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년들이 청년희망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10월 17일 인천 ~ 12월 9일 진도 팽목항까지 54일의 걸음.
청년희망순례에 나선 그들의 마음을 들어봅니다.
청년희망순례길에 나서며
미란이, 한나, 미선이, 소연이, 서와, 은아. 누군가의 딸로 안전하고 어여쁘게 살아오던 아가씨들이 길 위에 섰습니다. 우리가 길 위에 선 이유는, 항시 전쟁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지,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함입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 가지면, 번듯한 사람과 결혼 잘 하면 행복해진다고 믿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자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N포 세대, 갑질, 여성 혐오, 사분오열 갈라진 사회분위기였습니다. 혹여 운이 좋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사람과 결혼을 잘 했다 해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사는 누군가처럼 우리의 삶은 뿌리 뽑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입니다.
이런 위기가 상시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물음의 답을 찾으러 길 위에 섰습니다.
지난 겨울, 광장을 따뜻하게 비추었던 평화의 촛불을 기억합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하나의 촛불은 미약했지만, 천만의 촛불은 나라를 바꿀 정도로 위대했습니다. 혼자는 작고 여린 것이지만, 작고 여린 것들의 연대는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힘이 없다고 스스로를 한계지으며 홀로 좌절하여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한반도의 긴장 앞에 평화를 간절히 읍소하러 용기내어 길을 나섰습니다.
한국 전쟁 후 최빈국에서 지금의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마련해주신,
고마운 어른들에게 간청합니다.
당신들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가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 평화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힘써주세요.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생각하기보다,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길인지 먼저 고민해주세요.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풍요를 위해 땀 흘린 어른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받아 우리가 살고 싶은, 생명 중심의 평화로운 사회를 우리가 주인 되어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나 개인의 어려움에 매몰되어 좌절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 해결을 위해 더 궁리하고 마음 쓰도록 노력합시다. 용기 내어 우리의 손을 잡아주세요.
미래세대 앞에 다짐합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던 어른들처럼 무책임한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 생명 중심의 사회, 생명 그 자체로 환대받고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 사회의 다음 주인이 될 여러분들을 위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잘 가꾸겠습니다. 적어도 전쟁의 위협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평화를 궁리하며 걷겠습니다.
비록 불안한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 모든 존재와 인연에 감사합니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 나의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모든 사회적, 자연적 인연에 감사합니다. 나의 안전과 행복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생명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걷겠습니다. 우리의 이 발걸음이, 지금까지 누린 것을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길이기를 바라며, 오늘 우리는 평화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한 걸음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