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세상에 마태복음 5장 46-48절
경북 영주시 내성천이라고 있습니다. 천성산 도룡룡 지킴이로 유명한 지율스님께서 함께 지켜왔던 유네스코에 등재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지켜온 천예의
습지 내성천에 북쪽에서 남하하는 제비 떼 3만 마리가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제비보기가 힘듭니다. 우리 어렸을 때보면 참새나 다른 종류의 새들은 논두렁이나 들판에 있었는데
유독 제비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고 집 지붕에 집을 짓고 살기도 했었습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아 비가
오겠구나 알기도 했구요.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어느날 제비 새끼가 꼼지락 꼼지락 거리를 것을 보고 신기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비떼들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라진지 오랩니다. 요즘은 시골가도 어디에서도 제비보기가 어렵습니다. 건축양식이 현대화되고
시멘트로 집을 짓고 살고 농약이 출연하게 되면서 집에 벌레나 쥐들이 사라진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제비들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거예요. 제비 한 마리가 한해 농약 한 병으로 퇴치할 수 있는 양만큼의 해충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 제비가 내성천에 잠시 날아들어 쉬었다가 떠나갔데요. 왜 날아들었을까요? 일단은 내성천에 이명박 정권때 내성천에 영주댐을
짓는다고 하면서 그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구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2016년에 영주댐이 완공되었는데(1조 가까이) 완공되고도 수위를 높여서 물을 채우려 하니까 수질이 악화되고 공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댐이 물이 새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문을 열어놓고 있데요. 물이 흐르는 거죠. 그런데 수문을 열어도 최저수위 아래로는 못 열잖아요. 그러다 보니
최저수위만큼 주변의 늪지대가 만들어진 거예요. 사람들은 떠나고 그래서 환경을 오염시킬 수있는 모든 요인들이
사라지고 조류, 동물들이 살기에 천예의 환경이 만들어진거예요. 각종
멸종위기의 1급 2급 새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동물들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더 이상 살곳이 못된다고 떠난 자리에 동물들은 비로소
둥지를 틀고 하나둘씩 모여들어 살아갑니다.
사람에게 불편하다고 모두에게 불편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인간이 불편하다고 떠난 자리가 동물들에게는 생명의 자리인 거예요. 결국
우리에게 불편하고 좋지 않고 어려운 환경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편하고
좋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생명적이거나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난 여름에 그 무덥던 날 에어컨이 있는 집들은 밤새 에어컨을틀고 잤어요. 그러면서 그
무더운 여름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것에 좋아했어요. 그러나 렌즈를 좀 더 키워보면 그 행복이 누군가에는
지옥이었던 거죠. 에어컨이 없는 집들은 당근 너무 더우니까 선풍기를 틀고는 집 문들을 다 열어놓고 잡니다. 그러면 더 더운 바람이 들어옵니다. 다른 집들 실외기에서 나온 그
뜨거운 바람까지도 함께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닫지도 열지도 못하고 밤새 지옥을 견뎌내야 합니다. 우리 새신자 교육을 받는 두분은 새신자 성경공부를 할 때 두분다 텀블러를 꼭 가지고 다니십니다. 1회용품을 쓰지 않으려는 의지가 몸에 배여있어요. 이분들의 작은
실천이 사실은 매 순간 매우 불편한 일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불편함이 누군가에는 생태계의 순환적
질서를 도와주는 평화의 기운으로 작용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작은 그림에서 불편한 것이 큰 그림에서는
아름다운 일일 수 있고 작은 그림에서의 편하고 좋고 따뜻한 것이 큰 그림에서는 자기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선하지 않은 그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저는 오늘 이렇게 읽습니다. 눈앞에 보기 좋은 먹기 좋은 달콤한처신, 대우, 안락함, 따뜻한 사랑, 내
안의 감정에만 안주하지 마라. 좀 더 큰 그림을 보면서 때론 불편함도 때론 깊은 상처도 때론 모자람과
부족함도 넉넉히 감수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 내가 그토록 원하는 세상에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 내가 힘들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스터 선싸인의 한대사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양반집 마님과 백정 출신의 미군 병사가 사랑을 하는데 이둘은 독립운동에 하나가 되죠. 그런데 어느날 이 마님이 이 멋진 훈남의 미군 병사가 백정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마님은 열심히 나라의 독립만 생각했던 독립한 세상이 어떠한 세상이 되어야한다는 것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거죠. 그때 그 백정 출신의 병사가 묻지요. 당신의 꿈꾸는
그 독립된 세상에 나는 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토록 우리가 갈망하면서 열심히 일구면서 만들어가려고
하는 세상에 진심으로 묻어보시길 바랍니다. 누가 있기를 바라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세상에 우리 모두 함께 있자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