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사도 전도서 9장 10절
민족의 명절 한가위입니다.
오늘은 한국식 감사절입니다. 우리가 감사절을 보내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건강하게 서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과 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권정생 선생님께서 생전에 자신을 거지인생이라 표현했다고 하시잖아요. 다 공짜로 얻어먹고 산다는 거죠. 그런데 권정생 선생님만 그런게
아니예요. 교회 이전을 두고 제가 제일 먼저 기도 부탁드리느라 누구에게 전화드려요? 저희 어머님께 전화드려요. 어떤 걸 부탁드려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씀없이 들어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제가 기쁘면 저보다 더 기뻐해주시고 제가 힘들면 저보다 더 힘들어해주시고 이 부모님도 공짜에요. 돈주고 부모님 사신 분! 햇빛도 공짜고 그 더운 여름 너무 힘들었는데
시원하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 다 꽁자예요. 이 바람을 쇠면서 돈내시는 분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근본적인 대부분의 것은 공짜예요.
나태주라는 시인은
<생명>이라는 시에서 “누군가 죽어서
밥이다. 더 많이 죽어서 반찬이다. 잘 살아야겠다” 우리를 살리는 모든 건 다 생명이었던 것들이예요. 아무리 돈을 많이
지불해도 다른 생명이 희생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살아있지 못합니다. 생선도 생명이고 텃밭에서 자라는
모든 쌈채소들도 생명이구요. 오늘도 돼지고기에 상추 씻어왔지만 돼지도 생명이구요. 상추도 생명이예요. 상추를 따다보면 밑에서 락투신이라는 하얀액체가
나옵니다. 이게 신경안정제 효과가 있데요. 그래서 상추많이
먹으면 졸리잖아요. 상추도 아픈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 신경을
안정시키고 빨리 외부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락투신을 막 뿜어대는 거죠. 이 아이도 아픔을 느끼는
거죠. 우리가 삼겹살에 마늘넣고 쌈장 발라서 맛나게 먹지만 상추는 아픔을 느끼는 거예요. 그런 생명들을 먹고 우리가 살아있는 겁니다.
우리는 1% 노력과 99%의 은총으로 살아있는지 모릅니다. 지난 주 남북의 정상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통일이 눈앞에 와있는 듯한 확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무장지대안에 있던 지피도
다 뒤로 뺐구요. 군사훈련하는 곳도 비행훈련하는 곳도 40-80키로
뒤로 다 빼기로 했습니다. 평화협정만 안 이루어졌지 실제 더 이상 전쟁하지 않겠다는 서로의 의지를 확실히
담은 평양선언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선물들도 많지만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얻는 선물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고마운 마음들을 많이 많이 챙기는 추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마운 것을 기억하는 날이예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최선을 다해라 말씀하십니다.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겁니다. 명절은 가족축제입니다. 이 감사의 축제가 축제다운
축제가 되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할게 있어요. 명절 동안 오가는 모든 과정속에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다 사람이 하는 겁니다. 누군가는 운전을 하고 누군가는 음식을 하고 누군가는 돈을 내고 누군가는 접시에
담아서 내오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는 거죠. 식구들 편하게 한다고 외식을 해도 이 모두가 즐기는 축제에
누군가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감사의 표현들을 하고 최선을 다해서 함께 창조적인
노동에 동참하세요. 그래야 축제다운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축제고 누구는 노예고 그러면 절대로 안돼요. 그럴일은 절대 없겠지만 괜히 사우나 한다고 동네친구만난다고
내빼지 마시고 다 하고 만나세요. 서로 서로 어깨도 주물러 주고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좀 섬세하게 맘쓰는 명절 되세요. 명절마다 자꾸 가고 싶게 만드세요.
요즘은 저희 처가가 딸들이 많아서 아들도 처가를 먼저
다녀온뒤에 본가를 와요. 그래야 식구들을 다 만날수 있으니까 그런데 결혼 초기에는 저희와 바로 아래동서만이
결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장인어른도 없고 명절 당일에 오는 손님도 없고 그러니까 명절을 안쇠고 다
저희 오는 때만 기다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희집에다가 제안을 했어요. 명절이 일년에 두번있으니까 한번은 우리 집엘 먼저 오고 한번은 처가에 먼저 가서 예배드리면서 명절을 쇠고 와도
되겠느냐고. 부모님이 허락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일년 명절 두번중에 한번은 처가를 먼저가서 결혼하지 않는 처제들 처남들과 함께 즐겁게 음식 만들면서 명절을 쇠었어요. 아내가 좋아해요? 안좋아해요? 우리가
조금더 노력하고 조금만 더 마음들을 챙기면 훨씬 더 풍요롭게 넉넉한 명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봐야
오래살아도 앞으로 10-20번도 안남았어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다들보니까 부모님 살아계실 때같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부모님 살아계셔서 함께 아웅다웅하면서 명절을 치르던때가
정말 그리운 때가 옵니다. 그날이 오기전에 지금 여기서 살아있을 때 축제다운 축제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니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셔서는
자본가와 결탁한 성전 장사치들의 상을 둘러엎으시며 분노하시고 화를 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정국가에서
종교가 종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현실을 한탄하신 겁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종교의 본질은 성찰과 변화임을 명확하게 하셨고 좀더 큰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명절이 가족들의 축제임을 재확인 해볼 때 이 시대 본질적인
가족의 길을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성서에서 가족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이야기는 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아들이 독립해서 잘 살아보겠다고 길을 떠납니다. 아버지는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하는 둘째 아들의 길을 아무 말없이 응원해 줍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재산을 탕진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도 다 인생에서 필요한 시간이겠거니 멀리서 기도와
사랑으로 응원을 해줍니다. 그리고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차라리 아버지 집에서 노예로 살아가는게 낫겠다
여겨 아버지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아버지는 버선발로 대문바깥에까지 나와 종으로써가 아니라 아들로써 아들을 환대하고 품어줍니다.
재일조선인 소설가 최실은 <지니의 퍼즐>이라는 소설에서 일본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998년 북한에서 대포동 미사일이 출현할 무렵부터 일본, 북한,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따당하고 잦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재일 조선인의 삶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디에도 집(쉬고, 실컷 마음껏 쏟아내고, 울고, 마음
의지할 곳이 없다)없이 살아온 기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 집은 하우스가 아닙니다. Home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유나 조건을 묻지않고 따뜻한 밥한끼로 자신을 환대해주었던 어머니의 품, 마음의 고향, 하느님의 품이 누구나에게 필요하지만, 정작 10시간 12시간씩
걸려 그런 마음으로 고향을 찾지만 정작 고향은 없습니다. 집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품은 없습니다.
영적인 난민의 시대 무한한 환대와 무한한 소통과 무한한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가족을 잃어버린 여러분들의 가족에게 친지들에게, 가족이 되어 주십시요. 엄마가 되어주십시오.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어준다는 건 무한한 비움과 내려놓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크리스챤은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새길을 내면서 길을 걷은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 하늘 마음이
있고 하늘의 뜻이 있고 그것이 곧 사는 길임을 알기에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님들의 용기있는 힘찬 걸음으로 우리의 명절이 더 따듯하고 온기 가득한 명절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