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목회자'라는 것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자들을 말한다.
성경과 목회자는 긴밀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목회자는 성경을 가르치고자 성경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신학을 배우고
수련을 통하여 양성된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내용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여호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성경을 통해서 성삼위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의 뜻을 깨닫게 된다.
그의 뜻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중심이다.
성경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깨닫게 되며 또한 천국을 향한 길이 되신다.
이에 대한 모든 내용이 성경에 담겨져 있다.
하지만 성경을 깨닫는 데에 장애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원본이 사본에서 드러났고 또한 그 사본이 각 나라 번역본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이 사본과 번역본을 통하여 우리의 것으로 번역되었다.
또한 성경 내용이 대부분 히브리 민족과 팔레스타인을 중심한 내용이며 일부 그 외 지역이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로서는 이들에 관한 것 대부분이 생소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어체와 어법들도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해석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 모든 난제들이 난제들만은 아닌 것은 성령의 존재다.
성경은 성령에 의해 기록되었고 성령께서는 성경의 첫번째 해석자이시기 때문이다.
다음의 해석자는, 신학을 연구하여 주의 백성들을 섬기고 사용되고자 도구로 부름받은 목회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목회자는 쓰임받는 주의 도구이며 종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첫째도 둘째도 주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통로다.
주의 백성들이 주의 말씀대로 잘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역이다.
주의 뜻이 주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되도록 해주는 사명을 목회자는 가졌다.
성삼위 하나님이 그대로 알려져서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늘 죄에서 이기고
주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해주는 직임을 가진 자들이 목회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성경은 어떤가를 묻고 싶다.
진정 성경 말씀을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
성경의 성삼위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확실하고 똑똑하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당신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에 그대는 당당하고 분명하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당신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당신이 가르치는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그대는 믿고 따르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목회자는 성경에 살고 성경에 죽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위해 소명을 받았고 사명감을 가져 신학교에 들어서서 목회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며 자신이 먼저 변화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자신의 변화도 없이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인가?
본인이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고 어제도 오늘도 그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어제보다 오늘 더더욱 욕심쟁이가 되고 뿔난 사람이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가 믿지도 않는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 우습기만 하다.
목회자는 매일 매순간 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보고서 자신을 쳐야 한다.
사도 바울은 매일 자신을 쳤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성경을 통하여 더더욱 절제시키고 채찍질하여 주의 도구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먼저 성경앞에 무릅꿇고 주의 길에 앞장서야 한다.
말로만 믿는다며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으로 앞장서야 한다.
믿음없던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중 허벅지 관절이 탈골되어 믿음으로 형 에서에게 나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꺽여져야 한다. 숙여야 한다.
목회자는 말쟁이지만 말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먼저 성경으로 인해 육체가 부숴져야 하며 그것이 언어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행위가 말과 언어가 되어야 진정한 목회자일 것이다.
성경으로 거듭나는 목회자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