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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다른 단계들(출애굽기24장)
역사적 배경
출애굽기 24장에서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에 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시절 이후에 그들과 말씀하시며 새로운 삶에 필요한 십계명과 율법들이 주어졌던 시내산, 호렙산에 다다를 때까지 3개월 동안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산이 크게 흔들리며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시므로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보고 떨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을 대표하여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전하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19:16-19, 신4:9-14,5:13-29)
모세가 십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받은 후, 하나님은 그분을 예배하도록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분의 원칙들을 알려주시기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이 원칙들은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예배하도록 부르셨을 때, 우리는 출애굽기 24장 1-2절을 통해 예배에는 3가지 다른 단계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백성들은 산에 올라가면 안되었고 산 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2.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은 산에는 올라갔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멀리서 경배해야 했습니다.
3. 모세 혼자서 산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이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준비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일러주었고 백성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지침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예배의 세가지 계획이 구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위대한 신비들이 가득합니다.
예배의 첫번째 단계: 산 아래에서 드리는 예배(출24: 4-8)
다음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 모세는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의 제물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타락 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제단과 제물이 요구되기 때문에 예배에 있어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과 그 조건들에 관계된 것들을 전했고(출19:3-6), 제단과 백성들에게 피를 뿌렸습니다.
• 백성들은 모세에게 반응했습니다. 모세는 말씀하신 모든 것을 백성들에게 전했고 백성들은 이해하고 순종함으로 합의했습니다.
따라서 산 밑에서 예배는 하나님 제단 앞에서의 예배였음이 분명합니다!
• 첫 번째 예배의 단계는 제단과 제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물이자 동시에 우리의 제단입니다(고전5:7b, 히13:10-12). 그곳에서 우리는 언약의 피로 새롭게 되었음을 기억하고 언약의 조건에 따라 걸어감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유일한 길이며 악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길입니다.
• 하지만 예배의 산의 다른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성장해야 하며 세상과 분리되야 합니다. (고후6:14-7:1)
예배는 항상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백성들을 호렙산에서 처음 만나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거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시68:16, 삼하5,6)
• 첫 번째 단계에는 육적인 예배와 영적인 예배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산밑 골짜기에서만 머물러 있습니다. :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그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산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릴 유혹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산 밑에서 예배한 후 하나님을 등지고 노예시절 이집트에서 보았던 소의 우상을 예배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춤추고 먹고 마시며 놀았는데 이는 그들이 부정함에 빠져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육이 예배를 방해하면 혼합된 반응들이 나옵니다: 예배의 열정과 정렬이 지나간 후에 정욕과 부정함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출32장 참조)
예배의 두번째 단계 (출24: 9-11)
새로운 단계의 교제에 들어가려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올라감도 제단과 피, 그리고 언약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더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백성들을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책임이 있는 자들, 제사장들과 장로들로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따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장로는 나라를 섬길 수 있는 신성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지파의 지도자적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수년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과 동행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장로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다른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노래, 댄싱, 부르짖음, 회개, 감사, 찬양등과 같은 예배의 일반적 테크닉이 필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산 아래에서 일어나고 첫번째 예배의 단계에 있는 동안의 예배의 형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과 함께 먹게 됩니다! 지적인 이해, 즉 하나님을 안다기 보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며 그분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한 사람의 내적 존재 안에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지적인 지식은 첫 번째 예배의 단계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동행하는 신실한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이러한 계시는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 신비한 계시들이 시작되는 다른 단계와 차원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면 신비들이 풀어지고 그 깊이들이 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혼(soul)에 영양을 공급하는 신비한 음식이 되어 타락한 성품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타락으로 인해 우리 내면에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11절)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두려움은 이 단계에서는 사라지지만 혼(soul)은 경외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그분의 경이로운 위엄 때문에 숨기를 원하게 됩니다. (사2: 10-11)
또한 마음(heart)을 깨끗하게 하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행하므로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새롭게 부어집니다(롬 5: 5). 여기에는 예배의 다음 단계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언어로는 이 단계의 교제를 가르치거나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올 세상(the age to come)을 미리 맛보는 것이며 그 사람을 위로 끌어 올립니다.
모든 책임감을 가지고 이 단계를 통과한 후에 하나님은 그를 더 높이 올라오라고 부르시므로 그는 더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예배의 세번째 단계 (출24: 12-18)
하나님은 모세를 올라오라고 부르십니다. 이전 단계에는 74명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더 오르도록 준비되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산에서 예배하는 단계들에 대한 갈망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라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중요합니다.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혼(soul)은 올라가는 어려움을 회피하고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한 위험들이 있습니다. 원수가 위로 올라가는 산의 입구들을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둠의 왕국에 큰 위협이 됨을 알고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사자와 표범을 만납니다! (아가서4:8)
산 정상에서, 하나님은 삼위를 나타내시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구원자이신 아들을 신부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신랑의 이미지로 보게 됩니다: ‘나의 신부야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올라가자.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의 고난이 신부의 장식으로 바뀔 것이다. 너의 고난은 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고 내 부활의 능력을 더욱 알도록 너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빌3:10)
그런 후,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신부는 신랑이 있는 신방에 들어갑니다. 분리된 커튼인 구름을 지나서 말입니다. 이 커튼 뒤에는 신비들과 교제, 그리고 아무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사랑의 연합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언어는 멈추어버립니다. 사랑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습3:17)
이 사랑은 또한 신부가 신랑과 그분의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자격을 갖추게 하고 준비시킵니다. 신랑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소원은 그분의 사람들 사이에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에 준비가 안된 듯이 어떤 모임들 마다 그분을 계속 단순한 방문자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지속적인 거하심을 위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우리는 주님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 30)’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멍에에 익숙하지 않거나 메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신부에게는 주님을 위한 거처를 세우는 신비가 주어집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새로운 영적 성전으로 만드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고전3:16). 하지만, 그분은 또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를 갈망하십니다(고후6:16b).
모세는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성막의 모든 비밀을 가지고 나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선포했습니다. :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25:8).’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요청하신 것이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25:8/열왕기상8:1-11/에베소서2:22/계시록21:3)
뿐만 아니라, 이런 산 정상에서의 만남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를 다시 부를 때까지 이 경험을 다시 원하고 더욱 사모하게 합니다. :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18-19).
모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채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모세가 산에서 두 번째 내려왔을 때, 그는 은혜로 빛났고 얼굴은 이스라엘 자손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빛났습니다(출34:29-30).
우리를 위해 하신 예수님의 중보기도에 따르면(요17:22), 우리는 그분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교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는 모든 구속된 사람들도 예수님처럼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변화되어 나타나므로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끌기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의 소원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영광이 그분의 사람들 위에 머물러 구원을 위해 세상에 비추어지기를 원하십니다.(사60:1-3)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