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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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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일본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으~~ㅇ 추천 0 조회 1,331 11.11.06 14:34 댓글 8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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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06 23:49

    이것저것 뒤죽박죽인 의견이라 솔직히 손대기도 싫습니다. 식근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일제지배의 [수탈]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것만 우선 말씀 드리고, 몇가지 지적하자면... 일제의 조선 성곽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건 '필요'에 의한 조치였습니다...^^; 일본 전국 300여 번들이 번듯한 성곽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되었고, 오사카성은 공구리 복원이고... 당시에는 이런 것들을 '문화재'로 보기 보다는 폐건물로 보았기 때문에 용도전용이나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진 것 뿐입니다! 조선시대 성곽들은 도시성장을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된 것이고, 관아나 객사 같은 건물들은 학교나 병원으로 용도전용했다가

  • 11.11.06 23:55

    해방후 최근에 무식한 놈들에 의해 헐려나간 경우도 부지기수에요...-_-; 경복궁의 경우, 이런 폐건물 정리의 측면과 구조선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김빵삼이가 총독부 청사 폭파시킨 것처럼...

    뭐 일본의 식민지배 자체가 수탈이라고 하시는데- 이런 시각을 역으로 적용하면 조선-대한제국은 자국신민을 수탈하는 '봉건도적'들이고, 그 존속 자체가 쓰레기 역사라는 얘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ㅎㅎ;; 이런 [극단론]은 솔직히 동감하기 어렵습니다. 반은 '감정'이 들어간 내용인지라... 게다가 말씀하신 내용들 중 태반은 기존 수탈론의 반복입니다.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얘기죠...-_-;

  • 11.11.07 03:28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 기회를 앗아갔기 때문에 조선이 나중에 근대화 될지 안 될지는 모름!" 하시는데, 이런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시면 "아스테크 제국이 스스로 유럽 국가와 동등한 속도로 산업혁명을 이루고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는데 스페인놈들이 먼저 침공해서 못 했으니 그게 될지 안 될지는 모름! 그러니까 스페인 개객기!"랑 똑같은 논리입니다. 1910년의 대한제국은 분명히 근대화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아마 아니올시다가 더 높은 확률일 것입니다.

  • 11.11.07 03:45

    근데 스페인은 개객끼 맞지 않…

  • 11.11.07 06:18

    첝님 지금 20세기의 조선과 16세기에도 석기시대의 삶을 살고있던 아즈텍을 비교하시는것임? 아놔 골때리네.ㅋㅋㅋㅋ

  • 11.11.07 06:21

    그리고 이것저것 뒤죽박죽인 의견이라니... godhon님이 틀린말한것 같진 않은데요. 우리나라 내에있던 성곽은 우리의 조상들이 세운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성곽들을 허물때 우리가 찬성했나요? 찬성,반대를 표명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왜냐? godhon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런것을 표현할 기회조차 빼았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걸 폐건물로 보았기에 처리한것이다 라는 일본인이 말할법한 의견을 제시하고 계시니 참 같은 한국인으로써 부끄럽습니다. 아, 뭐 생각의 다양성은 인정해 줘야겠지만요.ㅋㅋ

  • 11.11.07 10:32

    godhon님>> 저도 조선의 자력 근대화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최소한 200년 이상 걸렸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패배의식에 쩔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항상 유의하는 것이 오래묵은 체제가 가지는 무서움이죠.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도저히 그것을 깨 버릴 방법조차 없는....보면 당시의 유학자들의 생각. [위정척사], [왜양일체론] 오랑캐와 일본은 하나다. 바름을 지켜 사악한 것을 물리쳐야 한다. 거기까지 좋은 혜안이 깃든 생각이긴 한데 그 다음 부국강병의 비책을 생각해내지 못했죠. 이야기를 살짝 돌려 갓혼님께선 일제시기가 고등 교육기회의 박탈이라 말씀하셨는데 동의합니다.

  • 11.11.07 10:21

    당시 일본의 책동은 참 교묘하긴 했었으니까.. 경성제대의 설립은 상당한 기망책동(내지는 일본인들을 위한)이겠지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당시 민중들에게 기초적 근대교육의 찬스가 크게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런지? 왜 그렇게 갑자기 대학설립운동이 늘어났는가?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아서 이다.. 물론 일본국정부가 조선의 인민에게 기초교육을 시행한 것이 선의를 가지고 그런것이 아님은 명백하지만 의도야 어쨋든간 기여는 크게 했음을 부인하긴 어렵겠지요. 사실 식근론의 관점은 이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국 관료대신들의 머리속은 악의로 가득차 있었지만... 정책의 결과물은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 11.11.07 10:29

    식근론과 관련성이 없을려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일본 식민지 시절이 압축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시기라 생각합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유학교육에서 근대적 교육으로의 전환. 정상적인 코스를 밟는다면 최소한 1~2백년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들이었지만... 특수한 시대적 환경하에서 대략 10년정도의 시기로 해서 당시 조선의 인민들에게 무리없이 받아들여졌죠. 물론 압축적 전환에 따른 댓가는 있었죠. 말씀하신 친일파라던가. 아니면 분단 같은.

  • 11.11.07 20:24

    charment//억, 생각해보니 스페인은 진짜로 개객기였었군요; 이런 실수를.. "스페인 때문에 아스테크가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 못했음!"이라고 하는게 제가 말하고 싶은 바인것 같네요.

  • 11.11.07 20:38

    오토 크레치머//1910년 당시에 을사늑약 등으로 일본에게 손이고 발이고 다 묶인 조선, 군대 해산을 해도 손 하나 까딱 못한 것이 1910년의 조선 현실입니다. 이 현실에서 자주지권을 지키면서 근대화를 한다구요? 1910년에요? 제 댓글 먼저 제대로 읽어 보시는게;; 분명 아스테크의 비유보다는 쉬울 것입니다만, 거의 불가능이죠. 마찬가지로, 근대화 의지도 별로 없던 고종과 위정척사가 국민 여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에서 근대화가 될 확률이 높을까요? 되지 않을 확률이 높을까요?

  • 11.11.08 01:10

    오토 크래치머// 그 조상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들 중 상당부분은 해방 후에 작살났답니다...^^; 표현의 기회가 있을 때도... "이게 다~ 왜놈들 탓이다" -> 요래버리면 정신적 자위가 될려나요?!...ㅎㅎ;;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파괴된 폐건물, 구시대 문화들을 살펴보시죠. 왜놈들 빰을 칩니다...ㅋ 이건 정말 부끄러운 [위선적 역사인식]입니다. 이게 이나라 x쓰레기 인문학 교육의 현주소죠...에효~

  • 11.11.07 10:35

    백제가 아니면 일본은 고대 왕국을 건설하지 못햇을것이다 라고 질문하면 일본사람들은 뭐라 할까요?

  • 11.11.07 12:22

    백제가 아니어도 잘만 먹고 살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백제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 대가로 백제도 일본의 군사력, 경제력을 잘 만 사용했으니까요.

  • 11.11.07 20:39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에 관련 내용이 나오더군요.

  • 11.11.07 10:36

    스스로의 의미가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자체 근대화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네요. 꼭 완전 폐쇄 상태에서 자체적인 요인으로 근대화가 일어나야 스스로 근대화는 아니죠. 주권이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주변국들로부터 각종 문물들이 들어오게 마련이고 그를 통해 근대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주권유지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을 뿐이지요.

  • 11.11.08 05:47

    뭐.. 솔직히 '근대화 할 가능성이 있느냐' 라는 논제로 가는거 자체가 좀 그렇지 싶습니다. 근대화라는 대안이 제시되었고, 거기서 수십년에서 수백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야 근대화 다 하지 않겠나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아편전쟁 이래 내전까지 벌였던 중국조차도 다시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고 근대로 가고 있고요. 이렇게 본다면야 근대화의 가능성, 당연히 있지요.

    그런데 당시 조선에 주어진 과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주권을 지키고 근대화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은 일본보다도 근대화의 기반이 부족했고, 시간도 모자랐을 뿐더러, 위협되는 국가도 훨씬 많았지요.

  • 11.11.08 05:50

    일본의 경우 유신으로 이어지는 막말의 혼란기와 내전기간동안 외국의 간섭은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영향력 싸움에 지나지 않았을 뿐, 일본의 주권 박탈로 나가는것과는 별무관했었습니다. 덕분에 외부의 위협이 거의 없는 안정적 상황 하에서 수십년에 걸쳐 근대화를 추구했죠. 근데 그에 비해서 조선에는 청나라와 일본, 나아가 러시아도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영토 침탈까지 염두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일본의 경제적 기반에 비해 조선은 보다 취약한 위치에 서있었다고 볼 가능성이 크고(이건 논란이 있긴 하지만), 또한 일본과 같은 개혁적 정치세력이 존재하여 충분한 지지를 얻은 상황도 아니었지요.

  • 11.11.08 05:52

    이처럼 국가가 처한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서 자력 근대화를 할 수 있었느냐, 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식으로 시작하는 인식은 그냥 망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떡밥일뿐이지요.

  • 11.11.08 09:31

    전에도 글을 썼지만 일본이 '좋은' 의도로 한국을 근대화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근대화를 시키려고 했다손 가정을 해도 일본인들만의 의지로는 한국이 근대화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남겨놓은 근대적 시설들은 한국의 근대화의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절대적'인 요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박정희 대통령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니듯 근대화도 "'오로지' 무엇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비非역사적이고 非인문적인 시각입니다

  • 11.11.08 15:54

    식근론은 '좋은 의도' 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통치로 인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는가' 를 판단할 뿐.
    한국은 근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식근론의 근대화는 '중립적인' 개념입니다.
    아, 덤으로 본문의 그 '일본인들' 도 근대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용어는 같으나 그 내용은 학계에서 나오고 있는 식근론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측의 인식처럼 근대화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섞어서 대응한다면 일본측 논리에 말리는 셈이지요.
    근대화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류사상 최악의 비극은 '근대화' 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으니까.

  • 11.11.08 17:12

    네 저도 중립적인 논지에서 얘기하는건데요? 카페내에서 다른 분들이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시니까 '설사 좋은의도였다 치더라도' 일본은 하나의 요소이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점은 '무엇 하나 때문에' 소위 '근대화'가 되고 안되고가 아니라는거지 일본이 좋은 의도인가 아닌가는 제 논지에서 요점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딱히 '근대화'가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 주장의 요점은 반복하자면 '하나의 요인만이 어떤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 11.11.08 17:18

    예를 들자면(이것은 '가정'입니다) 일본이 한반도에 온갖 근대를 넘은 현대적 인프라를 만들어 남기고 일본으로 떠났다고 '칩시다'(이것은 '가정'입니다) 그러나 인프라만으로 소위 '근대화'가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인프라를 운영하고 사용하는 건 '사람'입니다 소위 '근대화'라는 것이 되었다면 그것을 이뤄낸 것은 사람이지 인프라가 아니겠지요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겁니다

  • 11.11.08 12:30

    식근론에 의하면 영국은 그야말로 현대 지구인의 아버지ㅋ 글고 한일역사관계에 입각한 식근론쟁은 언제나 핫감자ㅋ

  • 11.11.08 22:12

    아전인수가 심하군요...^^; 그것은 [시혜론]입니다. 식근론과는 안드로메다의 차이가 있죠...ㅋ

  • 11.11.09 14:02

    과연 그렇군요. 구별이 있는줄도 몰랐다니.. 전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군요.

  • 11.11.08 12:31

    식민지의 결과로서의 긍정 부정을 따지면 일본의 논리에 말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건의 발단과 과정입니다. 애초에 그들이 명분없는 전쟁을 건것이 잘못된거고 비인륜적인 갖은 악행을 저지른 것이 잘못된것입니다.
    결과만을 놓고 따진다면 그들이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중국문물에 쩔어살던 조선은 지금쯤 조선인민공화국이 되어 있을수도 있지요. 어쩌면 인민해방군이 몰려들어 티벳처럼 중국의 한 주가 되어 있을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결과만을 놓고 따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일본 친구에게 그점을 명확히 하셨어야 했습니다.

  • 11.11.08 16:46

    하히해님 말씀이 틀린게 아닙니다. 저도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에용. 근데 여전히 제가 논점으로 잡은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시고 계세요. 일본제국주의가 들어오지 않았어도 역사의 여러갈래 가능성 중에는 미국발 네덜란드발 중국발 러시아발 등 근대화를 추구하는 여러 트리거가 있었을 겁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제논점은 일본애들이 무력으로 밀고 들어와서는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근대화를 이루는데 도움을 줬다면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지도 않았을 겁니당.

  • 11.11.08 17:34

    근데 그 견해는 "식근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는게 하히해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설명인게지요. 식근론과 제국주의적 악행은 일정정도 영역이 겹치는 공통된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바라보는 시각과 중점은 전혀 다르거덩요.

    그러니,

    "제국주의 악행 저지른 것 맞아요. 근데, 그건 그렇고, 어쨌든 식민지화가 우리 근대화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 것도 맞아요."

    둘 다 인정하면 걍 논쟁 끝.. 이네효.

    - 끝 -

  • 11.11.08 21:39

    애초의 잘못은 조선시대 후기를 관통하는 양반지배층에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국가 따위는 내팽개친 무한탐욕과 부패. 역사의 보답은 한가지 였죠. 멸망. 당시의 일본국의 관료대신들도 물론 사악하긴 하였으나 사실 그들은 약육강식이라는 동시대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대원칙에 따른 행동이었을 뿐 아닐런지요.

  • 11.11.09 02:31

    초록그리움// 그런 양반 지배층을 용인하고, 그들이 그렇게 흘러가게끔 만든 것은 [조선사회] 전체입니다...^^; "이게 다 양반 탓이다"와 "이게 다 왜놈 탓이다"는 서로 통해도 너무 통해요...ㄲㄲ 또한 그 일본국 관료들도 일본인들, 나아가서 아시아 인민들에게 씻을 수 없느 상처를 남기고 '자폭'했습니다...ㅋ

  • 11.11.08 22:28

    저는 구제수단이 있음에도 투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망한 것이라면 가차없이 욕을 하겠습니다만... 구제수단이 없어서 못쓴거는 이해하는 편입니다. 당시 조선의 하부 인민들에게 적절한 구제수단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면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빡치게 노력했죠. 그때 시대를 관통하던 보수주의야. 600년 유교통치가 남긴 불가항력적 상황인데..뭐

  • 11.11.09 20:26

    저도 식근론이 정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미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난후 조총의 위력을 알게되어 서양처럼 조총을 주력으로 한 병력을 편성하게 되지요. 역사를 뒤져봐도 명나라 말기에 강홍립장군이 원군으로 갔던때부터 병자호란 나선정벌등 조선은 이미 군대가 근대화 되 있었습니다. 또한 상업도 조선이 중농억상 정책을 피고 명나라처럼 해금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조선도 중개무역국으로 성장할수 있었을 겄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조선인들은 조세제도의 폐단을 겪어오면서 신분사회의 모순을 깨닫기 시작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와서 교육을 가르친게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려고 였겠습니까?

  • 11.11.09 22:51

    애초에 [근대화]에 대한 개념이 없으신 것 같네요...^^;

  • 11.11.09 20:30

    제가 듣기로는 식민지와 본국의 지식수준차가 너무 나면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일본이 교육을 가르친 이유는 이것에 있지않았을까 합니다. 철도도 반란일어나면 군대 보내고 세금 빨리 걷어들이는 용도로 썻지 저희를 위해 철도를 놨다는게 말이 안되지요. 그리고 조선에 철도를 먼저 개설한것은 영국입니다. 일본이 최초가 아니라는 거죠, 굳이 우긴다면 영국이 조선을 근대화 시켰을수도 있겠네요 뭐 억지지만. 아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지 않았더라면 저희나라도 일본엔 뒤쳐질지 모르지만 개발도상국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 11.11.10 00:18

    '역사에 만약이 없다'는 것은, 대체역사라는 것을 주장할 때에 굉장히 많은 assumption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assumption이 많을수록 계는 예측하기는 쉽더라도 점차 성립하기 어렵게 됩니다. '일본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번에 썼던 거지만, 이민족의 침공이 없었다면 송하이나 애보리진은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한 서기 60세기 정도까지는 다들 근대화해서 송하이, 애보리진 나름의 산업혁명을 갖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건 있지 않았던 일이며, 이민족의 침공이 전혀 없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강력한 제한 조건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논할 의미가 별로 없죠.

  • 11.11.24 16:47

    뭘 어렵게 생각하나요? 대놓고 일본은 핵폭탄 두발 맞은 바람에 지금의 부귀 영화가 있었다고 받아쳐주면 되는걸.

  • 11.11.24 16:50

    이말에 원숭이처럼 날뛰면 같은 논리적 형식으로 설명해주면 됩니다. 핵두발 맞았다고 미국이 베푼 은혜를 모르는것이 일본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어느정도 인정해주면 진지하게 근대화 이론 얘기 하면 됩니다.

  • 12.02.11 21:50

    일본은 페리 제독 덕분에 근대화 되지 않으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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