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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교회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지금 교회 안에는 진심으로 여호와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분들이, 발은 교회에 걸쳐놓고 마음은 온통 세상으로 향해있는, 몸따로 마음따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고 봉사와 희생도 하고 헌금도 적당하게 하는 척하면서 거룩한 척하고 경건한 척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갑니다.
나의 마음의 중심이,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입에서 나오는 신령한 양식을 좋아하면서 배우고자 하고,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육체를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진정 영적으로 성숙한 것이요 애굽 땅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진정한 모습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현재의 성도들에게, 현 시대에도 구약의 율법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나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조문을 통해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나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깊고 넓고 높으신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나의 죄를 깨달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울 앞에 서야만 내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듯이 율법을 통하여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많은가를 알게 되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죄과를 많이 볼수록 일만달란트를 빚진 자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셋째는 나 자신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하늘에 두게 하시며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나 자신의 죄를 보게 되면서, 나 자신의 죄인된 정체성을 깨닫게 됨으로 나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되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주시고 이 땅에서 인생의 길이 되어주신다는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이제는 나의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게 되며, 지금까지는 썩어지고 없어지는 것들을 위해 살았지만 앞으로는 썩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지게 됩니다. |
18절부터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무교절과 안식일과 칠칠절 그리고 수장절 등을 지키라고 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절기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이실 때에 지켜야 할 절기들입니다. 즉 이것은, 지금은 비록 광야 시내산에 머물러 있지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언약대로 가나안 땅에 반드시 들이신다는 것을 재천명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의 6절에 “여호와라 여호와라”라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기들은, 출애굽기 5장에서 잠시 설명했으므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무교절은, 누룩없는 떡을 7일간 먹으면서 아빕월에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아빕월)과 정하신 기간(이레 동안)과 정하신 음식(무교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애굽에서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여 경외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안식일은, 애굽의 고역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지키도록 하셨는데 이 절기의 의미는 택자들에게 영원한 해방과 안식을 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칠칠절은, 여름에 첫 열매를 거두는 절기로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서의 매해마다 첫 수확에 대하여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이 절기의 의미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승천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그리고 수장절은, 가을 추수 때 7일간 지키는 절기로 한 해의 추수로 광야 40년을 인도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념하며 지키는 절기로서 마지막 날 심판하시려고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그리고 25절부터는 여호와께서 제물을 드리는 일에 주의하라고 명하시는 내용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의 제사는 제사를 하는 당사자 중심으로 제사가 치러집니다. 그래서 제사를 하는 자가 원하는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치릅니다. 동료 중에 누군가가 제사를 통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제사를 본받아 따라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태가 이방인의 제사요 기복 종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의 당사자는 살아계신 주권자 하나님의 명에 따라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제사의 본체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에 대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사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에 대한 제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기독교는, 인간의 행위나 정성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서,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는 것은 번제와 소제를 함께 드릴 때에 무교병으로 하라는 말씀인데 이는 성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는 것은 희생 제물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함인데 이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그리고 ‘처음 열매를 드릴 것’은 모든 첫 것을 여호와의 것으로 식별하는 것인데 이는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첫 것은 살리심으로서 첫 열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또한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것은 이방인의 잔인한 풍속을 따르지 아니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기 위함인데 이는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여 경외하려 하심입니다.
27절부터의 말씀은 증거판 기록과 수여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번째 돌판을 수여하십니다. 이는 백성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긍휼을 베푸시는 여호와를 증거하심’입니다. 백성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열조와의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돌판의 용도는, 지워지지 않는 언약의 확실성을 증거하고, 지워지지 않는 돌판으로 시내산 언약을 지켜 행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토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29절부터는 모세가 증거판을 가지고 시내산으로 내려오는데 모세 얼굴 꺼풀에 나타나는 광채를 수건으로 가리는 내용입니다.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수여받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은 광채가 나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광채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만났다는 증표인 표적적 현상입니다. 의미는, 새 언약의 말씀으로 오실 영광의 광채이신 그리스도애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마가복음9장3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들 앞에서 변형되셔서 그 옷이 광채가 나서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매우 희어졌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형입니다. 얼굴에 광채가 난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이유는 백성들이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수건의 의미는 수건이 걷혀야 영광의 광채이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음을 가르킵니다. 고후3장7절에서 18절까지의 내용을 확인해 보면 수건은 곧 율법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