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다 / 김순철
발톱 사이로 햇살 한 줌 미끄러진다
쥐뿔도 없는 것이 독 안이 싫어
벌어진 틈으로 스미는 시간
잡으려고 하는 것들 죄다 빠져나가고
독 안에 잡아 놓고도 독보다 작아 볼 수 없다
분명 잡았는데 여전히 비어 있다
갸우뚱 해 보지만 무엇을 놓친 건지 알 수 없다
희망 / 조영남
오랫동안 어둠속을 걸었다
터널을 빠져나갔을 때
세상이 온통 환하고 둥글었으면
또다시 어두운 곳에 발목 잡혀
허우적거리는 일 없기를
그림자를 뒤로 밀며 걷는다
울타리 / 김대정
내 안으로 들어와
심장을 만져 봐
내 안에 너희들이
뛰고 있는 거야
따뜻한 구멍 / 허정진
볼품없이 구멍 난 이파리
어느 애벌레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
겨드랑이 날개를 키워주었을,
짓눌린 삶에 오체투지로
평생 구멍 난 양말만 찾아 신던
어머니의 동그란 미소를 보듯
생 (生) - 최형만
작년에 죽었다던 몸
푸른 잎 가득 달았다
날카롭게 베인 자리
원망도 없다
옹이도 보이고
나이테도 내놓았는데
생(生)은 악착같이 붙잡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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