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07
그들은 대담하고 치밀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0여 명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아 농지 2만3028㎡(약 7000평)를 매입했다. 또 묘목 수천 그루를 촘촘히 심어놨다. 해당 토지는 지난달 24일 정부가 발표한 '광명시흥신도시'에 포함됐다. 덕분에 투기에 참여한 LH직원들은 100억원이 넘는 거액의 토지보상금을 받게 될 예정이다. 완벽했던 그들의 행위는 참여연대와 민변이 LH직원 명단과 등기부 등본을 대조한 결과로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조사대상을 LH 직원 가족과 친척으로, 고양 창릉지구와 하남 교산지구 등 3기 신도시 전체로 확대하면, 투기 의혹 직원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연루되었다는 제보도 더해지는 상황이다.
이번 LH직원의 땅 투기 의혹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흔들어놨다. 정부는 줄곧 국민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간주, '투기와의 전쟁'을 외쳐왔다. 대출을 막고 세금을 올렸다. 그러나 정작 사전정보를 갖고 움직인 내부의 투기를 통제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 4년간 무려 82%나 올랐다. 24번에 달하는 정책 실패의 결과는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지금 국민의 분노는 표면적으로 땅 투기를 한 LH 일부 직원을 향해 있지만 기저에는 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원망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는 25번째 부동산정책, '2·4 대책'의 골간은 LH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주도 개발이다. 더구나 LH직원들의 투기는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LH공사 사장 재임 시절에도 일어났다. 앞으로 LH와 정부의 정책추진과정에서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대규모 아파트공급 방식의 근원적 한계와 빈틈을 꼬집고 있다. 정부는 도심재개발 대신에 신도시건설을 추진해왔다. 분당과 일산의 1기 신도시부터 지난 30년간 반복된 정책이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농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토지구역을 획정, 용도를 변경하고 도로를 신설했다. 상하수도 공사에 이어 서울과 연결된 지하철 노선도 신설하면 평당 100만원도 안됐던 땅이 평당 400만원을 넘는 곳으로 변형됐다. 탐욕이 편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서울 근교에 대규모 택지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은 한정돼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광명시흥지구'는 지난 2010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가 4년 만에 해제된 곳. 2018년 10월 도면유출로 신도시 지정이 취소됐던 경기 고양의 '원흥신도시'는 이듬해 5월 '창릉신도시'로 이름을 바꿔 지정됐다. LH직원처럼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여윳돈이 있어 땅을 미리 사놓으면 큰 이득을 보는 구조다. 다만 언제 개발되느냐의 문제다.
정부와 여당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단호한 어조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행정관 등 전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3기 신도시 토지거래 여부를 지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7일 "국민들께 깊은 마음으로 송구하다"면서 "부동산 투기가 확인될 경우 수사의뢰, 징계조치 등 무관용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변창흠 국토부장관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편법과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불법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일상이 되고, 피의자 국회의원들과 장관들이 수두룩한 나라다. 울산시장과 경남지사는 지지부진한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덕분에 임기 4년 중 70%가 지나고 이제 15개월 정도만 남았다. 법과 정의를 지킨다는 법무부의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당사자로 재조사를 받고 있고, 또 다른 범죄 피의자인 서울중앙지검장은 벌써부터 차기 검찰총장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 LH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새삼 놀랍지 않다. 단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가 드러났을 뿐이다. 정부의 대책처럼 LH 직원들을 전수조사해서 위법이 발견된 경우 처벌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까. LH 직원의 탐욕을 탓하면서 그들에 비해 조금 덜 탐욕스럽다고 위안 삼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법과 도덕이 무너지면서 사회 전체가 도둑과 야바위꾼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