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마태복음 28장 10절)
지난 주 최윤정 집사님과 공원을 산책하는데 목사님 이
햇살이 너무너무 좋아요. 여기가 천국이예요. 그러시는게예요. 예기하면서 알았어요. 그전날 그러니까 명절 다음 날 하루종일 지하4층에서 일하신 거예요. 어느 사람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가을 햇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리던 은총의 햇살인 겁니다. 그 햇살을 보면서 그렇게
감탄하고 기뻐하고 신나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제가 맘이 다 좋더라구요. 교인이 지옥이면 제 마음은 지옥
지하2층이구요. 교인 마음이 천국이면 제 마음은 천국 꼭대기예요.
한병철님은 “땅의
예찬”이라는 책에서 노발리스의 낭만주의를 인용합니다. “평범한
것에 높은 의미를, 일상의 것에 신비로운 겉모습을, 잘 아는
것에 모르는 것의 품위를, 유한한 것에 무한한 모습을 주어서 나는 그것을 낭만화한다” 진정한 낭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눈뜨고 찾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낭만화할 수 있는 자가 신비주의자입니다. 어느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길위에 피어있는 한송이 들꽃을 보면서 <작지만 생명이 있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는> 이 기적적인 사실에 눈뜨고 삶을 신비롭게 발견할 수있다면 – 한병철님은
이를 행성의식 이라고 하는데 그 신비로움에 눈뜰 수 있 있다면 - 우리는 신비주의자인 겁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2018년의 가을도 결코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이 가을에 삶의
템포를 늦추시고 멈추고 서서 하늘을 보고 생명을 보고 얼굴을 보고 내가 걷는 걸 보고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그래서 인디언 수우족 기도문에 나오는 기도처럼 당신이 모든 나뭇잎, 돌들
틈에 감춰둔 교훈들, 대 자연과 모든 관계의 신비속에 감춰둔 교훈들을 풍성히 배울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가을에는 누구나 신비주의자가 되게 하소서)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끔직하리만큼 힘들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마음의 벽에 붙여놓고 하루에도 몇번씩 봐가면서 수행하고 도를 닦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름이었습니다. 제발 제발 바람좀 불었으면 불었으면 한 때가 엇그제 같은데 이제는 잠바를 입어도 덥지
않을 계절이 깊어갑니다. 버티면 된다 버티면 된다하지만 버티다 보면 정말 지나가는 걸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걱정되고 힘든 순간들 앞에서 끝도 안보이고 답도 안 보이는 시간을 견뎌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수로보니게아 이방여인처럼 간절하게 매달리게 되는 절박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지난 명절 때 내려갔더니 아버님이 대상포진이 걸리셨어요. 그런데
간이 않좋으시다보니 약을 드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상포진을 그대로 앓고 계시더라구요. 너무 아프신데 그 통증을 그냥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내야 하는 삶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밤새 통증을 앓으시면서도 새벽에 허허 웃으시면서 야 밤새 죽는줄 알았다 하시는 <받아 들이실 것은 받아들이시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으시려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스스로의 삶에 당당해 지기 위해, 삶의 정도를 걷기
위해 성실하게 당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감당할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잡아주는 가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가을에는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만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시고 고통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역사의
변화는 늘 변방에서 시작되었고 가장자리는 중심을 구원하는 생명의 자리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은 단순한 한 마리의 어린 양이 아니라 모순적인 불합리한 사회관계 구조가 낳은 아픔입니다. 그 한마리를
치유하고 그 한마리를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그래서 그 한마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사회
전체를 구원해 나가는 일입니다.
원더라는 영화를 보면 선천적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어기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0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처음으로 가는 어기가 누구나
겪듯이 비하와 놀림의 대상이 됩니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옮을 듯이 친구들이 어기를 멀리합니다. 그 지난한 과정이 지나고 결국 한사람 한사람 어기라는 아이와 관계를 회복해 나아갑니다. 어기라는 아이와의 관계회복은 곧 그 공동체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결국 그 공동체 구성원은 질적인 변화를 통해 어기라는 한 아이가 그 안에서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한사람이 그냥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갈릴리로 가야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타자 특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약자와의 만남과 환대를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을 구원해가고 더 나은
공동체를 완성해 갑니다. 그런의미에서 타자를 위한 시간은 나를 구원하는 시간입니다. 타자를 위한 공간은 나를 구원하는 공간입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세계가 아니라 지역이 소유가 아니라 공유가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개인의 편리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환대가 세상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구원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이 길을 새로운 옷을 입고 더 정진해 보려 합니다. 내안에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지역안에 갈릴리를 품어안으며 함께 지혜도 힘도 열정도 사랑도 모아 즐겁게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늘 언제나 가을이 되면 읽고 싶은 시 한편
나눕니다.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이 가을이 신이 삶의 곳곳에 감춰둔 신비를 찾아가고 그리고 나와 타자를 향한
기도와 사랑으로 비옥한 시간을 가꾸어가는 귀한 은총의 시간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