서 당신 못 돌봐서 미안해. 아이고, 그래, 그래. 나는 당신 없이 못 살아’ 이렇게 해 줘봐요, 풀리죠.”
“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제가 아는 분 중에 이런 분이 있어요. 아내가 덩치도 크고 얼굴도 넓적한데 늘 남편이 아내한테 입버릇처럼 ‘나니까 너하고 살지, 누가 너하고 살겠냐?’ 이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거예요. 그리고 절에 간다고 하면 또 ‘가지 마라!’ 이런다는 거예요. 그래도 간다고 하면 ‘가려면 다시 오지 마라!’ 이런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것 때문에 늘 상처를 받았는데, 어느 날 이분이 탁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니까 너하고 살아주지 누가 너하고 살아주겠냐’ 이 말을 ‘당신 너무 예뻐!’ 이렇게 해석을 한 거예요.(모두 웃음) 그리고 ‘절에 가지 마라! 가려거든 오지 마라!’ 이 말을 빨리 오라는 걸로 받아들인 거예요.(모두 웃음) 그래서 ‘가려면 오지 마라!’ 이러면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너하고 살아주지!’ 이러면 ‘예뻐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받아줘서 싹 풀어진 예가 있어요. 이런 게 깨달음이에요.(모두 박수)
특히 경상도 남자는 말과 행동이 표리부동합니다. LA에 제 고향 선배님이 계세요. 그런데 늘 말로는 ‘난 정토회에 관심 없어! 정토회가 어찌 되든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해놓고는 제가 수련장을 구하면 벌써 거기에 나무 심을 거며 다 준비하고 있어요.(모두 웃음) 트럭까지 새로 사가지고서는 벌써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 궁리하는데 말은 늘 틱틱거려요.
그러니까 말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경상도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제 친구들을 예로 들어볼게요. ‘야, 내일 저녁에 우리 집에 놀러 오너라’ 이러면 ‘아, 무슨 일이냐? 갈게’ 이러지 않아요. ‘가면 뭐 주는데?’ 이럽니다.(모두 웃음) 그리고 무슨 모임이 있어가지고 만났는데 한 사람이 늦게 와요. 늦은 사람이 ‘아이고, 늦어서 미안하다’ 이러면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이러면 될 텐데 ‘나는 네가 오다가 죽은 줄 알았다’ 이래요.(모두 웃음) 이걸 서울 사람이 들으면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이런 남자하고 결혼을 안 했어야죠. 그런데 이런 남자하고 이왕 결혼했으면 말에 너무 집착을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제일 어려운 게 경상도 남자하고 서울 여자하고 결혼하는 거예요.
먼 미국에서 누가 저를 만나러 오면 제 입에서 뭐라 그럴까요? ‘돈이 남아도는구나. 그 먼 데서 올려면 비행기표 값이 얼마인데 뭐 하러 오냐?’ 이렇게 얘기해요.(모두 웃음)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여기 다 경상도 분들이니까 이해하시죠?”
“예!”(청중 크게 대답)
발췌 스님의 하루 2018.06.09
https://www.jungto.org/pomnyun/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