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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 : 메가(mega) 트렌드 하나를 고른 뒤 그 트렌드를 예능/드라마/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하라.
# 1.
“어쩌다 할배 된 55년생 내겐 청춘일 권리가 있다.” 7만명의 팬을 보유한 노년 모델 김칠두 씨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다. 법정 노인은 만 65세부터이지만 초고령화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뒤질세라 ‘제2의 청춘’을 즐기며 사는 노인들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급속이 이뤄지는 가운데 이처럼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 그리고 이들이 중심이 되는 소비가 바로 2020 메가 트렌드이다.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 5060 세대의 생애주기 또한 변화하였고 이들도 제 2의 경제활동을 모색하고 자아탐색이나 자신만의 흥미, 취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5060 세대의 신기술에 대한 민감도나 활용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젊은이 못지 않게 맛집 정보, 여행 정보를 수집하며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현대닷컴은 소위 ‘웹버족’, ‘실버서퍼’를 위한 글자 키우기 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그 결과 60대 사용비율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5060 세대의 변화 속도는 느리지만 과소평가할 수 없는 잠재적인 소비층이 될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이러한 5060 세대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5060 세대를 겨냥한 TV선의 ‘미스터트롯’은 최고시청률 35.7%를 달성하며 트로트 시장을 더욱 확대시켰다. 그러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과 같은 프로그램은 5060대를 주 시청자로 ‘대상화’하여 겨냥한 것일 뿐, 이들을 ‘주체화’하여 만든 프로그램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는 아직 시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시장에서는 이미 새로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문화 아이콘으로서 5060 세대가 젊은 층에게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례로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은 메이크업부터 쿡방까지 유쾌한 ‘막례쓰’의 일상을 담아 순식간에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시니어들의 유튜브 진출에 도화선이 되었다. 치매로 고생하는 언니들을 본 박막례 할머니가 나중에 치매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손녀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회사를 나와 영상을 만든 것이 유튜브 채널의 시작이 됐다. 요즘엔 패션으로 급부상한 60대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가 화제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밀라노 패션 유학생이며 페라가모, 막스마라 등 유명 브랜드를 한국에 론칭하는 등 경력 또한 화려하다. 지난해 <유튜브 트렌드>에 따르면 5주 차에 급상승 1위를 기록한 채널이 밀라논나로 기록됐을 만큼 심상치 않는 분위기다. 이처럼 ‘신중년’은 새로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문화 아이콘으로서 젊은 층에게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예능 방송의 새로운 장이 될 수 있다.
5060대 ‘신중년’의 삶을 살며 도전하는 이들을 체험형 예능과 관찰 예능의 형식을 결합하여 집중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형 예능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등이 있다. 매 미션마다 전문가나 멘토를 섭외하여 조정 경기, 합창 대회 등에 각종 미션에 도전했던 두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개인’에 초점을 두고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도전한다는 것이다. ‘제2의 청춘’을 즐기며 개인의 자아를 탐색하는 ‘신중년’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인 만큼 각 출연진의 삶과 도전을 <나 혼자 산다>식 관찰 예능의 형식으로 찍어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출연진 모두가 단일한 미션에 도전했던 기존의 프로그램은 흥미와 취미 모두가 개인화된 시대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구성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 유튜브를 시작한 할머니 박막례, 63세에 처음 런웨이에 선 시니어 모델 김칠두처럼 각 출연진의 삶을 조명해 ‘100세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는 무엇인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2.
코로나 19 확산 이후 20대와 30대 를 중심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대출이 이어지고 있다. 전례없는 부동산 가격 급등은 2030 세대의 불안감을조성했다. 목돈 없는 사회 초년생들은 영혼을 끌어모아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무리한 신용대출로 내 집 마련 혹은 주식 투자에 나서게 된 것이다.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적 불안과 더 오르기 전에 사야한다는 이성적 판단의 혼재 속에서 청년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물의 욕망은 스토리라인을 구성할 때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웰메이드 드라마 속 주인공은 반드시 원초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 원초적 욕구란 생존, 배고픔,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는 것,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물을 생사를 건 정면승부에 나서게 한다. 수작으로 일컬어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이지안은 기댈 곳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나의 아저씨>가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불리우는 이유는바로 이지안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시청자의 고민과 불안, 살고자하는 욕구 때문이다. 이처럼 인물의 절실함은 시청자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함으로써 작품에대한 몰입을 불러온다. 이런 측면에서 2030 세대의 영끌 생존 재테크 사태는 드라마 소재로 다루기에 더할나위 없다.
영끌 사태를 다루는 드라마 속 20대와 30대 주인공들은 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영끌 청년들을 대변할 것이다. 사회 현상을 다루는 만큼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고민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드라마는 방영과 동시에 대중들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이다. 즉, 화제성이 뛰어나 드라마 홍보가 자연스럽게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시청률의 상승을 유도한다. 특히 20대와 30대의 호응을 이끌어냄으로써 광고주가 가장 선호하는 2049 시청률을 확보할수 있다.
헐리웃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스나이더는 모든 좋은 이야기들은 그 안의 모든 인물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2030 세대의 영끌을 다룬 드라마속 인물 또한 이야기 전개 과정 속에서 변화하며 삶이라는 바퀴 자국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들의 성장과 긍정적 변화를 바라보면서시청자는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극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치유의 힘을 주는 것, 이는 드라마의 존재 이유이며 가장 큰 힘이다.
# 3.
‘인생은 한 번뿐이니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YOLO(You Only Live Once)를 뛰어 넘는YOLY(You Only Live for Yourself)가 오고 있다. 욜리는 ‘착한 사람이 되기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체된 공동체 안에서 본질을 찾기 보다 개인으로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욜리를 기성세대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라고 말하지만 팬데믹 세대에게는 생존 본능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개인의 능력을 특화 시켜 남과 다름을 인정받는 것이다. 즉,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고 개인에 대한 고유한 가치와 이미지를 상품화 하는 것이다.
사회 문화적 메가 트랜드는 퍼스널 브랜딩이다. 퍼스널 브랜딩은 특화된 개인의 능력으로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넷플릭스 창립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3-4명의 인재를 뽑을 연봉으로 최우수 인재 1명을 뽑는다. 넷플릭스의 초고속 성장 동력은 사원 개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방송가에서 보여지고 있는 퍼스널 브랜딩의 양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 진행자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PD자체가 브랜딩이 잘 된 것이다. SBS 맛남의 광장을 이끌고 있는 백종원은 본인만 할 수 있는 필살기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판매가 잘 되지 않는 지역 특산품을 큰 마트에 납품할 수 있게 재벌 총수들에게 직접 전화해 판매한다. 실 생활 요리를 연구해온 요리 연구가로서 로컬 푸드를 이용한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고 라이브 방송도 진행한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백종원 본인 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본인이 가진 이미지와 가치를 공고히 하면서 프로그램도 성장한다. 개인의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방송과 개인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방송은 소비를 하기 이전에 품질을 알 수 없는 경험재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PD 퍼스널 브랜딩이 잘 되었다면 고정 시청자가 쉽게 유입된다. 과거에 PD가 만든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느끼고 후속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TVN 정종연PD를 들 수 있다. 정종연PD가 연출한 더 지니어스는 고정 시청자층 덕분에 3.2%라는 저조한 시청률에도 시즌4까지 이어졌다. 더 지니어스: 카이스트, 웹 게임, 모바일 어플등 2차 창작물들도 지속적으로 생산됐다.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게임 관찰 예능의 노하우를 집대성해 만든 대탈출은 제5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분 예술상을 받았다. 게임의 형태를 넘어서 세계관을 구축하는 예능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다. 이런 PD 고유의 연출 스타일은 현재 시청자들을 다음 프로그램의 잠재적 시청자로 이끈다. PD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는 개인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고 개인 콘텐츠가 확장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유튜브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콘텐츠 포화도가 높아졌다. 이제 모든 TV 프로그램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콘텐츠의 시장 포화에 유일 무이한 생존법은 Narrowcasting이다. 완벽하게 개인화 된 프로그램을 생산하면서 TV에서만 할 수 있어야 한다.
# 4.
올 초부터 퍼진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온택트’다. 학교 수업을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였고, 회의는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온택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계속 유지될 전망으로 보인다.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한데, 굳이 회사에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만남이 힘들게 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 스스로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서로간의 교류에 집중하기 보다는, 각자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프로그램이 있다. 올해 5월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온앤오프>는 직장생활을 하는 ON상태의 나와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OFF상태의 나를 보여준다. <나혼자산다>와 비슷한 포맷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개인의 두 개의 자아로 분리함으로써 좀 더 내면에 집중한 느낌이 든다. <놀면 뭐하니?>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캐인 유재석과 라면집 사장 유라섹, 트로트 가수 유산슬, 프로듀서 지미유 등의 다양한 부캐들. 더 이상 개인을 하나의 평면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여러 개의 자아 혹은 자아 속의 자아로 바라본 결과이다. 하나의 부캐를 만드는데, 이름도 다르고 각각의 스타일도 달라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온택트시대에 우리는 분리되었고, 또 분리했다. 분리만큼 중요한 것은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ON과 OFF, 본캐와 부캐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다. 개인의 자아를 분리했지만, 자아끼리의 연결성은 놓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분리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더 확장해서 보았을 때 사회와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없다면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가 없다면 개인은 삶을 온전히 영위하기 힘들 것이다. 온택트시대라고 해서, 각자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면 자아에 대한 관심이 개인이기주의로 변질될 것이다. 자아의 유기적 연결성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개인과 집단 등의 유기적 연결성에도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프로그램은 이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분리와 연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인 내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 집단, 사회 각각을 분리해 입체성을 부여하고, 서로의 유기적 연관성에 맞춰 본다면 그 프로그램을 보는 우리 모두 더욱 깊은 시각으로 사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5.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흥선 대원군, 그는 조선의 개혁가였다.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서원 철폐 등 개혁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산업화라는 세계적 흐름을 읽지 못한 그는 쇄국 정책을 실시했고, 조선의 개화는 늦어졌다. 옆나라 일본은 일찍이 개화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산업화라는 흐름을 탔고, 군사적으로 부강함을 이뤘다. 군사적 강대국이 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강제로 조선의 주권을 빼앗았고, 조선인들은 나라를 잃었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누구도, 어떤 집단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막거나 피하려 하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다.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메가 트렌드’라고 한다. ‘메가 트렌드’는 어느 시대에서나 중요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메가 트렌드’에 빠른 편승은 막대한 흐름은 물론이고, 시장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대표적인 예시다. 유튜브는 가장 와해적인 기술로 여겨지던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메가 트렌드’에 편승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유튜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한 방송사들은 광고 이익이 급감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고, 영향력 마저 잃어가고 있다. ‘메가 트렌드’의 빠른 편승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4차 산업 혁명시대, 새로운 ‘메가 트렌드’ 중 하나는 ‘초연결’이다. ‘초연결’은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상호작용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고속으로 대용량 정보를 효율적으로 끊김없이 전달할 수 있다. ‘초연결’이 ‘메가 트렌드’로 뽑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안정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성 때문이다. 만약 개별 자동차간 ‘초연결’이 이뤄지면, 자동차는 다른 자동차와 소통하여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가장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고, 도착 시간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초연결이 메가트렌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 제작에 ‘초연결’ 기술이 도입되면 촬영과 편집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현재 드라마 제작은 사람이 합을 맞춰 조명, 음향, 카메라 등을 다뤄야 한다. 합을 맞추기 위해 여러번 리허설을 돌려야 하고, 본 촬영을 진행해도 실수가 발생하여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초연결’ 기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당 장면에 대한 분석과 촬영장의 구조를 파악해서 촬영 장비들간 상호작용으로 실수를 최소화하여 촬영 시간이 단축되고, 촬영 종료 시간이 예측 가능해질 것이다. 편집의 경우 물리적 메모리를 이용하여 촬영물을 편집실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를 통해 촬영장에서 촬영물을 업로드해서, 편집실에서 다운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편집PD는 당일 촬영물을 당일 바로바로 편집할 수 있게 돼서 전체 영상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초연결 기술 도입으로 촬영 시간과 완성본이 나오는 시간이 줄면 제작진들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한국 드라마 제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비 절감은 콘텐츠 투자로 이어져 선순환이 발생할 것이다. 선순환은 글로벌 콘텐츠 경쟁에서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초연결’이라는 메가 트렌드에 편승해야 하는 이유다.
# 6.
챌린지 문화는 특정 행위를 하는 사진이나 짧은 영상을 업로드하는 문화이다. 챌린지 문화는 실행하기에 어렵지 않아 주로 자발적으로 진행된다. SNS, 틱톡, 유튜브 등 MZ세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플랫폼에서 OO챌린지 라는 이름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챌린지 문화는 예능프로그램 제작 시 사용되는 프로그램 홍보 전략과 같은 본질을 갖는다. 바로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메가 트렌드인 챌린지 문화를 예능 프로그램 홍보에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챌린지 문화는 홍보의 핵심인 큰 화제성을 보장한다. 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하면 한국인은 여가시간의 69%를 스마트폰에 사용하고, 그 중 SNS 같은 커뮤니케이션 앱 이용시간이 가장 길다. 즉, 사람들은 오프라인 만남보다 온라인 소통을 많이 한다. 만남을 통해 충족하던 사회적 관심과 인정에 대한 욕구를 온라인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 유행 나도 해봤다”라는 인간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챌린지 문화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00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챌린지’가 SNS부터 방송까지 모든 매체에 등장하고, 연예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 근거다.
나아가, 챌린지 문화는 홍보비 절감에 효과적이다. 이것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앱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플랫폼 사용에 돈이 들지 않는다. 나아가, 챌린지 문화의 핵심은 ‘자발성’이다. 다른 홍보처럼 홍보 내용과 장소, 시간을 수정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 없다. 시작만 관리할 뿐 확산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현재 많은 가수들은 최소 비용 최대 효율을 내는 챌린지문화를 활용해 음원을 홍보한다. 실제로 가수 지코는 아무노래 챌린지를 진행하여 큰 화제를 기록하며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적은 투자로 최대 화제성을 낳는 챌린지 문화는 예능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화제성은 방송 시청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능프로그램의 본질은 ‘재미’이다. 웃겨야 본다. 따라서 프로그램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챌린지로 만들어야 한다. 챌린지화 된 이 장면은 엄청난 확산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 될 것이다. 이것을 보고 재미를 느껴 프로그램에 자체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유명 리얼리티 쇼인 <카다시안 따라잡기>는 수많은 시즌 진행되며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하지만 그 쇼에서 유명 연예인이 웃기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챌린지화 되며 큰 화제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화제는 다음 회차의 시청률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 사례 처럼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챌린지를 만들어, 최소 비용 최대 효율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
# 7.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과거 유행했던 나팔바지, 청청패션, 네온 색상의 옷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트렌드 패션’이라 불리며 다시 유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트렌드는 잠시 인기를 얻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화, 흐름이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트렌드가 발현 되고 기존의 것은 인기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반대로 과거의 트렌드를 되살리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성별,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널리 퍼져있는 거대한 추세를 ‘메가 트랜드’라 한다.
복잡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직업과 같이 부분적인 모습을 전체로 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 특기뿐 아니라 인간관계, 성적취향 등 다양한 요소들을 기준으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이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직장과 일상, 평일과 주말,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을 구분하며 다양한 자신을 구축한다. 그만큼 많은 페르소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분리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뜻하는 ‘멀티 페르소나’는 이 시대의 ‘메가 트랜드’이다.
‘워라밸’, 직장생활과 일상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흐름에 따라 취미 생활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취미를 즐기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취미를 발전시켜 수익을 창출하는 ‘하비프리너(hobby-preneur)’를 낳기도 한다. 같은 맥락으로 취미와 직업을 결합시킨 신조어 ‘호큐페이션(hoccupation)’도 발생했다. 취미를 중시하는 경향은 SNS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취미생활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SNS에 게시하는 것인데, 본 계정을 둔 채 취미만을 취급하는 부계정을 만들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정치성향, 성적취향 등 개인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부계정이 많아지는 추세다. 글로벌 웹인덱스에 의하면 인터넷 사용자 중 98%가 SNS를 이용한다. 또한 1인당 평균 7.6개의 계정을 갖는다고 한다. SNS는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 멀티 페르소나를 구현하는 거대한 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현실을 반영한다.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허구의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멀티 페르소나’라는 트렌드이자 특징은 드라마에 현실적으로 녹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본 계정과 부계정에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연예인, 퇴근 후 새로운 자아를 표출하는 회사 막내, 20대 남성의 모습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40대 여성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내세울 수 있다. 또한 부계정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는 모습, 연예인 사진을 지속적으로 SNS에 게시하다가 자신이 실제 애인이라고 믿는 모습, SNS와 현실의 괴리 때문에 자아분열을 겪는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부작용도 다룰 수 있다.
영화계에서도 ‘멀티 페르소나’를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의 CEO이자 억만장자이며 과학자이자 슈퍼 히어로인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멀티 페르소나’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친구인 헐크와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다. 국내 영화로는 ‘조작된 도시’의 여울 역을 맡은 심은경씨가 게임 속에서는 터프한 남성으로, 현실에서는 내성적인 여성으로 분하며 ‘트랜스 아이덴티티’의 모습을 보여줬다. 보다 긴 호흡으로 진행될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멀티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른 부정적 측면, ‘나’를 고민하고 찾고 인정하는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8.
가구형태의 변화, 자본주의의 심화, 정보기술의 진전 등의 사회적 흐름에 발맞추어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더 이상 집단의 문화를 답습하고, 집단 내의 정체성과 역할을 고수하기 보다는 ‘나만의 개성’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했고, ‘결혼-가족-양육’이라는 당연시되던 생애주기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늘었다. 사회가 요구하던 규범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심리학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렇게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라는 메가트렌드에 맞추어 드라마는 독특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 구현에 힘써야 한다. 드라마는 그 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매체이므로, 그 시대의 욕망을 읽어내고, 그에 걸맞는 작품을 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개성적 자아는, 기존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은둔형 인간이거나, 사회 관습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일탈자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자아’ 70-80%에 20-30% 정도의 독창적 개성을 가미한 자아가 그들이 욕망하는 자아이다. 따라서 드라마는 그 시대와 사회에 부합하는 인재상에 비견될 만한 캐릭터와 기존에 보지 못한, 차별성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실패와 <이태원 클라쓰>의 성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와 참신한 소재, 실험적 시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진부한 여성 캐릭터라는 비판을 모면하지 못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 희주는 진우의 주변을 맴돌며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는 무기력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과거 신데렐라 스토리에서의 여주인공과 유사한 캐릭터로, 독특함의 결핍으로 인한 매력적인 캐릭터 구현의 실패이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고지식하고 답답하지만 인정과 정의를 중시하는 인물로,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흔히 보지 못했던 캐릭터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인정’을 중시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바를 뚝심 있게 성취해내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는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회성의 완결된 텍스트인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는 분절적 텍스트의 집합으로, 시청자가 다수의 회차를 모두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그 원동력은 다이나믹한 사건이 주는 긴장감에서 오기도 하지만,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 여러 회차를 시청할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애정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드라마를 향한 애정은 캐릭터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드라마의 등장 이후 ‘~앓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건과 캐릭터는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얽혀있다는 점이다. 인물의 성격은 발화 행위와 실천적 행동으로 발현되고, 사건은 행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이자 행동의 결과이다. 따라서 사건과 캐릭터는 긴밀히 연관된다. 다만 드라마가 보다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캐릭터’라는 것이다. 예컨대 <동백꽃 필 무렵>의 성공 요인은 까불이 잡기라는 긴박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용식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오며, 그 캐릭터는 범죄자 검거라는 중심서사와 상호작용하며 완성된다.
따라서 개성이 중요한 개인주의 시대에 시청자를 매혹시킬 수 있는 캐릭터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일차적으로는 작품의 등장인물 설정으로 형성되지만, 드라마의 형식적 특성으로 구현될 수도 있다. 예컨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라는 독백의 빈번한 활용은 인물의 속마음과 성격을 드러내는 데 보다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인물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중심 사건들 사이에 이러한 독백을 적극 활용한다면, 캐릭터를 더 부각시키고, 시청자와 캐릭터 간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데 일조할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라는 메가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는 드라마 제작의 실천적 행위는, 캐릭터에 관한 실험적 시도로 이어지고, 다양한 드라마 장르와 작품이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9.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대표 쉼터로서 나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의 대명사가 됐다. 탑골공원은 온라인에서도 등장했다. 1세대 아이돌 H.O.T, 젝스키스, S.E.S 핑클에 열광했던 1970~1980년생들은 그때 그 시절의 카메라를 그리워한다. 결혼, 직장, 육아에 지친 그들은 어느 날 유튜브에 올라온 1980년대의 음악 프로그램의 무대 영상에 열광했다. 해당 채널은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불리며 30~40대들을 끌어 모았다. 촌스러워 보이는 과거도 이슈를 입으면 세련된 레트로가 된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뉴트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것을 말한다. 현실의 탑골공원은 그야말로 어르신들만 모이는 공간이 됐지만, ‘온라인 탑골공원’은 30~40대뿐만 아니라 10~20대도 새롭게 유입되는 게 특징이기도 하다. 10~20대에게 하얀 풍선을 든 H.O.T.팬들과 노란 풍선을 든 젝스키스 팬 간의 무대 뒤 치열한 기싸움이나 군문제로‘영구 입국금지’를 당한 유승준의 전성기 시절 무대 등은 확실히 새로운 콘텐츠다. 기성세대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신세대들에게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과거의 신선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뉴트로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과거를 활용한 프로그램은 뺏기기에 불과하고 창의성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능은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포맷도 결코 중요함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다. 아이템은 옛날 것이지만 얼마나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포맷 속에서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공이 결정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신원호 PD만의 방식으로 촌스럽지 않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시청률 40%, 30%를 달성했다는 방송은 남녀노소, 세대 차이를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것을 의미한다. 일요일 오후 6시만 되면 온 가족이 모여 1박 2일을 보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 미스터 트롯과 미스 트롯은 트로트라는 비주류 아이템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시청률 35%를 넘나들며 시니어층과 1020세대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으며 세대 간의 문화 공유를 이뤄냈다. 오랜만에 가족 전체가 티비 앞에 모여 방송을 기다렸다. 트로트에 이어 뉴트로라는 아이템은 과거의 향수에 빠지고 싶은 기성세대와 그때 그 시대가 궁금한 신세대들을 다함께 TV 앞에 모을 수 있을 것이다.
# 10.
현재 한국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업군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매번 반복되는 메디컬 드라마의 의사, 법정 드라마의 변호사, 정치 싸움의 검사, 학교 선생님 등 엘리트가 대부분이다. 반면 노동자,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드라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드라마가 사회 고위층의 ‘그들만의 리그’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한 직업들만 등장해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같은 진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직업군의 인물이 필요하다.
택배 기사는 시의성이 높으면서도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된 직업이다. 집을 나갈 때면 항상 문 앞에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발견한다. 또한 택배 기사와 종종 간단한 문자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언택트 사회의 도래와 전자상거래 산업의 성장을 맞이한 한국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 해 국내 총 택배 물량은 27억9000만개로, 이는 2012년 물량의 2배다. 십년 새에 우리의 택배 이용은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배송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는 그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일상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다루는 문화적 토대가 없어 사회적 논의를 펼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쿠팡의 한 노동자가 과로에 시달려 운명을 달리하고 나서야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소재 반복을 돌파할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주변에 있으면서도 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택배 기사를 드라마의 새로운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선 시청자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다. 가령 한 배송 노동자가 도맡아 운송하는 집들에 대한 옴니버스식 구성의 스토리, 잘못 전달된 택배에서 시작되는 스토리 등 새로운 직업이 나오면 스토리는 그에 맞게 다양해질 수 있다. 예능에서는 최근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태사자 출신 김형준은 쿠팡맨으로서의 일과를 통해 그동안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밤샘 택배 노동이라는 신선한 그림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또한 택배 기사가 나오는 드라마는 배송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화제성 높은 드라마는 사회의 인식을 바꾼다. ABC에서 리메이크되어 미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굿닥터>(2013)는 자폐를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의사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큰 사랑을 받은 이 드라마는 자폐를 비롯한 장애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처럼 배송 노동자들의 모습이 드라마에 나타난다면 그들의 낮은 사회적 처우와 실질적 보호망 마련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언택트 소비문화 시대의 필수 요소이자 우리 사회의 동료 구성원인 택배 기사를 다루는 드라마는 시청자에게는 새로움을, 사각지대에는 빛을 선사하는 문화적 토대가 될 것이다.
# 11.
라디오의 광고 수익은 전체 광고 시장의 3.2%를 차지한다. 이는 잡지 시장보다 0.6%p 뒤지는 수치다. 일부 라디오 회사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와 광고 연계 판매 수익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방송사마저 광고 판매 수익이 줄어 안정적이지 않다. 현행법상 광고 수익을 늘리는 데 제약이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TV의 광고 판매 기준으로 라디오의 광고를 영업해 수익에 제한이 생긴 것. 법제적, 재정적 위기 없이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는 것이 라디오 매체의 존립에 유리하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비자가 직접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생산 활동이나 사업 아이템 등을 재정적으로 돕는 투자법이다. 과거의 품앗이처럼 소비자는 투자금을 지불해 사업을 지원하고, 기업은 펀딩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 수요만큼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기업 차원에서 합리적이고,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질적 보상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는다.
제품 생산 뿐 아니라 작품 제작에도 크라우드 펀딩이 사용된다. 영화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제작된 지 14년 만에 7만 명의 크라우딩 펀딩으로 개봉했다. 응원하는 영화를 직접 보는 대신, 좌석만 예매하는 ‘영혼 보내기’처럼 크라우드 펀딩은 묵인되기 쉬운 진실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은 펀딩을 통해 그들의 가치관을 소비에 투영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소신 있는 소비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효용이 높다.
라디오 산업에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함으로써 프로그램과 청취자 층의 유대가 높아질 수 있다. 소비자는 그들의 취향과 관심에 맞는 제품이나 컨텐츠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함께’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펀딩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면 소비자의 충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자와 소비자 간의 지속적인 소통은 펀딩에 참여한 청취자 집단의 연대감을 높여 고정 청취자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펀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라디오 프로그램을 홍보해 잠재적 청취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취자 후원을 라디오 산업의 자본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소비 트렌드이다. 후원을 통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매커니즘은 기성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아 자칫 반감을 살 우려가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특별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단계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청취자에게 자연스럽게 펀딩 시스템을 알리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메가 트렌드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생산에 대한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라디오의 재도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12.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이 층간소음을 못 이기고 윗집을 찾아갔다. 윗집에는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이 살고있었다.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에게는 친한 후배 마이콜이 있었다. 마이콜은 응답하라 1988 5인방의 고등학교 친구였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계관’에 환호했다. 2012년 마블의 어벤져스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여러 영화를 묶어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는 기획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세계관의 확장’은 스토리텔링에 있어 하나의 핫한 트렌드가 되었다.
주로 영화 산업에서 하나의 세계관 아래 여러 작품을 만드는 것을 해왔지만 이것은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 드라마는 어떤 장르의 방송 프로그램보다도 시청자의 몰입도가 높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곤 한다. 그래서 도깨비 김신과 인간 지은탁은 그 후에 어떻게 됐을지, 동백이와 용식이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성공하는 드라마에 대한 시즌2 제작 요구가 흔한 것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물들이 시리즈를 넘어 엮이는것을 반기는 것도 모두 드라마를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세계관의 정립과 확장이 통할 수 있는 근거이다.
드라마에서의 세계관 확장은 시즌제를 통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다양한 시즌제 드라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긴 내용을 두 시즌 이상으로 나눠방영하는 정도일뿐이다.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시즌1 그 후의 이야기 혹은 그 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도깨비에서 은탁이가 두 번째 생을어떻게 보내는지, 동백이와 용식이가 결혼 후에도 잘 살았는지 혹은 필구가 어떤 야구선수가 되었는지의 이야기 말이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인물들의 세상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믿음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시즌제를 통한 세계관 정립과 확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시즌제 드라마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아스달 연대기는 540억의 제작비를 투자해 이목을 끌었지만 드라마의 흥행에는 대실패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사용하는 언어가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이야기의 전개가복잡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이야기가 시즌제로 이어져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은 물론 시청률 유지도 매우 어려웠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그 호흡이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하고 쉽게 보는 장르이다. 드라마에서도 세계관 정립과 확장이라는 트렌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힘을 빼야 한다. 거창한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마블 영화들이 흥행한 점과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계관 확장 사례를 통해 한국의 시청자들도 ‘세계관’의 존재를 반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부터 거창한 세계관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인기작에서부터 세계관 확장을 시도한다면 실패의 확률이 줄어들 것이다.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세계관 정립과확장이라는 메가 트렌드의 정착에 성공한다면 한국 드라마계의 MCU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 13.
소유가 아니라 경험의 시대다. 신문과 잡지에만 적용되던 ‘구독’의 방식이 서비스 산업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넷플릭스, 멜론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생필품 정기 배송, 자동차나 예술작품 대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의 편의와 기업의 이익 안정성을 높이는 구독 경제는 메가트렌드다. 그리고 구독경제의 트렌드에서 생겨난 특별한 정체성이 있다. 팬이나 마니아만큼 헌신적 존재는 아니지만 일반 소비자와는 구별되는 ‘구독자’라는 정체성이다. 마트에서 그때 그때 다른 물건을 구매하던 소비자나 TV 앞에 앉아 제공되는 콘텐츠를 보던 시청자와 달리, 구독자는 지속적인 소비를 약속하고 서비스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구독을 활용한 대표적 플랫폼 유튜브에서의 구독은 ‘또 시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용자는 ‘구독 누르기’ 를 통해 구독자가 되고, 유튜버는 구독자를 타깃으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에 비해 TV 예능은 ‘구독성’이 약하다. 시청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그 프로그램의 정기적 소비자라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구독성이라 할 때, 약속된 시간에 전파를 통해 흘려보내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구독성을 획득할 수 없다. 회차별 내용의 연결성이 약한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에 비해서도 유난히 구독성이 떨어진다. 콘텐츠의 질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중의 구독자 정체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구독’을 요청하고, 시청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선점해야 한다.
덜 보편적인 예능이 구독자정체성을 쉽게 부여한다. 모든 시청자를 ‘구독자’로 만들 수는 없다. 지나가는 시청자 중 일부를 스스로 구독자로 인식하게 하려면, 예능의 소재를 세분화해 장르성을 강화하거나 프로그램의 타깃 연령층을 좁힐 필요가 있다. 모두를 공략하기보다 특정 소수를 공략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전체를 포섭한다. 예능에서 고전하던 TV조선의 한방, <미스트롯>의 트로트라는 소재를 보아도 그렇다. 비주류 문화였던 트로트는 대세로 떠올랐다. 송가인은 중장년의 지지를 발판으로 대중문화 전체에서 손에 꼽는 핫한 인물이 되었다.
또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구독자 정체성을 강화하는 행위를 유도해야 한다. 구독을 선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시청자의 사연을 받거나 그들을 출연시키는 방식도 좋지만, 구독자와 비구독자를 구분하게 하는 것이면 더 좋을 것이다. <유퀴즈 온더 블록>에서 유재석이 길에서 만난 시청자에게 “자기님이셨네”라고 반가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프로듀스101>이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 칭하며 투표를 유도한 것, 그로 인해 시청자들이 서로의 ‘원픽’을 물으며 구독자 정체성을 강화한 것도 프로그램의 흥행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 14.
한국에서 누군가의 팬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 땅엔 누군가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2020년 메가트렌드로 유독 ‘팬슈머’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팬’은 많고, 누구나 팬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필부터 방탄소년단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팬은 있고, 운동선수, 연예인부터 게이머, 유튜버, 인플루엔서까지 팬을 만들 수 있는 영역도 많다. 상품, 브랜드의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팬슈머(fan+consumer)는 단순한 응원뿐만 아니라 그 브랜드의 가치 창출에 참여하며 그 결과를 눈으로 마주할 때 더 큰 사랑을 보낸다. 예능 프로그램의 팬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그 의견이 반영된 방송을 볼 때 시청자들은 더 큰 애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팬슈머는 프로그램 홍보와 부가적인 수익 창출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유튜브 플랫폼이 발달하여 방송사들도 채널을 만들고 있다. MBC entertainment 채널에서는 해외에만 무한도전 다시보기를 무료로 제공하다가 한국 팬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한국에도 인기 회차 무료 다시보기를 천천히 제공 중이다. 이렇게 ‘단종된’ 상품을 다시 판매하게 하는 것도 팬슈머의 힘 중 하나다. 시청자 게시판 등으로 팬들의 반응에 따라 유튜브 무료 다시보기와 같은 혜택을 준다면 부가적으로 유튜브 수익 뿐만 아니라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신서유기> 시리즈와 같이 예능 굿즈를 만드는데도 쓰일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의 방식으로 굿즈 제작을 하면 홍보효과와 더불어 부가적인 수익창출도 가능하다.
팬슈머가 직접적인 예능 컨텐츠로 사용되면 시청자들의 본방사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게임 산업에서는 이미 팬슈머 개념이 쓰이고 있다. 시청자들의 실시간 투표로 게임방송 스트리머의 게임 진행 상황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 스토리가 달라지는 게임들이 있다. 이에 착안하여 예능 방송 녹화 시 인스타그램 라이브와 같은 SNS 투표시스템으로 사소하게는 출연자들의 행위부터 심지어 그 날 녹화의 소재까지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투표에 참여한 팬들은 ‘본방사수’를 해서 그 결과를 직접 보고 싶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수요조사를 한 뒤 방송을 기획한다는 장점도 있다. 과거에 비슷하게 예능에서 이용된 방식은 실시간 투표방식이다. <슈퍼스타 K>, 논란은 있지만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되었던 <프로듀스 101>의 경우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라는 멘트로 여러 팬슈머들이 자신의 소녀를 위해 ‘본방사수’하게 만들었다.
팬슈머 자체를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도 있다. 시청자들이 무명 개그맨, 배우, 가수 한 명을 프로젝트성으로 ‘키우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모두 그의 팬이 되고 무대나 쇼, 스케줄, 행사 아이디어를 내는 등 기획자와 시청자들은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기획자와 시청자들이 ooo키우기에 ‘펀딩’하는 것이다. 팬이 늘어나는 것, 재능적으로 발전하는 것, 무대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비로소 보람을 느끼고 더 큰 애정을 가질 수 있다. 최근 <슈가맨>의 여파로 양준일 신드롬이 불었다. 팬들의 힘으로 팬카페가 생겼고 팬미팅을 열었다. 팬미팅에서 팬들은 예전처럼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양준일의 눈물을 보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팬들의 감정은 더 애틋해졌다. 팬을 넘어 팬슈머가 되는 순간, 응원의 감정은 선순환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 15.
Mnet <슈퍼스타 K>의 선풍적인 인기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음악 방송 무대를 위주로 보여주던 기존의 음악 예능의 정의를 뒤바꾸며 음악 예능의 새로운 판도를 열었다. 이후 지상파와 종편을 넘나들며 <케이팝 스타>, <더 보이스 코리아>, <위대한 탄생>, <프로듀스 101>, <미스 트롯> 둥 수많은 아류작을 남기며 이른바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반복적이고 식상한 포맷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악 예능들은 연일 뜨거운 화제와 시청률을 기록하며 끊임 없는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 하는 것인가?
시청자들이 TV를 시청하며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 날의 시청자들은 정보를 전달 받는 것을 넘어 직접 프로그램의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변모하였다. 이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의 소비 패러다임이 단순한 소비와 경험을 넘어 관여로 이어지는 추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Fan”과 ”Consumer”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이른바 ‘팬슈머’ 라는 단어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서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단순히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컨텐츠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위 자체에서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지지와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프로그램 자체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작게는 시청자 게시판에 출연자 혹은 특정 장면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거나, 크게는 내가 뽑은 연습생이 현실에서 데뷔하는 등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관여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팬슈머라는 하나의 트렌드의 관점에서 본다면, 앞서 소개한 음악 예능들의 성공은 단순히 일시적이고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닐 것이다.
Mnet의 <프로듀스 101>는 팬슈머라는 트렌드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연습생의 데뷔가 나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인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선택이 프로그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묘한 카타르시즘을 선사하였다. 내가 원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직접 프로듀싱하고 키워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청자들은 기꺼이 주변인들에게 원하는 연습생의 문자투표 참여를 부탁하거나 심지어는 사비를 들여 판촉 행사를 진행하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관여를 바탕으로 <프로듀스 101>를 통해 이름을 알린 연습생들은 연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고, 매 회마다 4%의 시청률을 맴돌며 종편 예능 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를 보여주었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 또한 인터넷 실시간 방송 플랫폼을 이용하여 출연자들과 실시간 시청자들 간의 원활한 관여와 수용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이뤄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관여가 큰 만큼, 그들에 의해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이나 취지가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MBC의 <무한도전>이 가장 대표적이다. MBC의 간판 예능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자 게시판의 여러 비판을 받아들여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센스있게 노래 가사를 개사하여 사과를 하는 등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적극 받아들여왔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모든 시청자들의 의견에 맞추려 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재미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프로그램의 초반과 비교해 볼 때, 위축되 보이는 멤버들과 지나친 특정 멤버의 우상화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반감시켰고, 이는 곧바로 시청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팬슈머라는 양날의 검을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관여가 즐거움을 주되 프로그램의 본 성질을 바꿀 수는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뒷 이야기가 달라지는 JTBC의 <나 홀로 연애중>과 같이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시청자들의 선택에 따라 출연자의 행보가 결정되거나 혹은 시청자들이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출연자들이 게임에서 사용할 아이템을 직접 정하게 하는 등의 방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기존의 이미지를 변화하고 싶어하는 연예인들이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 새로운 컨셉에 도전하거나 응원봉 혹은 씨디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등 팬슈머라는 트렌드가 잘 이용된다면 오늘 날의 획일화 된 예능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도 있을지도 모른다.
시청자들의 소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격 또한 자연스럽게 변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지나친 관여는 프로그램에 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프로듀서로서 이러한 관여를 적절하게 수용할 때에 비로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시청자 참여형 예능 프로그램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 16.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만큼 수많은 가면을 쓰는 세상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거짓된 나를 꾸며내는 상황에 놓이고, ‘페르소나(persona)’라는 이상적인 가면 뒤에 존재한다. 그간 페르소나는 진정한 자아를 억압하는 필요악으로 여겨졌고, 가면을 벗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건강한 삶의 회복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페르소나를 도리어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두 개로는 모자라 수많은 상황에 맞춤형 가면을 쓰는 ‘멀티 페르소나’의 개념이 등장했다.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또 다른 나’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대인에게 긍정적인 선택의 과정이다. 현실과 온라인, 직장과 일상이라는 대립항 속에서 자아를 양분하던 것에서 개별 SNS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트위터에서는 급진적인 정치가로, 인스타그램에서는 파격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블로그에서는 특정 분야의 리뷰 전문가로 활동한다. 미국의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은 한 개인이 하루에도 전혀 다른 여러 명의 인물 행동 양식을 취한다고 분석하여, 세분화된 ‘개인 속 개인’을 타겟팅한다. 멀티 페르소나는 실체 있는 개념이다.
멀티 페르소나는 그간 미디어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여겨지던 ‘다중 인격’과는 다른 개념이다. 배우 지성의 코믹한 다중인격 연기로 사랑받았던 드라마 <킬미힐미>는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7개의 서로 다른 인격을 오고 가는 정신장애를 갖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그가 정신과 의사인 여자 주인공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갈래의 자아’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멀티 페르소나 개념은 자의적으로, 유연하게, 선택한다는 의미가 담긴 긍정적인 개념이다.
한 인물이 전혀 다른 성격 특성을 소화하는, 흡사 ‘원맨쇼’ 같은 멀티 페르소나의 이야기를 다뤄볼 여지가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맥락에 따라 모드(mode) 전환이 다소 극적인 인물 설정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도 해소할 수 있다. <킬미힐미>가 흥행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배우 지성이 실제로 다른 인격을 입은 것처럼 소화한 완벽한 연기였다. 7개 인격이 마치 다른 인물인 것처럼 각자 팬덤이 생길 정도였다. 각각의 페르소나가 맺는 전혀 다른 인간관계를 통해 서사를 전개하고, 서로 다른 가면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며 재미 요소도 끌어낼 수 있다.
정체성의 다원화를 다룰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의 재미만이 아니라 이 현상의 당사자가 시청자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동일시, 몰입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회차별로 ‘오늘 가장 나와 같았던 인물은?’과 같은 질문을 통해 시청자끼리 토론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형식적인 장치를 배치할 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남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매회 팬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현실 속 메가 트렌드를 가져와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증폭기의 역할을 드라마가 할 수 있을 것이다.
# 17.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노인 인구 증가율을 보이며 급속하게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고령화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노인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21.1%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에 해당한다. 또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활동적 노년 지수는 OECD 국가 평균 이하이며 세대 간 혹은 세대 안에서의 사회적 연대와 결속을 의미하는 통합력 지수는 최하위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노화에 따른 건강, 경제적 능력, 대인관계의 ‘상실’이라는 사회심리학적 요인에 있다. 노인들이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뜻이다. 고령화의 물결에 따라, 노년층에게 활동적인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년층에게 여가생활은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데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이다. 여가를 통해 ‘상실’을 극복하고 정서적 회복을 이뤄내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들을 출연진으로 구성한 일상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 은퇴한 직장인, 공무원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해온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스포츠, 악기, 등산, 동호회 활동 등 이들의 소소한 여가생활을 조명한다. tvN의 <꽃보다 할배>와 달리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의 여가를 다루어 노인들의 삶에 현실적인 탄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층이 삶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찾아 스스로 삶의 질을 고양하려는 가치관을 가지는 데 영향을 줄 것이다. 또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이들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노년층의 색다른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노년층과 10대, 20대와의 관계를 조명하는 심리 상담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있다. 고민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노년층이 솔루션으로서 다가가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사소한 고민부터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고민까지 그들에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털어놓는다. 젊은 층은 사회적 경험이 많은 노년층에게 우정, 연애, 진로, 진학, 취업 등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받는다. 특히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직업적 경험은 실질적인 위로가 될 것이다. 젊은 세대와의 교류와 연대를 통해 노년층 역시 ‘대인관계’의 결여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과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층 콘텐츠의 핵심은 대중들이 출연진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이자 부모님이고 또 형제자매, 친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선 노년층 남성과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사회인으로서의 각기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요구된다. 시청자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들의 삶에 대입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에서 배제돼 많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18.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만65-75세 노인들을 욜드(young+old)로 지칭하고, 이들의 선택이 향후 시장의 트렌드를 뒤흔들 것이라 밝혔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은퇴 후 자신의 삶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중년층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국내의 영향력 있는 욜드족을 5060대로 설정하고, 이들을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fe)세대라고 명명했다. 이 구매력이 막강한 오팔세대는 ‘송가인 열풍’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또래 유튜버 '도티’의 굿즈가 10,000원 내외의 문구류에 국한될 때, 송가인의 굿즈는 7-8만원 대의 유기 양주잔, 수저세트 등이다. 유튜브가 발표한 2019년 인기동영상 1위는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의 장윤정 '목포행 완행열차’ 클립이다. 그 조회수의 공신이 ‘오팔세대’임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뒷방 늙은이 신세는 이제 완전히 옛말이 된 것이다.
이젠 ‘오팔세대’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를 제작해야 할 때다. 이제껏 중노년층을 겨냥한 TV 드라마는 거의 전무했다. 예능판에서 그나마 <내일은 미스트롯>이 있고 요근래 MBN에서 주부를 타깃으로 한 <보이스퀸>를 방영하고 있다. 중노년층 타깃 드라마는 tvN <디어마이프렌즈>처럼 무거운 톤의 감동 위주의 드라마로 가족시청층을 공략하거나, 비슷한 설정과 사건이 반복되는 막장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에 국한되었다. 그마저도 중노년층을 도구적인 캐릭터로 소비하는 데에 급급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아버지라는 고정된 이미지에 국한되어 있던 중노년층을 이젠 새롭게 표현할 때다. 한국사회에서의 오팔세대는 자식의 독립시키고, 회사를 은퇴했다. 이제 그들은 누군가의 엄마, 회사의 김부장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드라마는 그런 리얼한 오팔세대를 타깃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 ‘오팔세대’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중노년층을 주인공으로 설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오팔세대를 만족시키는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기식 주인공이 아닌, 진짜 오팔세대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 공략해야 그들을 유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오팔세대를 겨냥한 드라마는 세대통합의 지평을 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팔세대가 트렌드를 선도하고, 젊은 세대가 그 트렌드를 서포트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오팔세대의 구매력이 막강하다 하더라도, 콘텐츠산업에선 예전히 2049 시청층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SNS를 통한 사회적 파급력을 지닌 2049 시청층을 공략해야 드라마는 화제가 된다. 그리고 화제성은 드라마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다. <내일은 미스트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첫 시작은 오팔세대였지만, 결국 ‘송가인'은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는데 성공했기에 지금의 위상을 얻었다. MBC <놀면뭐하니>의 ‘뽕포유’도 마찬가지다. 박토벤, 정차르트와 같은 오리지널 오팔세대 캐릭터가 프로그램의 센터에서 존재감을 있는 그대로 내뿜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팔세대는 물론 젊은층의 마음까지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을 통한 세대통합이 이뤄졌다.
구체적인 오팔세대 중심 드라마의 기획 컨셉은 ‘레트로’이자 ‘뉴트로’이다. 레트로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과거의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것을 새롭게 즐기는 것이다. 레트로의 방식으로 중노년층을 공략하고, 뉴트로의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기획하여 두 세대 모두를 사로잡아야 한다. 레트로의 메인 감성인 ‘향수’는 드라마에서는 보증된 흥행수표와 같은 장치다. <내일은 미스트롯>의 성공요인은 ‘적절한 블렌딩’에 있다. 이미 젊은층에게서 효과를 본 ‘오디션 포맷’을 ‘트로트’라는 오팔세대를 위한 장르에 적용한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토토가> 등을 통해 증명된 향수를 자극하는 ‘뉴트로’라는 보증수표를 오팔세대의 드라마에 활용한다면, 오팔세대는 물론 전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70>와 같이 가벼운 코미디 형식 혹은 <85학번 김아무개>와 같은 진지한 방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향수’를 통해 오팔세대를 부양할 가족도 책임질 직업(일)도 없던, 오로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로 보내주는 것이다. 동시에, 중노년층의 향수는 젊은 세대에게 ‘시집 한 권씩은 들고다니던 아날로그 감성’의 신선함을 선사하고, 미처 몰랐던 부모님과 할아버지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19.
21세기 미디어 산업을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는 융합이다. 제작과 유통의 융합. 게임과 영화의 융합, 영화와 역사의 융합 등 구조부터 장르까지 수많은 융합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 이상 하나의 가치만을 내세우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 다른 것의 강점을 흡수하여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방황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드라마와 가장 쉽게 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예능이다. 우리는 예능과 드라마가 융합된 것을 시추에이션 코믹 드라마, 즉 시트콤이라고 부른다. ‘순풍산부인과’, ‘하이킥 시리즈’등은 시트콤 장르로 성공한 작품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능과 드라마의 융합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능과 드라마의 융합은 조금 걱정스럽다. 과거의 시트콤과 비슷한 결인 현재의 예능드라마들은 크게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너의 등짝에 스매싱‘은 국내 시트콤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병욱 PD의 신작임에도 0.4%의 시청률에 머물렀다. 화제성이 높았던 JTBC의 <으라차차 와이키키>도 겨우 2%의 시청률에 그쳤다. 예능과 드라마의 융합이 과거부터 있었고, 현재의 시트콤들은 과거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예능과 드라마의 융합으로 인한 시너지가 고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2019년 1월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킹덤>과 같은 해 2월 OCN에서 방영된 <트랩>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두 드라마는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전체적인 형식과 분량은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화려한 연출기법과 화면들이 있고 두 장르의 제작진이 함께 제작했다. 이는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 다매체 다채널환경에서 시청자들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눈이 높아졌다. 잘 만든 드라마,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면 보지 않는다. 오직 드라마의 재미, 완성도만이 차별점이 될 수 있다. 드라마틱 시네마는 영화와 드라마의 ‘융합’으로 화려한 연출과 풍부한 스토리를 동시에 잡았다. 이러한 밀도 높은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높은 눈을 충족시킬 수 있다.
드라마와 영화의 융합은 시대적 흐름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가 혼재된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또한 해외 시장의 작품들도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선 콘텐츠의 완성도가 담보돼야 한다. 영화의 장점을 뽑아낸 드라마를 제작해야만 하는 이유다.
# 20.
OPAL. 58. 마치 무슨 외계어 같은 이 신조어의 트렌드는 바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오팔 세대라는 트렌드다. ‘오팔 세대(OPAL 세대)’는 ‘올드 피플 위드 액티브 라이프(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나이는 많지만, 경제력을 갖고 활기차게 사는 고령층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5060세대’를 가리키면서 베이비붐 세대를 대표하는 ‘1958년생’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은 과거 노인이라고만 불리는 시니어 세대와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용어와 트렌드까지 생겨났다.
이들은 기존 시니어들처럼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을 중심으로 노후를 보내지 않는다. 컴퓨터 등 IT 기기에도 친숙해 이를 바탕으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을 즐기며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는 은퇴 이후에도 능동적으로 하고픈 일을 찾아 도전하는 장년층을 칭한다. 노년층을 지칭하는 실버세대와 액티브 시니어의 구분 점은 ‘소비’다. 액티브 시니어는 외모나 건강관리 등에 관심이 많고 자신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덕분에 기업들도 이들을 잡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다.
5.9, 8.4, 12.9, 18.1 / 12.5, 17.7, 17.9 이 숫자들은 무엇일까? 바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이다. 드라마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넘기기 어려운 요즘, 이와 같은 수치들은 우리 사회 오팔 세대들의 저력을 증명한다. 이외에도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부터 100만 유튜버 박막례 씨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오팔 세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20~30대의 젊은 층에도 미친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와 유튜브의 구독자들은 시니어 층도 있지만 대개 20~30대 젊은 층이 많다. 그 이유는 오팔 세대처럼 자신들도 멋있게 늙고 싶다는 점이다. 이처럼 오팔 세대는 이제 예능과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통통 튀는 오팔 세대를 잡기 위한 예능의 주안점은 무엇일까? 바로 오팔 세대와의 공감이다. 오팔 세대는 단순히 건강 정보의 프로그램만을 원하지 않는다. 마음만은 청춘이며, 여유로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삶에 얽매여 잘 누리지 못했던 그런 욕망을 풀고 싶다. 예를 들어, 오팔 세대를 위한 패션이나 코디, 액티브 활동, 예술 활동 등이 될 수 있다. 오팔 세대는 아직 100세 시대 전체를 보았을 때, 젊은 세대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능동적 참여와 흥미를 불러일으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그런 선취력(선한영향력)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그들은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세대다.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의 성공이 단순히 트로트라는 소재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최근 미스터트롯은 출연진의 연령이 다양해진 것에 따라 시청자들의 연령 또한 넓어졌다. 즉,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예능에 있어서 오팔 세대라는 트렌드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20~30세대 역시 미래의 오팔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오팔 세대는 매력적인 트렌드이며, 그들은 방송국의 입장에서도 주된 타깃층으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맞춘 편향된 시각을 제공한 프로그램은 버림받을 것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미스트롯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기 위해서는 타깃 연령층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연출의 변화를 가져오며 긍정적 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21.
Z세대의 시대가 왔다. ‘디지털 원주민 세대’라고도 불리는 Z세대는 1995년 이후 태어난 출생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약 20억명에 다다랐으며 이미 미국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내에선 과자나 음료수의 이름 끝에 복수형인 ‘s’ 대신 ‘z’를 쓰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Z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할 거대 소비집단으로 주목받으며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Z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각종 마케팅 전략을 내놓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방송사들은 Z세대의 이목을 끌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하기 위해 숙제를 떠안았다. 다른 어떠한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생명이다.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으면 광고의 수입이 없으며 이는 프로그램의 존폐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WGSN리포트에 따르면 Z세대는 ‘8초 순간 집중력’이 뛰어나다. 이전 세대들에 비해 집중시간이 길지 않다. 이들의 집중력을 끌기 위해서 프로그램의 호흡을 짧게 해야 하는이유다SBS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방송하던 <미운 우리 새끼>를 40분씩 3부로 나누어 방송하였고 최근엔 <스토브리그>도 3부작 편성을 실행하였다. 이러한 방송편성의 변화는 시청자들의 세대가 바뀌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Z세대는 편견이 없는 세대이다. 그들은 평등을 중시한다. Z세대의 73%는 동성애 결혼을 찬성하고 74%는 트렌스젠더 평등권을 찬성한다. 편견 없는 시청자들은 편견 없는 방송에 매력을 느낀다. 예능 프로그램은 동성애, 인종, 트렌스젠더 등 민감한 소재를 웃음거리로 사용하다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곤 한다. ‘편견 없는 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의 당연한 과제로 주어졌다.
혹자는 Z세대들이 티비보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영상 플랫폼’을 더욱 자주 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결국 그들이 자주 보는 플랫폼에서 ‘짤’이나 ‘캡쳐본’으로 유행을 탄다. EBS에서 방영한 ‘EBS 아육대’에 출연한 ‘펭수’가 우리나라에 뜨거운 열풍을 일으킨 것도 소셜 미디어에서 돌아다니던 ‘캡쳐본’에 의한 것이었다. EBS 프로그램을 보는 20대 성인남녀는 극히 드물었다. 결국은 ‘컨텐츠’이다. 방송의 호흡을 짧게 하고 편견 없는 방송을 만들기에 앞서 예능 프로그램은 그들을 사로잡을 ‘컨텐츠’를 고안해내야하는 것이다. ‘컨텐츠’가 좋으면 그들은 TV 앞으로 가 본방사수를 한다.
단순히 소재나 출연진, 컨셉으로 인기를 끌던 예능 프로그램의 시기는 갔다. 광고에 누가 나왔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Z세대는 ‘나 같은 사람’을 원한다고 답했다. 꾸밈없는 광고와 제품을 원한다는 뜻이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식 없는 컨텐츠’를 고안해내야한다. ‘진솔함’이 프로그램에서 비추어질 때, 그들은 TV 앞에 앉는다. 그 후 그들의 미디어 이용패턴과 인식에 맞는 변화가 따라와야 한다. 이것이 세대교체라는 메가 트렌드 속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 22.
드라마도 상품이다.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드라마 제작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김난도의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초개인화 기술’이 앞으로의 트렌드로 제시되었다. 고객의 니즈를 정교하게 예측해 더 구체적으로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 검색에 맞춰서 팝업 광고가 뜨는 것처럼, 소비자 맞춤형 시대는 앞으로도 확대될 것이다. 드라마 업계에서도 ‘초개인화 기술’의 흐름 속 소비자 맞춤형 드라마 제작이 필요하게 되었다.
드라마의 인물 설정은 중요하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청자를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요인이며, 흥행 여부에 핵심이 된다. 드라마 업계는 어떠한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지 분석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청자 맞춤형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마치 게임 캐릭터를 창조하듯 시청자가 드라마에 등장하길 기대하는 맞춤형 캐릭터를 스토리 틀을 짜기 전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청자는 원하는 캐릭터를 드라마에서 볼 수 있고, 제작자도 인물 설정에 투자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저 배우를 캐스팅했지?’라는 의문이 든 적 있을 것이다. <스토브리그>의 아나운서 역할을 맡은 ‘박소진’을 보면서 왜 아나운서 역할을 맡겼는지 의문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해당 캐릭터와 맞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중요하다. 맞춤형 콘텐츠 시장 속에서 드라마 제작자는 캐릭터 이미지에 맞는 배우를 선정하는 데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어떠한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으면 하는 지에 대해 투표를 진행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는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여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청자가 원하는 드라마의 결말을 제각각 다르다. 남편의 바람을 소재로 한 <VIP>는 남편의 성장이라는, 다소 심심한 결말로 시청자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만약 결말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시청자는 현재의 결말 대신 아내가 남편에게 시원한 복수를 하는 결말을 선택했을 수 있다. 빅데이터는 시청자가 어떠한 결말을 원하는 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결말의 취향을 세분화할 수 있고, 드라마 제작자는 이에 맞추어 시청자에게 결말의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는 소비자다. 자신이 가진 것을 투자, 혹은 희생해서 드라마를 시청한다. 드라마 제작자는 그들의 투자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는 소비자 맞춤형 드라마가 될 것이다. 단순히 깔아놓은 판에 시청자가 참여하도록 만드는 드라마 제작자가 아닌, 시청자의 니즈를 정교하게 충족시키는 드라마 제작자가 되어야 한다. 시청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100%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드라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자로서 ‘초개인화 드라마’를 구현해 시청자이자 소비자에게 ‘당신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를 어필 할 수 있어야 한다.
# 23.
“이제 ‘나 자신’을 뜻하는 ‘myself’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 즉 ‘myselves’가 되어야 맞다.” <2020 트렌드 코리아>는 myself의 수정 가능성을 제기한다. 직장에서의 나,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연인과 있을 때의 나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나. 우리는 MBC 드라마 킬미힐미의 지성처럼 다양한 자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와 다른 점은 현실에선 그 모든 모습의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의 다중성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앞뒤가 다르거나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서로의 다중성을 비난하고, 스스로의 다중성을 숨긴다. 이러한 풍조의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BTS의 메세지는 티핑 포인트가 되었다. 국경을 넘는 BTS의 인기에 힘입어 다중성을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시시때때로 가면을 바꿔 쓰는 현대인의 ‘멀티 페르소나’가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방송국도 이제 ‘멀티 페르소나’의 성격을 띤다. 수많은 채널과 뉴미디어까지 합세한 가빠른 호흡의 경쟁체제 속에서, 근원 플랫폼에서만 사용되던 콘텐츠의 제한을 반자발적으로 풀게 된 것이다. 정통 뉴스, 예능, 드라마, 라디오 등을 고수하던 지상파도 앞다투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자회사를 설립해 재편집된 콘텐츠나 웹예능을 제작한다. 방송국 간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EBS의 펭수는 유튜브와 방송국 경계를 넘어 섭외 1순위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사에선 KBS를 KBS라 부르지 못하고 MBC를 MBC라 부르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넘기 힘든 벽으로 보였던 방송국의 배타적인 독과점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진 것이다.
예능은 이러한 방송국의 ‘멀티 페르소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이다. 예능에선 출연자들의 캐릭터, 즉 출연자들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주축이 된다. 캐릭터의 중요성은 드라마나 라디오에서도 적용된다. 하지만 캐릭터의 파급력과 즉흥성 또 상황에 맞춰 변화가 가능한 유동성을 고려했을 때, 예능에서의 캐릭터는 그 어떤 장르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방송국의 ‘멀티 페르소나’는 캐릭터를 이용한 프로그램, 매체 간의 유기적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의 원천 소스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원소스 원유즈가 원칙처럼 자리 잡던 과거엔 정준하의 바보 캐릭터가 <스타 골든벨>과 <거침없이 하이킥>, <무한도전> 간의 연계성을 이끌었다기 보다는, 정준하 개인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대에서 유산슬이라는 유재석의 페르소나는 <놀면 뭐하니?>를 기반으로 <아침마당>, <영재발굴단> 등에 출연하며 지상파의 대통합을 이끌었다.
예능 캐릭터의 범프로그램적 활용은 자칫 잘못하면 ‘효율만 쫓는다’라던가, ‘자가복제다’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100퍼센트 다른 걸 찾기 힘든 시장에서, 잘 쌓아 올린 예능 캐릭터의 전방위적 활용은 ‘멀티 페르소나’ 방송국의 흐름에 잘 편승한 것이다. 프로그램과 매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캐릭터의 본질에 더욱 집중했을 때, 심화와 변주는 충분히 가능하다.
# 24.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주세요!‘ 이 문장은 이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되어버렸다.’구독‘이라는 시장이 새롭게 열렸다. ’구독‘이라는 단어는 과거 신문이나 잡지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영역으로 넘어와 실체가 없는 것을 우리는 구독하는 세상이 되었다. ’구독 경제‘의 시대가 등장한 거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드라마도 디지털 구독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디지털 구독 경제는 TV드라마의 권위를 위협한다. 그러나 ’적을 대면하지도 않고서는 정복할 수 없다‘라는 말 있듯, TV 드라마도 이러한 구독 경제라는 적을 이용하여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TV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를 다시보기 형식으로 구독자를 계속 유지하고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대 사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차별성을 두고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하여 구독자들만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즉, 구독자를 ‘특별한 그룹’의 사람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그룹화 한다. 특별한 그룹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넷플릭스는 구독자를 점차 늘리고 있다.
TV도 이러한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현대 사람들은 일정 금액을 내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거라면 기꺼이 소비한다. TV드라마 제작자들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TV에서 방영되는 이외의 영상을 제작한다. 영화에 프리퀄이나 스핀오프가 있듯, 인기 드라마도 그런 방식으로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어벤져스의 스핀오프로 ‘에이전트 오브 쉴드’라는 드라마를 송출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적용하자면,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공유), 저승사자(이동욱), 써니(유인나)의 전생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다. 한국TV드라마의 경우에는 아직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사례가 없다. 그러나 구독 시장 경쟁은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그러니 하루 빨리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다양한 드라마 콘텐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TV드라마는 많은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TV는 전국민이 접근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공영방송의 경우에는 공익을 추구해야하며 언어, 소재 등의 측면에서 많은 제약이 있다. 또한 송출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그래서 드라마가 송출되기 전 연출자는 항상 압박감과 불안감, 책임감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다. 반면에 구독 경제의 시장은 웹상에 형성되어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하다. 제작자는 추구하는 기획과 연출을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송출하는 과정의 복잡성이 덜한 결과 제작자는 압박감과 불안감을 조금 덜고 드라마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구독 시장의 특성을 이용해 TV드라마는 TV방영 전 다양한 소재들을 이용한 드라마들을 구독 서비스에 올려 시청자들의 반응 살핀다. 이를 토대로 TV드라마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소재들을 파악할 수 있다. 즉, 트렌드를 이용해 트렌드를 읽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말처럼 TV드라마는 ‘구독경제’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구독 경제의 부상은 TV드라마의 또 다른 부상의 기회이다. 구독 경제의 특성을 충분히 알고 이를 제작에 활용한다면 TV드라마를 이길 적수는 없다.
# 25.
오는 4월부터 미국에서는 ‘퀴비’라는 ‘10분 영상’ 플랫폼 서비스가 선보여진다고 한다. 이는 숏폼(Short-form) 영상이 콘텐츠의 주류가 되었음을 암시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스테픈 커리 등 굵직굵직한 스타들이 합류한 할리우드 제작자와 실리콘밸리 거물의 합작이다. 이제는 텔레비전보다 모바일을 통하여 영상을 접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점점 긴 호흡의 영상보다는 짧은 유투브 ‘클립’을 친숙하게 여기는 시대가 도래 하였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플랫폼 ‘틱톡’은 무려 15초짜리 영상으로 자기가 말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여 올리는 포맷을 갖춰 영상 콘텐츠의 길이가 유투브 호흡보다도 훨씬 짧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점점 1시간 내외의 분량의 TV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숏폼’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다양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드라마나 예능 ‘클립’들은 기존의 목표인 홍보 효과는 미미하고 ‘클립’ 그 자체만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서 목표의 주객전도가 된지 오래다. 이에 따라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의 대다수가 방영된 후 웃기고 자극적인 부분만 모아 재편집되어 ‘엑기스 영상’으로 짧게 소비되는 경우가 보편화되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동안 텔레비전 콘텐츠들은 긴 호흡을 고집해야 할 타당성과 필요성을 잃어간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은 나영석 피디는 최근 그의 노른자 시간대 금요일 밤에 ‘금요일 금요일 밤에’라는 ‘숏폼 옴니버스 예능’을 런칭 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체험 삶의 공장’, ‘신기한 과학나라’ 등 10분짜리 프로그램 6개가 관통되는 공통 주제 하나 없이 이어지는 포맷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긴 호흡의 프로그램마저 10분 내의 영상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소비 형태를 역이용한 모습을 보였지만, 첫 회 시청률이 3프로가 넘지 않아 기존 나PD의 영상에 비해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나영석 사단의 실험 결과의 부진을 해소할 방법은 바로 ‘세계관’이다.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마블과 방탄소년단의 공통점은 바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콘텐츠들을 접한 뒤 모두 모아 개인이 ‘떡밥’들을 퍼즐 맞추듯 연구하여 직접 가상의 세계관을 그리도록 하는 방법은 소비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소비를 넘어 또 콘텐츠 해석 영상 등과 같은 다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드라마에는 픽션 스토리라인이 있다면 예능에는 컨셉이 있다. 이렇게 제작진 입장에서 미리 장치해둘 수 있는 창작 요소들을 활용하면 우리는 여러 개의 짧은 영상들에 관통하는 서사나 메시지를 넣어 하나의 세계관을 그릴 수 있다. 그렇다면 긴 호흡을 좋아하는 텔레비전 시청자들이나 열렬한 매니아층은 세계관이 관통하는 서사 순서대로 길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본 콘텐츠 제작 형태는 모두 10분 내의 숏폼으로 이루어지기에 모바일 시청자들의 취향마저도 추가적인 노력 없이 맞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은 예능과 드라마의 선을 넘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VR과 같은 다양한 유비쿼터스 콘텐츠 매체들로 소비자들의 오락을 충족시킬 수 있는 틈이 생겨 무한한 창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직까지 방송사는 영상 제작사 중 압도적으로 큰 권위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주체이다. 방송사는 유투브 1인 콘텐츠와의 가장 큰 차별점인 막대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마치 게임이나 마블 영화들처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힘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숏폼 트렌드에 맞는 짧은 영상을 위화감 없이 텔레비전에 연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을 것이다. 짧아진 호흡이 곧 얕아진 콘텐츠의 깊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짧아도 얼마나 큰 그림과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가‘가 앞으로 숏폼 콘텐츠 시대에서의 차별성이 될 것이고, 이에 텔레비전 콘텐츠 산업은 결코 불리한 상황이 아니다.
# 26.
1971년 앨빈 토플러는 생산자를 뜻하는 Producer과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합성어 프로슈머 (Prosumer)의 개념을 제시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네트워크 플랫폼을 타고 소비자들은 토플러의 예상보다 더 능동적으로 변했다. 특히 미디어 콘텐츠 방면에서 과감해졌다. 초기의 소비자들은 UCC 등의 동영상을 올리면서 활동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은 자신만의 콘텐츠로 인기를 얻는 '페북 스타'와 '인스타 스타'를 낳았다. 아프리카 TV, 유튜브 등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생산집단의 확장은 '매력 있는 개인'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반영한다. 한국의 집단주의와 권위주의가 무너지면서 개인주의 가치관이 설파됐다. 이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개념을 넘어 집단에 가려져 있는 개인의 퍼스널리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짧게 소비하는 스마트폰 콘텐츠는 원맨 캐릭터 쇼를 성행시켰다. 단순히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출연진으로 섭외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디어계의 프로슈머들이 소비될 수 있는 맥락을 읽어 제작에 적용하자는 거다.
개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소비하는 시청패턴은 개인 한 명을 집중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구조로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의 MBC의 <놀면 뭐 하니>가 그렇다. <놀면 뭐 하니>는 무한도전 6명의 멤버가 하는 도전을 유재석 혼자 하는 포맷이다. 유재석 하나의 캐릭터를 스토리텔링 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재석 혼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유재석과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개인 중심으로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조명한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이동욱의 퍼스널리티 드러내는 타이틀과 같이 토크쇼도 인터뷰이의 다방면을 조명한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바로 '기믹'이다. 기믹은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로 엔터테이너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소비되기 위한 독특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뜻한다. 소비자는 이제 프로그램을 소비하기보단 특정 기믹을 소비한다. 두 가지 방식으로 기믹을 예능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는데, 첫째는 기존의 개인을 다른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유재석에게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이미지를 속는 사람은 없고 속이는 사람만 있는 래퍼 마미손 이 그 예시다. 두 번째는 상상적 기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상상이란 한 발은 현실, 한 발은 상상에 두는 것을 말한다. 대중들이 현실에 있으면서도 상상적으로 어떤 욕구를 느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직장싫업' '에휴' 등 펭수의 기믹과 염따의 FLEX 기믹은 현실 속에 없는 혹은 현실 속에 있기에는 말이 안 되는 웃긴 캐릭터의 소비로 이어졌다.
사후 제작 단계에선 제작자가 곧 소비자가 돼야 한다. 자막과 편집 과정을 통해 캐릭터와 콤비 플레이를 연출해야 한다. 캐릭터를 더 부각하기도, 자제시키기도 하면서 캐릭터와 소통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프로슈머의 등장은 소비자 중심적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소비자가 왜 생산자를 자처하고 나서게 되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