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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25년만에 다시 가본 흑산도
이 범철 추천 0 조회 38 05.09.30 09: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번 여행중에 최고의 히트는 흑산도 라미관광기사겸 가이드를 해내는

  걸죽한 입담의 광성횟집 아저씨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주섬주섬 올라탄 관광버스라서 별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타자마자 펼치는 입담이 어찌나 걸작인지...


  < 흑산도에 잘오셧습니다. 저는 안내를 맡은 최x서인디요.여섯시가 되아야 저녁밥을 준당게
    지금부터 저와 흑산도일주를 시작해보십시다. 영차 영차..>

 

  코스는 선착장-진리 처녀당-상라봉 정상 진입로인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마당
   마당-비리-심리-사리-소사리-청촌리-죽항리-선착장.
   진리마을에서 상라봉 진입로 쉼터 마당으로 오르자면 구불구불 쉼 없이,
   뱀처럼 허리가 휘어지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다. 

 

       


  

   마치 꼬불꼬불 속리산 이나 대관령의 구비길을 연상하리만치 급커브의 열두고개를 돌아가며
   느릿느릿 이어지는 ,[눈을 감고 들으면 영락없이 DJ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아저씨의 구수한 멘트는 뜨아하던 관광객들의 배꼽을 쥐게했다.
   이렇게 상식의 虛를 찌르는  입담덕으로

  자기가 라미관광에서 제일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한다  [믿거나 말거나..]

 

 

                      


 

  에~목포에서 뱃길로 93km,국토 서남단의 망망대해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흑산도는
  홍도의 동백숲은  거의 암벽위의 분재처럼 보이는 수준인디

  우리 흑산도는   그 크기가 홍도의 3배가 넘는닥하요
   


  뿐만 아니라 섬 안같이 산세가 험허고

  산에는 윤이 반들반들한 동백나무,향기가 기막힌 후박나무,
  저도 잘났다는 너도 밤나무 그러고 잘생겨부런 소나무들이 꽉차서
  공중으서 보먼 산이고 바다고 왼통 시커머부러요.그래~서 흑산도라...이름지었답디다.

 

  흑산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헌것은  통일신라시대 흥덕왕때인디요
  얼마전 테레비방송에 나왔던 그 잘나부런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후
  서해상에 출몰하는 왜놈들을 막을라고 반월성을 쌓으면서부터랍니다.
  본래는 월산군이었는디 나주목에 들었다가 왜정때는 무안군이었다가

  시방은 신안군이랍니다.
 

  흑산면은  100여개의 섬을 거느린 엄마섬으로

  무인도 85개를 빼불면 유인도는 15개 밖에 안되지만
  
  홍도 ,다물도 ,대둔도 ,가거도[可居島] ,만재도, 영산도같이 잘생긴 섬들이 많어

  관광인구도  솔찬히 많고 사는 사람도 많어
  인구는 시방 약6천명에 이른닥합디다.

 

  홍도주민 400여명이  거개 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것에 비하자먼
  흑산도는 논은 없지만  고구마 보리 참깨 마늘이 수확되는 밭도 있고
  해안선이 복잡한만큼 예로부터 해산물 양식도 활발하고  해녀들이 물질로 해삼 전복들을 따고
  할마시들도 바지락캐고 해서 안사람들 땜시 잘사는 사람들이 많어부러요.

 

 


  특히 쩌그 예리항은 3면이 바다라서 태풍의 영향을  거의 안받기땜시
  중국해와 서남단 인근 어장의 전진기지로,

  많을 때는 2000여척의 어선이 모여들어 여기서 섣부르게 돈 자랑하먼 쪽팔려부러요,

 

  또 흑산도는 또 두얼굴을 가진사나이랍니다.
  왜냐먼 어업전진기지  예리항이 유흥업소와 횟집 여관들로 밤새도록 흥청대는 분위기라면
  면소재지인 이쪽 진리는

  육영수여사가  살았을때  와서 보고 전학생  모두 전액 장학금을 주라해서

  지금까지 먹고 자는 기숙사비에  배우는거 몽땅 공짜인 흑산중학교도 있고

  그래봤자 100명도 안됩니다.만


  손암 정약전 선생이 씨를 뿌린 성당,교회당이 있어 아조 조용한 섬마을입니다.

  흑산도는 역사적 의미도 간직한,유배의 섬으로 수많은 문화유적이 많습니다.
  대궐에서 멀기도 멀었지만 그때는 뱃길이 험해서 가둬두기 딱 좋았던개벼요.

 

  


  정약용선생의 둘째형 정약전은 정조임금때 문과급제하고 병조좌랑까정 허신분인디
  천주교를 믿는 바람에 신유사옥이라고 천주교박해가 있었는디 그때 귀양 와서
  아그들도 갈치고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총서라는 자산어보를 썼다고 합니다.
  그려서 흑산도는 유독 천주교 신자가 많은디 나는 안댕깁니다.

 

  또 저그 올라가먼 의병장 면암 최익현선생이 귀양 와서 살었던 천촌리가 나오는디
  면암 선생은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1876년부터 3년 동안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답니다.


  귀양 살먼서도 서당을 차려 학생들을 가르치고 폐습을 타파할라고 애를 써서
  지금도 천촌리 입구에 면암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면암 최익현 선생 적거유허비’가 있습니다.
  최익현 선생이 독립국임을 강조한 ‘箕封剛山 洪武日月’ 친필이

  흑산면 천촌리 손바닥 바우에 새겨져 있다 이겁니다

 

 

        

 

   여그 진리에는 처녀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고

   또 천연기념물 369호로 지정된 노거수 초령목[招靈木]이있습니다.
   지금 다죽고 가지만 남었는디 그 이유를 나는 압니다.

   내친구 이장놈이 매달 나오는 나무관리비를 혼자 다 써불고
   관리를 안해서 시들시들헝게 면에서 불러다 따졌드니

   밤에 몰래 와서 살충제를  친다는것이 제초제를 뿌려부렀답니다.


  그래갖고 지금 쫒겨나서 홍도2구가서 살어라우 .그래서 저렇게 잎은 없고 가지만 남었답니다.

  초령목이 뭐시냐허먼  그 나무를 꺾어다 놓고 빌면 귀신이 찾아 온답니다.
  흑산도는 뱃사람들이 많어서 굿도 많이 하고 제도 많이 지낸게 전설도 많겄지요.
  또 고려 때 세워진  석등과 석탑이 있고 지석묘도 있습니다.

 

  또 진리2구(읍동) 뒷산에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때 쌓은  반달 모양의 반월성이 있는데,
  이것은 신라 시대 장보고가 왜구를 방어할라고 쌓은것이라고 합니다.
  또 진리에는 유리알처럼 물이 맑은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 피서철에는 엄청붐빕니다.


  흑산도사람들은 사는것이 바뻐서 동네이름도 한자씩입니다.
  진리,예리,마리,비리,심리,사리,샘골,옥섬,읍동...

 

  또 흑산에 3無가 있는디 먼지 압니까?

 

  신호등,열차,극장입니다.

  병원도 없었다가 얼마전에 생겼는디,이원장부부가 끄떡허먼 목포에 가불고 없습니다.
  병원문짝에 <쎄미나차 목포에 갑니다>하고 써붙쳤는디 ,

  그냥 심심혀서 간다고 하먼 욕먹을거같은게
  쎄미나허러 간다했을것이요. 흑산도사람 무식헌줄 알고...근디 나는 안속는당게요.

 

  병원이 닫쳐서 급한환자생기먼 어쩌는지 아요?
  육지사람들은 엠부란스타고 가는디 여그서는 헤리콥터 타고  육지로 갑니다.
  아 글먼 아프도 않음서 아픈척하고 헤리콥터부르면 어쩌능가 걱정되지라우?
  근디 군인들이 다 바보 아닝게 ,

  아프다고 실려오먼 눈깔부터 까서 전등으로 비쳐보먼 다 탄로난닥합디다.

 

  흑산도에서 제일높은 봉우리는 문암산 깃대봉인디 우리는 시방 상라봉 까지 갑니다.
  흑산 일주도로가 아직 완공이 안되야서 비포장이라 더 갈수가 없어라우.
  일주도로가 완공되먼  해안선 총길이는 약 42km가 되는디

  지금은  이 일주도로는 절반 27.6km입니다.
  옥녀봉이  있는  남부지역은 워낙 지형이 험해서 길을 낼 수 없어서입니다.

 

 

             

     


  제일 경치좋은 상라봉까지 가먼 봉화대도 있는디

  시간이 없어서 끝가지 갈수있을랑가 모르겄어요.
  그밑에 흑산도 노래비가 있는디 첨에는 5백원짜리를 넣어야 이미자노래가 나왔는디
  주민들이 추접시럽게 돈받는다고 야단을 쳐부러서

  지금은 돈 안너도 누르기만 하면 이미자노래 나오니 많이 눌러들 보시요..

 

  저 밑에 양식장들 보이지요?
  전복먹이로 쓰는 다시마양식장허고 우럭 양식하는 가두리양식장입니다.
  쩌그 영산도는 이름난 낙시터가 많어 일년 내내

  우럭, 참돔, 감성돔, 농어, 방어, 장어잡으러 낚시꾼이 많이 옵니다.

 

 

 

 

            


  
  
   일주도로 구간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상라봉(226.7m)입니다.
   이곳에 서면 흑산도 전경과 함께 예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돌아서면 아따 탁 트인 다도해를 배경으로 대장도와 소장도가 눈앞을 가로막는디...

   장도 너머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 섬이 어저께 가신 홍도입니다.

   상라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해상왕 장보고 장군이 쌓았다는 반월성터의 흔적이 있습니다. 

 

   기사는 무식한척

  능숙한 솜씨로 우리를 쥐었다 놓았다하며 흑산도 노래비가 있는곳에 내려놓았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목에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약초를 넣은 막걸리가 일품이란다.
  값도 싸니 전망대 갔다오며 한잔씩들 걸치고오라니

  순진한 ?남자들은 다들 명령?대로 부침개안주로 한잔씩을 했다한다.


  전망대에 서니 흑산 앞바다 예리항이 한눈에 보였지만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얼른 사진한장만  찍고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흑산도와 홍도여행은 눈비 오는 사철 다 가능한데

  안개낀날은 시야가 가려 배가 뜨지 못한다고 한다.
  여행객 거의가 한번쯤 비를 만나고

  안개때문에 태풍때문에 발이 묶여 며칠씩 섬사람노릇을 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비록 한번 연기하기는 했지만 날씨운은 있었나보다.

 

 

        

 

  약속된 여섯시에 여관에 도착하여

  문간방에서 버스에 탔던 다른팀들이랑 다같이 식사를 하였는데
  역시 섬이 커서 그런지 홍도보다는 나은듯했다.
  방도 크기는 홍도의 절반크기였지만 반듯했고
  욕실도 욕조가 있고 샤워기도 온전했지만 온수와 타월이 없는것은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 7시 아침밥을 먹고 해상일주를 위해 다시 부둣가로 내려갔다.
  애초에 몰랐던 해상일주비용이 1인당 15000원씩 추가되어 ,

  모자라는 비용을 회비에서 충당하기로 하였다.


  홍도가 워낙 유명한지라 ,

  흑산도야 홍어나 유명하지 뭐 볼것 있겠어?하면서 관광장주인을 따라 부둣가로 가서
  홍도유람선보다 조금 작은 유람선을 탔는데[20명이 안되면 취소된다]
  생각보다는 흑산도가 워낙 크고 홍도 못지않은 아기자기한 섬들이 많았다.

 

  촛대바위를 비롯해서 학바위, 칠성동굴, 고래바위, 원숭이바위,

  공룡섬 등과 같은 절경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예리항을 출발해 열목동굴-홍어마을-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

  -촛대바위-남근석-거북바위 등을 돌아보는 데
  홍도처럼 약 2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이 중 장쾌한 흑산도 경관을 대표하는 해상관광의  볼거리는 촛대바위와 칠성동굴.
  푸른 바다 위에 50m 높이로 솟아 있는 촛대바위는
  촛불로 흘러내린 촛농을 비롯해 맹렬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신라 때 장보고가 당나라와 교역을 할 때

  이 바위가 등대 구실을 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20m, 깊이 100m 정도인 칠성동굴은

  그곳에 들어가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유람선선장이 잠시 배를 동굴옆에 대주어서 모두들,

  입구는 한 군데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7개 동굴로 이루어져 
  이리 저리 뚫려있는 동굴 구경을 했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해파리떼가 널부러져있기도하고 둥둥 떠다니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어제 버스로 올라갔던 산쪽을 바라보니

  방목해서 키운다는 산양들이 움직이는것이 보였고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가지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바위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니
  다들 흑산도도 홍도못지않은 절경이 많아 15000원이 아깝지 않다고한다.

 

  우리는 10시 50분 목포가는 배를 타게 되었기에 약간 더 시간이 있었지만

  승객중에 9시50분 배를 타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9시40분쯤 선착장에내려야 했고 

  한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어 부두와 여객선터미날근처를 구경했다.

 

 

       

   


  흑산도 까지와서 그 유명한 흑산홍어를 못먹는게 아쉬웠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우리와 현준엄마 말고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뿐 아니라 지나가며,

  가게앞에  내놓은 홍어의 값을 물어보니...
  별로 크지도 않은데 헉! 25만원...우리같이 땡삐 관광객이 혀를 빼물만하다.

 

  여객선 터미날근처 수협에 들려 선물할것을 샀는데 정찰제라 재미도 없고 별로 싼것 같지 않아
  조금씩만 사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길건너골목에 노점상들이 건어물을 팔고있었다.
  오히려 거기서 파는 물건들이 덤도 주고 싼듯하여

  모두들 주렁주렁 사들고 찌는듯한 더위를 피해 터미날로 들어갔다.

 

  홍도에서 조금 늦게와서 10분늦은   11시에 출발한 배가

  우리를 싣고 목포에 도착한것은 12시 50분 ,
  시간맞춰 나온 현지가이드는 식사를 하고 1시40분까지 그자리로 다시모이면

  KTX를 타는 목포역까지 데려다 주겠다했다.


  첫날 점심에 실망한 우리들은

  50 분동안 어떤집을 골라내야 싸고 맛있는점심을 먹을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살인적인 목포항 한낮더위에 지친 우리들은 몇걸음 못가서 더위를 피해
  첫날 집의 곁에 있는 신해안식당으로 들어가고 말았는데
  거기서먹은 조기구이 백반과 낙지 비빔밥이 의외로 반찬도 푸짐하고 맛도 있어서
  8명 밥값으로 낸 6만원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2시 40분 KTX는 의외로 텅텅 비어서 우리자리는 역방향이었는데도
  차가 출발하자마자 적당히 맘에드는 자리로 옮겨 용산역까지 왔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부산쪽은 자리가 거의 없다는데 호남사람들이 역시 서울 올일이 적다는 얘긴지...

  비싸서 거부한다는 얘긴지...

 

  용산역에 도착하여 보니 우리는 다시 복닥거리는 러쉬아워에 갇혀있었다.
  수원에 오는 한시간동안 내내 서있어야 했기에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다.
  수원역 밖의 택시정류장은  또 왜그리 길이 긴지...
  힘들게 올라탄 택시의  운전사는 <민속촌방향으로 가주세요> 하자
  <오실때 얼마주셨습니까?>한다.아니 미터대로 주면 되지 웬 흥정?
  내가 10500원이요하자 그럼 11000원 주십시요 한다.


  택시 탈일이 별로 없어 물정에 어두웠던 나는 미터대로 요금을 받지 않는것이 불만이었지만
  수원택시가 용인에 가면 돌아올때 빈차로 와야하니 어쩔수없다는 말을 듣고 그제서야 
  아아 용인 시골에 사는 촌년의 신산함이 실감이 났다.


  손끝에 구정물 안묻히고 신선놀음했던 지난 사흘이 벌써 흘러간 꿈처럼 아득하다.
 
   

 
 
*** 흑산도에서 배터리가 다되어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인물사진을 제외하고는 다 네이버에서 빌려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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