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고 확 달라진 아침과 밤의 선선한 기운은 다시 못 볼 것만 같았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쁩니다. 봄과 가을이 없이 여름과 겨울만 있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하느님,
4년 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단독주택으로 이사오면서 몇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온갖 벌레들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화분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 창틀에 모여 사는 풍뎅이, 그리고 가끔 출몰하여 놀라게 하는 바퀴벌레와 다리 여러 개 달린 지네 비슷한 녀석들과 개미들... 그리고 여름이면 나타나는 모기들을 함부로 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투명 컵으로 잡아 창밖으로 내보내고, 모기약을 뿌리거나 피우는 대신 모기장을 치고 잡니다. 살려고 꿈틀거리는 모든 존재들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절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에게 함부로 했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집 바로 앞의 작은 숲을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봄의 전령 벚꽃과 철쭉, 벚꽃 진 자리에 5월의 아카시아의 향기, 6월의 수국, 밤꽃과 찔레꽃. 이들과 함께 하면서 배운 “향유”라는 방식입니다. 길가에 핀 들꽃이 예뻐 집으로 가져갈까 생각하다가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는 그 꽃들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꿔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더 자연스럽고 예쁜 꽃들을 소유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다른 것들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느님,
지난 주 새신자 환영회 때 목사님께서 읽어주신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싯 구절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무너지기 쉬운 마음과, 무너지기도 했을 마음도 함께 오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경험해보니, 가장 큰 상처는 존재에 대한 무시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투명인간 취급당할 때, 가장 속상합니다. 돈이 많은 고객들만 매우 중요한 사람, VIP인가요? 함부로 할 수 없는 개미, 바퀴벌레, 거미들처럼 무시당해도 괜찮은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매우 중요한 사람이자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사람들임을 고백하며, 서로를 소중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는 것, 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속좁은 시기와 질투로 함께 기뻐하지 못했던 어리석음 또한 반성합니다. 민들레, 장미, 그리고 잎인지 꽃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스파티필름과 아직 꽃을 못 본 극락조의 화려한 꽃들의 함께 어울림을 보면서 내가 이미 가진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것에 집중해도 시간이 별로 없음을 고백합니다.
동녘이 새로 꾸는 꿈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오늘 아침 함께 들은 아이유의 비밀의 정원의 가사처럼 우리도 다시 꿈을 꾸고, 새로운 삼푸를 사고,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지겠습니다.
삶의 바다에 우리를 풍덩 빠뜨리심에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