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탁구 잔치를 함께한 양한희 학생에게
권대익
저는 탁구를 좋아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친구들과 집사님과 탁구를 한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을 할 때 점심시간마다 신나게 탁구를 했습니다. 탁구는 탁구대가 있어야 하니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닙니다. 방화11로 이직하면서 마침 탁구 동아리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시 라켓을 잡고 점심시간마다 회원들과 탁구를 했습니다. 땀 흘리며 웃으며 운동하니 즐거웠습니다.
이 즐거움을 더 많은 주민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탁구가 이웃 관계를 좋게 하는 구실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일 년 동안 탁구 동아리 회원에게 꾸준히 부탁드렸고 드디어 이번 겨울 단기사회사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좋은 관계가 좋은 때를 만나 이루어진 겁니다.
김제에서 잘 배운 한희가 방화11 단기사회사업에 지원했습니다. 1순위 2순위 지원사업도 아닌 탁구 잔치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어떤 사업이든 괜찮다며 잘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탁구를 제대로 쳐본 적이 없는 한희. 내심 탁구를 좋아하고 잘 치는 남학생이 지원하길 바랐지만 오히려 탁구를 못치는 한희가 담당인게 잘 되었습니다. 탁구를 못하는 한희 덕분에 탁구 강습은 마을 선생님이 온전히 모두 하셨습니다.
한희는 탁구공만 줍다가 그마저도 회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탁구대회 경기운영도 탁구 선생님이 모두 도맡아 하셨습니다. 한희는 그저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을 뿐입니다. 철저하게 사회사업가 정체성에 맞게 실천했습니다.
한희는 당사자 면접 날 부모님과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합격 결정도 안되었는데 큰 돈을 들여 고시원을 계약했습니다. 차분하고 예쁘게 대답하는 한희는 탁구 선생님 만장일치로 합격했습니다. 전주에서 큰 비용 치르며 실습을 하는 한희. 부모님의 응원과 사랑으로 한 달 동안 서울살이를 하는 한희. 이런 한희를 생각하니 제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희는 일주일에 세 번 매주 월화목, 아침 오후 저녁 탁구반을 맡았습니다. 각각 10명 이상씩 신청했으니 한희가 꾸준히 만난 주민은 30명이 넘습니다. 동네 사람 30여 명이 모였다는 자체만으로도 탁구가 이웃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좋은 장이라는 걸 알게 합니다. 이 가운데서 엄마와 아들, 남편과 아내, 아빠와 아들이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땀흘리며 운동하니 얼마나 즐거우실까요?
친구와 함께 신청하신 분도 계시고, 탁구를 하면서 친구가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부터 20대 30대 마을 청년, 40대 50대 주부, 그리고 65세 이상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탁구 잔치를 함께 했습니다. 한희는 모든 세대의 주민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모든 세대와 함께 사업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겁니다.
한희는 묵묵하게 잘했습니다. 선행연구도 기록도 일찍 꾸준히 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며 필요한 게 무엇인지 미리 묻고 준비했습니다. 탁구를 하러 오신 주민에게 반갑게 인사했고 따뜻하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걱정 없이 잘하고 있는 것 같은 한희가 실습실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탁구 잔치를 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먼 타향살이의 어려움, 제가 네 가지 과업을 하니 더 많이 이야기 나누지 못한 아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있었을 겁니다. 더 깊이 자주 이야기 나누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한희의 무게만큼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한희와 이 사업을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사업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어떻게 진행될지 그려졌는데 한희에게는 희미한 불빛과 같았습니다. 이는 믿음입니다. 이웃과 인정을 경험할 때 그런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탁구 잔치과 이웃과 인정으로 풍성하게 채워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한희가 이 경험과 힘을 온 몸으로 느끼길 바랐습니다.
희미할수록 한희는 걸언 했습니다. 어떻게 탁구 잔치를 이룰지 주민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습니다. 탁구 잔치 준비 과정을 세분화해서 하실만한 분을 일대일로 만나 부탁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꾸미기와 감사장을 부탁했고, 청년들은 영상을 어떻게 만들지 의논하고 짐도 들고 청년의 엄마도 식사팀으로 섭외했습니다. 주부 분들이 계셨으니 식사팀은 문제 없었습니다. 강당 창고는 주민이 가져오는 여러 물품으로 조금씩 채워져갔습니다.
조금씩 이루어지는 탁구 잔치처럼 탁구 모임 자체도 조금씩 더 깊어졌습니다. 서로 나눠 먹을 간식을 가져오셨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3주를 함께하면서 편안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탁구 잔치가 끝나더라도 동네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탁구 잔치 당일, 걱정으로 펑펑 울은 한희의 눈물이 무색하게 풍성하게 차고 넘쳤습니다. 제가 처음 사업을 기획하며 상상한 모습처럼 이루어졌습니다. 탁구대회는 우리가 손 댓 것 없이 모두 탁구 선생님이 준비했습니다. 음식은 여러 이웃이 도와주셨습니다. 부침개 떡볶이 오뎅 곤드레밥 칡차 귤 과자 등이 차고 넘쳤습니다. 장보는 일도 김효순 님이 당신 차를 이용해서 함께 장을 보셨습니다. 상품도 주민이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가져오셔서 채워졌습니다. 아이들 나눠주시겠다며 인형을 가득 가져오시기도 했습니다.
회비를 걷었는데 회비를 쓸 일이 적어 회비가 많이 남았습니다. 감사도 넘쳤습니다. 탁구 선생님께 감사장과 손으로 쓴 엽서를 드렸습니다.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감사와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고백이 가득했습니다. 감사는 탁구 선생님과 주민이 받았습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오롯이 빛났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한희가 부지런히 묻고 의논하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숨은 주역입니다.
한희는 주민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타향살이 힘들 거라며 늘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음식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일대일 데이트도 했습니다. 내 딸처럼 예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주민과 주고 받는 애정과 인격적인 만남이 소진되지 않는 힘입니다.
한희는 저와 다르게 차분한 사람입니다. 묵묵히 천천히 진정성있게 주민과 동료를 만났습니다. 예쁜 목소리와 예쁜 언어로 주민과 동료를 만납니다. 한희의 이런 모습에 주민도 동료도 칭찬하고 한희의 마음을 잘 알아주십니다. 걸언하는 사람, 진정성 있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 한희는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더불어 살게 돕는 진정한 사회사업가입니다.
걸언할 때 이웃과 인정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애정하는 사회사업가 후배 한희, 한희의 꿈처럼 현장에서 다시 만납시다. 복지관 현장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예쁜 목소리와 예쁜 언어로 예쁜 공간에서 이웃의 관계를 잇는 일을 하고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애썼습니다.
2019년 1월 28일
양한희 학생을 응원하는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선배사회사업가 권대익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