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달 20일 오전 7시쯤, 서울 동작구 흑석역 근처 '평화의 소녀상'을 돌로 찍어 파손하고 이를 말리던 시민에게 주먹을 휘두른 22살 남성 손 모 씨를 재물손괴와 폭행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KBS, 2020.06.11 (10:07)
“대구 평화의 소녀상이 또 봉변을 당했다. 대구 경찰은 대구 중구 2·28 기념 중앙공원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씌워져 있던 마스크를 벗기고 후원자들이 달아 놓은 나비 모양 장식품을 떼어낸 혐의로 40대 남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8일 밝혔다. 앞서 대구 평화의 소녀상은 이마에 낙서, 돌로 훼손 등 수차례 수난을 당했다.” -국민일보, 2020.06.08 (11:11)
위의 기사가 나가기 열흘 전쯤이었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에 대한 저작권 시비와 관련한 기사가 있었다. 태백시 문화예술회관 앞에 설치될 소녀상에 대한...
곧이어 그간 판매된 규모와 금액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1.3m 표준사이즈의 소녀상이 3천여만 원이고, 100개 가까이 팔렸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상의 저작권자는 김&김 부부 조각가. 2011년 서울 종로의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것이 원형으로 국내외 140여 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부부 조각가의 말에 의하면 ‘역사의 산증인이 떠난 자리에 흔적인 소녀상을 남겨 일본이 죄를 뉘우치도록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 소녀상의 본래 취지라 한다.
이 숭고한 취지가 서울에 이어 대구에서도 훼손되었다. 소녀상에 린치(?)를 가한 이들이 무얼 목적했는지는 모르겠다. 도마에 오른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거부감인지 혹은 저작권자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우울한 삶에 대한 개인적 화풀이인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알 도리가 없다.
에피소드 1. 이중섭의 병문안
시인 구상이 폐결핵으로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일화. 많은 사람들이 문안을 왔지만 절친이라 믿었던 이중섭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어느 날 드디어 이중섭이 나타났고, 그의 손에는 그림 한 점이 들려있었다나.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겨있는 천도복숭아가 그려진.
그림 한 점의 제작비용이 문병용 복숭아 값에 못 미칠까마는 화가의 형편이 그만큼 곤궁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일화겠다. 실제 이중섭은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화가의 가난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겠다.
에피소드 2. 베토벤의 가계부
귀족 스폰서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던 베토벤. 모차르트에 비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 가난을 달고 살았나 보다. 스승 하이든과 차 한 잔 마신 후 가계부에 비용을 적어야 했던 걸 보면.
기억 속의 예술가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이중섭&베토벤 등의 천재&대가조차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궁핍함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엔 머니와 예술의 상관함수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No-머니가 절박함을 부추기고, 절박함이 예술의 완성을 도왔다. 싸구려 붓 한 자루, 허름한 바이올린 하나로도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자 예술가의 환경도 바뀌었다. 외부적으론 예술보다 밥이 우선이 되었고, 내부적으론 모든 것이 정형/세밀/시스템화 되었다. 따라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예술의 완성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100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천재는 예외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차고 넘치게 느껴봤다. 전업 글쟁이로 발버둥 쳤던 IMF 직후의 5년 동안. 온라인 칼럼 한 꼭지에 2-3만 원, 잡지나 사보에 A4 3-4매 분량 원고가 실리면 10여만 원, 케이블TV 30분 출연에 5-10만 원. 혹시나 하고 책을 내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 작가에게 떨어지는 인세가 6%, 하다못해 1만 권은 팔려야 생활에 진 빚이라도 갚을 터인데 달랑 1쇄 찍고 말았으니.
오늘도 땀내 나는 배달복을 벗고 작가로 돌아와 꼼지락거린다.
정의기억연대의 구설로 촉발된 저작권 시비와 장사 논란, 소녀상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기사가 뭔지 모르게 거슬린다.
넉넉한 환경을 원하는 예술가? 가난한 예술가를 원하는 세상?
오로지 작시만 하며 거리낌 없이 술값 2천 원을 삥 뜯었던 시인 천상병, 미워하기는커녕 희귀한 문화재처럼 아끼고 사랑했다던 지인들. 그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첫댓글
역시 글쓰시는 분이셨군요!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여?
보호색을 입힌 거에여. 맹탕 배달부라고 허믄 없어 보이니까 ㅜ.ㅜ
@낭만배달부 얼핏 듣긴 했는데 이 정도신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