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는 오고. "도로는 또 을매나 미끄러울랑가." 엉덩이가 안 떨어지네.
둥지가 조용혀서 하나 올려 두고 일 나갑니다. 울님들도 푸~욱 젖는 하루 되시길. ㅋㅋ
명함 파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풍운의 꿈을 접고 이것저것 작파하고 배달을 하다보니 딱히 명함 주고받을 일이 없다,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고.
아니다. 나도 간혹 명함 받을 때가 있다.
골목에서 도로에서, 몇 초 몇 분 아끼려 깝죽거리다, 덜컥 사고를 만나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 장 던져주고 가더라, 보험사 출동직원이.
명함이 뭐였더라.
그렇지, 그거였지. 타인에게 “나 이런 놈이야.” 내미는 직업증명서.
백수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이십대. ‘사원, 정 아무개’ 첫 명함을 얻었을 때의 그 뿌듯함이라니.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책상 위 배달까지 해주더라. 앞머리가 가벼워 폼은 안 났지만, 얼마나 열심히 뿌리고 다녔던지 첫 명함 두 팩이 금방 동이 났었지.
두 번째 명함은 앞대가리만 폼 났나. 고작 직원 십여 명 사무실의 ‘대표, 정 아무개’. 길 가는 사람들의 지갑을 털어보면 절반이 사장님인 적자생존 속 살아남기 위해 인상만 찡그렸던 시절이었다. 꽁지에 불 붙은 멍첨지가 되어 직원 급여를 해결한 다음에야 달에 한 번 겨우 웃을 수 있었던가. 이후 배달민족으로 편입되기 전 두어 번 명함을 바꿨나보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
눈이 실하게도 쌓이던 날. 다른 집은 다 끝냈다는데 언제 닫을 거야, 주둥이가 댓 발 나와 있는데 초장거리 배달이 들어왔네. 눈은 헬멧 위 떡이 지고, 장화 속 발가락은 얼어붙고.
안 잘리려면 가야지. 짜장 몇 그릇 싣고 삼십 분 넘어 도착한 천안의 외진 유량동 cafe’. 사장님 포스의 아주머니가 고생했다며 내준 뜨끈한 꿀차에 그나마 마음이 풀려 나서려는 찰나, “아저씨, 명함 한 장 주고가세요.”
아줌마가 뭘 좀 아시는구나. 꼴은 이래도 고결한 영혼이 숨어있는 걸 눈치 채셨구나. 그렇지만 허름한 배달부에게 명함이 있을 리가 있나. 임시방편 손바닥 크기 메뉴 전단지 뒤편에 폰번을 적어 내밀었더니, “폰번은 왜 적으셨어요?”
히끅! 그게 아니었나. 헬멧 안 얼굴은 화끈거렸지만 민첩하게 “예, 가게 전화 말고 기사 번호로 주문하시면 군만두 하나라도 더 나오거든요.”
명함이 없다보니 쑥스러운 순간이 있다. 동창 모임, 얼굴 가물거리는 친구와 만났을 경우 같은.
반가운 악수 이후의 수순이 몹시 어색하다. 건넬 명함이 없으니 공연히 입이 바빠진다.
“배달밥 먹는다.”
“???”
자식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판판이 놀고 계신 의원님들은 뭐하나 몰라. “모든 배달기사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필히 명함을 소지해야 한다.”는 특별법이나 만들어주시지.
배달 왔어요
보따리 내밀 때
누가 나에게
달라 해다오.
나도 그에게로 가
한 장의 명함으로 기억되고 싶다. (춘수 횽아, 쏘리~)
첫댓글 배라셨군요! 전 최근 배커 하고 있습니다 ㅎ 본업과 전혀 다른 분야지만 이상하게 배커 할 땐 마음이 편안 합니다. 하는 만큼 정직한 결과가 나오는지라.. 안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