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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프간의 한 미 육군 특전단의
습격작전에 관한 것으로, 미국 언론에 소개
되어 많이 알려진 아프간 특수작전 중 하나.
새해 복 많이들 받으십시오.
잇빨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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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커쉬 깊은 산악의 특전단 ODA 3336
The Battle of the Shuk Valley
2008. 4. 6.
By Ed Marek, editor
ODA 3336을 해석하면
미 육군 제3특전단 3대대 C중대 6팀이란 뜻이다.
3특전단은 아프간전쟁을 책임지는 미 중부사령부 소속으로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특전단 전체가 참전했고, 2002년에는 아프리
카 지역 군대 육성을 위해 활동했으며, 2001년에는 아프간 대규모
공세작전인 아나콘다 작전에 참가했다. 아나콘다 작전에서는 매튜스
맥헤일 대위가 지휘하는 ODA 372팀이 참가했는데 부팀장인 스탠리
헤어맨 준사관이 미 공군 스펙트러 건쉽 오인사격으로 사망해 첫
전사자가 되었다.
2002년 5월부터 3특전단은 새로 창설되는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
시켰다. 이후 5특전단으로 이 일이 넘어갔고, 2003년에는 3특전단
일부는 이라크로 가 침공작전에 참가했다. 3특전단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공식적으로 총 8명이 전사했다.
201쿤닥-특공대 [ANA's 201st Commando Kandak]
아프간 201특공여단은 ODA 3336의 파트너 부대. 미군으로부터
대대급 장비와 병기를 받아 구성. 과거 소련침공 시절 아프간
정부는 소련군 도움으로 정부군이 20만까지 양성했었으나 소련
이 물러나자 아프간 정부(ANA)는 탈레반에 붕괴되고 병기는 모두
빼앗겼다. 아프간 정부가 다시 들어선 것은 2001년인데 이때 미국
입장에서 보니 정부군이 너무 소수였다.
3특전단 1대대가 이들의 훈련을 맡아 2002년 5월에 시작했다. 이
훈련소를 수료한 사람은 1,700명이 나왔고 이는 다섯 개 쿤닥부대
로 편성된다. 이들은 가장 큰 문제는 탈영해 도망간다는 것. 2003
년 7월에 첫 군사작전을 수행했고, 2009년 여름까지 총 86,000명이
수료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지역에 따라 5개의 명칭상 군단으로 편성되어 있다.
아프간 정부군은 2009년 현재 15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보병여단
이 13개 기갑여단이 1개 특공여단이 하나, 그리고 지원여단이 하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요한 병력은 파키스탄과의 국경을 지킨다.
미 육군 특전단과 함께 활동하는 것은 아프간군 특공여단이다. 이
특공대 훈련은 3특전단과 7특전단이 시켰는데 과거 소련과 탈레반
이 쓰던 카불 근처 훈련장을 사용했다.
201코만도 부대는 2007년 7월 첫 번째 특공대원 수료생이 나왔고 9월
부터 곧바로 전투를 치렀다. 미 육군 특전단이 훈련시킨 아프간 특공
대원은 4천 명이다. 이 교관 특전대원들은 같이 먹고 자면서 특공대원
들은 훈련시켰고 그래서 서로 진짜 형제처럼 친하다고 한다. 특전대원
들은 아프간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했고 이 특공대 병력은 자신들과 같
이 작전을 해야 했기에 특전대원들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했다.
누리스탄과 힌두 쿠쉬 : target area의 환경
ODA 3336의 전투는 누리스탄 지역 슈크(Shuk) 계곡에서
일어났고 이는 누리스탄 북동부로 파키스탄 국경과 가깝다.
그곳은 대륙성의 방대하고 긴 힌두 커쉬(Hindu Kush) 산악
이 둘러싸고 있다.
지도를 보면 히말라야-힌두-커쉬-티엔 산악은 이어져 있고
이것은 티벳까지 이어지고 길게 보면 중국까지 이어진다.
이 험난한 힌두 커쉬 산악을 통해 탈레반들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다. 이 힌두 커쉬 산맥은 역사적으로도 이탈리아와 그
리스 등 모든 침략자들의 장애물이었고 이로 인해 중국도 서
쪽으로 더 넘어오지 않았고 알렉산더 대왕도 마찬가지다. 실
크로드도 힌두 커쉬를 넘지 않고 산맥 북쪽으로 통과한다.
이곳은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매우 추워 온도 차가 급격
하며 하루에도 여러 번 기온이 변화한다. 이 곳의 종족은 인도
-유럽 계열이라고 보나 인도-이란 혈통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해 소련이 들어왔을 때 격렬
하게 저항했었다. 이슬람 자치권을 인정받는 곳이기도 하여
아프간 정부도 이곳을 이슬람 혁명 자치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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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특전단 ODA 3336 팀의 목표는 아프간 제 201코만도
쿤닥(Kandak) 중대 병력을 이끌고 "헤제벨라 이슬라미 쿨바딘
(HIG) 폭동단의 목표 인물 지도자급을 죽이거나 사로잡는 것"
이었다. 이들은 아프간 북부 누리스탄 지역의 슈크(Shuk) 계곡
에 있었다. 이들은 이끄는 것은 쿨부딘 헤크마트야르였다.
작전명은 ‘특공대 분노(Commando Wrath)’. 여기에 미 본토 팝
공군기지의 미 공군 21특수전술전대 소속 공군 전투통제관 몇
명이 공중지원을 위해 붙었다.
[Quqnoos Afghan]이란 웹사이트에서 이 특별목표인 쿨부딘
헤르카트야르 본인이 직접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나 정확한 정보
는 아니다. 수 년간 미국의 목표가 된 인물. 퀴쿠누스 사이트에서
는 쿨부딘은 미국에 대항하는 쪽으로 기울어 부지휘관 카쉬미르
칸을 만나러 은거지에서 나와 회의를 가지려다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완전히 믿기는 힘들다. 그들 조직에 대한 신뢰도
는 높지 않다.
이 작전은 3336팀 특전대원 12명과 아프간 특공대 중대원 100명이
투입됐는데, 이 특공대는 미 육군 특전단이 직접 훈련시켜서 대원
들 각자와 서로 잘 알고 있었고 충분히 능력이 인정된 병력이다.
그린베레가 아프간 정부군 201특공여단을 만들 때 최초로 훈련시킨
병력이 이 특공대이며 병력은 약 600명 규모다.
2008년 2월 19일 아프간 남부에서 첫 작전을 준비하는 아프간
육군 201쿤닥특공대원들.
아프간 201특공대의 첫 임무는 위의 사진과 동일한 날짜와 장소
이며, 미군이 훈련과 장비까지 책임졌고 탈레반과 싸울 때 이 부대
는 종종 연합해서 작전에 참가했다. 미군과 싸우는 탈레반은 이
아프간 정부군 코만도 부대를 ‘늑대들’이라고 부른다.
ODA 3336은 이 특공대와 연합작전 경험이 있었고
특공대 80%가 이전에 전투경험이 있었다.
ODA 3336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슈크 계곡에는 전혀 아무도 가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어떤 미군도 여기 가 본 적이 없으며 장담
하건데 소련군도 못 들어가 봤다. 그래서 미군과 아프간 특공대도
오래 전에 소련이 제작한 지도에 의거해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물론
지도와는 전혀 다른 지형일 것이라고 추측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올 거라고 각오했다. 지구 상 정말 가혹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약 7시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미 특전단 대원
열두 명 중에서 여섯 명이 다쳤고 그 중 네 명은 상태가 심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치지 않은 대원은 없었다. 아프간 코만도 2명이
전사했고, 또한 그린베레와 아프간 코만도는 적 150-200명을 죽인
것으로 추측된다.
먼저, 우리는 슈크 계곡에 관해서 좀 알아야 한다.
구글 어스로 치면 이 슈크 계곡 일대를 볼 수 있는데, 왼쪽 밑의
붉은 별이 카불이다. 이 계곡은 자라라바드 북쪽이고 하얀 화살표
가 지시하고 있다. 지역 구역으로 보면 누리스탄 지방으로 노란
선의 파키스탄 국경선이 보일 것이다. 세부 구역으로 보면 거기에
앨린가르 강이 있다. 정말 정말 험한 지역이다. 그냥 험하다. 좀 더
명확하게 보기 위해 그래픽으로 일대를 만들어봤다.
작전 당일 아침 CH-47 시누크 헬기 6대가 동원되어 목표지역으로
침투했다. 미 육군 3특전단의 생생한 필름에서 사진을 몇 장 발췌
한다. [현역 전투촬영병이 작전팀과 동행했다.]
공격은 자라라바드 비행장에서 2008년 4월 5일 이른 아침 출발
하였고 기습부대는 시누크와 블랙호크를 사용했다.
이 비디오 캡처 화면은 헬기들이 비행장으로 돌아가면서 슈크
계곡을 촬영한 것으로 이 작전에는 이 외에도 미 공군의 고정익
항공기도 동원되었다.
그 다음 캡처 장면은 헬기가 찍은 부대 침투장소로 하얗게
보이는 것이 앞서 말한 애린가르 강이고 그 서쪽으로 흐른다.
위의 캡처 사진에서는 랜딩한 CH-47 헬기에서 대원들이 나와
이동하는 모습이다. 침투 동안 엔진은 계속 돌고 있었고 어떤
헬기는 정확히 내려앉았지만 어떤 것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지
못한 헬기에서는 3미터 높이에서 대원들이 땅으로 뛰어 내렸다.
대원들이 뛰어 내린 땅은 바위조각과 함께 반 쯤 녹은 눈이
범벅되어 있었다.
다음 사진은 계곡의 강가에서 촬영된 것으로 저지대
지형이 보이고 이곳은 마을의 끝자락이다.
당시 29세의 제3특전단 3336팀장 킬 왈톤 대위는 자신의 많은
대원들이 60파운드(27kg)나 나가는 무거운 군장을 휴대하고
자갈투성이와 흐르는 강물로 뛰어 내렸고 지형은 해발 3,000
미터였고 기온은 영하 5도였다고 한다.
이것이 계곡의 마을로 진입해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ODA-3336팀과 공군 통제관
라이너의 모습이다. 전투촬영병이 아직 여유가 있을 당시로 보인다.
팀장 킬 왈톤 대위
대원들은 계곡의 바닥에 있었고 거기서 마을로 향하는 길은
상향길이었고 산악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즉시 대원
들은 상향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팀은 3개 제대로 나뉘어 각 제대에는 아프간 코만도 6명과
통역관이 붙었다. 원래 계획은 산을 타고 올라가 마을을 하향
으로 기습하는 것이었고 반란군 폭도가 있으면 붙잡거나 사살
하는 것이었다.
왈톤 대위 “우리는 상향길을 오르면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대원들은 기습을 하고 싶었으나 헬리콥터들 굉음이 계곡을 타고
이미 상대에게 들렸다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았다. 그저 적들이
공격을 준비할 시간이 없거나 자신들을 둘러 싸 포위하는 일만
없기를 빌었다. 이제 기습 개념은 끝났다.
목표 일대의 마을이 어떤 형태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비슷한 곳의
아래 사진을 올린다. 대략 어떤 것인지 알 것이며, 다음 사진들에
는 다른 동영상 캡처들이 나온다.
이곳은 와이갈 계곡의 누이스타니란 마을로 ODA 3336이 목표로
한 마을과 남동쪽으로 31마일 떨어진 곳으로 지형이 유사하다.
마을의 가옥들이 절벽에 붙어 형성되어 있다. 미 육군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들이 이 근처 공격작전을 수행하다 촬영한 것.
아래는 2007년 4월 사진으로 계단식 논을 경작하는 아프간
세투트란 곳이다.
일부 공격제대는 가파른 지그재그 산길을 골라 이동했고
거기도 계단식 경작지가 있었으며 관개수로도 보였고
우둘투둘한 바위 산길이었다.
아래 훈장을 수여받는 왼쪽 존 왈딩 하사와 오른쪽 데이빗
샌더스 하사는 아프칸 코만도 10명을 이끌고 작전했다.
샌더스 하사와 같이 한 인물이 또 하나 있는데 미 공군 전투항공
-통제관 공군 상병 자카리 라이너가 있었다. 라이너 상병은 팝
공군기지에 있는 공군특수전사령부 제21특수전술전대 소속.
상병은 특전단과 함께 활동했고 이들의 정식 명칭은 공식적으로
연합전술항공통제관(JTAC)이다.
[전에 특수전 게시판에 기고가 되었지만, 미군 하위 제대까지
전투기 유도병이 요구됨에 따라, 현재 미 공군의 항공통제관은
장교 뿐 아닌 상병부터 상사까지 다양한 계급의 통제관이 있다.
잇빨 주]
이 통제관들은 바그람 공군기지 본부가 있고 특전단에 배속된 이
연합전술항공통제관과 무선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 통제관들
은 "battlefield airmen"이라 부르는데 실제 그렇게 한다. 이들은 팝
공군기지에서 2년간 훈련받고 가까운 공수와 특전단의 고향 포트
브래그에서 추가 훈련을 받는다. 거기서 이 통제관들은 적지에서
은밀한 활동을 하는 특전단과 같이 활동하는 훈련을 받는다.
미 공군 타임즈에서 이렇게 말한다:
"battlefield airmen은 낙하산이나 헬기로 적 지역에 침투해 항공기를
유도하고 사격과 폭탄투하를 유도한다. 이들은 육군 특전단이나 네이
비씰과도 같이 작전하며 해군을 위한 항공지원도 해준다. 이럴 때 아군
항공기의 사격이 지상군 아주 가까운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미군에 입대한 병사가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질 수 있는지 사람들이
거의 모른다. 이 전술통제관들은 여러 작전에서 실제로 전선에 나가
전투항공기 근접항공지원을 유도했다. 이 병사들은 항공기를 목표로
기동하도록 유도하고 언제 대형 병기들을 투하하는지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 공군 항공기들은 장교들이 몰지만 지상의 어린 부사관 통제관
의 유도로 목표에 아주 정확히 폭격을 하게 되고 각 항공기들이 충돌
하지 않도록 공중의 교통통제도 해준다. 라이너 상병의 표현으로 따
지면 정말로 ‘바쁘다’고 한다. 각자가 할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라이너는 초기에 오르던 때를 이렇게 묘사했다.
“최초 침투가 시작되었고.... 땅에는 눈이 있었고 우둘투둘한
바위들이 있었으며 강물은 매우 빠르게 흘렀고 벼랑들이 서
있었다. 1.5미터 높이 장애물들이 수시로 나와 넘어가야 한다.
능선길은 정말 마구잡이로 나 있었다.”
그렇게 약 300미터를 올랐을 때 대원들 눈에는 적들이 종종걸음
으로 달리며 각자 위치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헬기 소리
가 그들에게 경종을 울린 듯했다. 스콧 포드 상사 말에 의하면
첫 총성은 랜딩 30분 뒤다.
선도제대가 마을 외곽 건물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때 루이스
모랄레스 하사는 적 한 명을 발견하고 사살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고 그곳에는 적 200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들은
마을의 잘 계획된 방어선에 들어가 있었다. 습격대는 문제와
직면했다. 상대가 방어선을 매우 잘 구축했다.
루이스 모랄레스
적은 즉시 기관총과 저격총을 쐈고 RPG도 발포했다. 적은 올라
오고 있는 미군을 향해 밑을 보고 사격했고, 즉시 미군 아프간
연합부대를 포위-공격하려고 기동하기 시작했다. 적은 마을의
곳곳에 매우 은밀하게 잘 숨어 있었고 벽의 구멍을 통해서 쏘
기도 했다.
연합항공통제관으로 작전에 참가한 352전술작전단 소속 공군하사
롭 구티에레즈 하사의 말. “우리가 초병을 잡았을 때 200명의 적
전사들이 다가왔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약 50미터 거리에서
강력한 매복 사격을 당했다. 우리 제대들은 강으로 인해 북쪽과 남쪽
에 1-200미터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당시 그린베레 팀장 왈톤 대위는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며 C2라고
명명된 지휘통제 제대를 이끌고 있다가 산악의 적 거점으로부터
다중적인 강력한 사격을 받게 된다. 순간 제대는 돈좌되었다. “우린
360도 전 방위에서 포위되어 기관총과 저격수 RPG 사격을 사방에서
받았다.”
왈톤 대위를 같이 붙어 다니던 아프간 특공대원 "CK"는 23세로 젊었고
이 매복 공격에서 즉사했다. CK는 고아로, 언젠가 미국으로 가서 사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이런 특공대원들은 특별한 장소에서 미군과 열심
히 작전했다.
모랄레스 하사의 말. “그들은 우리 팀원과 같은 사람들이다. 특공대원들
중 한 명은 우리 전체 통틀어 가장 전투경험이 많았다. 그는 특전단 여섯
개 팀에서 활동하며 백여 건의 교전에 참가했다. 그 사람은 6개월 이상
쉰 적도 없었다."
샌더스 하사는 선도 제대에 있었다. "난 특공대원 10명과 같이 있었고
마을로 진입하기 전에 먼저 사격을 받아 더 이상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무전기를 통해서 들으니 일부 팀원이 총에 맞았다고
했다. 우리는 점차 어느 건물에서 총알이 날아오나 찾기 시작했다.
그들을 제압할 수 있기를 빌었다."
세스 하워드 하사도 201특공대원들과 같이 있었는데 이 제대 역시
최초 사격과 동시에 기관총 소총 RPG와 저격수 사격을 받아 그 자리
에 돈좌된다. 하워드 하사는 특공대원들을 지휘해 적 저격수 위치를
찾아 84밀리 무반동총을 발사시켰다. 이 무반동총 사격으로 왈톤 대위
의 C2제대가 그 거점을 지나 전진이 가능해졌다.
세스 하워드 하사
왈톤 대위와 같이 C2에 같이 있던
전투촬영병인 마이클 카터 상병은 한 동굴로 들어갔다.
전투는 방대한 적에게 수적 압도당했고 그들은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적은 위에서 미군을 공격하려고 산 높은 곳으로 올라
갔고 이것은 미군이 가장 바라지 않던 것이다. 미군과 아프간 특공
대원들이 하나씩 총에 맞기 시작했다. 이제 미군과 아프간 연합제대
는 두 가지 거대한 목표를 노력해야 했다.
먼저, 응사해서 최대한 적을 많이 죽거나 다치게 해야 하고,
둘째로는 강력한 압도사격으로 적을 위협해 부상자를 뒤로
끌어내야 했다.
사진 중앙에 있는 딜톤 베르 하사는 통신부사관이었으나 지휘제대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면 통신을 할 수 없었다. 딜톤 하사는 동굴로 들어
가지 않고 밖에서 적에게 사격했다. 딜톤 하사는 엉덩이와 다리 중간
에 총을 맞았고 계속 싸우면서 부상자 빼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총에 맞았고 손에 총을 쥘 힘을 잃었다. 그러자 모랄레스 하사가
달려와 딜톤 하사를 보호하다 모랄레스 하사 역시 총에 맞았다.
이 시점에서 왈톤 대위는 이미 기습에 실패했고 적 숫자가 굉장히
많다는 걸 깨닫는다. 아군은 상향의 적과 싸우고 있었고 적은 미군
을 포위한 형상의 참호에 들어가 있었으며 무장도 좋았고 훈련도
잘 되고 규율이 있었다.
대위는 결국 근접항공유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일단 아군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뺄 수 있었고 적의 숫자도 감소
시킬 수 있었다. 결국 그 장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본 것. 왈톤 대위 역시 자신과 부하들을 방어하고 부상자들을 보호
하면서 자신의 몫으로 최대한 적을 죽여야 했다. 젊은 대위는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했다.
이때 사진촬영병이었던 마크 카터는 무리 중에 있다가 부상자를
데려오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약 5미터를 앞으로 나가서
딜톤 베르 하사를 데려오려고 했는데 이때 왈톤 대위가 소총을
자동으로 난사하며 엄호사격을 했다.
자신들의 엄청난 사격 속에서 앞으로 나온 젊은 미군을 보고 적은
놀란 것 같았다. 게다가 카터 상병은 그것만 한 것이 아니라 딜톤
하사에게 응급처치를 했고 중간에 적에게 총까지 쐈다. 거의 동시
에 왈톤 대위는 딜톤 하사를 보호하다 총에 맞은 모랄레스 하사를
뒤로 끌어냈고 카터 상병도 딜톤 하사를 안전하게 뒤로 끌어냈다.
딜톤 하사가 안전한 곳으로 끌려오자 모랄레스 하사는 자신도
넓적다리에 총을 맞은 상태였지만 먼저 딜톤의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모랄레스 하사는 발목에 또 총을 맞았으나 딜톤은
부상이 너무 컸다.
전투촬영병 카터는 약간 이야기가 필요하다. 카터는 제55통신중대
소속으로 전투촬영 전문 중대다. 카터 상병은 ODA 3336에 배속되어
작전을 카메라와 비디오로 촬영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현장에
서 그는 특전대원처럼 잘 행동했고 강력한 적 사격에도 가끔씩 몸을
드러내 적 거점에 사격을 가했다.
한번은 전사한 특공대원 CK의 머리를 회수하려는 왈톤 대위를 위해
엄호사격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카터는 밖으로 나가 위성전화기를
되찾아왔다. 적은 지휘제대 12미터 거리까지 접근했었는데 카터가
뛰어나가 다가오는 그들에게 사격을 퍼부어 그들을 저지시키기도
했다.
하워드 하사의 3제대는 지휘제대 C2로 향해 이동했고 당시 적이
3제대를 향해 돌격해 거의 돌파하는 상황까지 몰려 ODA 3336 팀원
두 명이 다쳤다. 하워드는 위치에서 뛰어 나와 교전하며 18미터 높이
벼랑을 통과해 지휘제대에 도착했다. 당시 하워드 하사의 존재는
지휘제대에서 몹시 필요했고 하워드는 부상자와 적 중간지대에서
진격해오는 적에게 강력한 사격을 퍼부었다.
하워드는 저격수 교육을 받은 대원이었다. 하사는 그 기술을 이용해
하나하나씩 적을 잡았고, 그러면서 휘하 특공대원들에게 일단 엎드리
라고 하고 저격을 하면서 무반동총도 사용했다. 하워드 하사 말로는
훈련받은 적 저격수들이 거기 존재했고 그들을 잡는 것은 자신의 몫
이라고 생각했다. 적은 매우 잘 훈련되고 규율이 있어 하사도 목표를
찾기가 힘들었다. 하워드와 그 제대원들은 온 힘을 써 교전에 임했다.
카터가 위성무전기를 회수해오는 바람에 왈톤 대위는 통신을
재개할 수 있었고 즉각 본부를 호출해 공중지원을 요청했고
곧바로 허가 응신을 받았다.
샌더스 하사와 항공통제관 라이너 상병은 서로 말을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라이너는 근접항공지원을 불렀다. 라이너 상병
에게 가용한 항공은 F-15E, A-10 그리고 AH-64 아파치로 모두
공중에 떠서 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F-15와 AH-64는 즉각 공격
을 시작했고 A-10은 한 시간 뒤에 날아와 근접화력지원을 시작
했다.
라이너 상병은 공격을 시작한 지 15분 만에 총에 맞았고 옆에는
팀원 세 명이 있었다. 라이너 상병. “사주경계한 상태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 그 총알은 내 왼쪽 넓적다리를 때리고 다리를 관통한
다음 옆 동료의 발을 때렸다. 어디로 갈 수가 없었고, 우린 적에게
덫에 갇힌 것 같았다. 난 공중폭격과 화력지원을 불렀고, 부상자
들은 벼랑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라이너 상병이 유도를 계속 하는 동안 왈톤 대위가 응급처치를
해준다. 라이너 상병은 유도가 끝나면 다시 총을 들어 전투에
임했고 그러면서 다음 유도를 위해 적의 위치를 계속 보려고 했다.
미 공군 335전투기전대 소속 F-15E 두 대는 이런 요청을 기다리며
상공을 돌고 있었고 요청이 오자 즉각 목표를 위해 하강했다. 이때
라이너 상병은 "danger-close air"라고 무전기로 말했고 이는 타격
목표에 아군이 매우 가깝게 있어 아군 손실도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
는 뜻이다.
샌더스 하사는 적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하다가 왈톤 대위를
불러 문제를 말했더니 왈톤 대위는 대답했다. "어떻게든 막아봐."
F-15가 가깝게 공격하는 동안 샌더스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고
왈톤 대위가 다시 말했다. "Hit them again."
프리차드 킬리 대위는 미 공군 병기시스템장교로 당시 한 F-15
뒷좌석에 앉아서 가용한 병기들을 사용했다. 선도기였기 때문에
먼저 목표를 정확히 보고 상황에 따라 어느 병기를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킬리 대위 역할은 매우 흥미롭다. 지상군과 계속
교신하고 앞좌석의 조종사는 계속 비행한다. 지상 공격대는 강변
에서 높은 쪽 마을로 진출하고 있었다. 이 F-15E는 타켓 지시용
고해상도 포드가 있어 지상의 적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킬리 대위. "가옥들 지붕으로 총을 들고 움직이는 적들이 보였
습니다. 전폭기는 계곡의 강변을 따라 진입해야 했고 그럼 바로
마을이 나옵니다. 산악과 충돌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적에게
최소한으로 노출될 루트를 찾아야 했습니다."
앞 석에는 데이빗 카스텔로 중령이 조종하고 있었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킬리는 극단적일만큼
집중해서 정확하게 병기를 투하해야 했거든요. 병기의 효력
반경에 아군이 있었습니다. 정말 정밀하게 해야죠. 전술항공
승무원들에게는 거의 유언장과 같은 기동을 해야 했습니다."
킬리 대위. "대단한 기분이었죠. 아래 친구들은 용광로 속에
있었고, 우린 적어도 우리가 할 바를 해야 했습니다."
전투 기록을 읽어보니 라이너는 F-15로 엄청난 화력을 유도했고
폭탄과 기총화력도 가져왔다. 다른 전술통제관 롭 그티에레즈 하사
는 맨 처음 육군 AH-64 아파치 공격을 유도했다. 아파치는 캐논포,
로켓, 헬파이어 공대지미슬이 장착되어 공군의 A-10과 무장이
비슷했다.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제트 전투기는 근본적으로 엄청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너가 특별한 좌표에 폭탄투하를 요청하자 아
파치와 A-10은 일정거리로 물러났다. 전투 동안 가드너 상병은
계속 항공을 유도했고 여러 다른 항공기를 모두 다뤘으며 또한
부상자 후송과 퇴출을 위한 UH-60 헬기도 유도했다. CH-47도
퇴출에 사용되었다.
근접항공을 지원한 항공기들은 지상 특전대원들과 항공유도관을
합해 매우 조화로운 연주처럼 능숙하게 해낸 점이 괄목할 만 하다.
조종사들은 후방기지 지시까지 듣고 있었고 우려할만한 불협화음
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지상의 대원들이 못하는 것은 하늘에서
해주는 것과 같은 협력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오폭이 일어나 아군이 죽거나 다친다. 이렇게 협주가 잘 되
었던 이유는 공군이 간단하게 설명한다. 항공통제관들이 포트 브래
그로 가서 특전단과 항공유도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폭탄이 한 건물에 정확히 투하되어 거대한 연기구름이 일어나고
엄청난 파편이 비산한다. 이 폭발의 충격과 파열음은 아군이건
적군이건 일대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끌기 충분하다.
마을의 한 장소 폭격 전과 후. 전폭기에서 촬영.
전투 다음 단계는 한시도 쉬지 않고 틈을 안 주는 항공기 공격이었다.
캐논포가 시냇물처럼 날아가고, 로켓과 미슬이 발사되고, 엄청난 폭
탄투하와 함께 항공기들은 서로 교대하며 번갈아 기총소사하며 궤도
를 돌았다. 왈톤 대위는 그게 얼마나 가까웠던지 그냥 "danger air su
-pport"라고 표현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너 상병은 이런 공격
을 총 70번이나 유도했다. 라이너 상병이 작전 후 집계한 것을 보면
캐논포 4,570발, 헬파이어 미슬 9발, 로켓 162발, 500파운드 폭탄 12발,
그 외 폭탄 약 2천 톤이었다.
이 공중지원으로 지상군은 적 사격에도 좀 더 용기를 얻어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고 일부 대원은 폭탄 파편에 맞아 다치기도 했다.
왈톤 대위는 약 2천 톤 폭탄들이 자신들과 정말로 가깝게 투하되었다고
했다. “투하되는 폭탄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지는 걸로 보인다.
표고 때문에 폭탄은 밑으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위쪽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어디로 떨어질지 감이 안 잡힙니다. 우리 대원
들이 다쳤고 폭탄이 떨어지면 뒤로 물러날 수도 없습니다.”
항공기들이 계속 오고 가는 동안 지상 병력은 여전히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상군 모두는 폭격으로 인해 다시 힘을 되찾
았고 결국에는 뒤로 빠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항공기 승무원들은 점차 구름이 펴져오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렇게 되면 퇴출헬기는 못 오고 특공대는 밤을
거기서 보내야 하는데 실탄은 적이 더 많이 가지고 있어 전투를 장악
하게 된다. 그러면 모든 장비를 연합해 밤 동안 버텨야 한다. 탄약이 첫
번째다. 만약 다음 날도 항공기가 뜨지 못하면 공중지원은 박탈되고
그러면 수적으로 압도적인 적은 공세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다른 항공기는 약 10킬로미터 거리에서 200명이 넘는 적이
그쪽으로 이동해오고 있다고 전해왔고 로켓과 미슬을 휴대하고 있
다고 했다. 왈톤 대위의 모든 팀원이 크건 작건 다친 상태였고 네
명은 중상으로 위태로웠다. 중상자 다수인 상태가 무겁게 대위에게
다가왔다.
대위는 거기서 빠져 나가야 한다고 결정했고 상부 지휘부도 바로
빠져나오는 것을 허가했다. 그러나 들어온 루트로 다시 나가는 건
불가능했고 그것도 기상과 어둠을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나쁜 기상으로 인해 거기 남을 경우 적의 우세한 숫자로 포위해올
것이 분명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가파른 벼랑으로 내려가는 길
뿐이었다. 사격을 받으면서 그리로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부상자도 데려가야 하며 뒤에 아군을 두고 나올 수도 없었다.
왈톤 대위는 뛰어가 일부 대원에게 벼랑을 내려가 보라고 했다.
왈톤 대위. "우린 전상자를 두고 가지 않습니다.
차라리 거기 앉아서 싸우다 동료들과 같이 죽어야죠."
샌더스 하사가 벼랑에서 밑으로 내려가 보았고 ‘실행가능(doability)’
이라고 보고하며 출구가 될 수 있다고 전해왔다. 매튜스 윌리엄스
하사와 같이 정찰하고 돌아온 샌더스는 왈톤 대위에게 가서 쉽지는
않으나 가능은 하다고 말했다.
매튜스 윌리엄스
윌리엄스 하사는 이때부터 교전보다는 벼랑에서 일했으나 그러면서 또
총에 맞았다. 윌리엄스 하사는 한 시간 넘게 부상자 여러 명을 벼랑 밑
으로 내리는데 안간힘을 썼다. 팀 선임하사가 다쳤을 때 윌리엄스 하사
는 싸락눈 같은 사격을 뚫고 선임하사를 끌고 왔고 이제는 산 밑으로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 다음 다시 돌아와 샌더스와 다른 대원들을
내릴 준비를 했다.
팀 선임하사인 스콧 포드 상사는 원래 의무주특기다. 다치기 전 선임
하사는 동료들을 증원하기 위해 반격을 조직했었다. 이제 선임하사는
부상자 중에서 경중을 판단해 순서를 먹여 부상자들을 벼랑 아래로
내리는 일을 거들었다. 그러던 중 적 저격수가 선임하사를 쏴 총알이
가슴 방탄철판을 때렸다. 포드 상사는 즉각 응사를 시작했으나 그 저
격수는 다시 포드 상사 상박에 총알을 적중시켰다. 이번에는 거의 정신
을 잃을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드 상사는 벼랑 밑으로 내려가는
병력을 이끌었다.
다쳤지만 모랄레스 하사가 샌더스 하사와 함께 먼저 앞장을 섰고,
카터와 윌리엄스가 중상인 딜톤 베르 하사를 운반했고 그 다음에
돌아와 다른 중상자인 왈딩 하사를 운반했다.
왈딩 하사는 벼랑 끝으로 이동하다 오른쪽 무릎에 총알을
맞았고 이어 포드 상사도 심하게 맞았다.
왈딩 하사. “기본적으로 총알이 오른쪽 다리 오른쪽을
거의 절단하듯이 때리고 지나갔죠.”
[상당히 큰 구경의 총알이 때린 듯하다. 잇빨 주]
팀장 왈톤 대위가 왈돈 하사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갔고, 당시
왈딩은 출혈양이 너무 많아 계속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 왈딩은 자기가 지혈대로 단단히 묶어 출혈을 막았다.
왈딩 하사는 다리가 무릎 아래로 거의 절단된 상태였다고 하며
그래서 엉덩이에서 넓적다리까지 강하게 지혈대로 조였다.
왈딩의 현 다리 상태
왈딩 하사. "나는 군화를 무릎 아래 정강이 살에 끼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화 끈을 넓적다리에 묶었더니 좀 흔들
거리지가 않더군요. 자세히 보니 2인치 정도의 살에 지탱해
내 다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양 손과 엉덩
이를 이용해서 거의 뛰듯이 산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왈딩 하사 자신이 지혈대로 다리 위쪽을 묶었고 몰핀을 자기가
주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실수로 몰핀을 자기 엄지손가락에
때리고 말았다. 조금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때 동료들이
웃었는데, 정말 크게 껄껄거리며 웃었다고 한다. 이 일은 특전단
의 전설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이야기를 기사로 낸 War on Terror News의 기사를 인용한다.
"처절한 전투 와중에 그는 몰핀을 넓적다리가 아닌 엄지손가락에
때렸다. 이 용감한 행동으로 주변에 있던 팀원들이 웃었다. 이 그
린베레 팀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험난한 지형에서 적에게 포위당
했고 왈딩은 적에게 총알을 맞아 다리가 날아갔다. 그린베레 팀은
엄청난 숫자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이 보기에 미군들이
큰 소리로 껄껄대며 웃는 거다!"
폭스 티비 인터뷰에서 왈딩 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자 : 왈딩 하사님은 여기에 심각한 중상-절단-을 입으셨죠?
왈딩 하사: 그냥 좀 긁힌 것뿐입니다. (It was a little scratch)
최고로 고조된 전장에서 모두가 웃게 되는데, 공군 구티에레즈 하사
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웃음이 이후 3시간 동안 동료들을 결속시켜
버티는데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구티에레즈 하사와 내가 벼랑에서
잠시 만났는데, 우린 다시 웃었어. 그 바쁘고 냉혹한 상황에서.”
공군 구아티레즈 하사는 아프간에 2차 파병을 가
2011년 공군십자훈장을 또 받았다.
벼랑으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왈딩 하사는 결국 떨어져 나간 자신의
다리를 가지고 갔다. 활톤 대위. "그 시점에서 우리는, 아 정말, 왈딩
은 다리가 날아갔는데도 다른 부상자 지혈을 돕고 있었어요. 자기
자신은 걱정도 안 하더군요. 그런 대담한 상황에서 이런 병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해낸 겁니다. 존 웨인 왈딩은 자기 다리를 산 밑
에까지 자기가 들고 갔습니다."
왈톤 대위 / 하워드 하사 / 카터 상병이 뒤에서 퇴각을 엄호했다.
그들은 남겨진 병기를 모두 회수했는데, 그 총들이 적에게 넘어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카터는 달려가 남은 장비들을 벼랑 아래
로 던졌고 하워드 하사가 카터를 엄호사격했다. 이때 하워드 하사
는 여전히 저격수 스킬로 적을 한 명씩 정확히 조준해서 사격했다.
그러자 남은 대원들이 앞으로 나와 하워드와 같이 사격했고, 결국
하워드 하사가 맨 마지막으로 거길 떠났다.
카터도 여러 번 왔다갔다 한 뒤에 벼랑을 내려갔다. "우리는 길을
찾으며 스파이더맨처럼 내려갔습니다. 6미터 정도 수직인 곳도 있
었죠. 거기서 떨어졌으면 끝이죠. 난 부상자 한 명을 데리고 내려
갔는데 부상자는 간신히 걸을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중상
은 아니었고 의식이 있었어요. 내가 먼저 내려가 어떻게 받으려고
하니 어려워서 그냥 내 몸 위로 뛰어 내리라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그를 잡고 계속 내려갔죠.”
격렬한 전투 속에 팀원과 특공대원들은 부상자들을 데리고 18미터나
되는 벼랑을 모두 내려왔다. 그러면서 계속 총을 쏘며 전투는 지속되
었고, 이제 다음은 퇴출(extraction)이었다.
첫 medevac 헬기가 날아왔으나 적 사격에 메인 로터를 맞았고
그래서 랜딩이 불가능하자 팀원들은 부상자를 공중에 뜬 헬기
안으로 던져 밀어 넣었다. 그러자 UH-60 의무헬기가 날아갔고,
두 번째 의무헬기는 냇물의 얼음이 언 곳 중앙에 착륙했고 장소
가 아주 좋았다.
포드 상사의 말. "부상자 두세 명을 데리고 강을 건너
정말 미친 듯이 의무헬기를 향해 질주했죠."
Helicopter video grab exiting the target objective. 당시 촬영...
그러나 이 죽음의 질주에도 불구하고 총알이 날아와 헬기
옆을 때리기 시작했고 이어 헬기 조종사 중 한 명이 총알
에 맞았다. 그러나 헬기는 떠났고 아래 사진은 떠날 때
조종석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팀 의무하사관인 로날드 슈허러 하사는 조금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날 정말 바빴다. 슈허러는 워싱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학
학위를 받아 관련 일을 하다 911에 이어 아프간 전쟁이 터지자 국
가에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끝내고
근무하다 특전단 의무주특기 과정에 들어갔고 이어 language class
로 들어갔는데 아프간 언어였다. 그리고 첫 참전에서 ODA 3336으로
들어왔다. 슈허러 하사는 아프간을 위해 수많은 훈련을 받았고 지역
아프간 사람들에게 의료 봉사활동도 했다.
"Medic" 요청을 한 뒤 14분 동안 슈허러 하사는 먼저 넓적다리
안쪽에 총알을 맞은 아프간 특공대원 한 명을 보살폈다. 그 다음
다시 강변의 위치로 돌아와 팀이 다시 벼랑을 오르는 동안 다시
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 팀원이 목에 총을 맞았다. 총알이
난무하는 가운데 슈허러 하사는 팀원에게 뛰어가 응급처치를
한 다음 안전한 곳으로 끌고 왔다.
이후 두 번 더 콜을 받았고 적 공격은 더욱 맹렬해졌다. 슈허러는
뛰어가 골반과 팔에 총알을 맞은 동료를 발견했고 치료하는 동안
에 또 오른쪽 다리에 총 두 방을 맞았다. 응급처치 후 동료를 운반
하다가 총알이 슈허러 하사의 헬멧를 때렸고 이어 오른팔을 때렸
다. 이런 식으로 다친 동료 두 명을 더 끌고 왔는데 한 명은 다리
에 치명상이고 다른 한 명은 팔을 맞았다.
당시 현장에 의무주특기는 슈허러 혼자였고 모두 실탄이 바닥나고
있었으며 슈허러의 의무용품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는 대원 네 명을 더 치료했고 의무헬기를 타고 나올 때까지
총 다섯 시간 동안 이렇게 활동했다. 슈허러 하사는 특전대원 네 명
과 아프칸 코만도 10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
팀원 중 하나인 다니엘 플랜츠 하사는 그것이 첫 전투(Baptism by
fire)였고 폭격요청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난 가옥들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폭격한다고 해서 눈을 들어 보니 온갖 것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난 옆으로 굴러 벼랑 벽에 몸을 붙이고 꼼짝 없이 기다렸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린베레와 201아프간 특공대원 총 15명이
다쳤고 아프간 특공대원 두 명이 전사했다. 왈딩 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퇴출이 가능했던 것은 미군과 아프간 특공대원들 간의
협동이 매우 잘 돌아갔고 그것은 훈련 덕분이었다. 적은 150-
200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간에서 촬영된 ODA 3336 사진들...
왈톤 대위는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우린 반란군에 관한 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지대
를 관통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난 대원들에게 말했죠.
저긴 안전한 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에 이어 들어올 병력
도 없다. 이 전투를 통해서 나는 형제애(Brotherhood)를 느꼈
습니다. 전우애죠. 개인적으로 이 대원들과 같은 방을 썼다는
것이 명예롭게 느껴집니다."
왈딩 하사는 인공수족을 달아야 했고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린베레와 함께 다시 전선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Sir, you can take my leg,
but you can't take my heart
and you can't take my soul.
I'm a Green Beret."
[끝]
첫댓글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걸까요, 아니면 목표물에 집착한 나머지 적의 저항을 과소평가한 걸까요...
일개 팀이 사실 얼마나 알겠습니까. 가라면 가는 거죠. 위성으로 찍어는 봤을 겁니다.
그냥 긁힌거라니...
하후돈이 눈알을 씹어 먹었다거나,, 관운장이 앉은 채로 어깨 수술을 받았다거나,, 하는 게 꼭 구라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프로군요.
프로정신....
음.... 대단하단 말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