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4일 주일예배 사람 사는 일 누가복음 12장 13-21절
아베가 세계사 유래가 없는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의 주역들에게 경제 침략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부품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백색국가 제외로 인하여 이제는 1120여종의 수출품목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를 넘어 디스플레이, 밧데리, 수소차 등 전자 산업 전방위적으로 영향이 확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수출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칫 제2의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문제의 발단이 참으로 고약합니다. 다른 많은 요인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의 일제시대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에서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부터 였습니다. 아베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가 간의 배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판결을 일본에 대한 폭거라 말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국가간의 협정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오랜 상식입니다. 일본 변호사 협회 회장조차 이건 폭거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예기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베가 사죄를 했어야 합니다. 전세계를 향해 <우리 선조들이 전쟁을 일으켜 너무도 많은 나라의 무고한 피를 흘리게 했다. 꽃다운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았고 6 살배기 아이부터 강제로 끌고가 전쟁무기를 생산하게 하고 태평양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우리 선조들을 대신해서 이 나라의 총리로써 사죄한다. 기업은 죄가 없다. 나라가 시켜서 한 일이니 우리 기업들 다 놔두라. 죄송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당장은 경제가 힘들어서 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겠다. 어떤 식으로도 그 아픔이 치유되기 어렵겠지만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이웃국가들과 함께 평화를 지켜가는 것으로 그 죄를 대신하겠다.> 이렇게 나와도 용서하기가 힘든데 아베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굴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침략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면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전례를 남기면 북한과는 아직 보상조차도 이룬게 없구요. 동아시아의 여러국가들에 전례가 남아 일본 거덜납니다.
이걸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식으로 해결하는게 독일식 사죄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사죄했고 지금은 유럽연합의 중심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택한 건 완전히 가미가제식 자살행위입니다. 한국과 일본과의 반도체를 보면서 뭐에 비유하냐면 <가마우지 낚시>에 비유한답니다. 가마우지라는 새의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그 새가 고기를 잡으면 목으로 못 삼키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걸 가로채는 방식이 가마우찌 낚시법인 거죠. 한국 반도체가 팔리면 팔릴수록 대일 적자폭이 늘어난데요. 돈 벌어서 일본 다 갖다 준거죠. 그런데 그 반도체 부품을 공급해 주지 않겠다는 건 자기들 스스로 자폭하면서 우리를 죽이겠다는 발상인 거죠. 1930년대의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워도 이번 기회가 우리의 내실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오광식 님 안동 텃밭을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안동까지 3시간 정도 내려가서 안동시내에서 40분 정도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요. 깊은 산중이예요. 그런데 그 깊은 산중인데도 그곳에 예쁘게 꽃밭을 가꾸니 뭐가 날라 들어요. 생명이 날라들어요. 벌이 날라들고 나비가 날라들고 생명이 그 깊은 산중까지도 드나들어요. 꽃을 피울일이지 돌아다니면서 벌과 나비에게 구애할 일이 아닙니다. 서정이가 충주에 있는 시인학교에 다녀왔어요. 시 한편 읽어드릴까요? 서정이가 쓴 시예요.
“지우개 연필
연필로 글을 쓰고 지우개는 연필이 잘 못 쓴 글을 지워준다
그 주인이 지우개 연필을 쓰다 보니 연필은 죽었고 지우개 혼자 남아서
지우개는 새 연필을 찾아서 잘 살았다.”
동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한편의 동화예요.
충주면 여기에서 꽤 멀어요. 그래도 뭔가 내용이 있어요. 좋은 시인들이 모여서 십수년째 그곳에서 시인학교를 열고 있데요. 이번에는 백창우 선생님도 합류하셨데요. 아무리 멀어도 볼게 있고 배울게 있고 먹을게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어디 가서 기웃 거릴게 아니라 안타까워하고 욕할게 아니라 독한 마음으로 우리의 내실을 키울 때입니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기초재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이예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편하게 일본 것을 갖다가 조립해서 판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 여러 우수한 중소기업들이 자랄 기회조차가 없었던 겁니다. 어렵게 어렵게 연구하고 투자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상호 협력해서 서로를 키워줘야 하는데 후려치거나 수입하거나 싼값에 자기들이 인수해서는 거져 먹는 식으로 중소기업을 다 죽였어요. 이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투자 협력하고 그렇게 해서 기초자재에 대한 기술력을 키워 같이 먹고 사는 방식으로 체질개선을 해야 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신문을 자세히 읽다보니 다는 아니겠지만 지금 수출규제 품목들 중 많은 것들이 우리나라 기술력이 없는게 아니더라구요. 근데 중소기업을 키울 생각을 않하고 편하게 일본 것을 갖다가 쓴 거예요. 기초재에 대한 기술력을 키워서 작은 나라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중소기업들도 함께 살려주고 <갑질하는 권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하는 나라들 돕고 기업들과 함께 사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아닌 나쁜 지배권력 아베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은 퇴출시켜야 합니다. 물론 일본에도 과거를 참회하면서 소녀상을 전시하게 하는 선한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의 불의한 폭력에 대한 저항이 일본인 혐오로 발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의한 권력를 무너뜨리는 기회로 삼아가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잘 보십시오. 이 사람이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 때문에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십시오. 형을 놓치고 있어요. 돈 잃고 형을 얻으면 다 얻는 거잖아요. 그런데 돈 때문에 형도 잃고 자기도 잃고 있는 겁니다. 돈만 그런게 아니죠. 아베는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백성을 잃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짓 때문에 전 세계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나라들은 탈 일본 정책을 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권력 잡고 그렇게 해서 돈 벌고 그렇게 해서 뭔가를 쌓아둬봤자 신뢰잃고 관계 끊어지고 고립되면 국제 사회의 고립된 섬에서 뭘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참회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뭔가에 대한 집착으로 사람을 생명을 백성들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이 사는 건 그런데 있지 않다는 겁니다. 자식 때문에 이민을 갔어요. 자식 공부시킬려고 밤낮으로 일하다보니 자식보다 먼저 일나가고 자식보다 늦게 집에 들어와요. 정작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거예요. 낮선 환경도 어려운데 언어에 집단 따돌림까지 당하는데 부모가 몰라요. 결국 마약에 까지 손을 댑니다. 자식을 위해 일했지만 결국 그 일이 자식을 망가뜨린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 무엇을 앞세워 사람을 놓치면 안됩니다. 사람 사는 건 그런데 있지가 않습니다. 자기 백성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지금 당장 피해가 가시화되는 건 일본 지방의 서민들입니다. 일본에 관광하는 한국인이 총 여행객의 30%가 넘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대도시가 아니라 중소도시였다고 합니다. 지금 일본의 지방 경제에 제일 먼저 타격이 간 겁니다. 사람을 놓치면 그 권력은 반드시 망합니다.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인구 70만의 GNP 3천달러도 안되는 나라입니다. 티벳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전쟁도 많이 치른 나라라고 합니다. 그 나라의 국민 행복지수가 전세계에서 1위입니다. 제가 설교준비를 하면서 그 나라를 찍은 다큐 2시간짜리를 봤어요. 그나라는 지금도 군주제예요. 소득도 작아요. 우리처럼 집집마다 컴퓨터도 없고 자동차도 없어요. 그런데 행복하데요. 그렇다고 그사람들이 특별한 건 없어요. 명절 때 놀고 먹고 종교를 가지고 있고 농업이긴 하지만 일하고 먹고 살아요. 독특한 한가지가 있어요. 그나라 헌법도 그렇고 국왕도 그렇고 그나라 사람들도 그렇고 GNP가 아니라 GNH를 중요하게 여겨요. 얼마나 버냐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사냐가 모두의 제1관심사라는 거에요. Personal이 아니라 national이예요. 혼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가 모든 삶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나라다보니 국왕이 여행객들을 많이 유치해서 자국 국민들을 짐꾼으로 돈을 벌수 있게 했데요.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이 남의 짐꾼 노릇을 하다보니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차리리 내가 내땅에서 적어도 농사지으면 그 땀의 댓가를 누리며 사는게 더 행복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국왕에게 건의해서 짐꾼은 낙타만 하고 그나라 국민은 짐꾼을 하지 않는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생기면 그 가족이 행복하지 않을거 아니예요. 그래서 1차적으로는 친척이 돌보고 그러지 않으면 공동체 마을에서 돌보는 걸 법제화했데요. 전체 다큐를 보면서 느낀 건 사람과 자연, 자기 하는 일에 대한 애틋함과 경외감이 흐르고 있어요.
살아가면서 나를 집착하게하고 나의 모든 것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들이 사람을 챙기며 사는 것들인지 사람을 놓치고 사는 것들인지 잘 마음담아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네가 온 마음을 쏟고 살아가는 그것이 사람 사는 일에 해당되는지 잘 살펴보라 말씀하십니다.” 휴가철입니다.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한주간동안 말씀으로 삶을 회복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