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않음은 지성의 행위, 친절의 행위이다>
"마음이 현재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마다 자신을 비난한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엄청나게 비난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특정한 낭만적인 '영적' 이상에 부응하면서 살지 못하는 자신을 혼내거나 폄하는 것을 멈춰야 할 때인지 모른다.
그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단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떨까? 공식적인 명상을 하는 동안 호흡을 망각하고 '명상을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생각할 때라도 '망쳤다'고 판단하는 당신의 생각 자체를 알아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 생각 역시 하나의 판단이며 또 하나의 내면의 주석에 불과하다.
실제로 당신이 '망쳐버린'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켤코 아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잘못된 부분은 없다.
그것은 선택한 대상에 주의를 지속적으로 기울이지 않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마음이 만들어낸 판단일 뿐이다.
아마도 이런 일은 앞으로도 수백만 번, 수십 억 번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마음이 이곳저곳 방황하면서 이런저런 일에 푹 빠져 있을 때라도 우리는 적어도 잠시 동안 자각(알아차림) 속에 머물 수 있다. 또 이처럼 반복적으로 자각(알아차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선택의 기회는 매 순간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는 과도한 단순화와 이분법적 사고, 흑백논리,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과 판단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 앞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분별력(discerment)이라고 한다.
판단을 유보한 채 판단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우둔한 행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성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에 대한 친절의 행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토록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며 비난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성향과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 카밧진의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