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저자 김보통 / 문학동네 / 2017.08.30
페이지 296
책소개
회사를 벗어나 맞이했던 막연함에 대해 이야기하다!
매달 말일 확실하게 입금되지만 매일 아침 명백히 불행했던 회사원의 삶, 온 힘을 다해 그 길에서 도망친 퇴사자 김보통의 비범한 방황기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만자》, 《D. P》의 저자 김보통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에세이다. 더는 백업해줄 조직도, 실패를 감당해줄 가족도 없는 대한민국 보통씨가 퇴사 후 맞닥뜨렸던 고난과 가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자, 그 기나긴 방황의 여정 끝에서 마침내 손에 쥔 한줌의 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대기업 회사 배지를 옷깃에 달게 된 후 그에겐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그는 퇴사를 결심했다. 가까운 사람부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수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너는 망할 것이며 결국 불행해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빽도 돈도 없이 퇴사 후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함과 죄책감, 불안과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퇴직금이 얼마 남지 않자 식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밥 대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기 시작했고, 그러다 우유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시리얼을 우유에 조금만 적셔 비벼먹었다. 조직이 없고 돈벌이가 없는 김보통은 무인도에서 고립된 사람처럼 인간다움의 영역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갔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시작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작은 생각의 전환은 골방에서 시들어가던 김보통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빈곤의 입구에 섰던 김보통은 결국 《아만자》로 데뷔해 만화가가 되었다. 그래서 퇴사자 김보통씨는 결국 행복해졌느냐고? 이 책이 해피엔딩이냐고?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만,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쳐, 그저 지금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소개
김보통
2009년 입사
2013년 퇴사
2013년 만화가 전업
2015년 수필가 겸업
2017년 아직 불행하지 않음
만화가, 작가. 2013년, 20대 청년 암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아만자>로 데뷔했다. 오늘의우리만화상,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을 수상했다. 한겨레 토요판과 레진코믹스에 를, 레진코믹스에 <내 멋대로 고민상담>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아만자』 (전5권), 『DP 개의 날』 (전4권)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출근을 하며 -5
1부 우울한 행복 속에서
사람이 되기 위하여 -012
너는 불행해질 것이다 -026
기억나지 않는다 -035
울타리 밖의 풍경 -043
최후의 휴가 -052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떠나서 -062
대관람차 안의 절망 -078
눈보라가 몰아쳐도 -097
2부 불안한 자유 위에서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106
자위록 -113
미궁의 도서관 -118
죽음의 카드 뒤집기 -127
길이 아닌 길 -145
시위를 당기다 -153
죽음의 풍경 -159
식빵맨의 하루 -165
3부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최초의 브라우니 -178
장장 17년 -186
서투르고 부끄러운 -200
이제 행복해야 하는데 -210
박수는 안 쳐요 -217
줄 서기의 고단함 -234
보통 사람들 -241
흐르고 흘러서 -248
준비 없음 대책 없음 -254
단 한 번 내 인생 -267
지금, 여기의 나 -278
에필로그_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289
출판사 서평
“회사 못 다니겠어. 도대체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
이젠… 진짜 싫다고.”
이젠 더 견딜 수 없어진 당신에게―”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IMF로 여느 평범한 가정들이 숱하게 망해갈 때 김보통의 집안도 무너졌다. 유일한 희망은 장남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집안을 살려내는 것뿐이었다. 대기업 회사 배지를 옷깃에 달게 되었을 때, 김보통은 생각한다.
‘끝이다. 고생도, 가난도, 이 지긋지긋한 짐승의 삶도 끝이다. 이제 나는 사람이 된다. 드디어 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긴다.
그 무렵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당시 아파트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쯤에서 떨어지면 한 방에 죽겠는데.’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많이 피곤한가보다’ 싶어 의식적으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치는 도로의 신호등 앞에서, 지하철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눈앞이 하얘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이거면 확실히 죽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저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마치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45~46쪽)
확실하게 돈은 벌지만, 분명하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 회사원 김보통에게는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아침 9시인데 오전회의가 새벽 6시 50분에 열렸다. 회의는 부장의 긴 모노드라마에 가까웠다. 일과시간 내내 회의를 해놓고는 저녁에 회식을 소집했다. 회식은 자정이 되고 새벽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방금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그토록 아들이 대기업에 가길 소원했던 보통의 아버지는,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기업 다니는 아들은 아픈 아버지를 보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퇴근시간마다 회식을 소집하는 상사는 장군처럼 외쳤다. “본인 사망 외에는 열외 없다!” 일하려고 입사했는데, 제발 일만 했으면 좋겠는데, 회사는 삶마저 송두리째 요구했다.
“이 잔을 비우고, 저 잔을 받고, 건배를 해서 이 술을 모두 없애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있을까. (…)
뚝, 하고 눈물이 흘렀다.
이 좋은 날, 남들처럼 웃지는 못할망정 울고 있었다.
“야, 너 왜 울어.”
상무가 물었다.
차장이 나를 노려보았다. “세상 모든 아빠는 다 죽어. 우리 아빠도 죽었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씨발새끼야.” (214쪽)
김보통은 생각한다. 대체 나는 지금 무얼 바라,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돌아가, 바다는 네가 살 곳이 아니야.”
불안한 자유 위에서
퇴사를 결심한 그에게 무수한 조언들이 쏟아진다.
“회사라는 게 말이야. 안에서는 그 고마움을, 든든함을 잘 몰라. 나가보면 알게 되는 거야. 이 시스템이 지금까지 얼마나 나를 보이지 않게 보호해주고 있었는지를. 이 견고한 시스템을 벗어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재밌는 게 뭔 줄 아냐? 다들 후회해. 나가보면 아무것도 없거든. 나를 백업해줄 조직도, 내가 내세울 간판도. 현실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가혹해.”
그는 선배에게 말한다.
“그냥 도망치는 거예요… 도망치는 거라고요. 잘되고 말고는 상관없어요!”
그래서, 그는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대한민국을 떠나 그는 따뜻한 오키나와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퇴사 후 여행에서 ‘평생 동안 모르고 살던 나 자신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팔아먹기 좋게 편집되고 가공된 예쁜 허구’였음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놀라운 깨우침을 주는 그 누군가를 만나지도 못했다. 다만 자신이 원했던 건 거창하고 위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조금 걸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 그리고 지금 자신이 다시 입사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대책을 찾아내야만 하는 실업자가 됐음을 실감했을 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여느 퇴사자들처럼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쫓는 여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이참에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작은 도서관’을 열기로 한다. 정사서 자격증이 있었고,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으며,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추면 정부 지원도 조금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의 절반을 털어 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의 집안에는 서점에서 날아온 택배상자들이 수북이 쌓여간다. 그러나 간절하게 열고 싶었던 ‘작은 도서관’의 문마저도 ‘돈’ 없고 ‘경력’ 없는 이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망해가는 치킨집 자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외진 곳 외에 그가 빌릴 수 있는 가게 자리는 없고, 정부 지원도 허망하게 물 건너간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인 책상자들 사이에 갇힌 그는 초조해진다. 그의 인생을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둘러대보기도 하고, 유통업에 뛰어들어볼까 발품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그의 자리는 없다. 아무데도, 없다.
“수족관에서 살다 바다로 나오니 어때? 죽겠지?”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매우 비굴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넓고, 바닥이 어디까진지 모르게 깊고, 파도는 계속 몰아쳐오고, 물은 짜고, 시퍼런 바닷물 속엔 상어에 고래에 뭐에 득실득실하고. 바다,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지? 죽겠지?”
“그래. 죽겠네.”
“돌아가.”
친구는 다시 말했다.
“바다는 네가 살 곳이 아니야.”
나는 우물거리며 “안 돼” 하고 말했다.
“전화해. 인사과 사람이든 뭐든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빌어. 내가 잠깐 미쳤나보다고. 한 번만 물러달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
“못해. 이제 다 끝났어.”
“그럼 죽어.” (140~141쪽)
사회가 폐기 처분한 식빵맨
어떻게 해야 이 빈곤의 입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퇴직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식비를 줄여야 한다. 실업자 김보통은 밥 대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유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자 시리얼을 우유에 조금만 적셔 ‘비벼먹는다’. 하지만 돈이 너무 든다. 커다란 식빵을 하나 사서 며칠에 걸쳐 찢어먹는다. 처음엔 잼이나 땅콩버터를 발라 먹기도 했지만, 돈 들어올 구멍 하나 없는 백수에게 그것은 사치일 뿐이다. “의식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져간다. 조직이 없고 돈벌이가 없는 김보통은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처럼 ‘인간다움’의 영역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는 귀를 덮을 정도로 자랐고 수염은 보름 넘게 깎지 않아 덥수룩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고 있었다. (…)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빈곤의 입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와 어떤 지원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걸어가 곰팡이를 뜯어낸 식빵이 담긴 봉지를 들었다. 아직 반은 남아 있었다. 쓰레기통을 열어 미련 없이 식빵 봉지를 버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탕수육 소자에 짜장면 하나요.”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어설프게 장사니 사업이니 해보지도 않은 일에 돈을 쓰는 건 그만하고, 다시는 대학원이니 뭐니 원치도 않으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기웃거리지도 말자. 그저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오래간만에 먹는 탕수육 맛은 끝내줬다. (173~175쪽)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시작해보겠다는 이 작은 생각의 전환은, 골방에서 시들어가던 김보통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상한 식빵 같은 위축된 실업자로서의 삶을 내버리고, 자신에게 밥보다 중요한 달콤한 즐거움과 자존감을 선물하기 위해 브라우니를 구우면서 사람 구경을 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재잘재잘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림을 그린다. 김보통의 메일함에는 자신의 얼굴도 그려달라는 메일이 쇄도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이 저려올 때까지 우리 주변에서 울고 웃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불현듯 어떤 분이 사진과 함께 보낸 쪽지가 떠올랐다.
“작가님. 제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 아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드리니
마지막 가기 전에 볼 수 있도록
그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44~246쪽)
이 책에는 그 시절의 김보통이 그린 ‘보통 사람들’ 그림 600여 점 중 200여 점이 열 페이지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이 있다. 별나게 예쁠 것도 없고 잘나지도 않은 평범한 인물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있는 그림일 뿐이지만, 이 그림들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 얼굴들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담담하게 아름답고 슬픈 열 페이지의 드라마는 이 책에서 가장 눈부신 페이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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