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학기 명상학과를 다니면서
명상학과를 지원한 동기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어서 밝히기 곤란하다. 다만 대단한 목표나 희망을 가지고 지원한 것은 아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내가 이런 이런 이유로 이런 일을 또는 이런 결정을 했다는 논리적 설명보다, 즉흥적으로 실행된 행동이나 결정을 진행하면서 ‘아~이래서 내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거구나’라고 깨닫는 편이다.
올 해 명상학과는 나 외에도 두 분의 선생님이 더 입학하셔서 신입생 세분, 재학생 네 분, 모두 일곱 분이 다라나 교수님께 수업을 들었다.
대인관계에서 그리 적극성이 없는 본인이 학기 초반 의기소침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었으나 교수님께서 자주 질문도 해주시고 해서 예상보다는 덜 의기소침했다.
수업은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스와미 묵타난다(김병채 옮김) 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책 내용에 대해 교수님께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명상을 하고 있나?, 어떻게 명상하나?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등의 질문도 하시고 책 내용에 대한 질문도 하신다. 또한 명상에 입문하게 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나 빠지기 쉬운 유혹에 대해서도 설명하시고, 조심할 것을 당부하신다.
많은 주옥같은 설명을 하셨지만 나는 내용을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어느날인가부터 인지능력이 현격히 떨어져서 뭔가를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명상학과를 다니며서 변한 두 가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근래 나의 영글지 않은 허접한 관심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째, 잠을 쉽게 자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벽 두시, 세시가 되어도 얼마든지 잠을 안 잘 수 있다. 심지어 방학 때는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자는 경우도 많았다. 스스로 새벽형 인간이라 자위했지만 아침의 피곤함을 피할 수 없다. 어느날 교수님께서 만트라 송인 Mahamrityunjaya Mantra 만트라를 소개해 주셨고, 이후로 저녁에 잘 때는 거의 빠짐없이 이 만트라를 듣고 잠을 잔다. 교수님께서 만트라 내용이 해석된 유인물을 주셨지만 전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냥 이 만트라를 듣고 있으면 높은 히말라야 골짜기를 외로이 나르는 독수리가 연상되곤 한다.
둘째, 양 쪽 귀를 막고 있으면 진동소리가 들리고, 실제로 귀를 막아보면 ‘궁궁궁궁’하는 진동이 느껴진다. 한번씩 듣게 되면 매우 재미나고 흥미롭다. 호흡과 마찬가지로 이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은 별다른 생각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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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다가 이상한 일을 겪는 경우가 있다. 꿈인지 환상인지, 착각인지, 망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런 생각? 체험?이 된다.
잠을 자다 새벽녘에 생각, 감각, 욕망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일까? 관심이 가게 되었다. 잘 살펴보면 이마 앞쪽에서 모든 것이 일어난다. 놀랍게도 어쩌면 이마 앞쪽 아닌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이마 앞쪽에 대한 느낌은 기억이 시작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 느낌이다. ‘나’라고 생각해온 주체? 생각자리?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겨나는 것은 허상이다! 이 메시지는 꽤나 강력했다.
모든 생겨나는 것은 허상이다. 생각, 경험, 신, 심지어 깨달음 까지 생겨나는 것들이지 않을까. 이건 매우 강력한 메시지여서 모든 논리나 이론을 다 무력화시킨다.
그럼 생겨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지? 찾아내려하고, 알아내려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찾아내고, 알아내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생겨나는 것이다.
생각을 하는 것도 잘 보면 개념들을 떠올리거나 기억들을 재구성 하는 것들이고, 여기에 정서가 살짝 얹히는 정도이다. 개념, 기억 들도 다 생겨나는 것들 아닌가?
생겨나지 않는 것은 일단 외면적으로는 침묵이 필수조건이고 다음으로는 내면적 잠잠함이 있어야 될 듯 하다.
내면적 잠잠함이 있으려면 환경으로부터 뭔가 걸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배드민턴 채를 휘두르면 줄에 튕겨서 콕이 날아간다. 라켓의 줄은 나의 경험, 기억, 관념, 경향성, 까르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줄이 없는 빈 채를 휘두르면 아무 것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따금씩 복도를 걸어갈 때면 두 손을 펼치고 바람이 나를 통과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냥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이지 진짜 바람이 나를 통과하는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생겨나는 것은 허상이다”가 어떤 메시지인지 아니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망상 중에 하나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스승님께서는 나의 행동(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대답해 줄 것이라고 답을 주셨다. 정말 멋진 대답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