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탄 팔일 축제의 넷째 날,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일어난 참상 하나를 기억합니다. 그것은 헤로데 임금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커서 자기 왕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광기 서린 끔찍한 일입니다.
한 아기의 탄생으로 밝게 비추는 빛, 그리고 많은 아기의 죽음으로 드리워진 어두움.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는 이처럼 명과 암이 공존합니다. 구원하러 오신 분의 탄생이 그토록 많은 이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하였던 그 아기들의 희생이 구원 역사에 정말 필요한 일이었는지 묻게 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구원의 때가 오자 이 아기들은 자기들 희생의 피로 그 역사에 기꺼이 동참하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헤로데의 광기는 잠잠하여졌고, 임금은 더 이상 그 아기를 찾아다니지 않게 됩니다. 베들레헴의 죄 없는 아기들이 한 아기의 죽음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덕택으로 살아난 아기는 자라나서 모든 이의 죽음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우리가 모두 누릴 영원한 생명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니, 교회는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봉헌한 순교자들의 피로 더욱 굳건하여질 수 있었습니다. 꼭 순교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신앙인은 누구나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도록 초대됩니다.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복음을 모르면서도 그 초대에 응하였는데, 복음을 잘 아는 우리야 얼마나 더 깊이 그분의 뜻에 동참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루하루 봉헌하는 우리의 작은 희생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