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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 빼어난 외도와 부처의 만남
어떤 외도가 석가모니 부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있다는 말(有言)도 묻지 않고, 없다는 말(無言)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없이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러자 이 외도가 문득 절을 하고는 찬탄하며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십니다. 저로 하여금 미혹의 구름을 열게 하시고 들어가게 하십니다.”
마침내 외도가 떠나고 곁에 있던 아난이 물었습니다.
“저 외도는 무엇을 깨달았기에 ‘들어가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하였습니다.
“마치 세상의 훌륭한 말이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곧장 움직이는 것과 같다.”
外道問佛. 不問有言不問無言世尊良久. 外道禮拜, 贊嘆曰, 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及外道去後, 阿難問佛,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世尊云, 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어떤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저 신의 세계 가운데에서 참된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우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삶을 온전히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어떤 가르침에 안주하지도 않았습니다. 옳은 것은 기꺼이 받아드리고 옳지 않는 것은 후려치는 진솔함과 용기, 그리고 지혜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듯 석가모니 부처 앞에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실을 알고자 하는 절대적인 용기와 절대적인 지혜가 없다면 저 절대적인 진실이 스스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리가 만무하기할 것입니다.
저 외도는 여러 가르침들을 거쳐서 마침내 석가모니부처 앞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의 긴 수행에서 깨우친 것을 단 한 구절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한 구절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저 브라흐만이라는 존재가 실재하는지, 실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논쟁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유형적인 진리와 무형적인 진리에 대해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형적인 진리란 모습을 갖춘 신에 의해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종교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무형적인 진리란 모든 것이 무에서 시작되었다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이는 곧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가르침과 무에서 우주가 생겨났다는 주장을 말합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모든 것은 텅 빈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풀무의 빈 공간에서 바람이 생기는 것과 같다. 나는 이것을 도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형적인 신이란 곧 네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네 가지의 모습이란 흡사 사계절을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만물을 일으키고 만물을 거두어갑니다. 봄이 오면 생명이 싹트고 여름이면 성장하고 가을이 오면 거두고 겨울이 오면 뿌리로 돌아가서 쉬게 됩니다.
힌두교에서는 브라흐만은 우주를 창조하고 비슈누는 우주가 흩어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다스리고 시바신은 우주를 거두어들인다고 말합니다.
지금 부처 앞에 서 있는 저 외도는 삼계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삼계란 곧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저 삼계의 정점이란 곧 무색계 가운데에서도 최정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또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부릅니다. 정상의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있다고도 말하지 않고 없다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지금 부처 앞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이러한 삼매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이 삼매는 석가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깨달음과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그의 질문은 매우 은유적이지만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석가모니부처께서는 곧장 그의 뜻을 알았기에 말없이 가만히 계셨습니다. 이처럼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양구(養久)’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저 침묵을 지키거나 그저 대답을 못해 입을 닫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 수행자는 어리석지 않았기에 석가세존의 말없음에서 전광석화처럼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는 어떤 날카로움을 느꼈으며 마침내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깨우친 그 어떤 것과도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찬탄하며 말했습니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십니다. 저로 하여금 미혹의 구름을 열게 하시고 들어가게 하십니다.”
미혹의 구름을 열었다는 것은 곧 신의 세계를 벗어나 비로소 부처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고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금 석가모니부처께서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외도 가운데에서도 가장 빼어난 외도라고 부릅니다.
당시에 저 아난존자는 석가모니부처를 항상 곁에서 시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듣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 외도가 들어간 곳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저 아난은 기억력이 탁월하여 한번 보고 들은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외도들의 모든 가르침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보고 들은 부처의 가르침이 모조리 저장되어 있었지만, 여기에 이르러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석가모니께서는 말합니다.
“마치 세상의 훌륭한 말이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곧장 움직이는 것과 같다.”
세상의 훌륭한 말이란 곧 저 외도를 가리키고 저 외도가 머물고 있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저 세계에서도 이처럼 빼어난 자는 그저 살짝 힌트만 주워도 곧장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계에 머물지만 둔한 자는 채찍을 휘둘려도 움직일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말이라고 한 것은 곧 불교적인 여러 수행단계를 밟지 않고서도 곧장 이처럼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돈교법문입니다.
석가모니부처의 이 한 마디는 곧 억겁의 세월을 목격한 묵은 영혼을 깊이 관통하는 화살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취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