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버리다 - 강미정
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욕설 같은 바람이 얇은 옷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앞쪽은 젖은 옷처럼 찰싹 붙고 그 뒤쪽은 불룩하게 헐렁한,
마음이 바람의 날을 벼리고 있잖아
절규하며 날뛰는 힘을 견디며 파랗고 날 샌 노래를 부르잖아
봐, 깊게 사랑했던 마음이 들끓을 때
당신은 울음소리에 몰두할 수 있지
당신이기에 어느 한 가슴이 가장 먼저 울 수도 있지
내가 알았던 세상의 모든 길을 지우고
다시 당신이라고 불렀던 사람이여,
저기 망망대해를 펼쳐두고 출렁임을 그치지 않는
당신의 침묵이 폭풍우가 되는 바다가 참 좋더라
폭풍우에 스민 울음소리가 들리잖아
나를 부르는 웃음소리가 들리잖아
마음이 바람의 날을 세워 밀며 밀리며 견디는
저 애증의 극단 중간에 침묵을 두고
세상이 되고 길이 되었던 당신이 가슴으로 와서
폭풍이 될 때 나는 휘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문학마당》 2009년 여름호
몸부림 - 강미옥
격렬한 춤사위를 벌이며
아픈 밀어를 나눈다
부질없는 세상
맴돌다가 포옹하다가
맺을 수 없는 인연의 끝을 잡고
끝내 눈물 왈칵 쏟아낸다
삭일 수 없어
걸리고 넘어지던 생각들
고행은 숙명이었다
속내를 다 드러낼 순 없어서
뭍의 발끝만 적시고 떠 다닐 뿐
[사진시집『 바람의 무늬 』2020]
아름다운 비명 - 박선희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소리에만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안다
한 번도 같은 소리 아니라는 거
그저 몸 뒤척이는 소리 아니라는 거
바다의 절체절명,
그 처절한 비명이 파도소리라는 거
깊은 물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야멸치게 말하는 사람아
생의 바깥으로 어이없이 떠밀려 나가본 적 있는가
생의 막다른 벽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쳐 본 적 있는가
소리 지르지 못하는 깊은 물이
어쩌면 더 처절한 비명인지도 몰라
깊은 어둠 속 온갖 불화의 잡풀에 마음 묶이고 발목 잡혀서
파도칠 수 없었다고 큰소리 내지 못했다고
차라리 변명하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저 파도소리 때문인 것을
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ㅡ 《시인시각》 2009
첫댓글 사진도 시도 너무 좋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양향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
@청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