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 사람 : 양정아, 제정희, 이영자, 김수정, 김귀숙, 박범철, 진민주, 이우근
4월 회보 아이들 글 보기
4월 회보에 실린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공정현 선생님 반 아이들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5,6학년 아이들 글보다 1,2학년 아이들 글을 읽을 때 더 많이 웃습니다. 좀 어설프지만 속마음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니까요. 교실에서 아이들 사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이게 회보에 실린 아이들 글이다.’ 생각하고 많이 웃어야겠어요.
내 얼굴 / 박수빈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내 얼굴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내 머리카락은 곱슬이다. 하지만 난 이 모습에 적응되었다. 은경이랑 민지랑 함께 노는데도 난 이 곱슬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난 내 짝지 진석이보다 속눈썹이 길다. (11월 14일)
수빈이는 곱슬머리가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지간히 신경 쓰이나 봅니다. 내 얼굴에서 안 좋은 거 하나 썼으니 좋은 것도 하나 말해야지요. 그래서 마지막 줄에서 진석이보다 속눈썹이 길다고 했어요. 아이가 말이든 글이든 주눅 들지 않고 내 마음을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봉하마을 / 박수빈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아버지랑 봉하마을에 갔다. 그 곳은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고 2009년 5월 23일에 돌아가셨을 때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을 찾아왔다. 아빠는 그걸 보고 눈물이 조금 났다.
봉하마을에서 바람개비도 받았다. 그것은 공짜였다. 근데 그 바람 개비를 주는 사람이 버리지 말라고 했다.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적은 글씨가 적혀있어서다. 그 글씨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 (10월 9일)
말로 했으면 별 거 아닌 일이겠지만 글로 적어놓으니 읽는 이에게 주는 뜻이 깊어집니다. 글이 주는 힘이랄까요. 2학년 아이가 ‘사람 사는 세상.’ 하니 새롭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글감으로 일기를 쓰면 봉하마을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놀다 왔다는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런데 수빈이는 ‘바람개비’ 에 생각을 모았어요. 앞에 노무현 대통령 태어난 해와 돌아가신 해도 기록해두었네요. 대충 쓴 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수빈이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에 얽힌 뜻은 자세히 몰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이길래 이 바람개비를 버리면 안 되지?’ 하고 한 번 떠올려보았겠지요.
목욕탕 / 유서윤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어제 목욕탕에 갔다. 우리 집이랑 엄청 가깝다.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강아지 목욕 시켜야 되니까 승화엄마하고 목욕을 해야해. 알았지?”
우짜지. 승화엄마한테 내 몸을 보여주기가 정말로 부끄러웠다. 드디어 흥동탕에 들어갔다. 가보니 승화엄마가 있었다. 몸을 손과 팔로 가리고 자리에 앉았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몸을 씻고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몸에 불이 붙는 줄 알았다. 십 분 정도 들어가 있다가 탕에서 나와서 때를 밀었다. 때가 엄청 많이 나왔다. 때를 다 밀고 몸을 한 번 더 씻었다. 다 씻고 나서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개운했다.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착하다고 승화엄마가 음료수를 사줬다. 정말 정말 개운한 하루다. (10월 24일)
‘우짜지.’ 하며 승화엄마한테 내 몸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는 말이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아이가 이런 마음이 들 때는 망설이지 말고 일기를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나저나 엄마가 딸내미보다 강아지 목욕이 더 급한 까닭이 궁금하네요. 공정현 선생님이랑 아이가 이 글을 두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에 ‘정말 정말 개운한 하루다.’는 굳이 쓰지 않아도 좋겠어요. 굳이 이름 짓자면 일기를 마무리하는 말입니다. 이미 할 말을 다 했으면 된 건데 아이들이 괜히 덧붙일 때가 많아요. 뒤에 나오는 지진 이야기에서도 ‘다시는’ 부터 끝에 두 줄은 굳이 쓰지 않는 게 그림이 더 좋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도 그런 말을 저절로 쓰지 않겠지만 일기 지도를 할 때 한 번 쯤은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충고하기 / 박성주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나는 동생 나영이한테 충고할 거다. 나영이는 맨날 텔레비전을 자기 마음대로 본다. 나영아, 오빠도 좀 보자.
그래도 나영이는 좋은 동생이다. 동생 중에서 제일 예쁘고 말은 안 듣지만 그래도 내 동생이다. 나도 좋은 오빠다. (10월 10일)
2학년 국어 충고나 조언하는 말하기 공부를 하며 쓴 글 같습니다. 위에 두 줄은 좋은 충고이지만 밑에 두 줄은 충고가 아닙니다. 밑에 두 줄을 왜 썼을지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쓸 때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처음 두 줄을 쓰며 동생을 조금 안 좋게 말했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우리 동생이 좋은 동생이라고 보태었어요. 선생님이 이 글을 볼 거니까 좋은 말을 써주고 싶었겠지요. 그 마음이 예쁩니다. 글쓰기 선생님들은 아이들한테 눈치 보지 말고 정직하게 쓰라 하지만 아이들은 이래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또 쳐들어온 지진 / 이경원 (김해 봉황초등학교 2학년)
어제 종로상회에서 밥을 먹고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다. 놀이방 1층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데 아무도 안타고 있는 퐁퐁이 흔들렸다. 그래서 약간 이상했다. 그네를 다 타고 이제 퐁퐁을 타고 뛰놀고 있는데 엄마가 이제 집에 가자고 하셨다.
더 놀고 싶어서 떼를 썼더니 엄마가 방금 지진이 또 난 것 같다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께 19층 우리 집에 가는 것보다 여기 1층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다고 말하고 다시 놀았다.
엄마가 머시라머시라 하시는데 그냥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집으로 왔는데 뉴스에서 계속 지진, 지진, 지진. 진짜 지진 이야기만 나왔다. 계속 보고 있으니까 다시 무서웠다. 뉴스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머리를 보호하고 1층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엄마한테 뉴스 계속 보니 무섭다고 했더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틀었다. 그걸 보다가 침대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다시는 지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진아, 썩 물러가거라.!’ (9월 20일)
지진 난 날 겪은 일을 자세히 적었어요. 지진이 났을 때는 무섭지만 지나고 나니 이야기 거리가 많이 생겨서 좋습니다. 경원이는 가만히 있던 퐁퐁이 흔들리는 걸 보고 지진을 눈치 챘군요. 다 놀고 집에 가자고 하는 엄마한테 19층보다 1층이 안전할 것 같다며 엄마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납니다. 엄마가 머시라머시라 하든 경원이는 놀기 바쁩니다. 그러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무섭다고 징징대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 때 그 때 마음이 다릅니다.
이영자 선생님은 아이가 태어날 때 이미 온전한 우주로 태어났다고 했어요. 아이들 글을 읽으니 ‘아이들도 다 알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아이가 작은 우주, 하나의 인격으로 보입니다. 이 마음 놓지 않아야겠습니다.
첫댓글 정리하느라 고생했어요.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