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의 고백 마가복음 15장 39절
동광원이라는 개신교 최초의 자생적 평신도 수도원에 다녀왔습니다. 함석헌, 김흥호 선생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이세종, 이현필 이라는 분들이
세운 수도공동체입니다. 산속에 들어가 계절에 상관없이 산속에서 나는 산 나물을 먹으며 수도를 하다가
내려와서는 전쟁 고아들을 위해서 고아원을 세우시고 결핵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시고 교육기관으로 귀일원을 세우시고 그랬던 분들입니다.
지금 동광원은 남원에 있는데 1세대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기부해서 남원에 땅을 사셨답니다. 1980년대부터 완전히 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는데 손수 일구셔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광주쪽에는 고아원과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은퇴하면 다 이곳에 들어와 남은 인생을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첫날 원장님을 만났는데 91세셔요. 2시에
도착했는데 4시 저녁 먹을 때까지 자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하셔요. 아
여기는 이게 첫번째 관문이구나 생각했어요. 하루에 2식을
하는데 4시니까 저녁이예요. 저녁을 먹고 자유로워지는가 싶었는데
방을 안내해 주시겠데요. 그러시더니 방에 와서 앉으셔요. 또
그때부터 2시간 동안 당신의 아버님 살아오신 이야기를 하셔요.
그 아버님 이야기를 듣는데요. 이 이현필 선생님이 독신주의자고 이 수도원이
독신수도 공동체예요. 이 원장님 엄마가 아빠하고 아들 딸낳고 잘 사시다가 어느날 이 이현필 선생님을
만나신거요. 그때부터 아버지가 신경질적으로 변하시더라는 거예요. 어렸을때는
왜 그런지 몰랐데요. 나중에 커서 알았데요. 엄마와 사랑을
안하시는 거예요. 그러시다가 어느날 아들 둘에 딸 다섯이었는데 아들들은 커서 장가를 다 갔던 때여서
딸 다섯을 데리고 그 수도 공동체에 들어간거예요. 아버님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날벼락이예요. 일주일이면 들어오겠지 보름이면 들어오겠지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두달이 지나도 안들어오더시더라는거죠. 사람이 누구나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처음에는 분노하죠. 그러다 자포자기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게 됩니다. 이 아버지도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집엘 갔는데 아버지왈 니 엄마가 나버리고 붙들고 사는 그것 좀 가져와보라더라는 겁니다. 성경책이죠. 갖다 드렸더니 담배 한입 빠시고는 성경 한장 넘기시고
담배 한입 빠시고는 성경 한장 넘기시고 그렇게 몇 달을 지내시더라는 겁니다. 그담부터는요 엄마 찾지도
않고 딸들 시집보내는 것도 단념하시고 마을 사람들이 군자라 하실 정도로 그렇게 겸손하게 삶을 살아가셨데요. 그후로
집에 가면 그 원장님 왈 당신 앞에서 술도 안드시고 담배도 안 피시더라는 거죠. 옛날에는 어른 앞에서
술안먹고 담배 못폈습니다. 딸을 어른으로 사람대접해준겁니다. 아버님
돌아가실 때 옆에 계셨는데 천장의 한 곳을 그렇게 응시하시면 몇번을 빙그레 웃으시고는 그렇게 눈을 감으셨데요.
그러면서 이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와 어머니는 그렇게 집을 떠나고 공동체에 들어가고 고아원에 함께 동참하고 그러면서
남들 보기에 표나게 호들갑스럽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버님 같은 경우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호들갑떨지도
않고 사셨는데 되돌아 생각해 보면 아버지 삶에 비하면 자신은 아버지 뒷꿈치도 못쫒아갔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인위적으로 어떤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공동체를 꾸린 것도 아니고 독신을 결단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당신의 일상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군자다운
모습으로 따뜻하게 사람 사이의 정을 남겨두시고 떠나가셨다는 겁니다.
“평범한 일상이 수도원”이라는
거죠. 수도원 원장님이 그런 말씀하시면 수도원이 장사가 됩니까? 그냥
평범한 일상속에서 맘담아 일할 수 있고 사람 귀한 줄 알고 나를 살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 삼아 섬기며 사랑하며 살면 그게 수도원이라는 겁니다.
제가
수도원에 딱올라갔는데 드는 느낌이 있었어요.
뭔가 말하기 좀 어려운데 이솝이야기에 보면 두루미는 접시의 물을 먹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는데도 못먹어요. 그런데 여우는 보란듯이 쭉쭉쭉 빨아서 물을 단번에 다 들이킵니다. 그런
것처럼 도시에 사는 저는 생명을 예기하고 화려하게 설교도 하고 밴드에 글도 올려가면서 하루를 성찰하고 의기투합을 하고 하면서 오늘 또 텀블러 잊어버린
걸 자책하면서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해도 움직이면 환경파괴인데… 딱 그곳에 갔더니 그냥 삶자체가 다 환경운동가고
생태주의자들이예요. 인위적으로 요란법석을 떨면서 생명이야기 하지 않아도 몇천평되는 땅에서 논밭을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면서 땀흘리고 노동하면서 닭한마리 돼지 한마리 죽이지 않으면서 그냥그렇게 살아요. 누군가는
다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이 화려하고 눈부시고 현란하고 호들갑떨고 그러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껍데기만 붙들고 살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이 마치
뒤떨어진 문명인처럼 살아가는 것 같은데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살아내며 살아가고 있어요.
묵묵히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월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앞에서 있었던 한 백부장의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다 아시는데로 당시 로마 황제에게 쓰는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황제라는 뜻입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입니다. 군인은
나라의 녹을 먹습니다. 로마 군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아들은 아우구스투스였습니다. 지금 이 백부장은 아우구스투스가 나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황제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하늘의 낸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뭘 보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범죄이상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놓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몸으로 살아오신 세월의 흔적을 다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사람을 대했는지 가난한자, 여인들, 힘없는 사람들 곁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고백안에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살아오셨던 세월의 깊이가 묻어있습니다.
동광원의 창시자 중의 한사람인 이현필 선생은 수없이 많은 날들을 산에서 하루 한끼만먹으면서 수도하고 기도하고 명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순결과 청빈과 순명에 따라 그는
자기 스스로를 절제하고 훈련했고 산에 머무르지 않고 해방이후 전쟁과 학살로 거리에 버려진 수없이 많은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말년까지 그의 주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그가 길러올렸던 정신을 묵묵히 삶속에서 살아냈던 세월의
깊이, 삶의 무게가 주는 힘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스스로 지켜왔던 계율을 파계합니다. 제자 김준호가 결핵에 걸려서
다 죽게생긴 겁니다. 평생 병원에 가지 않기를 원칙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제자를 살리기 위해 먼저 병원에
입원합니다. 고기도 먹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계율로 평생을 육식을 하지 않았는데 채식도 하루 한끼만 드셨는데 제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계율에 노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원칙을 파계합니다. 어떤 계율도 그것이 누군가를 위한 사랑이 되지 못하면 아니지킴만 못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현필선생은 자신이 지켜왔던 세가지(학교, 병원, 고기안먹고) 계율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수련하고 지키는 자신만의 방법인 걸 알았어요. 이게 누군가에게는 수련이 아니라 족쇄가
될 수 있고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 아닌 삶의 노예가 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음을 아신 거죠.
그러고 보면 그는 정말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것 같애요.
수도원에서 내려오니 제 지난 날들이 몸보다 말이 앞섰던 적도 많았고 호들갑에 야단 법석을 떨면서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말들을 많이 늘어놓고 살아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세월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좀더 깊은 사랑을 담아 몸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회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요한 논의와 결정도 할 것 같습니다. 소유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냐이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청사진을 살아낼
성실한 몸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결정들이 옳았는지는 지금 우리의 결정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냈던 삶으로 멋훗날 평가될 것입니다. 신실하게 생명 앞에 헌신하며 묵묵히 살아가셨던 신앙의
선배들에게서 길을 봅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