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https://youtu.be/JV3W4jwepbM
*작 사 : 민노아(閔老雅, 1866-1937)
*작 곡 : 헨리 브린리 리차드(Henry Brinley Richards, 1817-1889), 에미라(Emmelar)가 편곡함
작사자 민로아 목사의 본명은 프레데릭 S. 밀러(Frederick S. Miller)이다. 1892년에 미국 북장로회 소속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민로아(閔老雅)라는 한국 이름으로, 1893년 서울에서 예수교학당(경신학교) 책임자가 되어 교명을 <민로아 학당>으로 고치고 자신의 교육 방침대로 발전시켰다.
안창호(安昌浩) 등 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기독교 교육에 힘썼다. 1895년 연동교회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청주지역에서 44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1902년에는 장-감 연합의 찬송가 제정을 위한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최초 노회 경기-충청 노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설립하였거나 시무한 교회로는 충북 청주신대교회, 청원북일의 묵방리교회, 북일화죽리교회(1921), 송파교회(1922) 등이 있다. 그는 1936년 정년은퇴 후 필리핀 중국을 여행하고 청주로 다시 돌아왔으며 1937년 별세하여 양화진 제2묘역에 온 가족이 안장되었다. 그가 번역한 수많은 찬송들은 100년 동안 거의 수정 없이 애창되고 있다.
이 찬송가의 배경은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이다. 이 찬송은 추수감사절의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묘사한 찬송가로 유명하다.
성경상에 나타난 추수는 우기가 지나는 4월 중순에 팔레스틴의 보리수확이 시작되어 땅콩, 겨자 등의 수확도 한다. 2, 3주간 뒤에 밀, 나맥(裸麥)의 추수가 있다. 그러나 여리고 부근의 따뜻한 지방에서는 보리를 4월이 시작되면서 거두어 들이기 시작하고, 지중해 연안에서는 약 1주간, 구릉지대(丘陵地帶)에서는 1주간 더 늦게 수확이 시작된다. 수확은 거의 7주간에 걸쳐 있고 유월절로부터 오순절까지 사이에 행해진다. 추수 때에는 밭 한 구석에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을 위하여 곡식을 남겨두는 인정적인 율법이 있었다.(레19:9, 23:22) 또한 추수는 <갚음(시126:5, 갈6:8-9)>, <심판(호6:11, 마13:30, 39, 계14:15)> 등의 형용 또는 상징이 되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이민들이 갖은 고생을 겪고 1623년에 비로소 훌륭한 곡물 수확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해 11월 당시 행정관인 브라드포드(Bradford)가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언했으나 정식으로 국경절기가 된 것은 죠지 와싱턴 대통령이 1789년에 11월 26일을 감사절로 제정한 뒤 부터였다.
그 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감사절을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제정하였는데 다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 판례로 11월 셋째 목요일로 수정하여 제정 공포했으나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가사 1절 : 하나님께서 농사 지을 줄 모르는 비천한 새도 먹이시는데 하물며 그 무슨 생업이든지 할 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귀한 성도야 말할 것이 무엇이랴?
*가사 2절 : 백합화를 실례로 들어 우리의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마 6:25-26을 참조하라.
*가사 3절 : 우리는 염려하지 말 것이다. 장래에 대한 경영(經營)이나 설계(設計)를 금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순 자력으로 문제 해결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금해야 한다.
*가사 4절 : 그의 나라(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의(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를 먼저 구해야 할 일이다. 내일은 나의 날이라고 확보할 수 없으니 그날의 일을 충성되이 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는 추수하기 4개월 전에(12월) 시작되었다.(요4:35) 이 전도는 초막절(10월)이나 수전절 직전(12월)에 끝났는데(요10:22) 그 어간에 이 산상수훈을 주신 것이다.
한국 최초의 장, 감 합동 찬송가인《찬숑가, 1908》편집자로서, 우리 찬송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장로교 선교사 민로아(閔老雅) 목사가 한국어로 작사한 찬송이다. 게일(奇一, James Scarth Gale, 1863-1937) 목사는 연동교회를 맡아보고 있을 때, 제3대로 장로가 된 광대 출신 임공진(林公鎭)을 주일예배 시간에 교회 앞에 세워, 민요「양산도」가락에 맞춰 이런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1. 에에이에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천부가 저 새를 먹여 기르신다.
2. 에에이에 들에 백합꽃을 보라
천부가 저 꽃을 귀히 입히신다.
3. 에에이에 너희들은 낙심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여라
4. 에에이에 내일 염려 내일 하라
오늘은 오늘에 고생 족하니라
<후렴>
염려 말아라 의복 음식 염려 말아라
천부가 너에게 복을 내리신다.
연동교회가 자리잡았던 연못골과, 그 이웃 찬우물골(현 효제동) 방아다리(충신동) 두다리목 등은 조선시대 직업서열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제일 하층인 나막신 장수, 배추장수, 천민, 갖바치, 하급 병졸 등의 집단거주지였다. 그래서 초기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 계층 출신이었다.
원산의 유명한 싸움꾼이었던 고찬익 장로도 원래 평안도 안주의 갖바치 출신이었다. 임공진은 비록 천민이었으나 신앙의 열의는 대단하여 게일 목사가 장로로 추대하였는데, 양반교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특히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인 1909년 6월 25일 연동교회 제직회에는 원두우, 아펜셀라, 헐버트 목사 등 장, 감 양 교파의 선교사들까지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게일 목사는 단호하게 임공진 장로의 신분을 막론하고 장로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이원긍, 함우택, 오경선 세 영수가 천민 출신의 장로 장립에 분노하여 마침내 1백여 명의 성도를 데리고 나아가 묘동교회를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일은 임공진을 장로로 세웠으니, 그의 인권평등 사상과 국악사랑의 정성은 가히「매니아 급」이다. 임 장로는 게일의 격려에 힘입어 가야금 병창 등 전통국악에 바탕한 한국적 찬송가 개발에 나섰다. 1917년에는「조선음악연구회」를 조직, 3년간 찬송가 토착화작업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이들에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키는 몸의 키도 되지만 나이, 목숨도 됩니다. 키를 자라게 하는 일, 목숨을 늘리는 일,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이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떠맡으려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을 비롯해 모든 창조물들을 돌보십니다. 새들은 인간들처럼 양식을 마련하거나 축적하는데 급급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인간이 이러한 새보다 못하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새들과 같이 자신의 위치에서 항상 일하는 성도들에게 더 크신 은혜로 보호해 주십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이 입시시고 먹이시는 복 된 날들이 되시기를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