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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2. 치과교정학과 관련된 역사적 주요 인물과 그들의 업적 3. 과학으로서의 치과교정학의 정체성 확립 4. 치과교정장치와 재료의 발달 5. 치과교정학에서의 주요 논쟁 |
1. 머리말
치과교정학은 두개안면복합체의 성장, 교합의 발육 및 치아안면변형증의 치료에 관한 연구와 관련된 치의학의 한 분야이다. 치과교정학을 의미하는 단어인 ‘Orthodontics'는 ortho(=correct, 직선 또는 바르다)와 dons(=tooth,치아)와 tics(학문)가 합쳐진 ‘orthodontosie'에서 유래하였는데(Lefoulon, 1841), 초기에는 치아를 바르게 배열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치아의 이동만이 아닌 악골의 크기와 형태 변화를 도모하는 악정형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Orthodontics and Dentofacial orthopedics로 의미가 더 확장되었다.
치의학이 의학과 분리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치열교합의 복잡성 때문이다. 과거에는 교합의 발육과 유지 및 치료보다는 외과적인 시술과 치아의 수복에 관한 면이 더 강조 되었으나 오늘날 교합의 발육, 안면의 성장 그리고 부정교합에 대한 기초 지식은 치의학의 핵심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다. 치과교정치료는 치아안면발육에 관련된 세 가지의 기본적인 조직인 치열, 두개안면골격 및 악안면근육계에 관여하여 저작장애, 안모의 심미적 결함, 턱관절의 기능장애, 치아우식증과 치주질환의 이환, 언어장애 등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술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타 전문분야와의 협동 치료에 의한 치료 결과의 향상과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적 경향 때문에 치의학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치과교정학과 관련된 역사적 주요 인물과 그들의 개괄적인 업적 및 치과교정학의 발전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아보고자 한다.
2. 치과교정학과 관련된 시대별 역사적 주요 인물과 그들의 업적
1) 고대에서 19세기 중반까지
비뚤어지고 돌출된 치아의 치료에 대해서는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기록이 있으며 의성 Hippocrates(460-377)도 치열과 두개안면기형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로마시대의 Celsus(BC 25-AD 50)는 유치와 영구치의 교환에 대하여,Pliny the Elder(AD 23-79)는 정출된 치아의 치료를 위해 최초의 기계적인 치료를 하였으며, 기원 후 5세기 경 Adamandios는 부정교합과 사람의 성격의 관련성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치과교정학의 아버지로도 추앙받는 Pierre Fauchard는 1728년에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The Surgeon Dentist: A Treatise on the Teeth에서 금속판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치아를 양의 창자로 묶어 움직인 bandeau를 기술하였다. 프랑스왕의 주치의였던 Bourdet(1722-1789)는 치아의 총생을 해소하기 위해 소구치를 뽑는 오늘날의 연속발치술과 비슷한 개념을 주장하였고, 영국의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인 Hunter는 1771년 그의 저서 The Natural History of Human Teeth에서 치아와 악골의 형태에 대해 기술하였다. 그의 제자인 Fox는 1803년 최초로 부정교합을 분류하였다. Delabarre는 1815년에 crib과 screw를 소개하였다. Schange는 1841년 교정치료에만 국한된 최초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screw와 clamp band를 기술하였고 3년 후에는 vulcanite와 rubber band의 사용에 대해 설명하고 교정치료에서의 중요한 고정원(anchorage)의 개념에 대하여 기록을 남겼다. Kneisel은 1836년에 석고모형을 부정교합의 진단에 사용하였고 주걱턱을 치료하기 위해 chin strap도 사용하였으며 가철식 교정장치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 근대에 돌입하며 (19세기 말-1930년)
19세기 말부터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치의학교육의 체계화로 치과교정학도 제대로 된 학문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Kingsley(1825-1896)는 이 시대의 선구자로 돌출된 치아를 후방이동하기 위해 후두부를 고정원으로 사용하였고(occipital traction), 교합을 개선하려고 vulcanite 재질의 경사판(inclined plane)을 이용하였으며, 구개열의 치료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1880년에 저술한 A Treatise on Oral Deformity에서 부정교합의 원인, 진단, 치료 계획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교정치료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Angell(1860)은 구개확장을, Magill(1871)은 cement로 밴드를 치아에 합착하는 방법을 ,같은 해에 Coffin은 발카나이트 플레이트에 W-형의 피아노 줄을 삽입하여 정중구개봉합을 시도하였다. Farrar(1839-1913)는 치아이동에 관계된 생물학적 지식에 대하여 연구하여 교정치료를 과학화한 공로로 미국치과교정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그는 치체이동의 방법을 설명하고 교정력은 간헐적으로 가하는 것(intermittent force)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Talbot(1847-1952)는 1896년에 발견한 X-ray를 부정교합의 진단에 도입하였고,Baker는 악간고무줄을 소개하였다. 필라델피아 치과대학의 학장이던 Guilford(1841-1919)는 교정치료를 활발히 하면서 치과대학의 학부 과정에서 최초로 부정교합에 대한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ase(1847-1923)는 보존학교과서에 Practical Treatise on the Technics and Principles of Dental Orthopedia라는 제목으로 교정치료에 대해 저술하였으며 2급고무줄과 치체이동을 최초로 시도하였다. 또한 그는 교정치료를 위한 발치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Angle과 소위 “대발치 논쟁(Great Extraction Debate)을 하였다.
치과교정학에 가장 뚜렷하고 역동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Edward H.Angle(1855-1930)이다. 따라서 그는 근대교정학의 아버지(Father of Modern Orthodontics)로 불린다. 이 위대하고 강인한 천재는 교정치료의 목표인 자연치열에서의 정상교합의 개념을 제시하고(Line of Occlusion, 교합은 Old Glory, 얼굴은 Appolo Belvedere), 부정교합의 분류(Angle's Classification)방법을 확립했으며(1899년 Dental Cosmos에 발표), 여러 종류의 고정식 교정장치를 차례로 개발하였는데(1900년 E-Arch, 1910년 Pin and Tube appliance, 1926년 Ribbon arch, 1925년 Edgewise appliance) 이 중 그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Edgewise appliance는 스스로도 대단히 만족하여 모든 유형의 치아이동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후의, 최고의 장치라고까지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헌신적이고 엄격한 스승으로 1900년부터 치과교정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여 (Angle School of Orthodontia) 수많은 치과교정학의 리더들을 양성하였으며, 최초의 치과교정학회인 “The American Society of Orthodontists (오늘날의 The American Association of Orthodontists)"의 결성을 주도하였고, 1907년 최초의 치과교정학학술지인 ”The American Orthodontists"를 발간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들은 “the Edward H. Angle Society of Orthodontia"를 결성하였다. Angle은 말년에 교정치료를 위해서는 발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발치불가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그의 생전에 경쟁자인 Case와의 격렬한 논쟁을 초래하였다.
20세기 초부터 치과교정학의 전문화가 진행되었다. Angle School에 지원하였다가 그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서약에 동의하지 않아 입학이 거절된 Lischer(1976-1959)는 1907년에 Angle에 대항하여 International School of Orthodontia를 열었으며 세인트루이스에 워싱턴대학 치과교정과를 개설하여 교수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1922년에 두개계측학(cephalometrics)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Angle과는 다른 부정교합의 분류법(mesiocclusion, distoclusion, neutroclusion)을 주장하였다. 1902년에 Angle에게 배웠던 Dewey는 1911년에 또 다른 치과교정학 교육기관을 개설하였다. 그는 탁월한 저자, 교육자, 논쟁가, 학술지 편집인으로 활약하여 1914년에 International Journal of Orthodontia를 창간한 후 부족한 원고를 보충하기 위하여 스스로도 밤을 지새우며 많은 논문을 저술하였고, 치과역사학자인 Weinberger(1885-1960)에게 1915년부터 1922년까지 “Orthodontics: an historical review of its origin and evolution"라는 주제로 36회에 걸쳐 연재하게 하였다.
3) 치과교정학의 전문화 (1930년 이후)
1930년대 이후 치과교정학 교육은 종래의 도제교육을 탈피하여 대학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Harvard-Forsyth(1915-19)를 필두로 New York대학, Columbia대학에서 치과대학 졸업 후 단기 연수 과정으로 치과교정학이 개설되었고, 1923년에는 Johnson이 Michigan대학에서 정규 석사과정을 개설하고 전임교수가 되어 치과교정학의 기본 원리 즉, 교합의 기초, 진단, 원인, 분류 등을 가르쳤다. 이후 Pennsylvania대학(Mershon), Northwestern대학(Baker)에 석사 과정이 개설되었으며 Setzer와 Hahn에 의해 교과과정(The Curriculum II program)이 정비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교정전문치의사가 배출되었고 1929년에는 전문의제도(American Board of Orthodontics)가 Ketcham과 Dewey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Noyes(1872-1961)는 Illinois대학에서 치과교정학 과정에서 조직학을 가르쳤고 학장 재임 시 오늘 날 치과교정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으로 여겨지고 있는 Brodie(1897-1976)에게 교수를 맡겼다. 그의 제자들은 치과교정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15명이 치과교정학의 교수가 되었다(Downs, Klohen, Thompson, Wylie, Alton Moore, Ricketts 등).
서부에서는 1934년에 University of Southern-California에 처음으로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고 McCoy(1884-1965)는 치과 교정학과 동시에 방사선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X-ray를 이용하여 100편 이상의 논문과 두 권의 교과서를 집필하였다. 다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났던 Atkinson(1886-1970)은 1,400개의 두개골로 성장과 발육에 대한 연구를 행하여 key ridge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Angle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1900년에 시작된 학술 모임은 Society of Orthodontists, American Society of Orthodontists를 거쳐 1935년에 American Association of Orthodontists로 이름을 바꾸며 발전되었다.
Fauchards 이후 치과교정학에 대해 언급한 책들이 출간되었으나 포괄적인 내용을 망라한 최초의 교과서는 1943년에 26년 동안 American Journal of Orthodontics의 편집인을 한 Salzman (1900-1992)에 의해 집필되었다. 이 책에는 진화, 발생학, 성장과 발육, 생물학적 연령, 치열의 발육, 치아의 형성과 맹출 등까지 기술되었다.
치과교정학 단독의 최초 정기 간행물은 내과의사이자 출판자인 Mosby의 후원으로 발행된 “International Journal of Orthodontia”이다. Angle이 편집인 제의를 거절하여 Dewey가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부족한 원고를 채우기 위해 Dewey와 함께 치과교정학의 역사를 집필한 Weinberg는 치과교정학의 역사가(orthodontia's historian)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또 1948년에 치과의 역사에 대한 소개서인 “An Introduction of the History of Dentistry"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Dewey 사망 3년 전(1931년) 부터 이 잡지의 편집인을 맡은 Pollock(1884-1970)은 38년 이상을 수고하였다. Dewey와 함께 한 시간을 포함하면 53년을 이 잡지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이 잡지는 1919년 "International Journal of Orthodontia & Oral Surgery"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후 여섯 번의 변화를 거쳐 1986년부터 ”American Journal of Orthodontics and Dentofacial Orthopedics"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고 있다.
Angle의 제자인 Hahn에게 1928년 교정치료를 배운 Tweed(1895-1970)는 그의 탁월함을 인정한 Angle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 Angle의 업적을 계승 발전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심미성과 치료 후 안정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발치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인정하였고, 하악골에 대한 하악전치의 위치를 치아 배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정치료를 위한 고정원(anchorage)의 개념을 확립하고 스승의 edgewise technique을 발전시켜 Tweed technique으로 정립하여 1947년부터 Arizona Tucson에서 Tweed course를 열었고 이는 Merrifield(1955년부터 Tweed course에 지도의로 참여)에게 계승되어 Directional Force Technology로 발전되었다. 이후 수많은 임상가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와 기법들을 개발하여 치과교정학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3. 과학으로서의 치과교정학의 정체성 확립
1) 두개안면 성장에 대한 연구
어린이의 부정교합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성장과 발육에 대한 지식이다. 이를 위해 인류학, 해부학, 조직학, 내과학, 치의학 분야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조직학 분야의 연구
Goodsir(1830)는 조골세포에 대하여, Wolff(1885)는 골조직 전환의 법칙, Oppenheim(1944)은 과도한 힘에 의한 치아조직의 부작용, Ketcham(1936)은 교정력에 의한 치근의 흡수에 대하여, Sicher(1949)는 골성장에서 봉합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였다. Moss(1969)는 지금도 많은 지지를 받는 기능모체설(functional matrix theory)을 주장하였다. 동물 실험은 Hunter(1778)가 하악골에서의 성장 부위에 대해 연구한 것을 시초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인류학적 연구
Blandin(1836)이 얼굴의 성장에 대해 언급한 이후, Todd는 1926년 4,500명 이상의 어린이의 X-ray를 이용하여 연구하여 정상 성장의 표준을 정하였고, 수완부골사진으로 성장급등기를 예측하는 방법 등에 대한 업적을 남겼다. 루마니아 출신의 Hellman은 해부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후 자연사박물관에서 인류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하여 상악결절 후방의 골침착 현상을 발견하여 Angle의 상악제1대구치가 교합의 기준이라는 주장을 반박하였고, 나이보다는 생물학적인 연령을 중시해야 한다(Hellman dental age)는 주장을 하였다.
두부방사선 규격사진 계측법(Roentgenographic cephalometry)
치과교정학의 과학화에 기여한 획기적인 사건의 하나가 Broadbent(1931)의 두부방사선규격사진계측법(Roentgeno-graphic cephalometry)의 발표이다. 1929년 Todd는 여성 상원의원 Bolton의 후원으로 많은 어린이의 연속적인 기록을 남겼는데 이 과제는 그의 조수인 Broadbent가 이어 받아 최종 4,309명의 어린이의 자료가 채득되었다. 표준화를 위해 동일한 조건에서 X-ray를 촬영할 수 있도록 두부 자세를 고정하는 장치(Broadbent-Bolton cephalometer)를 고안해 이 방법으로 채득한 X-ray를 중첩하여 정상의 기준 제시, 치료 전후의 변화, 성장에 따른 변화를 쉽게 비교할 수 있게 되어 과학적인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그러나 최초로 두부방사선규격사진계측법을 고안한 사람이 독일의 Hofrath라는 이견도 있다. Brodie(1938)는 이 방법으로 교정치료의 결과를 평가하였고, 스웨덴의 Bjork(1947)는 측모에 대한 연구(The face in profile)를 진행하여 1955년에는 최초의 임플란트를 이용한 성장 연구를 하여 상,하악골의 회전성장을 보고하였다.
Toronto대학과 Michigan대학에서 일한 Moyers(1919-1996)는 형태와 기능의 관계에 대한 업적을 남겼고, Moores(1916-2003)는 개개인의 성장에 대하여 보고를 하였다. de Coster(1939)를 필두로 두부방사선규격사진계측법을 이용한 수많은 진단법들이 소개되었는데 Margolis(1943)는 하악골과 하악전치의 관계, Wylie(1947)는 FH plane을 이용한 분석법을, Downs(1947)는 "Variation in facial relation"에 대해, Riedel은 ANB angle을, Steiner(1953)는 골격부조화를 고려한 절충 치료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고, Tweed는 이상적인 하악전치 위치 설정을 위한 Tweed triangle(1954)을, Sassouni(1955)는 수직요소와 수평요소의 관계에 대한 archial analysis를, Ricketts(1960)는 computerized cephalometry의 기원을 열었다.
2) 교합 개념의 접목
Graber(1972)는 교합의 개념은 fictional period(before 1900), hypothetical period(1900- 1930)과 factual period(after 1930)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Angle의 부정교합 분류와 Broadbent의 두부방사선규격사진법이 치과교정학에서의 교합 개념의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말해준다. 원론적으로 교정치료의 대상이 부정교합자이며 치료의 목표가 정상교합이므로 치과교정학에서 교합개념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장치 제작의 어려움과 치료의 한계 등으로 실제 임상에서 구체적이고 동적인 교합 개념을 적용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Gnathology의 아버지로 불리는 McCollum이 접번축의 위치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 1924년이고 Angle의 제자인 Stallard(1927)가 그 당시 보철학 분야에서 주장되던 교합이론을 치과교정학에 접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Thompson은 교합에거 기능분석의 필요성을, Ricketts(1969)는 측두하악관절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Andrews(1972)는 정상교합이 갖추어야 할 6가지 기준(6 keys to normal occlusion)을 제시하여 교정치료의 구체적인 치료 목표를 제시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bracket에 3차원적인 처방을 부여하여 호선굴곡의 필요성을 줄이는 소위 Straight Wire Appliance의 개발로 이어졌다. Roth(1972)는 교정치료에도 gnathology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며 기능교합(functional occlusion)을 확립하였다.
4.. 치과교정장치와 재료의 발달
1) 치과교정장치
Angle 이전의 교정장치
문헌에 보고된 최초의 교정장치는 Pierre Fauchard(1728)가 금속판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치아를 양의 창자로 묶어 움직인 bandeau인 것 같다. 그 후 많은 조악한 장치들이 소개되었지만 Jackson(1887)이 철사를 구부려 crib을 만들고 여기에 finger spring을 납착하여 만든 장치인 소위 Jackson system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 장치는 Walker에 의해 발전되었고 Crozat(1919년)는 이를 개량하여 발치를 하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Angle이 개발한 장치들
Angle이 1900년에 처음 발명한 장치는 제1대구치에만 밴드를 하여 여기에 굵은 순측 또는 설측 호선을 연결하고 여기에 치아를 가는 철사로 묶어 치아를 이동시킨 E(expansion appliance)-arch 였는데 이 장치는 단지 경사이동만 가능한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10년에는 치아에 수직 튜브를 부착하고 주호선에 가는 철사를 납착하여 치아이동을 도모하는 pin-and-tube appliance 일명 bone growing appliance를 고안하였는데 치근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척 어려워 많이 보급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Angle은 또다시 치아에 bracket(까치발, 보석을 잡는 금속 부분의 의미이나 교정치료에서는 호선을 끼우는 홈을 의미함)을 부착하고 호선을 pin으로 견고히 고정하는 ribbon arch(1916년)를 고안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많은 단점이 있어 이를 개량하여 직사각형 형태의 철사를 동일한 형태의 bracket에 삽입하고 가는 철사로 묶어서 삼차원적인 치아이동과 비틀림까지 조절할 수 있으며 사용이 비교적 간편한 edgewise appliance를 발명하였다. Angle은 이 장치를 개발하고 대단히 만족하여 the best, the last appliance라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 장치는 처음에는 .022X .028 인치의 금 합금으로 제작되었으나 금속의 발달로 더 가는 강철 등의 비금속으로 바뀌어 널리 사용되게 되었고, 지금 현재 사용되는 많은 장치들이 edgewise appliance를 조금씩 개량한 장치들이다.
그 외의 장치들
Baker는 상하악에 전치부에는 labial bow를 ,구치부에는 교합면에 걸치는 철사를 장착하고 vulcanite로 연결한 가철식 장치를 개발하였다. Hawley는 이를 개량하여(1919) 치아의 설측을 vulcanite로 완전히 덮어 사용했는데 1930년대에는 재료의 발전으로 vulcanite 대신 acrylic으로 대체 되었다.이 장치는 치료 후의 유지를 위한 보정장치로 많이 이용되었다. Mershon(1909)은 가철식의 설측호선으로 치아에 약한 힘을 가하여 치아이동을 도모하였다. Lourie Sr, Oliver, Porter 등은 labio-lingual appliance를 , McCoy(1922)는 open-tube appliance를 고안하였다. Atkinson(1929)은 edgewise appliance와 ribbon arch의 장점을 결합한 universal bracket을, Johnson(1929)은 두가닥의 가는 철사를 이용하여 약한 힘으로 치아이동을 도모하였다(twin-arch technique). 1925년 Angle에게 교정치료 기법을 배운 호주인 Begg는 고국으로 돌아가 소구치 발치를 수용한 치료를 하면서 발치공간의 폐쇄에 어려움을 겪다가, Angle의 ribbon arch appliance를 뒤집은 형태를 기본으로 한 자신의 독특한 장치를 개발하였다(1933). 그 후 호선에 루프를 많이 구부려야 하는 자신의 테크닉에 적합한 철사를 개발하여(1944) Australian wire로 이름을 붙이고 1965년에 자신의 독특한 테크닉(Begg Orthodontic Theory and Technique)에 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Bracket의 진화
Angle이 처음 만든 폭이 좁은 bracket은 회전이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Lewis(1950), Lang(1972) 등은 귀퉁이에 작은 부착물을 붙이기도 하였고, Swain(1952)은 bracket 두 개를 붙인 소위 'Siamese twin"bracket을 고안하였다.
Bracket에 처방을 넣어 교정용 호선의 굴곡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 최초의 사람은 Jarabak(1963)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용적인 수준에 이른 것은 Andrews(1972)의 업적이다. 그는 정상교합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six keys to normal occlusion"이라고 제시하고 여기에 기초한 bracket을 만들어 ”Straight Wire Appliance"라고 명명하였다. Roth(1976), McLaphlin 등(1991) 여러 임상가들이 스스로가 주장하는 처방과 디자인의 bracket을 만들고 이에 기반한 치료 기법을 개발하였다. 최근에는 호선을 bracket에 묶는 과정이 없는 자가결찰장치(Self-ligating bracket)가 도입되었고, 교정치료 중에 눈에 많이 띄지 않는 다양한 재질의 bracket도 개발되었다(plastic bracket 1963, ceramic bracket 1987).
교정장치의 획기적인 또 한 발명은 bonding 기법(Direct Bonding System,DBS)의 도입이었다. 치아를 금속 band로 감싸고 여기에 bracket을 부착하던 종래의 방법은 불필요한 band space가 필요하고 환자는 대단히 아프고 자치제작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독일의 화학자 Hagger(1949)가 acrylic resin을 발명하였고 Buonocore(1955)은 인산으로 치아 표면을 부식시켜 접착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Mitchell(1968)과 Newman(1968)이 서로 최초로 교정치료에 bonding을 도입하였다고 다투었으며 그 후 polyacrylate(1968), BIS-GMA(1962),glass ionomer cement(1970s) 등이 사용되어Tdmn나 본격적인 bonding의 시대를 연 것은 Miura 등(1971)이 methyl methacrylate resin으로 plastic bracket을 접착한 것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그 후 light curing(1979), self-etching primer(1993) 등이 개발되어 교정치료가 쉽고 간편해졌다.
성인이 교정치료를 많이 하게 되면서 치료 중에 교정장치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욕구가 많아졌다. 이에 부응하여 기존에는 치아의 순측에 bracket을 장착하던 것을 설측에 부착하여 치료를 진행하는 기법이 개발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의 Fuita(1979)가 설측교정장치(lingual orthodontics)를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환자에게 매우 불편하고 술자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장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최근에는 CAD-CAM을 도입하여 환자 개개인의 맞춤 설측 교정장치(Wiekman,customized lingual appliance,2004)가 소개되었다. 또 다른 시도는 가철식의 투명한 교정장치(clear aligner)를 이용하여 치아이동을 도모하는 술식이다. 이 방법은 Kesling(1945)이 석고모형에서 치아를 재배열하여 이것에서 탄력성있는 물질로 장치를 만든 것에서 시작하여 , Sheridan(1993)이 Essix retainer로 발전시켰고, 최근에는 CAD-CAM을 도입하여 더욱 간편하고 정밀한 장치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5. 치과교정학에서의 주요 논쟁
1) 소구치 발치에 대한 논쟁
Angle은 말년에 교정치료를 위해서 발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발치불가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신앙심과 더불어 인간의 완벽성을 강조한 루소의 철학, 뼈의 구조는 특정구조물에 가해진 스트레스에 부합되게 재구성된다는 생리학자 볼프의 "stress trajectory theory", 당대의 저명 예술가인 벨펠교수와의 치아와 안모의 심미성 토론(인간의 얼굴에는 너무도 많은 형태가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얼굴을 이상적으로 결정하기는 불가능하며 모든 얼굴을 정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ngle은 얼굴에 대한 치열의 관계는 매우 다양하나 개개인의 치아가 이상적인 교합을 이룰 때 이상적인 외모를 이룰 것이며, 환자가 그 결과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던 간에 최상의 외모는 모든 치아가 다 유지되어야 이루어진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과도한 치열의 확장 배열은 얼굴 모습의 악화는 물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Case는 치열궁은 항상 모든 치아가 배열될 수 있을 만큼 확대될 수는 있지만 많은 환자에서 심미적으로 떨어지고 안정성이 결여되므로 꼭 필요하면 치아의 발치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Angle의 제자인 Dewey(1881-1933, Science knows no friendship)와 1920년대에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에는 Angle의 추종자들이 이겼고 교정치료를 목적으로 한 발치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교정 임상에서 사라졌다
Angle의 제자인 Hahn에게 1928년 교정치료를 배운 Tweed(1895-1970)는 그의 탁월함을 인정한 Angle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 Angle의 업적을 계승 발전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Angle이 작고한 후 스승의 가르침대로 비발치로 교정치료를 한 결과 얼굴 모습의 악화와 장치 제거 후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4개의 소구치를 뽑고 다시 치료를 하여 1940년 미국교정학회의 연례 학술대회에서 100 증례를 전시하였다. 이 사건으로 Tweed는 많은 선배들에게 극심한 비난을 받았으나 명망이 높은 선배인 Strang(1881-1982)은 꼭 필요하면 발치를 수용해야 한다고 Tweed를 지지하였다. 이 사건 이후 1940년대 말부터발치 치료가 재도입되었다. 또 다른 Angle의 제자인 Begg는 호주의 원주민의 교합을 관찰하여 attritional occlusion의 개념을 확립하여 치아의 마모가 적은 현대인에서는 교정치료를 위한 발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발치치료가 점점 늘어나 1960년대에는 미국 교정환자의 과반수 이상에서 일부 치아들이 발치되었다. 이는 교정치료가 악골의 성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개념에 따른 총생의 경우 뿐만 아니라 악골 관계의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 결과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발치율이 다시 감소하였는데 이는 이상적인 안모의 개념 변화, bonding의 개발에 의해 밴드 공간이 필요하지 않게 된 점 등에 의한 것이다. 현재도 발치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으며 이는 치과교정학이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분애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2) 조기치료의 효용에 대한 논쟁
치과교정치료는 언제 하는 것이 이상적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일찌기 Fox(1803)는 13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며, Angle(1907)은 부정교합이 인지되면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대체로 두부방사선규격사진이 이용되기 전의 시대에는 교정장치가 성장과 얼굴패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Tweed(1962), Moyers(1988), Ricketts(1998) 등은 조기 치료의 효용을 조심스럽게 부정하며 불필요하게 치료가 장기화되는 것을 염려하였다. 특히 하악골이 후퇴돤 2급부정교합자에서 성장이 활발한 어린 시기에 치료를 하면, 특히 기능성장치를 이용하여 치료를 하면 절대적인 하악골의 성장 촉진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조기치료에 찬성하는 학자들은 이로 인해 소구치의 발치나 악교정수술의 필요성을 줄이고 더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결국은 큰 차이가 없이 치료 기간만 늘어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1990년대에 North Carolina, Florida, Pennsylvania 대학에서 국가(NIDCR)의 지원을 받아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조기치료가 성장조절에서는 대단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Tulloch et al.1998), 정신사회적 문제 등의 측면에서 유용할 있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어 이 또한 중요한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3) 교정치료와 턱관절증의 연관에 대한 논쟁
턱관절증의 원인은 다양한 여러 요소에 의한 것이며 그 한 요소가 교합의 이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Roth는 1970년대부터 교정치료에도 gnathology의 개념을 적용해야 하며 특히 중심위 상태에서 석고모형을 마운팅하여 진단에 반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교정치료에서 턱관절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1987년 미시간 주 법원은 소구치를 뽑고 교정치료하던 환자가 교정치료 때문에 턱관절증이 발생하였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85만불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역의 쟁쟁한 학자들이 교정치료, 구체적으로는 소구치 발치가 턱관절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나 소위 Witzig(1987) 등 기능교합학파의 소구치 발치 후 교정치료는 하악골을 후방으로 견인하여 턱관절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고 무엇보다 배심원들은 치과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하였다. 이 사건 이후 교정치료를 하는 치과의사들은 턱관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미국교정학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에서 부정교합,교정치료와 턱관절증의 관계를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Reynders(1990), Sadowsky(1992), McNeil(1993) 등은 지금까지 행해진 연구들을 meta-analysis하여 교정치료가 턱관증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논쟁에 대해 아직 명백히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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