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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6~27일 일요일 백두대간 7회차 덕유산
자유인 산악회 무박산행
덕유산 : 백두대간 7회차 : 신풍령 – 갈미봉 – 못봉(지봉) – 횡경치 – 백암봉 – 중봉 - 향적봉 - 동엽령 – 무룡산 – 삿갓재 - 황점마을
산행거리 : 약 24 km 산행시간 : 약 12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055125
거리 24.2 km + 3.6 = 27.8 km
소요 시간 10h 18m 59s + 1.52 = 12h 10m
이동 시간 9h 56m 21s +1.47 = 11h 03m
휴식 시간 22m 38s + 0.05
평균 속도 2.4 km/h
최고점 1,635 m
총 획득고도 1,154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7 – 덕유능선
양산박
그 자리에 천년 만년 서 있었네
품 안에 찾아 드는 세월을 안고
천 년을 또 만 년을 서 있겠네
그대 언제라도 날 찾아오시게
새 옷 갈아 입고 마중가겠네
부담 갖지 말고 쉬다 가시게
살다가 힘들면 내 생각하게나
그대 가슴 속 깊은 시름을
다 내게 던져주고 내려가시게
자유인 산악회의 백두대간 산행에서 처음으로 가는 무박산행이다. 어쩌면 이 무박산행이라는 문화는 참 독특하면서도 장단점이 구분되는 산행문화다. 서울에서 밤 늦게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에는 새벽 이른 시간에 도착한다. 어두운 산길에 랜턴불을 밝히면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동거리를 줄여나간다. 그 구간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랜턴불빛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만 보면서 안전하게 걸어가야 한다. 대부분 긴 산행구간에서 특별히 풍치가 뛰어나지 않거나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 땀을 심히 흘려야 되는 구간이 이에 속한다. 그 구간을 지나면 비로소 동쪽 마루금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을 보거나 계곡을 덮고 흐르는 안개가 그려내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무박산행이나 비박산행이 주는 매력은 이처럼 당일 산행이 줄 수 없는 색 다른 경험일 것이다.
시간 맞춰 나간다고 했는데도 하필이면 버스와 지하철 연계가 모두 간발의 차이로 빗나가면서 탑승지인 사당역에 겨우 11시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는데 김옥신 총무님이 전화해 어디쯤 오고 있느냐 독촉한다. 출발예정시간인 11시를 조금 넘겨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타니 모든 대원들이 자리에 앉아 80여개의 눈으로 나를 주목한다. 이제 조금씩 낯이 익어가는 대원들은 원망의 눈초리가 아닌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배낭을 따로 짐칸에 실을 생각을 않고 가슴에 안은 채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출발한다.
여느때처럼 죽전휴게소에 들렀을 때 배낭을 짐칸으로 옮겨 싣고 나름 편안하게 산행길을 떠났다. 밤에 움직이는 또 다른 장점은 교통체증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당역을 출발한 지 정확히 4시간만이 새벽 3시에 들머리인 빼재(신풍령)에 도착했다. 모두 무박산행에 익숙한 전문 산꾼들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이 차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한다. 헤드랜턴에 손전등까지 갖춘 회원들은 한문희 총대장님의 인솔하에 한 줄로 서서 어두운 산길로 접어 들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서늘한 산공기에 몸을 움추리던 대원들은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시작되는 급격한 오르막에 금방 비지땀을 흘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대원들의 숨소리와 발자국소리 그리고 이른 새벽에 느닷없는 방문객에 선잠을 깬 새들의 지저귐 소리만이 공기를 가르며 귓전을 스쳐간다. 오르고 내려가고 그리고 산길은 자꾸만 왼쪽으로 돌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이 느껴진다. 산행 진행방향으로 왼쪽 저아래 신풍령 고갯길 가로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리고 오늘 산행중 첫 번째 만나는 봉우리 갈미봉 (1,210.5 m)은 자칫 그냥 지나칠 뻔했다. 작은 대리석판 이름표에 갈미봉이라 써 있는걸 보고서야 인지하였다. 뭔가 깊은 뜻이 숨어있는 느낌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특별히 이 갈미봉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우리나라 전국에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산의 명칭 유래는 산봉우리의 형상에서 찾는다. 갈모(葛帽)는 예전에 우리가 쓰던 종이우산의 꼭대기를 감싸고 있는 뭉툭한 부분을 일컫는데 산의 모양새가 그 갈모처럼 생겼다 하여 갈모봉으로 부르다가 편안하게 갈미봉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산이름을 짓는것도 쉬운일이 아니니 꼭 같은 이름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도 산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산림청에서는 기왕이면 그 산봉우리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듣는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갈모봉을 지날 즈음 여명이 밝아온다. 어둠속에서 조금씩 번져나오는 여명은 처음엔 푸른빛을 띤다. 아직 사물을 명확하게 분간할 수는 없어도 먼 산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며 무박산행의 또 다른 신비감을 자아낸다. 우리가 가야할 덕유산 능선길이 저 멀리 아득하게 누워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산줄기가 이제 좀 있으면 찬 기운에 하얀 입김을 불어내며 기지개를 켜겠지. 우리가 오는걸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발걸음이 빠르다. 오르내림이 상당히 급격한 산봉우리를 여러 개 넘나들었는데도 첫번째 휴식장소인 대봉 (臺峰 1,263 m)에 5시에 도착했다. 3.6 km 를 시속 약 2 km 로 꾸준하게 지나온것이다. 신새벽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대원들은 짧은 휴식을 취한다. 이제는 날이 밝아 랜턴불빛을 챙겨 배낭에 넣는다. 실루엣으로 보이던 산들이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속에 숨어있던 꽃과 나비들도 밝은 곳으로 나와 자기 좀 쳐다 봐달라고 이쁜 짓한다. 뿌리에서 쾌적하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쥐오줌풀이라 부르는데 자신의 불명예스런 이름에 항의라도 하는듯 이 시기에 피는 어느꽃보다도 예쁘고 단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한 송이 둥그런 꽃이지만 자세히 보면 셀 수 없을만큼 수 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있다. 원래 작은 것들은 함께 뭉쳐야 살아남는 법이다. 그래야 벌나비도 자주 찾아와 주지 혼자서 숨어 있으면 평생 벌나비는 꿈도 못꿀게다.
노린재나무는 나무를 태운 재 색깔이 노란색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 나무이름을 들었을 때 여름에 풀나무에 붙어살면서 노린내를 풍기는 노린재 벌레를 연상하면서 의아해했다. 혹시 노린재가 특별히 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그 유래를 알고 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나무를 태운 잿물로 천을 노랑색으로 염색했다고 한다.
날이 밝아 오자 눈길은 산길에서 벗어나 숲속으로 뛰어다닌다. 작년에 응복산에서 처음 만난 개시호도 보이고, 요즘 산객들의 눈을 호강시켜주는 큰앵초의 찬란한 꽃이 눈길을 잡아당긴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화려하게 꽃을 피우면서 등장할 산수국이 무대뒤에서 열심히 준비중이다. 오리방풀인지 산박하인지 자꾸 헷갈리는 풀이지만 그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을 생각하면 가슴설레게 하는 풀이다. 단풍취는 불과 2주전 솜털이 보송보송 났을 때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젠 의젓한 성년이 되어 곧 꽃대를 올릴 태세다. 2주전 남덕유에서 보았던 금강애기나리는 길가에 도열해서 아직 자기를 보지 못한 산객들에게 눈짓한다. 처녀치마는 이제 꽃은 다 지고 열매를 달고 있다. 갈아입은 치마는 여름내내 입고 있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그 치마를 입은 채 눈속에 잠들었다가 내년 이른 봄 또 다시 산객들을 유혹하겠지. 엉성한 그물 같은 잎사귀를 피운 고본은 올 여름 또 한 번 화려한 흰꽃을 피울 것이다.
내가 이쁜이들을 만나 수다떠는 동안 회원님들은 하나 둘 나를 추월하여 지나간다. 어짜피 오늘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데 조금은 여유를 갖고 가고자 한다. 산앵도나무꽃은 화려하지도 않고 색깔도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이파리속에 숨어 있어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작지만 자세히 보면 통꽃이 앙증맞게 예쁘다. 이제 꽃이 지고 나면 빨간 앵도가 달리겠지.
대봉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정도 지나 지봉(池峰 1,343 m 못봉)에 이른다. 지봉은 달리 못봉이라고 불리는데 이름만 들으면 나무에 박는 쇠못을 연상하지만 그 유래를 들어 보면 그 못이라는 것이 연못(池)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상석은 두 개다. 모두 한글로 써 있는데 조그만 대리석판에 씌여져 있는 것은 ‘못봉’이요, 커다란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 이름은 ‘지봉’이다. 어쩌면 한자로 지봉이라 쓰고 못봉이라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중국과 다른 우리 고유의 말이 있으면서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실제 말과 다르게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이두문자 또는 향찰인데 향찰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알게 모르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표의문자인 한자에만 의존한 채 옛문서나 지역의 이름 등에 얽힌 유래를 풀이하려면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못봉은 산위에 못이 있어 하늘에 걸린 구름이 그 못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연꽃이 피어 있는 것과 같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유래를 보면 실제 사람들이 부른 이름은 ‘못봉’일 것이고 문서에 기록한 것은 ‘지봉’일 터이다. 이런 식으로 실제 불리는 이름과 문서에 기록된 이름이 다른 것들을 찾아서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일제시대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전국의 토지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때 이럿 오류가 많이 생겨났는데 이를 알고 나서도 선뜻 올바른 이름으로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아침을 먹기로 한 횡경재가 이제 가시권에 들었다. 못봉에서 1.7 km이니 지나온 거리에 비하면 그냥 코앞이나 마찬가지다. 못봉에서 만났던 회원님들도 앞서 나가고 난 조금 여유를 부려 본다. 아직 죽지 않았다며 핑크빛 두툼한 꽃잎을 피우고 있는 철쭉과 낮은 산에는 벌써 한 달 전에 피었다가 져버린 은빛 털이개 같이 생긴 쇠물푸레나무꽃도 이곳에서는 아직 생기가 돈다. 무조건 부지런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이렇게 늑장부리며 피어나니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던가. 꿩의다리도 여름을 준비중이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이렇게 소담지게 자라고 있는가.
백당나무도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중이다. 가짜꽃잎(헛꽃=무성화)을 먼저 피우고 안쪽에 있는 진짜꽃(유성화)을 피울 참이다. 가장자리에 빙 둘러가며 먼저 피는 헛꽃잎은 말하자면 술집의 <삐끼>와 같은 것이다. 눈에 잘 띄는 흰색의 큰 꽃잎을 보고 벌나비가 모여들면 그 안쪽에 있는 유성화가 벌나비가 다니며 뭍혀 놓는 꽃가루에 수정되는 것이다. 짐승들은 머리를 쓸 줄 모른다 하고, 식물은 아예 인지력이나 감각이 없다 하고, 오직 인간만이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그냥 평범한 풀나무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때도 많다. 그냥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가 익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조그만 생명체도 겨울에 모든걸 준비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설계에 따라 차례대로 시행해 나간다. 꽃이 피는 걸보고 인간들은 아름답다 하고 꽃이 지면 다 된것으로 생각하지만 풀나무에게는 꽃이 피는 것은 지기 위한 준비요 지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시작이다. 이런 일련의 준비과정과 마무리절차를 식물들은 해시계에 맞춰가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해 나간다. 어쩌면 그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영원히 종족을 번성시켜 나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소산일지 모른다.
횡경재까지 이제 0.6 km 남았다. 길은 숲속으로 난 그늘 지고 편안한 산길이다. 길 옆으로 키 작은 조릿대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벼과에 속하는 조릿대는 벼처럼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 다만 벼와 달리 약 5년에 한번 정도 꽃을 피우기 위해 모든 정렬을 다 쏟아붓는 바람에 땅속줄기마저 거의 다 말라서 죽는다고 한다. 땅속 뿌리로 번식하는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어쩌면 태고적 열매로 번식하던 태생적 본능이 옛 향수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름 생각해본다.
빼재에서 시작한 산행이 4시간 걸려 이곳 횡경재까지 7.8 km 걸었으니 일반적으로 당일 산행을 한 것과 다름없다. 배고프고 갈증난다. 오면서 대봉에서 쉴 때 물 한 모금 마시고 줄곧 걸었으니 목마르고 배고픈건 당연한 일이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각자 준비해온 아침밥을 먹고 있다. 윤이 준비해준 천호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다. 굳이 밥을 싸 가라고 권하는데 난 번거로운 것이 싫다. 이런 산에서는 간단하게 먹고 조금 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산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단체 산행객들이 큰 무리를 지어 산길을 차지한 채 라면이나 찌개를 끓이고 어떤 때는 삼겹살까지 구워먹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각자 사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겠지만 내게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백두대간 7회차 구간은 덕유산 주능선을 걷는다. 빼재에서 횡경재를 거쳐 백암봉까지 가는 능선길의 왼쪽은 경상남도 거창군이요 오른쪽은 전라북도 무주군이다. 그리고 이 능선의 끝에 있는 백암봉에서 백두대간길은 왼쪽으로 돌아서 동엽령을 거쳐 무룡산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은 대간길에서 비껴서 있는 관계로 오늘 산행코스에는 속해있지 않다. 그래도 기왕 덕유산에 온 김에 이 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을 보려면 다른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빨리 가야 한다. 식사를 마친 회원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서고 향적봉에 가고자 하는 회원들은 각자 먼저 출발하기로 하였다. 작년 12월 눈 산행때 향적봉을 다녀갔지만 다시 한 번 밟아보고 싶다.
횡경재에서 백암봉까지는 3.2 km 오르막 산길이다. 오직 중봉을 거쳐 향적봉에 다녀오겠다는 생각으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심장이 압박을 받으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 낸다. 신갈나무와 철쭉나무 등 활엽수의 초록색 그늘 길이 가끔씩 트여 멋진 조망도 보여주지만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내가 눈으로 본 것들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저장하고 또 달린다. 김종진 회원님이 뒤따라오고 그 뒤로 서너명의 회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어서 올라온다. 나보다 앞서간 회원 한 분은 축지법을 쓰는지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새 사라지고 없다. 자유인 대간팀의 체력에 감탄하면서 다리에 부족한 힘을 가슴으로 메운다. 마침내 좌우 앞뒤로 조망이 활짝 열리면서 산꾼들이 서넛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백암봉이다. 높은 산이라기 보다는 동엽령에서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산 능선길의 돌출된 곳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특히 백두대간길의 갈림목이니 그 중요성이 드러나 보이는 곳이다.
백암봉에 배낭을 풀어놓고 조금은 홀가분한 차림으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을 향했다. 이제까지 힘들게 올라온 수고를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순간 눈 앞에 활홀한 화원이 펼쳐진다. 이미 그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진 덕유산 철쭉평원이다. 지난번 철쭉축제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펼치고 있는 황매산에 다녀오면서 그 넓은 평원이 산철쭉으로 조성된 장엄한 광경을 보았는데, 이 덕유산의 철쭉은 황매산의 그 것과 사뭇 다르다는 걸 확연하게 보여준다. 덕유산의 철쭉은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생겨난 것이다. 철쭉꽃의 색깔도 산철쭉과 달리 짙지 않고 진달래처럼 연분홍이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같은 색이 아니라 각각 성장한 과정을 반영하는지 농도가 다 다르다. 백암봉과 중봉사이 1 km의 경사면이 초록빛 나뭇잎과 연분홍의 철쭉이 어우러져 한 폭의 커다란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산길을 걷는 내내 재잘거리는 휘파람새 소리는 연분홍빛 철쭉군락에 어울리는 아주 멋진 효과음이다.
지난 겨울 눈으로 덮였던 풍경이 지금은 초록빛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같은 바탕에 그저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 자아내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산길 모퉁이에 서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만이 한 겨울의 매서웠던 칼바람을 조금이나마 회상하게 한다.
길가에는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이 줄을 서 있다. 저 아래 낮은 계곡길에서 만나더라도 반가왔을 미나리아재비는 높은 산 정상길에 피어 있으니 더욱 귀해보인다. 꽃은 조금 작지만 빛깔은 어떤 것보다도 짙다. 높은 산에서 추위를 견디고 난 봄꽃은 짦은 기간동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라 따뜻한 곳에 자라는 꽃에 비해 강렬한 빛으로 벌나비를 유혹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지면 안된다. 이곳에도 벌과 나비들의 일과에 맞는 적절한 양만큼만 순서대로 피워야 한다. 철쭉과 미나리아재비 그리고 벌깨덩굴과 덩굴꽃마리, 풀솜대 등 이 봄꽃이 지고나면 곧이어 박새가 무성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고 꿩의다리와 꿩의다리아재비에 이어 원추리꽃이 이 양지바른 평원을 뒤덮을 것이다. 이 꽃들이 마련해준 잔치에 벌과 나비들이 찾아들어 짧은 덕유산의 축제를 즐길것이다.
덕유산 이곳 저곳에 사진 전문가 행색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 긴 접사렌즈와 망원렌즈로 무장한 채 예쁜 꽃을 찾아 다니는 모습이 벌 나비보다 더 진지해보인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는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볼수 있는 더듬이를 갖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을 것이다.
드디어 향적봉(香積峰 1,614 m )에 올랐다. 이 산 정상 주변에 향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특별히 눈에 띄는 향나무는 없다. 다만,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1 km 구간에 천 년 묵은 주목과 고사목이 눈에 띈다. 주목(朱木)은 나무의 속이 붉은 색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나무는 살아서 천 년 또 죽어서 천 년을 서 있는다 하여 단단함을 과시하면서도 나무로부터 나오는 향과 벌레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특성이 있어 옛날부터 가구를 만드는 목재나 관(棺)을 짜는 재료로 인기가 높았다 한다. 한 때 이 인기 있는 주목이 남벌되어 오래 묵은 나무들이 사라졌으나 지금은 함부로 다치게 할 수도 없는 귀한 몸이 되었다.
향적봉 정상의 풍경이 겨울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정상석 주변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서서 30여분을 기다려야 했으나 오늘은 그 넓은 정상 마당이 텅 비었다. 이유는 무주구천동과 연결된 곤도라에 있었다. 평소 이 곤도라를 이용해 쉽게 설천봉을 거쳐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올라올 수 있는데, 무주리조트에서는 봄철 야생동물의 번식기동안 이 구간의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 땀흘리며 걸어온 사람들이니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설천봉~향적봉 구간은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인 삵, 무산쇠족제비, 덕유멋조롱박딱정벌레, 복주머니란, 날개하늘나리 등을 포함해 구상나무, 은판나비 등 특산종이 다수 서식·분포하고 있다.
덕유산국립공원은 매년 봄철 멸종위기 야생생물, 특산종의 번식·개화기를 맞아 서식처를 보호하고 탐방객 과밀에 따른 훼손 저감을 위해 설천봉~향적봉까지 0.6km 구간의 탐방로 출입 통제를 일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6183#08sn
이 기사에 따르면 9일부터 19일까지 통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어쩌면 그 기간이 연장되었거나 횟수를 제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덕유산 정상에서 모처럼 한가하게 인증사진을 찍고는 한 번 둘러보고 서둘러 하산길에 나섰다.
정상에서 중봉을 거쳐 갈림길인 백암봉에 이르는 구간의 풍광은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발목을 잡아끈다. 발 빠른 회원님들은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서둘러 내려가면서도 눈길을 끄는 꽃이 있으면 잠시 서서 눈맞춤을 해준다.
백암봉에 도착하니 오전 10시다. 향적봉에 다녀오면서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우리 대간팀의 후미도 이미 백암봉을 지나 갔을테고 우선 후미팀이라도 따라가야 다른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오늘의 산행코스에 속해있는 삿갓봉에 오를 수 있다.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달음박질 치는데도 향적봉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타날 뿐 후미팀은 꼭지도 안보인다. 백암봉을 떠난지 40여분만에 2.2 km 구간을 달려 동엽령에 도착했다.
동엽령(冬葉嶺)은 남덕유방향으로 진행하면서 향적봉으로부터 4.3 km 그리고 남덕유산으로부터 10.5 km 떨어진 고갯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이고 왼쪽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이다. “한국지명유래집”에는 옛날 양쪽 지역의 장사꾼들이 이 고개까지 각자 물건을 지고 올라와 사고 팔았다고 하여 ‘동업(同業)이재’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지명을 정리하면서 동엽령(冬葉嶺)이라 표기했다고 한다. 산길을 다니면서 알게 된 이런 유사한 지명유래를 보면서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았슴에도 아직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수 없이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엽령에서 무룡산까지 가는 4.1 km 는 무료하고 힘들다. 햇볕이 내리쬐는 구간에서는 온몸에 땀이 배이다가 나무숲으로 들어가면 잠시 시원해지고 또 잠시 바람부는 능선길을 만나면 시원한 바람에 모자를 벗고 몸을 식힌다. 몸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사람의 신체도 기계와 같아 심하게 열을 받으면 고장나기 쉽상이다. 그래서 가끔씩 그늘에서 체온을 낮춰주고 물을 마셔줘야 한다. 오미자 액기스 섞은 물을 두통이나 가져왔는데 갈증을 해소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빨리 삿갓재 대피소까지 가서 그 아래 있는 약숫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11시 30분 가림봉에 도착했다. 동엽령에서 2 km 무룡산까지 2.1 km남은 지점이다. 산봉우리라고 하기에는 그저 밋밋한 능선길이 조금 튀어나온 언덕이라 특별한 주목을 받는 곳은 아니지만 사방이 틔여있어 조망이 좋다. 이제까지 지나온 뒷쪽으로는 백암봉이 멀리 보이고 앞으로 나갈 방향으로 무룡산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그 너머로 삿갓봉 또 그 뒤로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 마루금이 보인다. 이 가림봉에는 봉우리 이름을 적어놓은 이정표가 없다. 꽤 큰 바위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돌을 쌓아 놓았는데 그중 판판한 면에 “대기봉”이라 적어놓았다. 어쩌면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을 산객들이 실제로 산봉우리인줄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이곳을 지나갈 때는 그 글씨가 없었는데 아마 최근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써 놓은 듯 하다.
가림봉에서 그 급한 와중에도 먼 산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 또 부지런히 걸었다. 앞서 간 본진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 뛰다시피 왔는데도 따라잡을 수 없다니 얼마나 빨리 간건지 또 그들을 만날수는 있는건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후 3시까지 하산완료하기로 했으니 시간적으로도 그다지 여유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림봉을 떠난 지 얼마 안되어 본진의 후미팀을 만날 수 있었다.
후미대장과 그 일행이 바위에 앉아 있고, 나보다 앞서 간 향적봉팀 회원들이 그 주변에 서 있다.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이제서야 후미팀을 만났는데 그 앞서간 본진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그들도 반가운지 술 한 잔을 권하는데 나는 술도 못할 뿐더러 앞으로 가야 할 여정이 더 걱정이라 권주를 사양하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내 머릿속에는 오늘 삿갓봉을 보고 월성치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가림봉에서 2.1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무룡산가는길이 20 km 는 되는 듯하다. 이제까지 산행하면서 지친적은 없는 것 같은데 몸이 무거워진다. 갈증이 나 오미자물을 마신다. 같이 가는 회원을 불러 같이 오이를 씹어 먹는다. 산길에서는 물과 음식을 종종 보충해줘야 하는데 오늘은 향적봉을 다녀온 부담으로 정신없이 뛰어온 느낌이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보이는 무룡산이 가까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멀어져가는 기분이다. 얼마전에 산 등산화가 너무 조이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던 발가락부위가 심히 아프다.
무룡산(舞龍山 1,491.9 m)은 산 형상이 마치 용이 춤을 추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찌 보면 덕유산의 긴 등줄기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날아가는 모습같기도 하다. 향적봉이 용의 머리라면 남덕유와 장수덕유는 용의 뒷다리쯤이 되겠으니 이 무룡산은 용의 허리쯤이겠다. 덕유산을 북덕유와 남덕유로 나눈다면 이 무룡산은 북덕유의 시작점이 될 터이다. 삿갓재 대피소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 능선길이 이 무룡산에서 한번 꿈틀거리고 동엽령에서 잠시 내려앉았다가 백암봉 그리고 중봉으로 다시 치고 올라간다. 지난 겨울 눈 산행왔을 때 황점에서 삿갓재로 올라와 삿갓재 대피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어둠속에 이 무룡산까지 와서 해돋이를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여기서 삿갓재 대피소까지는 2.1 km 로 그리 멀지 않다.
이제 12시가 넘었고 몸상태도 녹록치 않아 삿갓봉에 오르는 것을 마음속으로 포기했다. 포기하니 그 비어있는 마음 속에 여유가 자리잡았다. 길가에 푸른색에 가까운 진한 보랏빛 벌깨덩굴꽃이 화원을 이룬다. 오늘 이 덕유산에서 본 꽃들은 다 색깔이 진하다. 특히 이 벌깨덩굴과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은 색이 정말 강렬하다고 해야겠다. 무룡산에서 삿갓재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에서 보이는 삿갓봉은 다른 때 보았던 것보다 더 높고 커 보인다. 전에는 그저 남덕유산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산 봉우리로 여겼는데 지금은 언젠가 다시 와서 올라가봐야 하는 숙제로 남는다. 정말 언젠가 여유있게 산책하듯이 덕유능선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비로소 한문희 총대장님을 만났다. 몇 명은 삿갓봉으로 올라갔고 몇 명은 또 여기서 황점으로 하산했다고 한다. 난 별다른 망설임없이 하산길을 택했다. 마음속으로는 아쉬움이 있으나 삿갓봉을 오르기에는 시간적으로나 몸상태로나 무리다. 김종진씨는 목이 건조해서 그런지 계속 기침을 하면서 걸었는데 몸상태는 괜챦다며 삿갓봉에 오르지 못한 것에 몹시 아쉬워한다. 어쩌면 이 삿갓재 대피소에서 황점마을로 발길을 돌린 모든 회원들의 마음속에는 삿갓봉이 백두대간을 걷는 내내 가지 않은 길처럼 미련으로 남을 것이다. 끝이 뽀족하고 밑으로 넓게 퍼진 산의 형상이 삿갓처럼 생겼다 하여 삿갓봉이라 부른다.
대피소에서 나무계단을 조금 내려오면 약수터가 있다. 삿갓샘이라고 부르는 이 약수는 덕유능선에 접해 있으면서도 마르지 않고 계속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우리나라 지형상 아주 드물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발원지라는 안내문이 커다란 게시판에 붙여져 있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머무는 산객들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이 물을 받아 마신다. 이곳에서 앞서가던 본진의 회원들을 만났다. 약수로 몸을 식히며 쉬고 있던 그들은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났다. 난 배낭에서 빈 물통을 꺼내 작은 PVC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물을 가득 담아 마셨다. 향적봉부터 삿갓재 대피소까지 햇볕을 받으며 걸어오는 동안 땀으로 흘러 나간 수분을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도록 한 통의 물을 다 마셨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이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한 것이다. 약수가 괜히 약수가 아니다. 몸에 들어가 원기를 북돋아주는 힘을 갖고 있으니 약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약수를 마시고 모두 힘을 얻었다.
이제는 서두를 일도 없다. 삿갓재에서 4.1 km 거리니 1시 10분에 출발하여 3시까지 하산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회원들과 함께 내리막 경사길을 조심스레 걸으면서 벤치가 나타나면 앉아 쉬었다.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짙은 녹음으로 그늘진 산길이 아름답다. 30분쯤 내려가니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우리보다 앞서서 내려갔던 회원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다가 일어선다. 우리는 아예 다 내려가서 찬물에 몸을 씻을 생각으로 그들을 따라 같이 걸었다.
길위에 쪽동백꽃이 하얗게 떨어져 있다. 하얀 꽃잎속에 병아리처럼 노란 꽃술을 달고 있는 모습이 예쁜 쪽동백이다. 열매가 익으면 기름을 짜 여인들 머리에 바르던 쪽동백이다. 요즘에야 머리에 바르는 갖가지 용품이 넘치도록 많아 아주까리나 때죽나무 비목나무 그리고 이 쪽동백 기름을 사용할 일이 없으나 모든 것이 부족했던 우리 조상님들은 가까운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여 용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따뜻한 남쪽에서는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했으나 위로 올라가 동백나무가 살지 못하는 한계선 북에서는 동백 대신 이 쪽동백기름을 사용하였다.
내가 꽃나무에 한눈 파는 사이에 회원들은 모두 지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주변으로 피어 있는 꽃을 본다. 층층나무는 온 산을 덮고 있는 듯하다. 능선 길에서 내려다봤을 때 계곡 주변으로 하얀 꽃이 초록빛 신록과 어울려 수를 놓은 듯 피어 있는 것이 층층나무다. 길가에 고광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어둑한 숲속에서도 그 하얀 빛이 밝게 빛나 먼 곳에서도 금방 눈에 띈다. 어쩌면 그 나무 이름도 광채가 크게 난다 하여 붙여졌나보다.
산위에서는 아직 작은 봉오리로 달려있는 함박꽃이 계곡에는 만개했다. 얇고 하얀 꽃 이파리가 청순하게 느껴진다. 꽃 모양이 목련과 비슷하여 산목련이라고도 부르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함박꽃이 요정이라면 목련은 술집 작부다. 목련은 이른 봄 제법 화려하게 피어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금방 누런 색으로 땅에 떨어져 뭇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힌다. 함박꽃은 맑은 바람이 이는 곳에 하나 둘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한다. 꽃이 져도 황갈색 꽃잎이 초록빛 나뭇잎과 어우러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긴 여정이 끝나간다. 허기가 느껴져 배낭에서 문드러진 바나나를 꺼내 먹었다. 바나나에 더러워진 손을 씻으려 계곡물에 담그니 온몸이 시리다.
한참 뒤에 쳐져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후미팀이 내려온다. 여성회원 한 명이 몸이 좋지 않아 총대장님이 인솔하여 내려오는 중이라며 배낭을 교대로 매면서 온다. 긴 무박산행이니 예기치 않았던 일이 생겨난다. 우리는 3시 10분쯤 하산을 완료하고 계곡물에 들어가 더워진 몸을 식힌다. 계곡물이 너무 차가와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차가운 물에 첨벙대며 후미팀 회원들과 알탕을 즐겼다. 새벽 3시 15분에 시작한 산행이 12시간만에 끝났다. 이제는 그 긴 무박산행이 아련한 꿈길로 이어지리라.
회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가까운 장계면에 한문희 총대장님이 알고 지내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다. 각자 만 원씩 추렴하여 묵은지 닭도리탕을 먹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입에 맞는다.
5시 30분 장계를 출발하여 3시간만인 8시 30분쯤 양재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9시 30분 이틀간의 주말일정이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