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에 실린 글입니다.
은빛순례단의 의미와 성과는 무엇이었나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 순례단”을 만들기로 실상사에 모여 의론했던 2017년 9월경부터 목표로 잡은 2019년 3월 1일 까지 1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5천여 명의 은빛, 금빛 시민들이 참여한 이 순례단이 한 일은 무엇이며 남긴 성과는 무엇인가?
전국 각지 108개 도시에서 일어난 순례와 행진, 강연과 토론, 지역에서의 영향과 성과, 후속 모임과 활동들을 모두 종합해 평가하며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물론 이 일을 총괄했던 수지행이 전 지역을 다녔고, 도법 스님이 대부분 동참하신 가운데 이부영 위원장이 70여 곳, 내가 40여 곳에서 순례와 강연 토론에 참여했으므로 활동 내용은 잘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영향과 성과의 유무는 오히려 각 지역에서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했던 책임자들이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여러 주도자와 책임자들의 분석 평가가 있고, 이를 종합해보아야겠지만 나는 잠정적으로 순레단 활동의 의미와 성과를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1.
무엇보다 전쟁과 대결을 막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전국각지 백여 곳에 있는 지역 시민들과 함께 평화문제를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는 마당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평화운동의 차원을 높이는 계기였다고 의미부여를 하고 싶다. 마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때를 맞추어 열렸고 그 의미와 결과들을 이해하고 토론하는 것이 매우 필요한 때에 마당을 열었다.
놀랍게도 은빛 순례단이 4월 20일자로 발표한 정상회담에 보내는 공개서한의 내용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해 우리의 요구가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주장했고 남북의 국교수교와 북일간의 수교등 평화체제의 구체적 길을 제시했다. 순례단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2.
지역마다 순례와 강연, 토론행사에 참여한 이원은 차이가 많았다. 10명 안팍일 경우도 있었고 20-30명이 대부분, 혹 50-100명이 된 곳도 있었다.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체제를 주제로 논의한 곳이 많았지만 지역내의 갈등과 보수 진보간의 대립과 화합문제, 세대간의 차이와 갈등, 대화문제를 논의한 경우도 있었다. 조직 책임자의 노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지역 안에서는 서로 색깔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대화한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 만나지 않던 사람들이 외부에서 누가 오니까, 은빛 순례라고 하니까 함께 모이는 효과를 보기도했다.
3.
순례의 목적은 그 지역 안에 있는 평화와 관련된 유적지나 애국지사들의 유적을 순례하면서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한 인식을 공유케 하자는데 있었다. 대체로 모든 곳에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유적이나 애국지사들의 흔적이 있었고, 동학 농민혁명의 유적과 희생자들의 비석도 적지 않았다. 해방후 4.19나 5.16, 5.18등 민주항쟁의 흔적들을 살펴 본 것도 의미가 깊었고 특히 분단과 6.25전쟁, 4.3 제주학살, 여순학살 등의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의 길을 함께 생각해본 것은 훌륭한 평화교육이었다. 나 자신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현지인들도 그곳에 살면서도 잘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여러 사람이 했다.
4. 나는 시간 때문에 순례행진에는 많이 참여 못했고 주로 저녁 강의와 토론에 참여했다. 저녁 7시부터 9시 반 경까지 강연과 토론에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 적은 인원이 참여해도 늘 질문과 토론은 진지했고 다른 견해들과 반론들이 있어 공감대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또 무관심한 분들에게 자극을 주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도 짧은 시간 한번으론 부족했다.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다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복잡했던 문제가 잘 정리되어서 파악이 되었다는 평을 들었을 땐 힘이 나고 보람을 느꼈다. 논쟁과 토론이 늦어져 밤 10시 넘어 겨우 기차를 타고 12시 넘어 용산역에 내리면 택시를 잡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빠른 KTX 기차 덕분에 전국 어느 도시나 하루 왕복이 가능했다.
5. 나는 은빛 순례단을 통해 지역에 계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좋은 운동과 그룹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감동적인 훌륭한 일꾼들과 지도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나에게 큰 소득이었다.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교사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의 뿌리가 곳곳에 있었고 이들이 평화 통일운동에도 모체가 되고 있고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지역운동들이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시민 평화운동의 과제도 엄청 확대될 터인데 각 지역에서 평화교육과 운동을 지속시키며 연대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겠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순례 현장보고
이부영(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순례를 마치자마자 바로 순례보고서를 쓰셨던 이부영 선생님. 내용이 좀 길어서 링크합니다.
본대로 느낀 대로 걷기순례 현장보고 내용보기 >>>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 절실하다
도법(실상사 회주, 전 조계종 화쟁위원장)
순례길에서의 질문과 바람을 간단하게 적어보았다.
1. 현장의 외침
현장의 목소리는 단순명료하다. 삶이 너무 고단하다. 참으로 지긋지긋하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 이제 끝내야 한다. 그 동안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많은 성찰과 모색을 압축하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2.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왜 중요하고 좋은 기회로 살려내지 못하고 끝내 일제 식민지로, 남북분단으로, 분단 70년으로, 헬조선 대한민국으로, 짙은 안개 속 같은 미래로 전개 되었을까.
수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핵심적인 것 하나를 꼽으면 나라이 주인인 백성의 뜻,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존중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위해 극단적으로 분열·대립했고, 지금도 똑같은 관점과 태도와 방식으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상황은 우리가 과거 방식을 답습할 것인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새로운 방식의 길을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하루 빨리 구태를 벗어던지고 오래된 미래의 길을 열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한계와 문제와 걱정거리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제 남북이 함께 주체가 되도록 만든 정상회담에 담겨 있는 지혜를 남북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으로 가져와 그 지혜가 우리 안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길이다.
① 나라의 주인인 시민이 주인으로 일어서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② 나라의 주인들이 시야를 넓혀 세계시민,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관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③ 서로 원한 맺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식인 오랜 폐단을 청산하고 원한을 풀어 더불어 함께 하는 해원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④ 새로운 인류문명의 앞길을 밝히는 한반도 대한민국이 되도록 하기 위해 독립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⑤ 백 년 전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온 민족이 함께 했듯이 세계시민정신과 생명평화문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너와 나, 이쪽 저쪽을 넘어 온 국민 온 민족이 함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⑥ 특히, 이를 위해서도 정치권을 포함하여 온 국민 온 민족이 모두 주체가 되어 최우선적으로 우리 안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피멍을 녹여내는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 지속적인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우리안의 정상회담
분단체제 하에서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은 남북갈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 국민들 역시 나와 다른 입장, 자신이 속한 집단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집단들과 만나서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다.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서로 손을 내밀고 오해와 불신을 극복해가는 노력은, 남북평화시대를 열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에 앞서 내 삶이 성숙하고 평화롭게 완성될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전쟁훈련’에 몰두해왔다. 그 결과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안전은 더욱 위험에 빠졌다. 우리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들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념문제가 되어버리고 본질은 실종되어버리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우리 안의 정상회담’은 전쟁훈련으로 더욱 심화된 대립과 갈등, 증오에 물든 ‘니편 내편’을 극복하는 ‘평화훈련’인 셈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화로 가는 길은 평화뿐이다.
새로운 백년을 향해 가는 걸음걸음은 무엇보다도 더불어 살게 되어 있는 생명의 이치에 맞아서 힘차면서도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 길을 가는 우리 자신의 삶도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도 환하게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