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생명의 기억! 행 2장43-47절
몇 일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파종했던 씨앗들 중 발아하지 않았던 씨앗들까지 모두 발아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농부는 씨앗에 대한 믿음으로 농사를 합니다. 만약 씨앗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밭에 씨앗을 뿌리지 못할 것입니다.
올해로 광주 항쟁 40돌을 맞습니다. 칠흙같은 어둠,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이 자행되던 살육의 현장속에서도 새시대를 향한 믿음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며 희망의 씨앗을 멈추지 않았던 이 땅의 풀뿌리 민초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풍요는 그들의 핏값으로 이루어진 세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잔인한 학살과 만행의 트라우마로 5월만 되면 우울증에 빠지는 수없이 많은 광주 시민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는 길은 <80년 광주>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의 참회와 반성입니다. 80년 광주기독병원 병원목사의 딸로 10살에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외국인 제니퍼는 동화책 <5.18 체험기>를 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5.18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독재와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만행은 광주를 또 다시 학살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어디에서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자에 대한 용서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서는 죄와 잘못에 대한 책임과 뉘우치고 돌이키며 참회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용서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지만 진실을 위한 여정만이 역사와 시대를 바로 세우고 미래세대를 제대로 교육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찬 전두환 전대통령을 법정에 다시 세우고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합니다.
광주항쟁 40돌을 맞이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많은 증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독교 쪽에서도 <그 해 봄>이라는 주제로 5.18재단, 기독교장로회, CBS 공동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도청에서 마지막을 보냈던 분들의 가족, 광주기독병원 간호사, 투사회보를 작성했던 분들, 무기고를 지켰던 사람들, 광주의 진실을 서울에서 알리기 위해 기독교회관에서 투신자살을 했던 김의기 청년의 누님 등 다양한 증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고백들은 <살아남은 자>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동생이, 동료가, 형이, 꿈꿨던 / 그러나 못 다 이룬 그 세상을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인터뷰 말미에 한결같이 울컥하시면서 제대로 살지 못한 죄책감에 미안해 하시더라구요. 40년이 지났으면 그 무거운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날 때도 되었는데 말입니다. 모든 살아남은 자들의 <살아남은 자들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이 역사 변혁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터뷰를 보면서 이제는 좀 더 자유로워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함과 책임감보다는 고마움으로 남은 생애를 사셨으면 그러면 고인들도 좀 더 평안하게 지켜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80년 광주가 저희에게 준 것은 아픔만 있지 않습니다. 고통과 학살의 기억만 있지 않습니다. 군부에 저항하며 이룬 짧았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해방광주입니다. 1980년 5월 22-26일까지 계엄군을 몰아낸 광주는 철저히 외딴섬처럼 고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과 공포속에서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치안을 유지했고 광주의 45개의 은행 어느 것 하나 털리지 않았고 오히려 김밥과 주먹밥을 만들어 서로 나누고 / 심지어 직업여성들까지 나서서 “우리 피도 깨끗하다”라고 하면서 헌혈하고 봉사하면서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이들과 연대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발언대를 만들었고 어떤 권력도 누구의 지배도 없는 자치적이고 자립적이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 어떤 권력의 강압적 지배도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함께 서로의 고통에 아파하며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살리고 나누고 존중하고, 서로에게 열려있고 누구나 참여하는 민주적 평등 평화의 세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시기를 <절대공동체>가 형성된 시기였다고도 하고 어떤 학자는 우리 역사에서 축척된 <공적 행복의 경험>이 극대화된 시기라고도 합니다. 저는 동학이 꿈꾸었던 <대동세상> 예수가 꿈꾸셨던 <하나님 나라>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자와 함께 있는데 마음과 생각과 존재방식은 다 다른데 존중과 사랑으로 하나되고 그런 세상을 향해 일치되는 경험입니다. 대동세상이라는게 사전을 찾아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존중하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적혀있더라구요. 해방광주는 대동세상이었습니다.
이 몸의 경험이 이후의 역사 - 6.10항쟁, 미선 효순 사건, 광우병 사건,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사건, 촛불항쟁에서 지금의 코로나 시대까지 - 영향을 주고 반복 경험되면서 온 국민들의 몸에 스며들고 감염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축척된 힘과 에너지가 이 코로나의 위기속에서도 혼자만을 생각하지 않고 공적 시스템을 만들고 생명중심의 방역을 하고 연대와 협력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나아가는 전세계의 자랑할 만한 한국으로 우뚝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 현대사에서 해방광주의 몸의 경험이 주는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실현해 냈던 해방된 세상의 경험이 /이후 한국 현대사의 방향과 철학과 힘과 민주적 자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의 이야기도 마치 해방광주를 연상케 합니다. 그들 안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며 서로를 존중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동세상입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뿌리는 선조들의 출애굽 공동체의 경험입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노예로부터 해방된 이들이 이룬 이상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인간은 노예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하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안식일, 안식년, 희년법을 만들어 사람이 돈 때문에 질병 때문에 형편 때문에 영원히 노예로 전락할 수 있는 길을 법으로 차단했습니다. 약자보호법을 만들고 배상법을 만들어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지고 / 서로의 약함에 대해서는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 출애굽 공동체의 원형적 이상을 예수공동체가 실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이 경험을 머리로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몸을 뒹굴면서 법에 노예가 되지 않고 / 약자가 함부로 학대당하지 않으면서 / 오직 서로를 향한 사랑안에서 어떻게 함께 공존하며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몸으로 만들어내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의 이 원형적 이상공동체의 실현은 예수 공동체가 실현했던 몸의 경험의 힘입니다. 예수 공동체가 없었다면 후자도 없었습니다.
저희 교회 이지우 청년이 있습니다. 최윤정 집사님 아드님이시고 아이스하키를 하는 선수입니다. 이 친구가 1년 전 혈혈 단신으로 스스로 비행기표를 끊어서 슬로바키아로 떠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가 통하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완전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부모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부모나 자식이나 누구나 쉽지 않습니다. 다들 줄과 빽을 가지고 대학을 가야했고 그런 방법외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는 선수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다들 누구나 가는 그런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틈새에서 전혀 다른 길을 상상하는 것은 상상은 쉬우나 그런 길을 걷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애가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하나없이 밥은 먹는지, 혼자 쭈그러져서 어디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은 통하는지, 애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닌지... 별의 별 걱정과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도 부모도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힘겹게 힙겹게 정말 잘 버뎌냈습니다. 이지우 청년이 와서 그러더랍니다. 다시는 부모없이 혼자가 가지 않겠다고! 그 이지우 청년이 그것이 기반이 되어 실업팀에 합격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쉽지 않지만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함께 넘어본 몸의 기억은 또다른 앞날의 삶에 영감이 되고 나침판이 이겨나가는 힘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적지 않은 자녀들이 평범하지 않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는 식구들도 많습니다. 힘을 내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힘들어도 함께 넘어보면 그것이 또다른 인생에 영감이 되고 자산이 될 것입니다.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사람관계처럼 어렵고 힘든 길이 없습니다. 100명을 만나도 100명이 다릅니다. 쉽고 편한 만남도 있지만 힘들고 부대끼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부대껴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세상을 보면서 넘어서보는 경험을 하면(80년 광주는 목숨을 걸고 넘어섰지요) 그 몸의 경험은 우리를 또다른 한옥타브 위의 삶으로 초대하게 될 것입니다.
5.18 40돌을 맞습니다. 목숨까지 바쳐가며 실현했던 해방광주의 꿈! 대동세상의 꿈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때일수록 예수께서 목숨 바쳐 이루신 세상의 경험을 삶에 소환하시길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한번 더 넘어서 보는 용기로 삶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타인에게 핑계를 대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원형적 삶에 주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 몸의 기억과 생명의 기억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살려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후 가장 힘든 생태적 삶과 목회의 길을 열어갈 때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동세상안으로 자연과 생태계를 초대하는 몸과 삶의 패턴을 만들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쓴 에티카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모든 귀한 것들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힘들고 어렵더라도 목숨 바쳐 이룬 해방광주의 세상, 그리고 예수의 세상을 가슴에 품고 용기내어 한번씩 더 지금의 벽을 넘어보는 세상을 살아냅시다. 그것이 미래세대를 살려갈 것이고 미래세대에 줄 수 있는 가장 귀하고 복된 삶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 이룬 해방광주의 세상, 그리고 예수의 세상 그 몸의 기억, 생명의 기억들이 만들어간 세상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