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8일 연찬모임에 이남곡 선생님께서 보내오신 글입니다.
은빛에 드리는 글
이남곡(인문운동가)
올해는 개인적으로 건강 때문에 좀 힘이 들었습니다.
이번 모임만은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마침 몇 달 전부터 성공회대 마을공동체학과 학생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서 참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입니다.
이병철 선생의 말씀도 있고 해서 최근의 제 생각을 몇 자 올립니다.
부디 연말을 잘 지내시고, 그 동안 순례로 힘드셨을 몸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1
지금의 남북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아마 근대 이후 한반도 역사의 가장 큰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식민지에서 해방 된 후 바로 분단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제1,2차 세계대전을 경과하고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70여년 정전(停戰) 상태에 있다.
남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한 때는 북쪽이 더 공세적이었지만, 사회주의의 실패가 현실이 되면서 남북 간의 국가적 실력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서로를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동상이몽의 꿈이 사실은 항상 불안과 불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비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되었고, 아직은 미숙하지만 선거에 의해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국가로 되었다.
북한은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반사회주의국가와도 다른 독특한 체제를 만들어 왔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령체제’ 그것도 세습왕조와 같은 나라를 만들어 왔다.
미국과 한국의 위협으로부터 정권과 나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아마도 ‘핵무장’을 유일한 길로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으로는 민생을 살리고 정권의 안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북 스스로 점점 알게 되었다.
또 하나 북의 사정으로 보아 조만간 붕괴하리라는 미국과 한국의 전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과, 또 붕괴되는 것이 이익인가에 대한 생각도 여러모로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어떻든 비정상적인 정전(停戰)상태는 끝내야한다는데 남북미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종전(終戰)선언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대의 걸림돌이 ‘북의 핵폐기’를 둘러싼 상호불신이다.
결국은 관련국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쳐 북의 핵폐기와 평화공존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남북은 ‘통일을 전제로 한 특수관계’로서가 아니라 상당한 기간 독립된 나라와 독립된 나라가 ‘일반국가관계’로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
양쪽의 체제, 특히 선거에 의한 민주적 정권교체가 자리잡은 대한민국 시민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북의 체제와 어떤 형태의 연합이나 연방도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를 해치고 때로는 위험한 대립도 생길 수 있다.
어설픈 통일 논의는 과거의 악몽을 되살리기 쉽다.
김정은이 서울을 방문해서 과거 전쟁에 대해 그의 조부를 대신해 사과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국가관계로 ‘동족 간의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이 과정이 섣부른 감상주의적 통일논의와 섞이지 않는 성숙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요즘 여러 가지 남북 간의 실제적 협력을 준비하는 것은 대단히 좋다고 본다.
반미주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국부의 80%가 대외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역국가’다.
남과 북이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면서 해양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약점이었던 한반도역사를 ‘중심교역지대’로 고기압을 형성하는 것이 상당기간 남북의 공동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2
며칠 전에 한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간단히 말하였다.
중심교역국가(中心交易國家), 협치국가(協治國家), 새로운 문명의 선도국가의 세 방향이 융합되는 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념이나 태도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도 많아 진로가 잘 안 보일 것이다.
우리 사회와 나라가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제 우리의 관념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락하게 되어 있다.
이 세 방향에 대해서는 하나 하나가 상당한 설명이 필요하다.
내 능력으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간단한 예를 들어 말해보고 싶다.
‘중심교역국가(中心交易國家)’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기업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협치국가(協治國家)’는 진보와 보수가 협치하는 나라고, 자본과 노동이 협동하는 나라다.
‘새로운 문명의 선도국가’는 사람들이 물신(物神)의 지배와 각자도생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나라’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몸에 익은 태도로는 그 조화가 어렵지만, 어디선가 바꾸기 시작하면 활력이 붙고 사회의 기풍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활기에 넘치고, 노인들이 평안한 나라를 만들어가자!
지난 시기 산업화, 민주화의 험한 산들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그것을 한 차원 높게 살리지 못하고 주저 앉아서야 되겠는가?
어제 남북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이러한 진화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나아가 통일의 핵심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