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콕을 위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낭만배달부]

감독 빅터 플레밍, 각본 시드니 하워드, 원작 마거릿 미첼

개봉 1939년 (국내 1957.03.25.)

주연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 멜라니(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https://www.youtube.com/watch?v=Eo4T_nyRJgY&t=3961s

출연 인물들과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오프닝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제작자의 사심 가득한 자막이 한 번 더 소개된다.

“There was a land of Cavaliers and Cotton Fields called the Old South... Here in this pretty world Gallantry took its last bow... Here was the last ever to be seen of Knights and their Ladies Fair, of Master and of Slave... Look for it only in books, for it is no more than a dream remembered. A Civilization gone with the wind...”

“신사들과 목화의 땅이었던 Old South...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으로... 기사&귀부인, 주인&노예를 볼 수 있었던 곳. 이제는 책에서나 찾을 수 있는, 꿈에서나 기억될 그곳. 바람과 함께 사라진 문명...”

222분의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의 관람 자세를 친절히 지도(?)해주고 있는 이 5문장 자막이 올라가고야 본 영화가 시작된다.

바비인형 드레스를 장착한 스칼렛이 어리바리 두 놈팡이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스칼렛은 도도&요염하고 천방지축인 처녀. 총각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정작 그녀는 애슐리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하지만 일편단심 순정남 애슐리는 사촌 멜라니를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의 twelve oakes 저택에서 벌어지는 바비큐 파티에서 결혼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럽의 귀족사회를 그대로 옮긴 듯한 파티장.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남부의 남자들은 양키(북부 연합군)와의 전쟁에 대해, 정치에 무관심한 여자들은 연애에 대해 수다 중이다. 스칼렛은 몰래 애슐리를 불러내 사랑을 고백하지만 딱지를 맞고, 강력한 따귀 한 방을 날리는데 그 장면을 꽃제비 레트 버틀러가 의도치 않게 지켜본다. 여자들은 멜라니에게 결혼 덕담을 건네며 스칼렛이 애슐리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전한다. 천사표 멜라니는 그럴 리 없다며 스칼렛을 감싸는데...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품절남이 된 애슐리는 전쟁터로 나가고, 열 받은 스칼렛은 멜라니의 남동생 해밀턴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얼뜨기 첫 남편 해밀턴 역시 전쟁에 나서지만 영웅적 전사가 아닌 홍역에 걸려 사망, 스칼렛은 졸지에 청상이 된다. 레트 버틀러는 과부로 자신의 연애를 마감할 생각이 전혀 없는 스칼렛 주위를 맴돌며 호감을 느낀다. 삶의 모든 것에 엄숙/진지하여 쉽게 결혼에 성공한 애슐리-멜라니 부부에 비해 자유분방한 레트-스칼렛 커플의 연애는 갈수록 꼬이기만 한다.

한편 전쟁이 길어지며 스칼렛과 멜라니 역시 부상병들의 간호에 힘을 보태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부군의 패색이 짙어진다. 후방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레트과 스칼렛, 멜라니 일행은 어렵사리 마차를 구해 불타는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스칼렛의 고향인 타라를 향해 남쪽으로 피난을 간다.

“스칼렛, 잘 봐둬. 나중에 손자들에게 남부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사려졌는지 말해 주려면.”

피난 도중 레트는 (영화 포스터의 키스장면을 연출한 뒤) 막바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다.

병든 멜라니와 갓 태어난 그녀의 아기, 철없는 하녀를 데리고 타라로 돌아온 스칼렛. 천신만고 끝에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타라 역시 전화를 비켜가지 못한다. 엄마는 사망하고, 아빠는 치매 상태다. 유모와 늙은 하인만이 지키고 있는 타라에는 먹을 만한 것도 없다. 여물지도 않은 쓰디쓴 무를 씹으며 다짐하는 스칼렛.

“하나님이 증인이야. 이 고난이 지나가면 거짓말, 도둑질, 사기 아니 살인을 해서라도 다시는 굶기지 않으리라.”

철없던 스칼렛이 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며 긴 영화의 인터미션(5분여)에 들어간다.

전쟁은 끝이 나고 애슐리도 돌아왔지만 타라의 사정은 나아진 것이 없다. 천방지축 스칼렛이 달라졌다. 곱던 손은 목화를 따며 망가졌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남부연합의 패배 소식에도 우울해하기는커녕 목화 값이 오를 거라는 생각이 앞선다. 가족이 머물고 있는 타라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 타라에 매겨진 세금 300달러를 해결할 방법이 없자 녹색 커튼을 뜯어내 옷을 만들어 입고 레트(북부군 감옥에 수감됐지만 여전히 백만장자인)를 유혹해보고, 동생 수엘렌의 늙다리 연인을 가로채 결혼까지 한다. 오직 300달러를 위해 미시즈 케네디가 된 것이다. (쌀쌀하다며 케네디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스칼렛, 기가 막힌다는 유모의 눈빛. ㅋㅋ)

어쨌거나 돈만 아는 여자가 된 스칼렛. 두 번째 남편의 주머닐 털어 목재 공장을 운영하고, 노임을 줄이기 위해 자유인이 된 흑인 대신 죄수를 고용한다. 목재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가 부랑자들에게 습격을 당한 스칼렛. 다행이 예전 하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복수를 위해 나섰던 늙은 남편 케네디가 총에 맞아 즉사한다. 레트는 다시 미망인이 된 스칼렛의 세 번째 남편이 된다.

레트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스칼렛, 그녀가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여기는 레트.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처럼 조마조마한 결혼 생활은 낙마로 인한 딸 보니의 사망과 멜라니의 병사로 파국을 맞는다.

“스칼렛, 우리의 결혼에 기억할만한 품위를 좀 남겨 두자고.”

“당신을 사랑했어요. 어리석게도 몰랐던 것 뿐예요.”

“우린 계속 엇갈려 왔던 것 같군.”

“레트. 당신이 떠나면 난 어찌 하나요?”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요!”

I don’t give a demn!

그렇게 사랑했던 스칼렛에게 잔인한 한마디를 던져두고 이별을 고하는 레트.

Tomorrow is an another day.

눈물을 뿌리면서도 레트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 자위하는 스칼렛.

스칼렛이 그녀만의 영원한 안식처 타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425만 달러의 제작비. 블록버스터는 언제나 풍성한 뒷이야기를 남긴다. 스칼렛 44벌과 레트 36벌 등 제작된 의상만 4천 벌 이상이라는 둥, 불타는 애틀랜타 신을 위해 12ha(36,000평)의 세트장을 태웠다는 둥...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들인 품을 훨씬 상회하는 수확을 거둔다. 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각색/촬영/편집/미술/특수효과/여우주연/여우조연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수십 년 넘게 사랑받는 영화가 되었으니.

노예제 존폐를 핑계 삼은 전체 연방의 헤게모니 쟁탈(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기본적으로 밝고 유머러스한 영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칼렛과 뺀질거리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주는 레트 캐릭터의 설정 자체가 그렇다. 당시로서도 민감할 수 있는 면면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하지만, 그렇다고 비판의 시선까지 거두진 않는다.

“컴-온! 늙은 수탉아, 너의 마누라와 자식들은 이미 잡아 먹혔다. 네 죽음을 슬퍼할 놈들은 없다. 백인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게 가만히 있어라. 비싸게 굴지 마라. 네가 애틀랜타에서 살아있는 마지막 닭이라고 할지라도.”

영화는 영화다. 평화롭게 보이는 흑인 노예들의 삶과 바람난 처녀들의 로망 18인치 허리를 두고 인종갈등이나 마초이즘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논리를 따지고 이데올로기를 따지는 것은 일반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비평에도 불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