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 지는, 원래가 하나로서,
육체와 마음의 조화야 말로 중도(中道)의 참모습이다.
육체가 괴로우면 마음도 병든다.
마음이 동요하면 식욕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색심(色心)은 하나이다.
마음을 깨달아 혼(魂)의 영원함을 알았을 때는,
밝지 못하였던 무명의 원인은 육신의 오관에 있으며,
마음이 육체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던 것을 알아차린다.
마음의 구속을 하나하나 제거하여,
중도의 진실을 깨닫도록 하시오.!"
"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킨비라는 붓다의 자비로운 말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붓다의 설법은 세 사람 외에 많은 사로몬들이 모여,
붓다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아난도 아니루다도, 머리를 깊이 숙이고, 붓다의 설법을 들었다.
듣고 있는 동안 아난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세게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강한 충동이었다.
기어이 참지 못하고, 그는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세 사람 머리에서는 황금색의 후광이 보이고 있었다.
붓다는 그것을 바라보고,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아난은 뒤에 붓다의 비서가 되어, 붓다의 신변을 돌보게 되었다.
또, 그는 기억력이 뛰어나,
붓다가 돌아가신 뒤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형태로
붓다의 설법을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당시에는 글을 쓰는 습관이 적어서,
모두 사람들의 구전(口傳)에 의해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붓다의 설법이 글로 남겨진 것은, 아쇼카 왕 시대이다.
아쇼카 왕은 열렬한 불신도로서,
어떻게 해서라도 정법을 후세에 남기려고 생각해서,
재산을 바쳐 불신도를 모아,
붓다가 남긴 신리 편찬에 힘을 기울였다.
물론 법을 편찬함에 있어서는, 바라문의 행자가 이에 참가하였다.
바라문 행자는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자가 많았기 때문에,
아쇼카 왕은 행자인 종형제로 하여금 이 책임을 담당케 하여 편찬케 하였으니
이를 제2차의 결집이라고 한다.
제1 차의 결집은,
붓다가 열반한 뒤, 마하 가샤파를 중심으로 한 결집을 말한다.
이때 불법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붓다의 비서역인 아난이 적임자라 하여, 그를 중심으로
" 나는 붓다로부터 이렇게 들었다.
저렇게 들었다."
는 것을 모두가 모아서 아쇼카 왕 때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구전(口傳)은 잘못 전해지는 것이 많으나,
당시 사람들은 글 쓰는 습관이 적었기 때문에,
기억력은 현대인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확실했다.
글자가 있으면, 글자에 의지하는 것이 사람의 버릇이다.
그런데 글자가 없어서, 구전(口傳)밖에 없다고 하면 의지해야 할 것은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대개의 일을 기억으로 족했으며, 기억의 잘못도 적었다.
이 경향은 인도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 희랍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라톤은, 인간의 기억에 대해서,
" 인류는 결국 문자에 익숙해져서, 문자에 의지하게 되므로
기억력은 감퇴하고, 건망증이 심해지리라고 말했다"
이 말을 생각할 것도 없이,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물질문명에 혜택받지 못하고,
지적 수준은 현대보다 낮은 면도 있었으나,
정신적인 면에서는 대단히 뛰어나,
현대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고, 문화를 가졌었다.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이집트 문명, 마야 문명, 희랍 문명,
그리고 고대 중국의 문명 등은, 그 뛰어난 면을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의미로, 불법은 아쇼카 왕 시대까지는, 그리 잘못없이 전해졌다고 할 것이다.
또 말이 문자화되어, 사람들 눈에 쉽게 접촉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읽은 자의 지(知)와 의(意)가 포함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잘못되는 일이 많아진다.
말에는 말 이외의 감정이 더해진다.
같은 말이라도 그때의 분위기, 장소, 어감(語感),
상황 그 밖의 조건들이 들어와 말은 생물처럼 약동한다.
하권 p269~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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