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머님의 잔소리 구박을 받으시는 아버님이 좀 안되어보여
"에그~ 아버지... 좀 안되셨구만"
그랬더니 어머님의 뜻밖의 대꾸 ㅋㅋㅋ
"그 때 첫사랑 만났을 때 보내버렸어야 되는데..."
ㅎㅎㅎㅎ
네~ 맞습니다~!
오래전 아버님의 연세 70초반일적에
아버님의 첫사랑으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답니다
그 첫사랑은
동생인 고모님의 친구였고
한 동네 사는 어릴 때부터 천둥벌거숭이로 함께 놀았던 친구이기도 했었다네요
역시나 6.25전쟁으로 피난가면서부터 헤어져서 그 뒤로 70여세 될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고요
아버님의 표현에 의하면 ...
키 크고 코스모스 처럼 여리여리했던 수줍은 소녀였답니다~
고모님으로부터 연락받은 아버님도 첫사랑을 만난다는 설렘에 배시시 미소를 짓더군요^^
"아버지는 좋겠네~ 그 나이에 첫사랑 만나는 복도 있고 ㅎㅎ"
"만나고 좋으면 그냥 가쇼~ 나 안귀찮게"
"오빠는 그래도 옛날 첫사랑 만난다니까 그리 좋은갑네 ㅎㅎ"
아버님은 놀리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몇번이나 매무새 가다듬고 꽤 괜찮은 수트빨을 뽐내며
첫사랑을 만나러 나가셨습니다
.
.
.
몇시간 뒤
우리의 예상 보다는 빨리 돌아오신 아버님...
표정이 그닥 크게 밝아보이지는 않군요 ㅡ.ㅡ
어머님이 타주신 꿀탕 커피를 맛있게 드시면서
아버님이 한마디 하시더군요
"빨간 메니큐어를 발라가지고..."
아~~~!!!
우리 가족 모두 탄식을 내질렀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바탕 배꼽을 잡으며 웃었어요ㅋㅋㅋ
멋적은 아버님도 따라 웃음인지 뭔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더군요 ㅎㅎ
네~네~
저희 아버님은 도대체가 메니큐어라 하면 질색팔색을 하시는지라
집안 전체 식구 어느 누구도 아버님 앞에서는 메니큐어 바른 손을 보이지 않았죠 ㅋㅋ
이어지는 아버님의 말씀
"키가 큰 사람이 몸집이 얼마나 큰지 나보다도 훨씬커서.. 게다가 뭔 화장을 그렇게 진하게 했는지..."
맞습니다...
아버님은 자신이 보낸 세월동안 첫사랑 그 여리여리하던 소녀도 똑같은 전쟁의 상흔을 겪고
모진 세월 견뎌내고 가족들 건사하느라 더 많이 지치고, 상처받은 나날이 많았을거라는 걸 짐작도 못하신게지요
당신의 기억은 저~오래전 어렸을 이팔청춘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타난 사람은
똑같이 첫사랑을 만난다는 설렘에 온 정성을 다한 진한화장을 하고
어쩌면 처음이었을지도 모를 빨간 메니큐어 바른 초로의 할머니였던 것입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것을...."
아버님의 넋두리속에는
딸의 이름에도 첫사랑의 이름하나를 넣어서 지을만큼의 그리움이 있었는데
그 그림움이 허탈하게 날아가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탄식이 있었던것이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도 묻어있는
진한 화장과 빨간 메니큐어 탓 만은 아닌........
참~~~~~~~ 허무하고도 덧없는 그리움이었던 것 같군요
어쨌거나 지금
저희 어머님은 80중반이 넘으셨는데
빨간메니큐어가 손가락은 물론이고 발가락까지 곱게 칠해져있습니다 (화장도 저보다 더 잘하심 ㅎㅎ)
90이 목전인 아버님의 말씀....
"자기 취향이니까....."
첫댓글 ㅎ
글 잘 읽었습니다.
첫사랑은 그냥 그리움으로 남겨두는게 좋지요 저도 몇년전에 우연히 기회가되어 35년만에 한번 보았는데 안보는게 나을뻔했다는 생각입니다 ㅎㅎ
*같은시각 ㅡ첫사랑 할머니 집 상황*
할머니남편분 ::왜?~벌써 왔능감?~맘에 들면 따라가잖코?
할머니 손녀:::할머니 할머니!~오늘 빨간립스틱&빨간매니큐어 바르고 나가시니 ㅡ할부지께서 멋지다고 하셧쬬?!~~^^~
할머니:::에혀~~말두마슈!!~당신하고 겨련하길 잘햇찌!!~원~얼굴에 주름투성이에다가,,!
글구,거 머시냐 샤날인가 샤넬인ㄱㅏ 하는 그비싼 립쑤틱이 아까분생각만 들드라야!!~~~ㅋㅋ~~~^((^~~~~
&화목하신 집안정경들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요즘에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티브동화였던가요??...애니매이션 화면에 은여우님처럼 차분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했던... ㅎ
어느날 엄마의 통화를 듣게 되었는데..내용인즉 엄마의 단짝 친구분에게 엄마를 짝사랑 하셨던 분에게서 어찌 연락이 닿아 한번 볼 수 있겠느냐는 소식이 왔다며..이모랑 엄마는 처녀시절로 돌아가신 마냥..두 분이 소녀처럼 속닥속닥 하셨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긴세월 아버님 곁에서 함께했던 희노애락의 세월이 이제는 내편이 되셨나봐요. 그렇게 한세월 함께 품고 사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한순간 모습만 뵈어도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