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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프랑스 2. 영국 3. 독일 4. 이탈리아 5, 스페인 6, 그리이스 7. 오스트리아 8. 덴마아크 9. 러시아 10. 노르웨이 맺음말 |
머리말
치과의사학이란 치의학과 관련된 사회적 환경 및 역사적 배경 등을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사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치과의사가 하고 있는 일의 역사적인 의미와 배경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현실적 제약을 물리치면서 잠시 짬을 내어 떠난 유럽여행에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거나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앞에서 사진 몇 장 찍은 것으로 만족한다면, 치과의사에게 그 여행은 고비용 저효율적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치과의사에게 보다 의미있는 유럽 여행이란 일반인의 눈으로만 보는 유럽이 아닌 치과의사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추가하여 둘러보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치과의사가 하고 있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다면 일상으로 돌아와 진료하면서 충만함과 행복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싶다. 치과의사학을 공부하면서 유럽 여행도 즐길 수 있는 장소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프랑스
프랑스 파리는 예술과 과학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Art & Science를 다루는 치과의사는 꼭 둘러봐야 할 도시일 것이다. 예술의 도시임을 입증해주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과, 에펠탑, 샹젤리제와 개선문, 노틀담 성당, 몽마르뜨 언덕, 베르사유 궁전 등이 있다. 반면에 파리가 1800년대에는 ‘세계 과학의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에서 과학 분야가 가장 앞선 나라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곳으로는 파리 식물원, 자연사 박물관, 파스퇴르 박물관, 에콜폴리테크니크, 파리과학원, 파리5대학에 있는 의학사박물관등이 있다.
그 무엇보다도 치과의사가 꼭 가봐야 할 곳은 현대 치의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되고 있는 Pierre Fauchard(1678-1761)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치과박물관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포샤르의 위대한 업적뿐만 아니라 17-19세기 무렵의 치의학과 관련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30분터 5시 30분까지 예약한 사람들에게만 개방되기 때문에 꼭 유념해야할 정보이다.
의사에겐 히포크라테스, 한의사에겐 허준, 간호사들에겐 나이팅게일처럼 치과의사에겐 피에르 포샤르를 꼽을 수 있다. 포샤르의 가장 큰 업적은 치과의사를 기술자가 아닌 전문 직업인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포샤르는 18세기에는 고령의 나이에 해당하는 50세인 1728년에 863페이지 분량의 책 ‘The Surgeon Dentist(Le Chirurgien Dentiste)을 출판하였다(그림1). 이 시기에는 치과치료 방법들이 모두 비법으로 인식되어 동료 치과의사들에게 철저하게 비밀시 되어있었다. 포샤르는 이러한 비법들 중에서 최고의 것들만을 모아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책을 집필하였다. 포샤르는 이 책에서 해부학, 외과학, 치주학, 근관치료학, 보존학 및 보철학에 관련된 내용들을 언급하였다. 재미있는 내용도 있는데 오줌 특히 하루의 첫 번째 소변을 mouthwash로 사용하는 것을 책에서 추천하였다. 또한 포샤르는 환자의 품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여 하늘이 준 선물로 불려지는 안락의자에서 진료하기를 추천하였다(그림2). 이제 더 이상 환자를 바닥에 눕혀서 치료하지 말자고 선언하였다. 포샤르의 치의학에 대한 업적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그를 기념하는 International Pierre Fauchard Academy란 단체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도 치과의사학적으로 흥미로운 곳이다. 먼저 박물관 안에서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석비를 만나게 된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제1왕조 함무라비 왕이 제정 반포한 법전중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 치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18세기 치과시술 장면을 보여주는 조반니 도메니크 티에폴로(1727-1804)의 명화 “Tooth Puller(돌팔이)"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그림3). 이 시기에는 치과의사를 설명하는 단어로 Tooth puller 또는 Charlatan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연단 주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어떤 남자가 발치한 치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옆에는 발치를 당한 여자가 고통스럽게 울고 있으며 또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잡고 있다. 발치한 남자 앞에는 또 다른 여자가 손으로 왼쪽 뺨을 만지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무렵 발치사들은 광대와 악사들과 함께 돌아다니면 진료하였는데, 이 그림에서도 발치사 옆에 원숭이 한 마리가 묶여 있으며 연단 아래에는 악사가 만돌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림의 우측에 터번(turban)을 쓴 이슬람 교도로 보이는 사람이 구경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무역이 활발하였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 영국
Wells는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가장 작은 도시이다. 반면에 Wells의 도심 중앙에 위치한 웰스 대성당은 1175년경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300년에 걸쳐 지어질 정도로 그 규모가 웅장하다(그림4). 웰스 대성당에는 400여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는 국왕이나 성자들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성당의 후미진 곳에는 실제 생활 모습을 표현하는 조각상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한 조각상은 치통이 있는 사람(왼쪽 집게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고통스러워 함)의 모습을 하고 있다(그림5). 이 무렵에는 국소마취제도 없었을텐데 치통에 시달리다가 마취 없이 발치되는 환자를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치통을 다스리는 여신 또는 치과의사의 수호신으로 숭상되는 St. Apollonia에 관한 이야기를 학창시절 치과의사학 교과서에 배웠던 어렴풋이 기억난다. 성녀 아폴로니아를 위한 성당이 영국 본토에서 70마일 떨어진 건지섬(Guernsey island)에 있고 성당의 나이가 무려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그림6). 14개의 좌석을 갖춘 작은 St. Apolline's chapel은 1390년 Nicholas Henry에 의해 건축되었고 치과의 수호 성인 St. Apolline를 위해 봉헌되었다. 건축된 이후 500여 년 동안 주인이 수없이 많이 바뀌었으나 1873년 건지주에서 120파운드에 구입하여 첫 번째 유적으로 지정하였다. 1972년부터 노후된 부분을 보수하기 시작하여 1978년 기독교 통합을 위한 기도 장소로 다시 봉헌되었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10시에 영국 성공회교에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건지섬은 영국해협의 채널제도에 있는 섬이고 주도는 St. Peter port이다. 건지섬은 영국령으로 영국 본토와는 120km떨어져 있지만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과의 거리는 50km정도 되어 오히려 프랑스와 더 가깝다. 프랑스에서 건지섬으로 망명한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이 섬에서 완성했다고 한다(그림7).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35년동안 마음속으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17년에 걸쳐 완성한 세기의 걸작이다. 이런 최고의 명작 탄생에 두 여인이 큰 기여를 하였다. 위고는 1832년 쥘리에트 드루에라는 여배우를 불륜으로 처음 만나 50년 동안 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녀는 레미제라블 원고를 정서하였고, 위고가 망명하는 영국 건지섬까지 부인과 자녀와 함께 따라갔다. 위고는 1845년 레오니 당트라는 여배우와 간통혐의로 감옥에 가는 수모를 당한다. 그 뒤부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레미제라블 집필을 시작하여 1862년 건지섬에서 탈고했다.
레미제라블 영화의 한 장면에 발치사 간판이 나오는데 불어로 Arracheur de dents(tooth puller)이다. 팡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앞니 두 개를 팔아 40 프랑을 마련하여 악마 같은 테날디에게 보냈다. 그 당시에 전치 한 개가 20프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세기의 20프랑이 21세기인 지금은 어느 정도의 값어치일까 궁금해진다. 좀 더 자세히 팡틴이 전치 두 개를 파는 과정을 살펴보자.
광장을 지나면서 팡틴은 희안하게 생긴 차(車)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봤다. 그 차 위에는 붉은 색을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순회중인 완전틀니, 아편제, 가루약 및 묘약을 파는 치과의사-곡예사였다. 팡틴도 군중에 끼여 이 남자의 연설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었다. 발치사가 웃고 있던 예쁜 팡틴을 보고 갑자기 소리쳤다. 거기 웃는 아가씨 치아가 참 예쁘네요. 당신의 두 Palettes를 내게 팔면 하나 당 1나폴레옹 금을 주지. Palettes가 뭔데요? 팡틴이 물었다. 위 앞니를 말하는거요. (비꼬는 뉘앙스로) 치과의사가 말했다. 끔찍해라. 2나폴레옹이라! 이가 빠진 늙은이가 옆에서 중얼댔다. 아가씨 좋겠네! 팡틴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남자의 목 쉰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도망쳤다. 생각해봐요. 예쁜 아가씨! 2나폴레옹, 적은 돈이 아니지. 생각이 있으시다면, 오늘 밤에 Tillac d'argent 여관에 오면 날 찾을 수 있을게요!
화가 잔뜩 난 팡틴은 집에 돌아와 이웃 마그리트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해가 되요? 이런 나쁜 놈을 봤나! 어떻게 이런 사람을 그냥 돌아다니게 놔둘 수 있지! 내 앞니 두 개를 뺀다고! 그럼 내 꼴이 어떻게 되겠어! 머리는 다시 자라지만, 이는! 아! 괴물 같은 놈! 5층에서 떨어져 죽는게 낫지! 오늘 밤에 Tillac d'argent 여관에 있는다고 했어요. 얼마 준대요? 2나폴레옹. 그럼 40프랑이네. 네. 40프랑이에요.
생각에 잠겼다가 바느질 일에 돌아갔다. 15분 후 바느질을 멈추고 계단으로 돌아가 테날디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옆에 있던 마그리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속립성 발진이 뭐죠? 뭔지 알아요? 병이에요. 약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어휴 말도 못해. 어떻게 하면 걸리는 거에요? 그냥 걸리는 거에요? 특히 어린이들이 걸리지. 죽나요? 심심찮게 죽지... 팡틴은 편지를 다시 읽었다. 저녁이 오자 팡틴은 여관이 모여 있는 길로 갔다.
다음날 아침 마그리트는 침대에 앉아있는 팡틴을 보았다. 창백하고 차가운 잠을 세운 것이다. 모자는 무릎 위에 있었다. 양초는 밤새 타 거의 다 없어져 있었다. 마그리트는 문가에 멈춰, 이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주여! 초가 다 탔다니! 무슨 일이 있는거야! 그리고 머리카락이 없는 머리를 마그리트쪽으로 돌리는 팡틴을 보았다. 팡틴은 밤 사이에 10년은 늙었다. 예수님! 팡틴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이제 우리 애는 그 끔찍한 병으로 죽지 않을거에요. 난 기뻐요. 그러면서 마그리트에게 탁자 위에서 빛나는 2나폴레옹을 보여줬다. 이럴 수가! 이렇게 많은 돈을 어디서? 그냥.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다. 양초가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핏빛 미소였다. 붉으스름한 침이 입가에 고였다. 입에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두 이는 뽑혀져 있었다.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1802년에 태어났으며 위고의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신임을 받는 군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덕분에 위고는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여러 도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폴레옹은 1799년 쿠테타를 일으켜 제1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프랑스의 혼란을 잠재웠지만 1통령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1804년 황제에 즉위하였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위하여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으로 교향곡을 작곡했다(그림8). 그러나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교향곡 제목을 ‘영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아마도 베토벤은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하는데 앞장선 나폴레옹이 황제라는 즉위에 오른 것에 실망하여 마음을 바꾼 것 같다.
나폴레옹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하였지만 1815년 워털루(Waterloo) 전쟁에서 패한 후 아프리카 서쪽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나폴레옹은 괴혈병으로 고생하였다. 괴혈병은 콜라겐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 C의 결핍에 위해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증상으로 구강내에서도 출혈이 일어나고 치아가 탈락하고 고열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의 꿈을 물거품시켰던 워털루 전쟁은 20여년에 걸쳐 5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낳은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Waterloo teeth'라는 신종어를 탄생시킨 치의학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그림9). 포셀린 치아가 개발되기 전인 19세기 무렵에는 틀니를 위해 하마, 바다코끼리 또는 코끼리 상아를 깍아서 만든 인공치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아들은 자연치보다 더 부자연스러웠고 쉽게 파손되었다. 이 시기에는 ivory base에 자연치를 배열한 틀니가 가장 심미적이었고 좋은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제작된 틀니는 6주정도 소요되었고 치료비도 엄청났다. 나중에 이런 틀니를 사람들은 'Waterloo teeth'라고 명명하였다.
부유층 사람들은 자연치를 이용한 틀니를 선호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연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 무렵 자연치는 주로 도굴범, 영안실이나 묘지 근무하는 부정한 사람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거래되었다. 또한 판사의 동의하에서 사형수의 치아들도 높은 가격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자연치의 거래량은 수요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 시점에 워털루 전쟁은 자연치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였다. 워털루 전쟁의 전사자들에게 무기와 귀중품들의 약탈이 이루어졌고 치아도 발거되어 거래가 이루어 졌다. 이러한 신체 훼손은 거의 신성모독의 수준에 해당되지만 발거된 치아들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유럽 전역과 미국에까지 공급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tooth hunter 또는 robber들의 활약은 ‘백의의 천사’로 불려진 나이팅게일이 참여한 크림전쟁(1853-1856)과 노예가 해방된 미국 남북전쟁에서도 계속된다.
나폴레옹의 상악 우측 견치는 괴혈병으로 인하여 1817년에 발거되었고 결국에는 1821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폴레옹의 주치의 배리 오메아라는 발거된 견치를 프란시스 마체로니 장군에게 선사하였고 그 이후 수세기동안 마체로니 가문이 치아를 소장해왔었다. 나폴레옹의 견치는 1956년 어떤 사람에게 양도 되었고 2005년 11월 10일 영국 경매 시장에서 11,000파운드(약2000만원)네 낙찰되었다.
1955년 스웨덴 치과의사 Sten Forshufvud(1903-1985)는 나폴레옹의 사인에 의심을 갖고 이 분야에 깊은 연구를 하였다. 독극물에 조예가 깊은 포쇼포트는 나폴레옹의 시종관이 쓴 회상기를 정독한 후 나폴레옹이 측근에 의해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분석화학 저널에서 머리카락에서 비소의 함량을 분석할 수 있다는 논문을 읽고 파리에 가서 시종관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을 얻게 되었다. 분석 결과에 의하면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속에 든 비소 함량이 정상보다 40배나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포쇼포트는 나폴레옹이 죽기 전 5년 동안 불규칙적이면서 다양한 농도로 비소가 투여되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검사한 머리카락들이 몇 년도 것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또한 결정적으로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기에 포쇼포트의 주장은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하지만 포쇼포트가 검사한 머리카락은 나폴레옹의 몇몇 측근들의 집안에서 수대로 내려온 가보로 밝혀졌고 일부 샘플들은 포쇼포트를 거치지 않고 스코트랜드에 있는 실험실에 보내져 재검사를 하게 되었다. 재검사 결과는 포쇼포트의 주장과 일치하였다. 나폴레옹이 측근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사실은 나폴레옹을 프랑스의 위대한 영웅들 중 한명으로 존경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불편한 진실인 것 같다.
3. 독일
독일어로 동화를 메르헨(Märchen)이라고 하고 어원상 ‘이야기’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메르헨)들을 독일 동화작가로 유명한 그림형제가 평생 동안 다듬어서 ‘그림동화’를 출판하였다. 이러한 그림동화 이야기와 관련된 도시들을 연결하여 메르헨 가도(Marchenstrasse, Fairy-Tale Route)가 형성되었다. 그 출발점은 그림 형제의 출생지인 하나우(Hanau)에서 시작하여, 그림형제 박물관이 있는 카셀(Kassel), 18세기 무렵 실존인물인 돌팔이 의사 또는 ‘강철수염 박사’의 일화로 유명한 한뮌덴(Hann-Munden), ‘피리부는 사나이의 근원지로 명물이 된 하멜른(Hameln), 브레멘 음악대의 배경지인 브레멘까지 총연장 길이 600km에 이르는 동화마을 여행 코스이다. 여러 도시중에서 한뮌덴은 치과의사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의사 Dr. Eisenbart(Johann Andreas Eisenbart, 1663-1727))가 생애를 보낸 한뮌덴의 고풍스런 시청 건물 꼭대기에서는 정시마다 장경이 펼쳐진다(그림10). 뻐꾸기 시계 아래에 있는 창문이 열리고 춤추는 인형들이 빙글빙글 움직이면서 아이젠발트가 진료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여름에는 아이젠발트를 위한 축제가 열리고 지금도 교회 광장에서 매주 일요일 강철수염 박사로 알려진 아이젠 발트 실존 인물을 테마로 한 연극이 상영되고 있다.
Barber-surgeon이면서 신비요법사(occultist)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젠발트는 그의 아버지와 동일한 직업을 가진 매형인 Alexander Biller의 지도하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23세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면허를 획득하였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떠돌이 의사로 진료하였다. 그는 골절을 포함한 외과적 수술을 시행하였고 자신만의 특효약도 판매하였다. 또한 아이젠발트는 자신이 고안한 의료용 기구(cataract needle, polypus hook)를 제작하여 진료에 사용하고 판매까지 하였다. 그 당시에는 바늘을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한 아이젠발트의 발상은 사람들에게 돌팔이 의사로 폄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이젠발트는 뛰어난 발치술로 인하여 명성과 인기가 넘치게 되었다. 그는 축제가 열리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치아를 발거하였고 인공치아를 제작하여 보철도 시행하였다. 그가 명의가 된 배경을 알게 되면 씁슬함을 느끼게 된다. 보통 아이젠발트는 120여명의 구성원들로 이뤄진 그룹으로 돌아다니며 진료를 하였는데 구성원들에는 연예인, 광대와 악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단원들이 펼치는 공연을 사람들이 보면서 흥청거리며 먹고 마시며 떠드는 동안 환자가 고통으로 인하여 내지른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것을 행동조절 방법중 distraction이라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국소마취제가 없는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Tooth puller 또는 Charlatan이라고도 하였다.
아이젠발트는 사후에도 많은 발자취들이 남겨졌다. 1800년 무렵에는 Ich bin der doktor(My name is doctor Eisenbarth)라는 제목의 음악이 독일에서 유행하였고 Eike Pies는 동일한 제목으로 책까지 출판하였다. 으로 사용되었고(그림11), 1977년에는 그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다. 아이젠발트는 40여년 동안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했던 떠돌이 또는 돌팔이 의사로 불려졌지만 한뮌덴의 St. Blasius 교회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Physician'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독일을 통일한 Wilhelm 1세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카이저 빌헬름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는 베를린 한복판, 브라이트샤이드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그림12). 독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였는데 세계 2차 대전중 폭격으로 인하여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인 채로 지금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부서진 모습이 마치 치아가 파절된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빌헬름 교회의 애칭이 바로 ‘Broken tooth'라고 한다(그림13). 치아는 파절된 채로 방치되면 큰 합병증을 야기할 수 있는데, 카이저 빌헬름 교회의 파괴된 모습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폐해에 대한 산 교육장으로써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위하여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으로 교향곡을 작곡했으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교향곡 제목을 ‘영웅’으로 바꾸어 1804년 발표했다. 독일의 천재 음악가 베토벤(1770-1827)에게도 치아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다(그림14). 28세 때부터 청각 장애을 겪기 시작한 베토벤은 지휘봉을 이용하여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었다. 치아로 꽉문 지휘봉을 피아노에 접촉시키면, 피아노의 진동이 치아와 두개골로 전달되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bone conduction sound라고 하는데 음파가 두개골에 전도되어 직접 내이(內耳)에 전달되어 소리로 들을 수 있다. 독일 Bohn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에 가면 베토벤의 teethmark가 선명하게 표시된 지휘봉이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우리 치과의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북부 해안 도시인 베니스는 도시 한복판에 운하가 있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중 하나이다.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베니스 영화제,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 인도에서 발생한 콜레라가 베네치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는 역사적인 배경이 그려진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등이 베니스하면 떠오르는 것 들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베니스를 대표하는 곳은 성마르코 대성당(Basilica San Marco)이다(그림15). 2명의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마가복음의 저자인 성마르코의 유골을 훔쳐 온 후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납골당을 세웠다. 그러나 납골당이 화재로 파괴되었고 그곳에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성마르코 대성당이 1090년에 건축되었다.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San Marco)은 치과의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치과의사의 조상이 이발사임을 확실히 증명해주는 두 명의 이발사 부조상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그림16). 한 사람은 머리를 손질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발치를 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천대를 받았던 직업인 이발사(Barber-surgeon)가 치아 치료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기점으로 역사적, 학문적 발달로 인하여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현재의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면 어떤 모습일까? “사계”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의 아버지 직업이 바로 이발사임과 동시에 산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고 한다. 비발디의 아버지가 치과진료도 했던 이발사였는지는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비발디에게 풍부한 음악적 재능을 물려준 것은 맞는 것 같다.
중세유럽 암흑시대에 교부(Church Fathers)들은 질병 또는 치통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린 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도승과 사제들이 외과적 수술과 발치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단도 적지 않아 수도승과 사제들이 의료행위를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정작 성직자로써 본연의 일은 소홀하게 되었다. 따라서 12세기 무렵에 모든 성직자들에게 의료행위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 이후에는 성직자들이 진료할 때 보조자로 참여했던 이발사들이 직접 진료를 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이발사는 정말 다재다능한 직업으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발사 본연의 일인 shaving beard와 cutting hair뿐만 아니라 종기를 절개하였고, 사혈과 관장을 시행하였고, 마지막으로 발치도 하였다.
중세 유럽의 이발사들은 지금의 외과의사, 치과의사, 이발사의 역할을 모두 하였는데 그에 따른 혼란이 있어 영역을 구분하게 되었다. 1375년 영국 런던의 이발사 단체는 이발소(barbery)와 진료소(surgery)의 영역을 조절하는 권리 청원을 준비하였다. 이 단체는 1462년 처음으로 오랫동안 누렸던 특권을 보장받는 헌장을 부여받았고 특별히 발치가 그 헌장에 포함되었다. 1540년 헨리 8세(1491-1547)는 법령으로 Barber-Surgeons라는 새로운 단체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법령에 의하면 외과의는 이발사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하였고 이발사는 외과적 시술을 발치에만 제한하도록 하였다. 200여년이 지난 1745년에는 외과의와 이발사 단체가 서로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Hair-cutting, tooth-extraction과 blood-letting을 시행하는 이발사들을 최소 1800년대까지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이발사들은 사혈(bloodletting)을 홍보하기 위해서 생혈이 담긴 양동이를 창문에 진열하였다가 피가 응결되면 도로에 그냥 버렸었는데 수세기가 지난 후에는 생혈을 이용한 방법 대신에 red and white pole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pole이 지금의 이발소 싸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시인 John Gay(1685-1732)는 barber-dentist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접시모양의 대야(Bason)는 16-17세기에 이발소의 상징물로 인식되었고 용도는 bloodletting, rinsing과 shaving이었다(그림17). 또한 사혈을 잘하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피묻은 붕대를 막대기에 걸어놓은 것처럼 Gay의 시에서도 발치된 치아들을 장식품으로 사용하였다.
His pole with pewter bason's hung
Black rotten teeth in order strung
Ranged cups, that in the window stood
Did well his threefold trade explain
Who shav'd, drew teeth, and breathed a vein.
산마르코 대성당은 성서의 이야기를 화려한 모자이크 기법으로 묘사한 벽화 장식들로 유명하다. 이 벽화들은 12-17세기동안 제작되었으며 미술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성당 정중앙에 있는 가장 큰 돔의 천장에는 한 가운데 예수가 승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주변에 성모 마리아, 대천사들과 12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시기에는 모자이크 그림이 글을 알지 못하는 신도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성서에 있는 단어의 갯수는 788,260인데 그중에 ‘tooth'란 단어가 47번 나온다(그림18). 구약에서 36번 신약에서는 11번 언급되고 사람의 치아는 39번 동물의 이빨은 8번 나온다(REF). 치아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성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 개의 치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처럼 소중한 치아를 다루는 치과의사란 직업도 매우 소중할 것이다.
성서에서 gnashing of teeth는 무려 14번이나 언급된다. 무언가에 분노, 유감, 억울한 경우 치아를 간다는 뜻이다. 앞에서 성서에 동물의 이빨이 8번 언급된다고 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야수(짐승)의 이빨이 3번, 사자의 이빨이 5번 나온다. 중국의 사자성어 이안환안 이아환아(以眼還眼 以牙還牙)와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문구가 성경책에서도 4번이나 나온다. 치과임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충치(bad tooth), 외상(broken tooth), 치아색상(tooth color), 치아부식(erosion)과 용어들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에는 tooth가 포함된 재미있는 영어 숙어도 있다. 에스겔서 18장 2절(구약)에 set one's teeth on edge는 누구를 불편 또는 불쾌하게 한다는 관용어이며 욥기 19장 20절에 with(by) skin of one's teeth는 가까스로 또는 간신히를 뜻한다. 치아 한 개의 가치가 몸종을 자유롭게 풀어 줄 수 있었으며 치아를 swords와 flock of sheep로 비유하였다.
[Job 16:9] God assails me and tears me in his anger and gnashes his teeth at me; my opponent fastens on me his piercing eyes. [욥기 16장 9절]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쪽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
[Daniel 7:7] It (beast) had large iron teeth; it crushed and devoured its victims and trampled underfoot whatever was left. [다니엘서 7장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함.)
[Revelation 9:8] Their hair was like women's hair, and their teeth were like lions' teeth. [요한계시록 9장 8절]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같으며
[zekiel 18:2] What do you people mean by quoting this proverb about the land of Israel: ‘The parents eat sour grapes, and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에스겔서 18장 2절]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Job 19:20] I am nothing but skin and bones; I have escaped with only the skin of my teeth. [욥기 19장 20절]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구나.
[Exodus 21:27] And if he knocks out the tooth of a manservant or maidservant, he must let the servant go free to compensate for the tooth. [출애굽기 21장 27절]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리니라.
[Proverbs 30:14] Those whose teeth are swords and whose jaws are set with knives to devour the poor from the earth, the needy from among mankind. [잠언 30장 14절]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Song of Solomon 4:2] Your teeth are like a flock of sheep just shorn, coming up from the washing. Each has its twin; not one of them is alone. [아가 4장 2절] 내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깍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베네치아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도바(Padua)의 성 안토니오(Anthony) 대성당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그림19). 1195년 포르투칼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1220년 수사가 되어 열정적인 선교활동을 하다가 1231년 파도바에서 36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였다. 안토니오는 파도바 전체를 개종시킬 정도로 특출난 설교 능력을 지녔었다고 한다. 안토니오 사후 32년이 지나서 성인의 유해를 현재의 파도바 성당으로 옮기기 위해 무덤이 처음으로 열렸는데 놀랍게도 유해 중에서 혀가 생생하게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성 안토니오의 설교력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유해의 혀, 성대, 치아가 보존된 하악골이 성당에 전시되어 있다(그림20). 사심없는 선교적 열정과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성 안토니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싶다.
파도바에서 성 안토니오 성당을 방문한 후 갈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인 파도바 식물원이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신 1545년에 개관했으니 식물원의 나이가 무려 450년이 넘는데도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파도바 의과대학과 공동으로 식물을 이용한 천연치료약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파도바 의과대학을 거쳐간 의사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먼저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로 칭송되는 Andreas Vesalius(1514-1564)(그림21), 혈액 순환이론을 제창하여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William Harvey(1578-1657)(그림22), 난소와 자궁을 연결하는 나팔관(fallopian tube)이라는 용어를 만든 Gabriele Falloppio(1523-1562), 중이와 코의 뒷부분을 연결하는 유스타키오관(Eustachian tube)은 Bartolomeo Eustachi(1514-1574)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자는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의학자인 vesalius, falloppio, Eustachi는 치아와 관련해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베살리우스는 교합의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하였고 치근의 수와 길이를 자세히 기술하였다. 또한 사랑니의 정상적인 맹출이 어려워 자주 매복된다고 하였고 치수강이 치아에 영양을 공급한다고 주장하였다. Falloppio는 영구치가 독립적으로 발생한다며 tooth follicle을 묘사하였고 치배와 새의 깃털 발생 과정이 유사하다고 하였다. Eustachi는 1563년 치의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책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Libellus de dentibus를 출판하였다. 그는 치아 형태학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한 첫 번째 학자였다. 그의 저서에서 유치열이 영구치열로 교환되는 현상을 언급하였고 dental sac, tooth bud의 존재를 밝혀냈다.
5. 스페인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주(Galicia)의 주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9세기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곱(James, Jacob)의 유해가 발견된 후, 알폰소 2세(Alfonso II, 759-842)가 이곳에 유럽에서 가장 큰 순례성당을 건축하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유래를 보면 산티아고는 스페인에서 7년간 포교 활동을 했던 Jacob의 스페인어 이름이고 콤포스텔라는 야곱의 묘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별이 내리는 들판을 뜻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사도 야곱의 묘)은 성지 순례를 하는 여행자들이 항상 마지막에 찾게 되어 예루살렘(그리스도의 성지)과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바티칸) 대성당과 함께 세계의 3대 성지이다(그림23). 지금은 성지 순례뿐만 아니라 세계 도보 여행객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Cathedral of Santiago de Compostela)의 대희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1943년 스페인에서 발행되었다(그림24). 이 우표들은 성당의 부속 예배당에 보관중인 물품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순례자 성야곱의 작은 동상이 그려진 우표다. 이 동상은 “Santiago del Diente"(St. james of the Tooth)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gold-silver로 제작되었고 길이가 51cm 정도이다. 성 야곱의 동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이 동상은 15세기경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청된다. 또한 동상에 그려진 라인의 우아함과 섬세함 때문에 그 당시 전형적인 종교적인 은세공 장식물로 여겨진다. 야곱 동상은 오른손에 금색의 장식품을 들고 있는데 이 안에 성야곱의 치아가 보관되어 있다. 이 동상은 초기 성지 순례때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운반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동상의 왼손에는 경건한 기증자에 관해서 새겨진 명판이 들려져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코르도바는 소설 카르멘의 배경무대였던 작은 도시이다. 안달루시아는 아랍어로 에스파니아를 뜻하며 지명에도 이슬람 문화가 남아있듯이 이곳은 8세기경 이슬람 왕조의 수도로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쳤었다. 이슬람교도들은 1236년 그리스도 교도에 의해 멸망당하여 물러나게 되었고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에 성당이 건축되었다. 이 건축물이 메스키타(Mezquita)이며 스페인어로 이슬람교 사원을 뜻한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혼재하는 메스키타는 스페인의 역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축물이며 지금은 코르도바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코르도바에서 또 다른 관광명소는 우리나라의 도산대로 또는 퇴계로와 비슷한 Calle Albucasis(Calle-Street)이다. Great Surgeon인 Albucasis의 생가가 있는 작은 골목길일 뿐이지만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코르도바는 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Albucasis(936-1013)가 태어나고 의학을 공부한 도시이다(그림25). 알부카시스는 라틴어 이름이고 본명은 AbulKasim(Abu Al-Qasim Al-Zaharavi)로 전형적인 이슬람식 이름이다. 알부카시스는 32개의 챕터로 구성된 위대한 외과학 저서(Al-Tasrif =General surgery)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는 소작술(cauterization), 적출술(amputation), 관거술(trephining), ligature, 골절 및 외상 치료, 부인과학, 안과학 및 치과학이 언급되어 있다. 이밖에도 수백여 가지의 외과 및 치과 기구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알부카시스의 저서는 라틴어로 ‘De Chirurgia(Surgery)'로 번역되어 1497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출판되었고 많은 대학들이 외과학 교과서로 사용하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항상 ’my children'이라 부르면서 50년동안 수많은 의사들을 교육하였다.
Albucasis는 구강외과학 위대한 선구자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업적이 훌륭하다. 그래서일지 몰라도 1964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개최된 제4회 Arab Congress of dentistry and Oral Surgery를 축하하는 기념 우표에 알부카시스의 초상으로 도안되었다. 그는 기형치의 처치에 대해서 최초로 서술하였고, root-extraction forceps과 치석제거 기구들을 발명하였고 치석이 치주질환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부카시스는 달구어진 철제 기구로 충치가 있는 부위를 태워서 파괴시키는 방법으로 치료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충치 치료 후 완자들에게 한 시간 동안 좋은 버터를 입안에 머물고 있도록 하였다. 발치를 할 때 특히 환자들이 통증을 혼돈하여 엉뚱한 치아를 발치해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발치할 치아를 결정할 때 매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 하였다.
6. 오스트리아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는 영화 ‘Sound of music’이 제작된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도시다.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둘러보는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주요 코스는 미라벨 정원(Mirabell gardens), 레오폴트스크론 성(Leopoldskron palace), 헬부른 궁전(Hellbrunn palace), 논베르크수녀원(Nonnberg abbey), 몬지 마을(Mondsee)이다. 이 중에서 잘츠부르크에서 동쪽으로 차로 20분정도 떨어진 몬지 마을에 있는 몬지 성당은 치과의사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외관 전체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몬지 성당은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멋진 곳이다. 영화 Sound of music에서 마리아와 트랩 대령의 결혼식 장면이 촬영되었던 몬지 성당(Mondsee Cathedral)은 사랑하는 연인을 맺어주는 성당으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그림26). 성당내부에서 중앙 제대를 향하는 통로 양쪽에 여러 개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St. Apollonia의 성상을 만날 수 있다. 치아가 잡힌 발치겸자를 오른손에 든 아폴로니아 상은 치과의사에겐 더욱 친숙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7. 그리스
에피다브로스(Epidaurus)는 아테네 서남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펠레폰네소스(Peloponnese) 반도에 위치한 고대 도시 유적지이다. 펠로폰네소스는 그리스 문명 더 나아가 서구 문명의 어머니라고 최근 시골의사 박경철이 출판한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강조하였다. 이처럼 문명의 어머니에 자리 잡은 에피다브로스에서 의술과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가 태어났으며 그를 위해 건축된 신전은 그리스 전역에서 많은 환자들이 찾아와 치료를 받아 가장 유명한 치료센터가 되었다. 에피다브로스에서의 치료 방법은 약간 색달라서 음악, 공연, 운동 및 신탁(神託)등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에피다브로스 유적에는 치료목적으로 환자들에게 연극을 상영한 원형극장, 체력단련실(Stadium), 운동치료실(Gymnasium), 수면치료실, 신탁을 받기 전에 몸을 깨끗하게 씻는 목욕탕이 있다. 이중에서 고대 원형극장은 기원전 4세기경에 반원형으로 건축되었고 1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극장에서 확성장치없이 연극 배우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효과가 뛰어나다. 현재에도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매년 6월부터 8월까지 공연이 열린다.
전설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가 평소 짚고 다녔다는 지팡이로 뱀을 때려서 죽였는데 또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와 상처를 문질러서 죽은 뱀을 다시 살렸다고 한다. 이처럼 죽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뱀은 회생과 약초를 발견하는 힘이 있는 동물로 간주되어 고대 그리스에서 병을 치유하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은 의술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나라의 의사단체들이 로고로 쓰이고 있다(그림27).
아스클레피오스의 출생과 가문을 들여다보면 무척 흥미롭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버지는 아폴로이고, 어머니는 코로니스였다. 임신한 코로니스는 다른 인간을 사랑 하게 되는데 아폴로는 코로니스의 외도에 격분하였다. 아폴로의 동생 아르테미스가 코로니스를 활로 쏘아 죽이고 불로 태우려고 할 때 아폴로는 코로니스의 배속에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제왕절개술을 행하여 아스클레피오스를 탄생하게 하였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출생부터 의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워 의사가 되고 나중에는 의술과 치유의 신이 되어 그리스의 영웅이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에피오네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아들과 5명의 딸을 두었는데 장남 마카온은 외과, 차남 포달레이오스는 정신과와 내과를 담당한 신이었고, 장녀 하이게이아는 건강을 돌보는 여신, 차녀 파나케이아는 약물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특히 치위생사(Dental hygienist)의 명칭은 health, cleanliness과 sanitation을 담당하는 하이게이아(Hygiei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그림28).
8. 덴마크
안데르센(1805-1875)은 어린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치통 아줌마(Auntie Toothache)’라는 동화가 있다(그림29). 제목이 치과와 친숙한 느낌을 주지만 막상 읽어보면 난해한 동화다. 안데르센은 노년에 치통과 불면증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치통 아줌마’라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치통과 틀니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 나를 짓누르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동화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진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예술을 서로 연관시켜 창작활동을 한 안데르센은 정말 위인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1870년에 시작되어 2년 후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치통아줌마라는 작품의 영감은 훨씬 이전에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Hans Tegener (1853-1932)는 안데르센의 동화책에 삽화를 그려서 유명해진 덴마크의 화가이다. Tegner는 치통을 강조하기 위하여 톱, 드릴, 망치와 끌을 이용하여 괴물들이 치아를 파괴하는 모습을 그렸다(그림30). 덴마크 오덴세(Odense)에 있는 안데르센 박물관에 가면 안데르센의 생전에 사용하던 틀니와 Tegner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19세기때 제작된 틀니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9. 러시아
1830년 러시아 크림(Crimea) 반도에 있는 왕의 무덤에서 금합금으로 제작된 길이가 12cm정도인 화병이 발견되었다(그림31). 이것은 3-4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매우 정교한 Repousse 세공(금속판의 안쪽을 두드려서 무늬가 외부로 도드라지게 나타남)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화병에 그려진 네가지 모습을 통해서 스키타이인(Scythian)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허리에 찬 벨트와 바지를 부츠에 접어 넣은 의상이 인상적이여 지금 러시아의 전통의상 루바슈카(Rubashka)와 거의 일치한다.
William Henry Eames(1828-1894)는 가장 최초의 자료중 하나로 기록되는 스키타이 시대의 치과의사 모습이 이 화병에 새겨져있다고 1886년에 보고하였다. 스키타이인은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무렵 남부 러시아에서 생활했던 민족이다. 화병에는 1) 전사가 무릎을 꿇고 왕에게 보고하는 모습, 2) 왕이 활을 구부리는 모습, 3) 수행원이 왕의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는 모습, 4) 치과의사가 왕의 좌측 치아를 발치하고 있는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독특한 것은 치과의사와 환자가 서로 무릎을 꿇고 마주 앉아 진료하는 장면인데 자세만 보면 마치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자세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관례라고 한다. 스키타이인 치과진료 모습은 치과와 관련된 우표에서도 도안으로 많이 사용되었고(그림32), 이 화병은 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그(St. Petersburg)에 있는 herittag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10. 노르웨이
릴레함메르(Lillehammer)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5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지만 199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써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6위의 성적을 올려 ‘릴레함메르’는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곳이다. 릴레함 메르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마이하우겐 박물관(Maihaugen Falk Museum)이다. 이 박물관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으며, 치과의사 Anders Sandvig(1862-1950)이 설립했다는 것이 특징이다(그림33).
샌드빅은 노르웨이 오슬로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릴레함메르에 개원한 치과의사이다. 그는 노르웨이 고유의 민속자료들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고 시골 문화 유산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샌드빅은 1887년부터 오래된 농장 건물, 농업과 관련된 오래된 물건, 고미술품등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릴레함메르가 개발되면서 허물어지게될 운명을 맞은 오래된 건물과 집들을 매입한 후 분해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기까지 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가 수집한 150개의 건물과 30,000개의 수집품들을 통해서 17세기와 18세기 당시의 노르웨이 민속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릴레함메르 시청은 샌디빅의 수집품들을 구입하여 마이하우겐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한 곳에 모여진 전통 가옥과 상점, 농가등은 멋진 장소로 변신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샌드빅은 이 박물관에 전시책임자로 고용되었다가 나중에는 박물관 관장으로 근무하다 1946년에 은퇴하였다. 샌드빅은 어쩌면 건축 폐기물이 될 뻔 했던 오래된 건물들을 분해하여 이동시킬 생각을 한 Sanvig의 혜안에 탄복이 절로 나온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 건강 국가 중 하나이다. 1949년 노르웨이의 유명한 아동작가인 토르뵤른 에그네르(Thorbjorn Egner)는 ‘Karius & Baktus’라는 동화책을 출판하였는데 노르웨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읽었을 정도라고 한다(그림34). 1954년에는 이 책이 15분량의 만화영화에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1986년에는 미국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르웨이에서 라면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인 이철호가 조국인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가 이 책을 번역해서 2007년에 출판했다. 이 책를 감수하신 분은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치과의사연맹 회장을 역임하셨던 윤흥렬 선생님이 하셨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에리크라는 소년의 치아속에 카리우스(충치)와 바크투스(세균)가 있다. 평소에 칫솔질을 싫어하고 단것을 좋아하는 에이크덕분에 카리우스와 바크투스는 에이크의 입속에서 열심히 집을 짓고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에이크는 치통 때문에 치과에서 치료를 받었고 카리우스와 바크투스가 사는 없어져버렸다. 또한 그 날 저녁 에리크가 칫솔질을 열심히 하여 더 이상 숨을 집이 없어진 카리우스와 바크투스는 치약거품과 물과 함께 입 밖으로 밀려 나가 하수구를 통해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 지금도 카리우스와 바크투스는 칫솔질을 싫어하는 어린이를 찾으며 배고파 하며 지내고 있다.
맺음말
치과의사에게 여행이란 좁은 진료실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난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벤트일 것이다. 또한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치과의사들만 가질 수 있는 마음 속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캠프도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필자는 여행을 계획할 때 치과와 관련된 곳을 꼭 여행지에 포함시키곤 한다. 왜냐하면 치과의사의 눈으로 여행을 하며 보고 느끼는 감정이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여 개원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은 아름다운 자연경관, 다양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윽한 예술의 향기가 융합되어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여행지중 하나이다. 또한 치과의사학적(齒科醫史學的) 관점에서 바라본 유럽은 치의학적 의미가 있는 콘텐츠와 재미있는 스토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유럽 10개국에 있는 16곳의 관광지를 소개하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내는 개원 생활속에서 치과의사와 관련이 있는 유럽 관광지를 여행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설레임과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그곳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끼는 지적 충만함은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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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Schwartz AW : An organized comprehensive dental collection of stamps, AW Schwartz, 1995
그림설명(순서대로)
1. 1961년 Pierre Fauchard 사후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우표.
2. 그림 1의 기념우표가 붙은 First Day Cover.
3. Giovanni Domenico Tiepolo(1727-1804)의 명화 “Tooth Puller"
4. 영국 남서부에 있는 Somerset주의 Wells에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웰스대성당
5. 웰스대성당에 있는 Toothache man
6. St. Apolline chapel in Guernsey island
7. 2002년에 발행된 레미제라블 기념우표
8. 1999년에 발행된 나폴레옹 기념우표
9. 1990년 벨기에에서 발행된 워터루 전쟁 그림우표
10. 1977년 Eisenbart 사후 250주년 기념우표
11. 1921년 독일의 2 Mark 긴급통화
12. 1953년에 발행된 카이저 빌헬름 교회 기념우표
13. 1995년에 발행된 카이저 빌헬름 교회 기념우표
14. 1972년에 발행된 베토벤 기념우표
15.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베네치아에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산마르코 대성당
16. 산마르코 대성당에 있는 barber-surgeon 부조상
17. Gerrit Dou(1613-1675)의 명화 "The dentist."
18. 2011년 Guinea에서 발행된 Bible 기념우표
19.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13세기에 건축된 성 안토니오 대성당
20. 1931년 포르투칼에서 발행된 St. Anthony 기념우표
21. 1985년에 발행된 Andreas Vesalius 기념우표
22. 1985년에 발행된 William Harvey 기념우표
23. 성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24. 1943년 스페인에서 발행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대희년 기념우표
25. 1964년 시리아에서 발행된 제4회 Arab Congress of dentistry and Oral Surgery를 축하하는 기념우표
26. 2009년 오스트리아에서 발행된 몬지 성당 기념우표
27.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과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28. health, cleanliness과 sanitation을 담당하는 하이게이아(Hygieia)
29. 2005년 덴마크에서 발행된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
30. Hans Tegener(1853-1932)의 안데르센 동화책 치통아줌마 삽화
31. 재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스부르그(St. Petersburg) herittage museum에 전시된 화병
32. 1985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발행된 제73회 FDI 기념우표
33. 1987년 노르웨이에서 발행된 마이하우겐 박물관 기념우표
34. 1984년 노르웨이에서 발행된 Karius & Baktus 기념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