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3-8절
얼마 전에 치과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다닌 병원이
한국에 들어와서 줄곧 다녔으니까 8년을 다닌 병원입니다. 8년
동안의 경험상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 병원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별 생각없이 병원에서 시키는데로 했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의 이를 뽑고 임플런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치아가 계속해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한
대 여섯 차례 2-3년에 걸쳐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러다가
이번에는 의사선생님이 도저히 안되겠다고 뽑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빼려고 했어요. 그런데 교우 분들 중에 몇 분이 말리시는 거예요.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소개시켜주셨어요. 솔직히 가봐야 거기서 거기지
여기도 과잉진료하지 않는 곳인데 사실은 크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교우분들이 소개시켜주셨는데 안가보기도
그렇고 그냥 확인 도장만 받아다 주리라 생각하고 소개시켜 주신 병원엘 갔어요. 양심병원답게 친절하더라구요.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더니 뽑고 싶지 않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치주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에 가래요. 잇몸 수술한 후에 치료해가면서 쓰래요. 얼만큼 쓸지는 써봐야 안대요. 생각보다 오래 쓸 수도 있고 적게 쓸 수도 있데요. 어찌했던 당장
뽑지 않아도 되는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지난
달에 부어있을 때만해도 당장 뽑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날 것 같았는데 그리고 그 병원에서도 그 외 다른 방법이 없는 식으로 이야기 해주셨었는데
또 다른 곳에 가니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제가 이 경험을 하면서 “너무 하나에 몰입하지 말자. 길은 천지에 널려있다”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떤 상황에서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또 그런 상황에서
보면 그것만 옳게 보여요.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의 상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룟
유다는 기독교 역사에 배신의 아이콘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한사람입니다. 은 30냥에 예수를 팔아버린 걸 보면 돈 때문에 예수를 종교권력에게 넘긴 건 아닌 걸로 보입니다. 노예의 값과 같은 거고 지금으로 따지면 3개월 정도 생활비예요. 유다를 소재한 소설들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유다는 열심당원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기원후 66-73년경 1차 유대 로마
전쟁이 역사적으로 일어나는데 유혈 혁명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는 일종의 독립군들입니다. 그들은
기원전 164년 경에 유다 마카비(유다는 이름이고 마카비는
별명입니다-)에 의해 하스몬 왕조가 들어서고 유혈혁명이 성공해서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독립운동에 승리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입니다.
그런
유다에게 있어서 예수라는 사람은 혁명앞에서 사랑타령이나 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가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무력한 것인지를 스스로 깨달게 하기 위해서 그를 넘겨버렸다고도 합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깁니다.
유다를
보면 예수 그룹의 재정을 맡을 정도로 책임감도 강했고 열열 투사였습니다. 제자들이 권력 다툼을 벌리는
동안에도 그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배신한거로 치면 다른 제자들도 다 배신을 때렸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혁명이라는게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예수님께서 유죄판결을 받고
죽음에 몰리게 되자 뒤늦게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합니다. 그리고는 받은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습니다. 그런 걸 보면 양심이 죽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혹자는 다른 제자들은 다 돌아왔는데 유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는데 제가 보았을 때는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크게 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양심도 있고 삶에 대한 열정도 있고 스스로 욕망의 조절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저는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게 안보이는 겁니다. 유다는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거죠. 지나치게 하나에 올인하면
더 많은 다른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하게 됩니다. 저도 치과 치료에 있어서 하나에 꽂힌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게 불편했어요. 거기만 나오면 또 다른 여러 길들이
보이는데 그거에 꽂혀있으니 다른 모든 게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어
두는 거죠.
가정의
달이죠. 아이 교육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십니다. 교육에 왕도가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사람마다 다르고 아이마다 다르고 여기서 효과봤다고 그걸 그대로 우리 아이에게 적용하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어디 세미나 여러군데 많이 다니지 마세요. 부모가
아는게 많아질 수록 아이는 더 힘들어집니다. 옛날 부모님은 지혜는 있으셨지만 아는 건 많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공부는 맡겼고 오히려 지혜를 가르치셨어요. 삶의 철학은 가르치셨지만
공부하는 로드맵을 주는 부모는 없었어요. 너무 많은 로드맵들이 있고 아이들은 너무 힘듭니다. 효과있다는 것에 너무 하나에 몰입하지 마세요. 목사가 세미나 많이
다니면 교인들이 힘들어진데요. 그래서 저는 세미나 잘 안다닙니다. 세미나
가서 좋으면 다 적용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이는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자로 유명한 김교신이란 분도
자식 때문에 무척이나 속썩었데요. 얼마나 자식 때문에 힘들었으면 작은 아버지 묘소에 가서 허구헌날 눈물을
펑펑쏟았데요. 제대로 산다고 산사람도 다 그래요.
방법을
찾다가 정작 아이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잘하면 잘하는데로 못하면 못하는데로 한국사회에서 큰다는 건
누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자피 공부든 일이든 아이의 몫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아이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가끔식 기림이에게 물어봅니다. 살아오면서 교회생활할 때 어느때가 가장 좋았냐구요.기림이가 뭐라고 하냐면요. 미국에서 저희가 한국에 나오기 전에 교인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개척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분 두분 교회를 나오시면서
10여명이 함께 신앙생활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데요. 거의 세대별로 한사람씩 대표가 있었는데 가족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어요. 화가
선생님이 그림 가르쳐줘서 함께 그림도 배우고, 다음주 식사때가 되면 집사님께서 아이들이 뭐를 좋아하는지
생각을 해서 음식을 준비해주시고, 교회오면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가 다 있었는데 세대가 교차하며서 놀아주고 예기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그랬어요. 기림이는 인원수에 상관없이 충분한 사랑을 느낀거죠. 교회도
그렇지만 가정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교육의 방법론이 아니라 공부는 학교가서 하고, 일은 회사가서하고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 짧더라도 어떻게 하면 행복을 극대화시켜나갈 수 있는지에 충실하는 거죠. 요리를 배우세요. 맛난 것 싫어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배부르면 다 용서됩니다. 오광식 집사님 아버님이 오광식 집사님에게
해물탕을 끓어주셨데요. 그렇게 잘 먹는 아들 모습보시고는 그렇게 흐믓해 하시더래요. 그 어떤 교육의 방법론,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지금 우리,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공감이
안되는데 어떤 교육이 되겠습니다. 소통하고 공감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세요. 지나치게 교육적 방법에 몰두하다가 아이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는 광주항쟁 38돌을 맞이합니다.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이룬
해방광주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그들은 학살에 맞서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스스로 자치 공동체를 일구어 내며 해방광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투철히 무장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은 계엄군의 공격에 맞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자발적으로 수혈하여 죽어가는 자들을 구했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르며 대동세상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을
막아서고 있던 권력, 폭력, 압제의 사슬만을 거둬치웠을 뿐인데
평범한 시민들 그들안에는 자발적으로 평등하고 평화롭고 협력과 연대가능한 새로운 대동세상을 열어갔습니다. 평범한
모든 사람안에는 신뢰할 만한 세상을 만들어갈만한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내 자식도 그렇고 교우들도
그렇고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두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하나에 집착하다보면 우리 스스로가 감옥에 갇힐 수가 있습니다. 믿음과 신뢰로 온세상에 계시는 하느님이 키워주시리라 믿고 우리는 신나고 재미나게 소통하고 놀고 환대하고 공감하며
그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살아가는 거죠.
시인
윤동주가 1년 반동안 절필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가 끝나고 고통끝에 써낸시가 팔복이라는 시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고 그 마지막 절에 저희가 슬플 것이요라고 썼다가
지우고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요 썼다가 다시 지우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고 씁니다. 그는 일제 말기 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의 아픔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감옥에서
만주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목숨을 받쳐 투쟁하다 죽어가는, 지울 수 없는 애절한 아픔들을 담고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고통의 깊이를 보았던 겁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 팔복을 읽으면서 윤동주가 말년에 도달한
경지야말로 예수의 경지였고 그것은 곧 고난받는, 슬퍼하는 시대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임을 윤동주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노라 말씀하십니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윤동주 시인은 좋은 시를 쓰는데 집착하며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끌어안고 살다보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그런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실 / 박노해
큰 사람이 되고자 까치발 서지 않았지 키 큰 나무숲을
걷다보니 내 키가 커졌지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옳은 길을 걷다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하지 않았지 시대를 고뇌하다
보니 시가 울려왔지
가슴뛰는 삶을 찾아 헤매지 않았지 가슴 아픈 이들과
함께 하니 가슴이 떨려왔지
뭔가가
되고 뭔가를 찾고 뭔가를 이루려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는게 우리 삶입니다. 그 뭔가에 대한
집착이 유다처럼 더 큰 하나님의 그림을 놓치게 하는, 스스로를 스스로의 감옥에 갇히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내생각보다 크고 내 계획보다 넓고 우주적이신 분입니다. 그저 열어놓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길 위에서의 사랑을 가꾸다 보면 그것이 곧 시가 되고 사랑이 되고 떨림이 되고
큰 세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한주간 동안도 열린 세상에서 진실을 이루시는 님들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