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모임을 마치고
9월 15일 금요일에 홍은영 선생님 반 아이들 글을 모아 엮은《하늘을 나를 것 같아요》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엄마한테 혼난 날 / 유승연 (진안 장승초 2학년)
엄마 차에서 연필을 깎았는데 그걸 차에다 흘렸다. 그래서 엄마한테 혼났다. “필통 안 세워!!” 엄마가 차를 멈췄다. 엄마가 오빠한테 영어하라고 했다. 오빠가 달래줬다. 엄마가 미웠다. 오빠는 좋았고 엄마는 싫었다. (2016.5.20.금)
승연이가 차 안에서 벌어진 일을 적었습니다. 학교 마치고 학원까지 엄마가 태워주는 길인가 봅니다. 승연이가 연필을 깎다가 흘렸어요. 이 때 아이와 엄마 마음이 반대로 흐릅니다. 가만히 있던 오빠도 한소리 듣습니다. 오빠가 위로해준 덕에 승연이는 그나마 숨통이 트입니다. 승연이는 자기가 잘못한 것에 견주어 좀 많이 혼난 느낌이 들었나 봐요. 그래도 승연이는 글을 쓰며 자기 마음을 내 보여 조금 후련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사람이 글을 쓰는 까닭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아닐까요. 내가 쓴 글을 동무들과 함께 읽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힘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 덧붙이면 ‘오빠가 뭐라 하며 달래 주었지?’ 처럼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게 쓰는 지도도 함께 따라가면 좋겠어요. 짚어주지 않으면 6년 내내 이렇게 쓸 때가 있으니까요. 꼭 자세히 써야 좋은 글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세히 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마음껏 펼치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학교 가는 길 / 오윤후 (진안 장승초 2학년)
학교 지나가다 보면 곰티재 가는 길에 좀 집을 지을 거 같은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이 문이 될 것 같고, 남은 부분은 다 거실, 안방, 장난감 놓는 데가 될 거 같아요. 빨리 집을 지으면 좋겠어요. (2016.5.20.금)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에 보는 집터를 보고 글을 적었어요. ‘아침에 뭐 하나 보고 오세요.’ 하고 숙제를 내면 안 해 오는 아이에게 마음이 쏠릴 때가 많아요. 안 해 오는 아이에 실망하고 잔소리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해 오는 아이들도 제법 되거든요. 오히려 해 오는 아이 글을 귀하게 여겨주고 그것을 보기 삼아 안 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꼬시는 쪽으로 이끌어나가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말재주꾼입니다. 집터라고 할 것을 ‘좀 집을 지을 거 같은 부분’ 했어요. 아이들은 말은 이래 말랑말랑합니다. 국어사전에 이렇게 실려도 좋겠어요. 이 글에서 ‘장난감 놓는 데가 될 거 같아요.’ 하는 곳에 웃음이 납니다. 윤후는 집터를 보며 혼자 상상의 집을 짓고 상상의 세계에 빠졌겠지요. 상상의 조각 하나가 이렇게 예쁜 글로 태어났습니다.
모내기 / 오윤후 (진안 장승초 2학년)
모를 다 심은 다음에 ‘다 되스면 빠꾸’를 어떤 할아버지가 했다. 그 말이 좀 재미있었다. 내가 알던 말인데 못 들어본 사람은 재밌었을 것 같다. (2016.5.25.수)
모를 심고 못줄을 바꿀 때 쓰는 말. 할아버지가 가락을 붙여 재미있게 말을 했겠지요. 일하는 어른들 틈에서 윤후는 어른들 일하는 모습도 보고 말도 하나 배웁니다. 윤후는 커도 이 말을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 혼자 산책한 날 / 이은서 (진안 장승초 2학년)
다들 나를 점점 싫어해지는 것 갓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나한테만 화낸다. 특히 엄마는 툭하면 혼넨다. 엄마가 좋아서 꼭 안아도 좀 떨어지라고 꾸중만 한다. 다온이가 그런거고 엄마가 돌보라고 안했는데 나한테만 화풀이한다. 진~짜 어이 없는 건 내가 언니 물건 만젔을 때는 “언니 건 왜 만지냐고.” 화내면서 언니가 내 물건 만질 때는 “너도 만지면서 언니가 좀 만지면 안돼냐.” 하면서 나만 혼낸다. 어굴하다. 엄마는 월레 내 엄마 안갔고 귀신갔다.
샘도 처음보다 점점 달라지고 있다. 오늘은 또 쌤이 내 예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만 혼난 게 어굴하다. 내가 이상한건지 다른 사람이 이상한건지 모르겠다. (2016.7.6.수)
공부시간 / 이은서 (진안 장승초 2학년)
홍은영샘, 조금만 공부 시간을 줄여주세요. 왜냐하면 공부시간에 옆에 남자아이들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돼요.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어요. 계속 잘 앉아 있으려고 하니까 답답해요. 그리고 뭔가 내 자리에 앉기가 싫어요. 쉬는 시간 빼고. 밖에서 뛰어놀면서 공부하면 좋겠어요. 놀고 와서 한번 싸웠다고 계속 화내지 마세요. (2016.10.19.)
은서 글은 불평을 적었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글로 적었는데 가녀린 아이 모습이 느껴집니다. 어른 같으면 큰소리도 치고 했겠지요. 아이는 그럴 힘이 없기에 소박하게 부탁하는 쪽으로 불평을 할 수밖에 없어요. 덩치 큰 어른에게 말과 힘으로 맞서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드러운 불평 글도 고함치며 거칠게 하는 말과 똑같은 무게로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은 믿고 따를 때가 많은데 불평, 불만을 인정해주고 마음껏 말하게 한 선생님도 훌륭합니다. ‘계속 잘 앉아 있으려고 하니 답답해요.’ 에 담긴 진심과 설움을 우리는 모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두부 만들기 / 이 휘 (진안 장승초 2학년)
일어나서 놀다가 두부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먹는데 아마도 내가 너무 쌔개 눌러나 보다. 두부가 납작쿵이 됐다. 그리고 주진이껀 쥐포가 됐다. 근데 은결이껀 금고가 됐다. (2016.7.10. 비오는 날)
놀러가서 둘째 날에 두부 만들기를 했나 봅니다. ‘니 꺼가 예쁘니 내 꺼는 이렇니.’ 하며 견주며 즐겁게 놀았을 테지요. 놀다보면 저절로 글이 써집니다. 놀다가 한 말만 담아내도 글이 됩니다.
눈 / 손예은 (진안 장승초 2학년)
눈이 빨리빨리 왔으면
눈이 오면
쉬는 시간도 가끔 느러나는대
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대충 툭 써내도 뭐 하나 담습니다. 이렇게요.
아이들 글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덧 온갖 세상 이야기로 번져 나갑니다. 옆 사람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내 생각을 떠올리고 할 말이 생깁니다. 그 때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온전한 자기 말과 글이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동무들과 함께 공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뒤 없이 ‘그냥 니 이야기를 말해봐라.’ 하면 말문이 턱 막힙니다. 이것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어요. 운동할 때 하는 준비 운동처럼 아이들과 글을 쓰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 것을 떠올릴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떠올릴 시간이 모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달마다 실리는 아이들 글 마당을 스윽 읽고 지나칠 때가 많았어요. 다음 회보부터는 아이들 글을 꼼꼼히 읽고 이야기를 더욱 많이 나누어야겠어요. 이야기가 있어야 발견도 있고 깨달음도 있으니까요.
(이야기 나눈 사람 : 김수정 김귀숙 전주혜 이영자 이우근 제정희 진민주 강지은 김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