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은 홍수 심판 직전에 여호와께서 노아의 가족과 모든 짐승과 새들을 방주로 이끌어 들이라고 명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한 기한 일백이십 년이 되므로 심판하시고자(6:3) 먼저 완성된 방주 안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된 노아와 그의 식구들 그리고 정하신 짐승들을 방주 안으로 들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1절)
위의 본문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는 말씀은, 노아의 도덕적 행위에 의한 의가 아니라 아담의 아들 가운데 셋의 계통의 자손으로서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의미에서의 의에 기초한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온 땅을 홍수로 멸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서 하라는 대로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을 쫓아 의의 후사 곧 선택을 입은 셋의 후사가 된 노아에게 여호와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짐승이나 공중의 새들 중에 정결한 것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취하여 그 씨를 보전하게 하라고 하십니다(2,3절). 여기서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은 제물로 사용하시고자 위함입니다.
본문의 내용과 6장 19~20절의 내용은 얼핏 보면 앞뒤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내용은 각각 다른 것을 설명하는데, 앞선 6장은 노아가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취하여 방주로 이끌어 들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7장은 노아가 모든 모든 동물을 취하여 방주로 이끌어 들이는 수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그 수량은 정결한 짐승 한 쌍씩을 취하여 모두 일곱 쌍을 방주로 이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짐승 중 정결한 것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을 하는 것을 말하고, 부정한 것은 새김질을 아니하고 굽이 갈라지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레11:1~8).
그리고 말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짐승 가운데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은 그것들마다 개개의 행동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종류에 따라 창조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 역시도 행위에 의하여 의인과 악인이 정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취하시고 버리시는 여부에 의하여 창세 전부터 확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 섭리에 의하여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는 부정하고 소는 부정하지 않다고 정하셨습니다. 소가 토끼를 먹든지 사자가 풀을 먹고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남들은 나를 못나게 보지만 부모는 나를 언제나 이쁘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홍수로 심판하실 때를 ‘지금부터 칠 일’이라고 정하시며 심판의 기간을 ‘사십 주야’로 하시고 심판의 범위로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언약하십니다(4절).
이에 노아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합니다(5절). 노아는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자신과 가족들을 포함하여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과 새들을 방주 안으로 들입니다.
6절부터 12절까지는 여호와께서 노아의 가족과 짐승과 새 등이 방주로 들어간 후에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지게 하시는 섭리 내용입니다.
당시 노아의 나이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지 일백여 년이 지난 육백 세였으며(6절)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으며 짐승 역시 정하신대로 모두 방주로 들어가게 합니다(7~9절). 그리고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혔는데(10절) 곧 그해 이월 십칠일이었습니다(11절).
이때가 여호와께서 육체가 된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겠다고 예고하시던 때로부터 일백이십 년이 되는 때입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11,12절).
여기서 ‘깊은 샘들이 터졌다’는 것은 지하수가 솟아 올랐다는 것이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이러한 홍수로 온 세상이 물속에 잠긴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홍수 사건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3:21)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홍수 심판에서 노아를 구원하신 사건은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사건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모형과 그림자적 사건입니다.
즉 같은 죄인이지만 버리는 자에 대해서는 홍수 심판으로 죽이시고 택하신 노아는 홍수 심판의 죽음에서 살려 부활하게 했으므로 ‘세례’입니다.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행하신 것과 같습니다.
13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노아의 가족과 짐승과 새들이 방주에 들어간 것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설명과 그 결과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시는 내용입니다.
본문 13절부터 16절은 앞의 7절에서 9절까지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 가족과 들짐승 등 모두가 들어간 후에 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시는 사실도 언급하십니다. 이와 같은 홍수 사건에서 이름과 기한과 나이 등 모든 부분의 치밀한 소개 내용은, 홍수 심판의 사실에 대한 역사성을 더욱 증거하는 자료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부터는 홍수가 시작되어 계속하여 진행되어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 내용입니다. 사십 일 동안의 홍수로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17절) 물이 넘쳐서 땅 위에 크게 불어나자 물 위에서 떠다녔습니다(18절). 그리고 물이 더욱 창일하여 높은 산이 다 덮혔으며, 물에 의해 산들이 잠긴 그 위로 십오 규빗이 더 높게 불어났다고 말씀합니다(19,20절).
그리고 21절부터는 홍수 사건으로 인한 결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땅 위에 기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짐승과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다 죽었으며 마른 땅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그 코로 생명의 호흡을 하는 것은 다 죽었습니다(21,22절).
하나님께서 땅 위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 사람을 비롯하여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쓸어 버리시니, 그것들이 땅에서 쓸려 갔으나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습니다(23절). 물이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 넘쳤습니다(24절).
노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방주 안의 모든 짐승들과 새들이 보호를 받고 생명이 보존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로 하여금 만들게 하신 방주는 이들에게 죽음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신 나라에 대한 언약의 신실하심을, 노아와 그의 방주를 통하여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모든 것을 멸하시는 가운데 방주를 보호하셔서 이어가십니다. 이 방주는, 세상 끝 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이며 예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