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음대 54동의 추억
겨울에 춥고 눈이 내리니 기분이 센티멘탈 해집니다.
플룻천사 미솔이 아빠의 음악이야기
이번주에는 조금 감성적인 옛날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미솔이 아빠 엄마가 플루트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딸 미솔이를 플루티스트로 키우기까지 과정을
1부 2부로 나누어서 써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번주 1부에서는 미솔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엄마 아빠 이야기
다음번 2부에서는 미솔이가 태어난 후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슬픔
어릴적 락커가 꿈이었던 미솔이 아빠는
음악을 너무 좋아했지만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도
용돈을 모아서 플루트를 구입해서 독학을 시작합니다.
1987년 고 1때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치현과 벗님들의
“사랑의 슬픔”에 나오는 간주 플루트 연주를 듣고
플루트라는 악기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플루트로 연주하는 그 노래 간주 때문에 플루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 덕분에 지금의 미솔이가 태어나고 플루트를 전공하게 됩니다.
나중에 미솔이가 이 곡을 연주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연주해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이치현 가수는
중앙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했고
딸 이승연 양도 플루트를 전공했습니다.
엄마는 늦게 전공
미솔이 엄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플루트를 접했습니다.
무라마츠올실버SR를 구입해서 서울대 출신 강현주 선생님과
일본 출신 조춘일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으며
플루티스트의 꿈을 키워갑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플루티스트가 되고 싶어서
주경야독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결혼 직전부터 플루트 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강현주 선생님, 제자 이은미 선생의 딸이 변미솔이랍니다.
엄마가 아니라 딸이 선생님 서울대 후배가 되었습니다.
유니텔과 영화 “접속”
당시 인터넷 통신이 한창 시작할 때
인터넷 통신을 기반으로 한 한석규 전도연의 “접속” 영화가 인기였습니다.
미솔이 아빠와 엄마는 1998년 IMF 직후
유니텔 통신 클래식동호회 플룻 소모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김혜주(한예종) 강호중 김순애 박인석 양찬모 이해영 박현진 그당시 멤버들 잘 살고 계신지...
주로 직장인들이 봉천동 사랑음악학원에서 매주 모여서 플루트 연습과 연주를 하며
플룻으로 하나되는 모임에서
아빠는 회원, 엄마는 강사로 만났습니다.
플루트를 불다가 서로 눈이 맞았습니다.
관악캠퍼스에서 연애
아빠는 흑석동 엄마는 신길동에 살아서 매주
만나서 플루트를 연습하며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중간쯤인 관악산 서울음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며
자하연에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학생식당에서 학식을 먹으며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지금은 보안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금지지만
서울대 음대 54동 연습실에
그땐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입장 해서
방음 개인 연습실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매주말 그곳에서 연습을 하며 연애를 했습니다.
가리볼디와 퀼러
아빠는 가리볼디를 독학으로 연습을 하고
엄마는 퀼러를 레슨 받으면서
관악산 캠퍼스에서 연애를 했습니다.
플루트로 만나서 플루트를 불면서
“나중에 딸을 낳으면 이 학교에 입학하면 좋겠어”
하고 평범한 생각을 하며
서울대 음대 54동에서 매주말 저렴한 연애를 했습니다.
서울음대 54동의 추억
그때 엄마 아빠가 자유롭게 연애를 했던
서울대 음대 건물 54동 음악연습실에서 30년 후
지금은 딸 미솔이가 수업을 듣고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아빠 엄마가 연애할 때 사용했던 연습실에서.
지금은 외부인이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보안이 철저합니다.
그때의 바람이 너무나 절실했을까요
부모의 바람대로 딸 미솔이는 지금 54동 건물에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되고싶었던 플루티스트가 되어
아빠가 그토록 가고싶었던 서울대학생이 되어
서학당 고시원
사실 아빠는 20대 초반 관악대학교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
점수가 부족해서 중간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습니다.
3년 반만에 조기졸업을 하고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목표를 다시 이루기 위해 신림동 녹두거리 서학당 고시원에서 잠만 자면서
가장 먼저 녹두거리를 나서서 도서관에 일등으로 자리를 맡으며
관악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베개를 베면 잠에 깊이 빠질까봐
영어사전 독일어사전을 겹쳐 수건을 깔고 매일 잠을 청했습니다.
1동 인문관에서 고 김윤식 선생님의 비평 수업 청강하며
관악대학교 뱃지를 달고 싶었지만 입시에 실패하고
폐결핵 재발이라는 훈장을 달고 낙향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대학동 원룸촌
그때 서학당 고시원이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원룸 건물로 바뀌었고
딸 미솔이가 서울음대 다닐 때 등하교 시간이 아깝다고
관악산역 앞 대학동에 원룸을 얻었다고 했을 때
아빠가 짐을 싣고 가보니 30년 전 아빠가 살았던
이름만 원룸으로 바뀐 그 서학당 고시원이었습니다.
아빠가 23살 청년 때 지냈던 고시원 건물에 세월이 바뀌어
30년 후 23살 딸 미솔이가 원룸에 자취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방에서 아빠는 폐결핵 재발을 했지만 아빠가 누웠던 그 방에서
딸 미솔이는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갔습니다.
다음 주에 딸 미솔이의 <아기 연어의 꿈>
뒷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