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광야생활, 혹은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서 가나안 땅까지의 여정 그 기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여정은, 짦게는 열흘정도면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방향으로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으로 향하게 하고
그리고 가데스로 올라가게 하였지만 그곳에서 돌게 하다가 사해아래를 거쳐
요단강 우편에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게 하시면서 만들어진 기간이다.
이러한 인도하심을 광야생활 혹은 광야40년이라 한다.
분명한 것은, 이 광야 40년은 우연히 혹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해 이미 작정된 기간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이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고 멸시함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시므로 그로 인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광야에서 돌며 방황하게 하셨는가이다.
무엇을 하시기위해서 광야를 걷게 하셨는가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육적에서 영적으로 성숙시키기 위해서이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지 않으시고
20세 이상 계수된 자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자를 죽이시고
새로 태어난 자와 나머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곧
가나안 땅은 옛 것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것으로 된 자만이 들어간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했다.
이스라엘과 개인의 모든 삶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게 했다.
그 믿음의 결과가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에서 깨닫게 된다.
혹해의 건넘과 요단강의 건넘에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광야는 육은 죽고 영은 사는 과정이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가나안 땅이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이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 역시 광야인데 이래서 괜찮다는 것이다.
비록 아프고 힘들고 시련일지라도 이러한 삶 역시 나의 육을 죽이며 주를 배워가게 하시는 손길이다는 것이다.
나의 육을 죽이는 과정이시며 인간적인 것들을 낮추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을 승리하게 하신다.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고 영광을 주께 돌리게 하신다.
나를 나되게 하셔서 주님을 찬양하게 하신다.
광야는 영적 성숙 단계이며 과정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향하여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신다.
피할 길을 주시며 예비해 놓으셨다.
이 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시다.
그리고 또 여호와 이레이시다.
혼자라고. 외롭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안된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만 왜 이렇게 광야의 기간이 길까라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뜻대로 나를 이끄시고 주관하신다.
광야는 결코 나에게 퇴보가 아니라 진보이다.
광야는 나를 나되게 하시며 주께로 이끌어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과정이다.
나를 무너지게 하고 예수님 형상으로 바꾸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