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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2. 치과의사와 무면허의료업자간 갈등에서 치과의사간 갈등으로 3. 공인된 치과재료사용 및 의료의 질 향상에 관한 의무 4. 정부 주도의 의료자원 분배의 문제 5.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치과의료윤리 |
1. 머리말
우리나라에서 치과의사들이 전문직업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말 문호를 개방하면서 부터이다. 서양인 선교 의사와 치과의사, 일본인 치과의사들에 의해 치과진료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치과학 교실을 개설(1915)하고 세브란스연합의학교 치과 초대과장을 역임한 쉐프리는 미국인 선교치과의사였다. 쉐프리는 가난하고 치과에 대해 무지한 한국인들에게 가해졌던 일본인 치과의사나 입치사들의 상업적 관행을 비판하고 치과의료윤리에 따른 진료풍토를 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한국인 치과의사면허 제1호(1914.2)를 취득한 함석태는 ‘我社會 구강위생상의 주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며 “자기 영업 이외의 치과의사로서의 사회봉사적 어떤 노력이든지 사양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최초의 한국인 치과의사단체였던 ‘한성치과의사회’를 비롯하여, 해방 이후 건설된 ‘조선치과의사회’도 매년 구강위생 강조주간을 두어 전국의 치과의사들이 무료 구강검사와 유치발치, 구강위생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1960-70년대에는 무치의촌 무료진료봉사,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된 이후에는 도시빈민과 농어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보철 치료로 이어졌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장애인과 저소득층 노인, 영세 외국인 근로자, 대북 및 해외 치과진료 봉사로 이어져 현재도 상당수의 치과의사, 치과대학생, 치과위생사, 기공사 등의 치과의료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치과의사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구성원들에게 치과의사들의 윤리의식이 그다지 높다고 인식되지 못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입법․사법․행정부, 언론, 국민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치과의료윤리도 더 이상 치과의사들의 시각에 의해서만 규정되어질 수 없게 되었다. 국민들에게 치과의사는 고소득을 보장 받는 기득권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부는 치과의사가 임플란트로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며, 치과는 꼭 몇 군데 둘러본 뒤 결정한다. 국민은 치과의사의 진단과 치료계획이 ‘돈’을 먼저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한 것인지, 의료행위에 문제는 없었는지 꼼꼼히 따지고 최종판단하는 소비자 입장이다.
정부 기관들은 각 부처의 입장에서 치과의사를 통제하려 한다. 통제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의료광고 및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허용하여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의료에 있어서 광고와 가격 덤핑을 허용하는 것은 치과의사간의 연대를 깨뜨리는 효과가 있다. 그 예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유디치과그룹과 관련해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에 시정명령과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2012.4.27)을 들 수 있다. 언론도 이 사건의 본질과 실체적 진실을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치과의사들을 ‘밥그릇 싸움’만 하는 ‘공공의 적’으로 내몰았다(치의신보, 2012.5.21.).
둘째, 영리법인과 같은 자본의 힘을 빌려 의료산업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해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확대 요구에 대한 국가의 보건복지재정의 압박을 줄일 수도 있다. 반면 치과의사에게 영리의료법인의 등장은 소규모 개원의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민영의료보험사를 통한 관리의료(managed care)를 증가시킨다. 영리의료법인 허용은 아직은 답보상태이지만 의료시장개방 추이를 주시할 일이다.
셋째는 의료인 관리와 의료행위의 통제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의료법과 의료법시행규칙, 의료급여법의 처벌수위를 높이고, 건강보험심사기준이나 행정처분도 강화하는 것이다. 의료법은 총독부가 제정한 ‘치과의사규칙(1914)’에서 국민의료법(1951), 의료법(1962), 개정의료법(2012.9.1 시행)에 이르기까지 의료인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해왔다. 과중한 법적 의무와 심사평가원의 행정적 규제는 치과의사들의 자율적인 의료행위를 검열한다. 문제는 정부 시책에 따라 의료법, 공정거래법 등의 법에 대한 해석이 충돌하고 부처 간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상당수의 치과의사들이 잠재적인 범법자가 될 수 있다. 과도한 의료법제화가 의료인들이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같은 기본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헌법소원도 제기되고 있다(치학신문, 20120.8.29).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치과의사의 윤리수준을 높이고 실용적인 매뉴얼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이들은 바로 치과의사들이다. 치과의사 내부의 윤리적 규율이 무너진 곳에 상업적인 경쟁과 과도한 법제화와 각종 불신 사태가 침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치과의사 선·후배와 지역 동료를 존중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해방 이후 가장 많은 고소 ·고발이 진행되고 있다. 치과의사 과잉공급에 따른 경영 악화는 과장광고와 환자유인, 과잉진료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기 쉽다. 치과의사의 전문적 영역에 대해 의사들과 업무 영역에 대한 법적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치과의료의 본질은 구강병 예방과 치료를 통해 구강 및 전신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치과의료 윤리의 핵심은 치과의사의 전문직업성에 근거한 자율적인 행위규범일 뿐 아니라, 국민구강건강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법․제도의 개선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실천 강령이어야 한다. 그러나, 치과의료의 현 실태는 치과의료윤리보다는 시장원리와 정치적 공약, 행정적 편의에 따라 무책임하게 방치되거나 맹목적으로 재단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의 치과의료 현실에 입각한 윤리적 쟁점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치과의사와 무면허의료업자간 갈등에서 치과의사간 갈등으로 변해가는 과정, 공인된 치과재료 사용에 관한 의무, 정부 주도의 의료자원 분배의 문제,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치과의료윤리 확립등에 관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갈등 사례와 법·제도의 개선점들을 중심으로 그 흐룸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치과의사와 무면허의료업자간 갈등에서 치과의사간 갈등으로
1) 치과의사와 입치사 및 무면허 의료업자와의 갈등
의료법 상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보건 지도를 의무로 하는 전문직업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치과의사에게 치과 치료를 받게 된 것은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개항 초 일본의 치과의사와 함께 입치사들이 조선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치과의사법이 제정(1906)되면서 일본에서는 불법화된 입치사들이 조선에서는 치과의사와 별 구별 없이 간단한 발치와 보철치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 치과의사 5명이 ‘경성치과의회(1909)’라는 모임을 결성한 이유는 입치사를 견제하고 치과의사의 풍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총독부가 공포한 입치사영업취체규칙(1913)은 입치사들의 진료 영역을 발치와 입치, 응급치료로 규정하였다. 입치사는 개업 장소와 기간을 제한하고, 광고와 치과의사와의 분쟁은 금지하였다. 하지만 법규제와 달리 입치사의 상당수가 도시에 개원하여 값싼 보철물로 치과의사와 경쟁을 벌이거나, 아예 치과의사 행세를 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치과를 구강병을 치료하는 의원이 아니라, 금니나 틀니, 장식치아를 해 넣는 상업적인 시술소 정도로 오인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치과의사들은 입치사들로부터 치의권을 보호하고, 의사들과 동등한 사회적 대우를 받기 위해 치과의사단체를 결성하였다. 조선치과의사회(1921)는 입치사를 단속하고 입치사 제도와 치과의사시험제도의 폐지하도록 행정당국에 건의하면서 내적 결속을 다져 나갔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치과의사상을 구축하기 위하여 학회활동도 강화하고, ‘호치일(護齒日)’(1926~)을 정해 구강위생계몽활동과 무료구강검진을 하였다. 치조농루증이 생긴 매독환자에게 매독치료제를 정맥주사한 치과의사가 의사법 위반으로 고발되자(1927) 치과의사회 차원에서 대응하기도 하였다. 한국인 치과의사 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1925)는 한국인 구강보건계몽과 친목도모, 치의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 산하 보건후생부는 치과의사 부족을 메우고자 입치영업자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한지치과의사로 승격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한지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총 172명(1946.6, 1948.3) 중 실제로 입치영업자는 20명뿐이었다. 소위 ‘입치사면허남발사건’으로 치과의사들이 치무국장을 고발(1947. 5. 5)하였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보사부가 입치영업면허를 갱신교부(1958)하자, 치협은 반대 투쟁을 벌려 입치영업자 면허부여소원을 기각(1960.1.15)시켰다. 그 후 ‘임시조치법’(1968)에 의해 입치사들이 한지 치과의사로 승격되었다. 1985년 의료법 개정에 의해 한지치과의사가 치과의사로 단일화되었다.
첫 한국인 치과의료인력으로 치과대학을 졸업하거나, 치과의사시험을 치른 근대적인 치과의사가 아니라, 도제식으로 기술을 습득한 전근대적인 입치사가 합법화된 것은 일제의 식민잔재였다. 치과의사들이 ‘불량보철물의 상업화’를 경계하고, 단체를 결성해 70여 년간 입치사 및 한지치과의사제도의 철폐를 요구한 점은 국민구강건강 및 치과치료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 점에서는 윤리적인 행동이었다. 당국의 행정착오와 부정이 개입된 ‘입치사면허남발사건’에 대한 정당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치과의료의 균점화를 위해 입치사를 한지치과의사로 승격시킨 정부의 조치는 약자보호와 의료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해방 이후에는 무면허 치과의료업자가 범람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 전쟁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대다수 국민이 정식 치과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궁핍했다.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도 적어 치과의사회 회비도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둘째, 농어촌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치과의사 수와 의료시설이 부족했다. 셋째, 면허를 대여해주는 치과의사도 많았다. 북한의 치과의사 면허(펫셀면허)를 가진 사람들은 면허를 대여해 야간진료를 하고, 돌팔이들은 자택 안방에 기구와 장비를 설치하고 보철치료를 했다. 넷째, 무면허 의료업자에 대한 단속과 법적 처리가 미약했다. 의사 단체가 단속을 나가면, 무자격 의료업자들이 인정에 호소하여 법적으로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행정부서와 합동으로 단속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행정조치가 미약하여 곧바로 영업을 재개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후반 치과의사 수의 ⅓(500명, 1969)이 서울에 있고, 각 도를 치과의사 2-3명이 담당하는 수준이었다. 치과의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총 국민의 3%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연평균 10%에 달하는 경제성장으로 서비스 수요가 늘어났으나, 국가적인 치과의사 수급 증대나 보건소 배치는 소극적이었다. 돌팔이들은 도시로 나와 보다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평소에는 치과의사에게 면허대여료만 지급하다가 단속이 나오거나 위급할 때 치과의사를 데려다가 진료를 시키는 방식이었다. 야간 기습단속에도 공무원과 협조가 되어 문이 닫혀져 있었다. 영등포나 서울역 등지에서 돌팔이가 대형치과의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농촌에서는 돌팔이들이 마을 유지로 대접을 받으며 주민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는 5.3대선 당시(1967)의 낮은 득표율을 의식해 국가적인 ‘부정부패 일소’의 일환으로 부정의료업자를 엄중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1969년 상반기(1-6월)에만 가짜 치과의사 118명, 가짜 한지치과의사 2명이 적발되었다.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1969.8.4)도 제정되었는데, 부정의료업자에게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하며, 재범자는 특수가중처벌조항을 둔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적정한 의료공급’이 아닌 통제일변도의 부정의료업자 단속은 근본적인 개선책이 되지 못했다. 치협은 박정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새마을 진료사업의 일환으로 무치의면 이동진료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발치 위주(83%)였고, 무치의면 인구의 0.5%정도만 포괄한 것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졌다.
한편 치협은 올바른 치과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치과의료보조인력에 대한 법제화를 주도해 나갔다. 의료보조원법이 제정(1963)되면서 치과위생사와 기공사가 법적인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치과위생사 양성이 시작(1965-)되고, 제1회 의료보조원 국가시험에 합격한 치과기공사들이 대한치과기공사협회를 결성하였다(1965.7). 1971년도 치협 집행부는 기공소 개설양성과 보건소 치과증설, 치과의사 수급부족으로 인한 구강보건관리 부족을 지적하고 대구와 광주에 치과대학을 신설하고, 치무국과 치무계를 두어 농어촌 국민보건향상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치과의사 윤리강령도 제정하였다. 치과기공사들에 의해 불법적인 치과진료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치과기공소를 개설할 때 지도치과의사를 두도록 했다(1974. 3. 31.의료기사법 시행규칙 개정령).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 치과기공소를 통한 불법 보철물 유통이 지속되었다. 치협은 치과기공물 제작의뢰서를 발행하여 기공소가 3년간 보존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리도카인과 알지네이트 등에 대한 치과재료 유통 감시 및 감독을 위한 ‘부정의료행위 근절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1989)하였다. 그러나 ‘지도치과의사제도’의 실효성이 적고, 기공사협회의 반발이 있어 수 차례 시행규칙이 보완 후, 결국 지도치과의사제도는 폐지(2011. 4. 5.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되었다. 개정안에는 ‘치과기공사는 치과의사가 요구하는 치과기공물 제작의뢰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위반한 치과기공사는 면허취소를 비롯한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하였다. 금지 사항으로는 치과기공소 2곳 이상 개설 금지, 허위 및 과대광고 금지, 치과기공소 고객 알선, 소개 및 유인행위 금지안이 마련되었다.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대되던 1980년대에도 비보험 종목에 해당하는 보철치료의 상당수가 기공사나 돌팔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치과의사의 면허 대여나 자본주에게 고용된 치과의사도 지속적인 문제가 되었다. 1981년 정기대의원 총회에서는 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 안에서 의료기사, 사무장, 남자간호보조원 등이 하는 의료행위, 고령자·신체부자유자인 의료인인 개설하고 무면허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행위, 의료기사 등 소위 자본주에 고용되어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료인, 신규의사 면허취득 후 해외취업이나 유학을 계획한 의료인이 고용주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면허대여 행위 등을 발본색원하기로 결의하였다. 치협은 부정치과의료업의 실태를 파악하여 행정 단속과 법률강화를 요청하고, 국민구강보건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홍보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각도 치과의사회별로 ‘의료감시 자율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의료단체 자율지도 운영 규정(안)을 제정 (1988.3.8)하고, 치협 징계규정 제4조 ‘징계의 종류’에 ‘권유휴업’을 삽입하여 보강하였다. 협회 자율지도 운영규정제정(안)을 수립하여 보건사회부의 승인(1990.6.4)하에 면허대여, 대진 등 부정 치과의료 행위 추방활동을 하였다. 1990년도 자율지도실시로 지도치과의사의무위반 4건, 진료과실 2건, 적출물처리위반 2건이 시정되었다. 1993상반기 자율지도실적결과는 22건, 하반기는 39건이었다. 부정치과의료업자를 단속한 경찰과 보건소 직원에게는 공로상을 수여하였다. 무면허의료행위자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규정을 강화(1994.1.7)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치과의사 수가 1.8배로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치과진료건수도 50% 증가하였다. 치과의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치과위생사 수급이 부족해졌다. 치협의 노력으로 의원급에서는 간호사(치과위생사포함) 정원의 100% 이내로 간호조무사로 충당하는 것이 가능(1994.1.7 의료법개정)해졌다. 세계치과연맹(FDA) 윤리현장에 의하면 치과의사는 치과치료에 대한 모든 법적인 책임이 있고, 치과보조인력을 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이다. 치과진료의 속성상 치과보조인력이 구강 내 침습적인 진료조작을 하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치과위생사도 반드시 치과의사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구강진료보조업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만 구내 방사선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은 간호조무사만 고용된 많은 개원가의 방사선 촬영에 어려움을 주었다. 독일의 경우 치과조무사는 치과의사의 감독 하에 구내와 구외 X-ray 촬영을 모두 할 수 있으며, 조무사는 5년마다 특별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치과보조인력이 연수와 시험을 통과하면 방사선 촬영을 할 수 있다. 치협은 국민권익위원회(2008.12.8)에 치과위생사의 파노라마와 세팔로 촬영허용을 위한 제도 개선 요청 민원을 제출하였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 검사의 사전예보제도 도입도 건의하였다. 그 결과 사건예보제가 도입되고, 치과위생사의 파노라마 촬영이 허용(2009.3.5)되었다. 이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2012.5.22)으로 치과위생사의 구강진료보조 영역이 다음과 같이 확대되었다. 치석 등 침착물(沈着物) 제거, 불소 도포, 임시 충전, 임시 부착물 장착, 부착물 제거, 치아 본뜨기, 교정용 호선(弧線)의 장착·제거, 그 밖에 치아 및 구강 질환의 예방과 위생에 관한 업무이다.
이와 더불어 치과전문간호조무사 인증 시험제도(2009.4.19, 제1차)도 마련되었다. 의료법(2010.1.18 개정) 제80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고, 자격인정과 그 업무 한계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치과전문 간호조무사의 업무한계가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구내 방사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고, 일정 교육이나 시험을 통해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방안도 없다. 따라서 치과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업무와 법적 제한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필요하다. 치과위생사를 구할 수 없는 치과에서 치과의사가 모든 방사선 사진 촬영을 해야 하는 것은 법적인 규칙이지 절대적인 윤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해방 이후 무면허 치과의료행위는 치과의사의 면허 대여와 돌팔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70년대 말까지 국가적인 치과의사 수급 및 공중구강보건정책의 부족, 형식적인 단속과 통제, 구강보건에 대한 낮은 인식과 높은 치료비가 불법의료행위가 만연했었던 원인이었다. 의료보험이 확대된 이후에는 기공소를 중심으로 불법보철물이 유포되기도 하였다. 치과보조인력의 업무한계도 불명확해 의료현실에 입각한 윤리적이며 합리적인 법제화도 필요하다. 면허나 자격 유무에 따라 법적 처리가 가능한 영역에 대해 치협이 무면허치과의료행위를 근절하려 노력해 온 것이 주가 되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천착은 부족하였다.
2) 치과의사간 갈등
21세기에 들어와 한국 치과의료분야는 불공정마케팅에 관한 치과의사간 갈등, 사무장치과나 일부 네트워크 치과의 상업적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주된 갈등 요소로 등장하였다. 오랫동안 치과의료는 치과의사 1인이 덴탈 유니트 췌어 1대에서 환자의 구강악안면 부위에 대한 포괄적인 진료를 할 수 있고, 노동기술 집약적인 소규모 자영업적 성격이 강하여 1인 1개소의 개인의원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추진하였고, 보건복지부도 의료기관의 대형화, 신의료기술의 발전, 외국인 유치를 추진하였다.
치과의료기관도 고도화되어 1997년 국내 치과병원은 21곳, 치과의원은 9,222개소였던 것이, 2007년도에는 치과병원이 151곳, 치과의원은 13280개소로 폭증했다. 2008년 한국의 치과의사들의 분포는 병원 14.2%, 의원 81.3%, 보건소 4.5%였다. 2010년에 치과의사 303-1,090명이 과잉 공급된다는 연구 결과(2009)가 보고되었다. 그 동안 소비자 물가는 43% 증가했으나, 임플란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치과진료수가는 제자리였다. 경영불안은 치과의사간의 경쟁을 가속화시켜 과장광고와 가격덤핑을 통한 환자유인, 과잉진료로 건전한 의료경쟁의 질서가 파괴되는 양상이 빈번해졌다.
의료광고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2005.10.27.)가 구 의료법상 광고금지에 관한 규정 및 처벌규정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내렸다. 개정 의료법(2007. 1. 3)에서는 광고를 허용하고, 의료법 시행령(2007. 4. 6)에 따라 협회 내 의료광고에 대한 사전심의기구가 마련되었다. ‘의료업무에 관한 광고의 범위 기타 의료광고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구의료법(개정 1997.12.13)’과 달리 개정 의료법(2007)에서는 ‘금지되는 의료광고의 구체적인 기준 등 의료광고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로 변경되면서, 치협내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역할이 무력해졌다. 금지되는 의료광고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해석이 관계부처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먼저 ‘스케일링 0원’이란 광고를 살펴보면, 의료법(개정 2002.3.30.) 상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 또는 의료급여법의 규정에 의한 본인부담금을 면제 또는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스케일링은 의료급여가 되는 경우도 있고 비급여가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스케일링 0원’이란 광고 문구 자체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단속은 소홀했다.
‘치아미백 단독 100원’이라는 광고의 경우, 강남구보건소에서는 비급여 할인에 대해서도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의 것은 환자유인행위로 위법의 소지가 크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치과신문, 2011.2.7). 하지만 사법부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가격할인은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세미나리뷰, 2011.1.10.).
비급여 진료분야에 소셜 커머스(Social commerce)를 통한 진료비 할인행위도 늘어났다. 복지부는 제3자를 통한 할인은 불법적인 환자 유인행위라고 지적하였으나, 그에 대한 단속도 부재했다.
이와 같이 과대광고와 가격덤핑에 관한 치과의사간 논쟁은 치협 내 의료광고심의위원회나 치과의료계 내부에서 자체 정화되지 못한 채 사회문제로 증폭되었다. 특히 고수가의 신의료기술로 1990년대 초에 한국에 도입된 임플란트 진료가 2000년대 중반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치과의사와 국민 간, 치과의사와 치과의사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71년 스웨덴 브레네막이 개발․생산하기 시작한 임플란트는 1982년 토론토 학회를 통해 학술적으로 인증을 받았다. 2002년 미국의 임플란트 수가는 어금니 1개에 약 500만원 정도로 고가의 신의료기술이었다. 2006년 전세계 임플란트의 80%가 북미와 유럽에서 생산되고 소모되고 있었다. 질병금고에서 보철수가를 고시하는 독일의 2005년 임플란트 수가는 2000유로 정도였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외산 임플란트를 사용했으나, 2006년에는 국내 임플란트 내수 점유율이 70%를 상회하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임플란트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외국산 임플란트의 경우 독일과 비슷한 수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경기불황과 치과병․의원의 잦은 개․폐업은 임플란트 수가의 분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플란트를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치과병원과 네트워크 치과들이 생겨나면서 치과의료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 치과의료의 기술집약적인 속성상 집중적인 대규모의 병원이나 가맹본부와 가맹점 사업자라는 독립성이 인정되는 유형의 네트워크 치과를 만든다고 해서 생산성 향상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대중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임플란트의 수가인하는 그 접근성을 높였다. UD 치과그룹의 경우, 사업자인 치과의사 1-2인이 120개의 치과를 소유하고, 200여명의 치과의사를 고용해, 2011년 한 해 동안 약 4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치과의사전체(25,502명)의 약 1%에 못 미치는 치과의사들이 치과의사 전체 수익의 10%를 창출한 것이다. 이것은 2000년대 중반 영국에서 400여개의 치과의료법인에 고용된 1500여명(5%)의 치과의사가 영국 전체 치과의사 총 매출액의 5%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린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론에서 보도하는 임플란트 수가 덤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UD보다 낮은 임플란트 수가를 책정한 치과들도 많았고, 임플란트 수가는 점차 낮아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였다. 2012년 미국의 임플란트 수가는 약 $ 1500-3000 가량이었다. 치협은 UD 네트워크 치과의 문제를 의료기관 개설 및 경영 주체와 의료행위 주체의 분리에 의한 상업주의적 요소의 확산으로 바라보았다.
KBS 1TV 시사기획 (2011.10.18)은 1-2인의 소유주가 다수의 의료기관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유디치과그룹에 근무했던 내부고발자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치과운영방식을 보도하였다. 무료진료 등을 통한 환자 유인과 공급자유도 수요창출, 상업적으로 훈련된 사무장이나 진료보조인력에 의한 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 잦은 페이닥터의 교체와 순회진료, 극단적인 인센티브 적용을 통한 과잉진료 등이다. 이런 방식으로 환자의 필요에 의한 진료보다는 적은 시간과 돈과 값싼 인력을 들여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진료를 환자가 선택하도록 마케팅해온 것이다.
MBC PD 수첩(2011.8.16)에서는 인건비절감의 차원에서 무자격자를 채용한 유디치과 내부에 있는 기공소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 진료보조인력에게 구강병의 진단과 치료계획에 대한 치과의사 고유의 권한을 위임하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환자의 구강건강과 복리를 훼손하고, 치과의사의 직업전문성을 손상시키는 행위였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2012.4.27)가 유디치과 그룹과 관련 치협에 시정명령과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언론들은 일제히 ‘임플란트 전쟁, 90만원 ‘반값’이 이겼다’, ‘치협, 수백만원 임플란트 반값에 제공한 유디치과 왕따시켜’, ‘반값 임플란트 영업방해 치과의사협회에 과징금’ 등의 편파적인 방송을 했다. 불공정한 공정위 발표와 편파적 언론보도는 치과계가 해결해야 한 몇 가지 과제를 남겨두었다.
첫째, 임플란트 수가에 대한 치협의 공적인 해명이다. 임플란트 원가 공개는 수 차례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는데, 치협의 ‘전문가적 고찰’에 대한 대국민적 해명이나 설득은 부재했다. 고수가의 신의료기술인 임플란트가 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치과의사로서 기술 개발 및 연구에 투자해야할 비용과 보다 좋은 진료를 저렴하게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와의 상관관계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임플란트에 대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나 AS 규정을 공정거래위원회보다 치협이 먼저 제시하지 못한 점이다. 국가와 문화, 치과의사와 환자 개인간의 계약에 따라 사후보수책임기한과 정도에 대한 협의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임플란트에 대한 소비자분쟁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치협과 관련학회가 먼저 환자의 건강상의 이익과 전문가적인 식견을 더해 보다 합리적인 임플란트나 보철물 AS지침을 마련해 제시했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공익법에 근거하여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보철물은 3년간 AS가 이루어지도록 되어있다. 기공사는 치과의사에 대한 사적계약의 원칙에 따라 2년간 사후보수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다.
셋째, 치협과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한 항의시위나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후 윤리위원회(2012년 개정 의료법, 제28조)가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와의 법 해석 차이를 치과의료윤리 원칙에 맞게 재규율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치과의사 내부의 양심선언에 관한 윤리적 판단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임플란트 수가의 양심선언’이라는 치과간판이나 의료광고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 직업윤리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직업집단에 대해 ‘내부고발’이나 ‘양심선언’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음과 같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고발자의 행위 동기가 도덕적이어야 하며, 해당사실을 법이나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모든 내부 경로를 통해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또 ‘양심선언’의 결과가 자신을 현실적으로 희생하면서 고발한 집단을 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양심선언’을 통해 개인의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한다면 그것은 대중적인 기만이다. 따라서 치과의사 내부의 고발과 양심선언을 수렴할 윤리위원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포용성있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양심선언 및 내부고발을 계획한 치과의사는 치과의사 단체나 윤리위원회에서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정 의료법(2012)에 의한 의료기관 1인 1개소 개설 원칙의 취지가 치과의사의 면허대여나 사무장 병원, 진료보조인력에 대한 위임진료 등에 대한 치과의사 내부의 반성과 윤리적 규율에 의해 지켜질 수 있도록 치협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 공인된 치과재료사용 및 의료의 질 향상에 관한 의무
치과진료에서 공인된 재료를 사용하고, 치의학 전문분과학회에서 인정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상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고, 치과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진국들은 미국치과의사협회(ADA, 1928~)와 일본치과재료규격조사위원회(1933~) 등의 치과의사단체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치과기자개 표준화 작업을 해왔다. 표준화란 치과재료의 질과 양에 대한 평균적인 기준를 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조직적인 행위를 뜻한다. 재료가 표준화되면 생산, 소비, 유통 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 품질향상과 균질성을 유지시키고, 공정한 상거래를 할 수 있다. 표준화된 재료를 사용하므로써 치과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공인치과재료규격위원회의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치과기자재의 표준규격이 대한치과의사협회, 산업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청, 한국표준협회 등의 기관마다 각기 달랐다. 치협은 해방기 치과재료 배급에서 시작하여 치과재료수입 및 국산치과기자제의 품질관리와 규격화 및 유통에 관여하면서 점차 치과기자재 표준화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높여 나갔다. 아래에서는 한국 치과재료가 표준화되는 과정과 관련된 고소 고발 사건들을 중심으로 공인된 치과재료 사용의 윤리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부터 국산 치과유니트가 제작되었고, 치과재료로는 징크세멘트, 레진치, 다이렉트, 에나 레진, 매몰재, 파라핀 왁스, 바이오레진, 캐스팅 알로이, 메롯트메달, 수리용 애크리릭, 모델링 컴파운드 등이 대한치재공업(株)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나 치과의사들은 품질 낙후를 이유로 국산 치과기자재보다는 특관세를 지불한 수입 치과기자재를 선호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1950년대 이후 보호무역정책과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통해 경제 자립도를 높이려 했다. 박정희 정부는 치과재료수입금지 조치를 통해 국산기자재를 육성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적으로 국산품 치과기재의 검사기준을 마련하거나 검사 기구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은 마련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산품 치재산업 종사자․대한치과의사협회 간의 갈등은 불가피했고, ‘치과재료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파동’으로 나타났다.
1964년 보건사회부는 국산품 장려를 위해 대한치재공업에서 생산하는 매몰재, 파라핀왁스, 캐스팅 알로이, 메롯트메탈 등 11종의 수입을 금지조치하려 했다. 대한치재기공의 제품들은 아직 임상적 평가를 거치지 못한 것이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876대 2로 수입금지 반대를 결정하고 이를 막아냈다. 그러나 서울지부장이면서 대한치재공업 사장인 이 모씨는 치협에서 지부를 경유하지 않고 회원에게 직접 문의하였고, 금수반대 결의 요망이라는 결의내용까지 강요했다는 점을 들어 치협 임원 불신임안을 냈다. 또 치협 임원과 모 수입상 간에 치과재료 수입금지 반대운동비 명목으로 수표거래가 있었다고 의사시보에 대서 특필했다. 치협은 서울지부와 연석회의를 갖고 이 모씨와 공동해명서를 냄으로써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그러나, 이 모씨는 약사신문에 치협과 보사부업자간의 비리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기사를 실었다. 치협 이사회는 치협의 정당성과 결백성을 밝히기 위해 이씨를 고발하였고, 이모씨는 감사원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한편 수습위원회는 치협 회장과 서울지부장은 사퇴하라는 요지의 유인물을 전국에 돌려 임시총회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각 도치과의사회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계엄사의 해산명령을 받아 임시총회는 좌절되었다. 이 사건이 바로 ‘치과재료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파동’의 전모다.
이 사건은 치과의사들이 양질의 재료를 사용하고자 치협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 정부의 일방적인 치과재료수입금지 조치를 막아냈다는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금품 및 뇌물이 수수되었다는 내용이 외부에 기사화되고, 고소조치가 따름으로써 치과계의 명예가 실추되고,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사건이었다. 서울지부장인 이 모씨는 대한치재공업사의 사장이라는 이해당사자였다. 하지만 대다수 치과의사들이 임상적인 평가를 거친 표준화된 재료를 사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치협 임원들의 리더쉽이 관철될 수 있었던 사례이다.
이러한 정부의 치과재료수입규제는 197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치협은 수입제한품목을 완화시키도록 노력하면서, 국산 치재 및 약품이 생산된 경우 세계치과연맹(FDI) 의 규격을 따르도록 정관에 명시하였다. 그러나 시중에서 판매(1976)되고 있는 대부분의 금합금은 FDI규격에 미달하는 불량제품이었다. 치과의사들도 육안 식별이 어려워 무허가 금합금이 버젓이 판매되었다. 치협 자재이사는 ‘FDI규격에 맞는 금합금(noble 75%이상)으로 보사부 허가를 얻은 제품을 선택하거나, 치과의사가 각자 메탈과 혼합하여 사용’하도록 하여 치과의료업계를 정화하였다. 저금합금의 실용화도 이루어졌다. 1970년대 초 국소의치에는 크롬 코발트계(Co-Cr)합금이 주로 사용되었다. 국소의치에 주로 사용되던 니켈-크롬계(Ni-Cr) 합금도 점차 도재소부전장관 제작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시판제품은 vitallium, Ticonium 50, HS21, Nobilium with Ga 등이었다.
1980년대 치협 자재위원회는 치과기자재 성분 분석과 규격집 발간을 통한 품질 관리, 국산 치과재료 생산육성, 정부 관련 부처와 대한치과기재상공협회, 치과의사들 간의 정보 소통을 체계화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치과용 아말감과 석고, 치과용 인산아연시멘트 등 15편의 치과기재규격을 담은 규격집을 발간(1983)하고, 각국의 규격대비표를 작성하여 보건사회부 고시와 공업진흥청 규격으로 채택하도록 하였다(1984).
환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합금의 금함량이었다. 치협은 서울대학교 치학연구소(1980-)에 치과주조용 금합금, 비귀금속(니켈-크롬, 코발트-크롬)합금, 치과용 석고, 경석고, 매몰재 등의 시험 분석을 의뢰하였다(1987.5.6). 기공소에서 취급하는 보철물 재료를 조사하여 저질의 ‘니켈크롬’ 수입은 저지하였다. NPG합금(알바덴트사 제품)이 유해하다는 판단을 내려 대명실업(주)에 수입 및 판매 중지를 요청하고, 해당 상사가 불복하자 보건사회부에 행정조치를 건의하였다(1987.7.1~7.11). 이어 미국치과의사협회 및 한국과학기술원, 각 대학에 공인 여부 및 성분 분석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였다. 미국치과의사협회는 NPG메탈의 규격 사용허가 사실이 없다고 답하였다(1987.9.9).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NPG합금의 동(Cu)함량이 79.4%로 높다고 했으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서는 동(Cu)은 부식 등의 문제로 치과 임상에는 부적합하다고 판정하였다. 이러한 자료 제출을 통해 NPG합금의 수입 판매가 금지되었다.
치과보철물의 금 또는 백금의 함량이 부족하다는 소비자들의 이의는 199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치협은 총 77종의 치과용 금합금에 대한 시험성적을 접수하여 금 함량이 미달될 경우 관련회사에 시정을 촉구하였다. 치과용의약품 및 재료의 인체유해성에 검사도 이루어졌다. 컴포지트 레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불량마취제는 교환조치 하였고, 1:5만 리도카인사용금지는 해제하였다. 불량 총의치 접착제(벤젠함유)는 금지(1991)되고, 언론에 아말감의 사용의 안정성을 입증하였다.
2000년대 들어 항생제 및 스테로이드제의 사용에 관한 규제 지침이 내려졌다. 과산화수소의 경우 0.75%초과 함유제제 의약부약품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따라 무허가 치과미백제 사용을 금지하고 ‘오팔레센스에프 15%’ 등의 허가약품을 사용하도록 통보하였다. 치과용골이식재의 평가 가이드라인 개발되고, 베릴륨 합금은 베릴륨 증기입자가 폐질병을 일으킬 위험이 있어 수입 사용을 중지시켰다(2009).
한국이 ISO/TC106 분과위원회 회원국으로 참여하게 되면서(2002-) 치협은 치과기자재 ISO 규격 관련 업무 간사 기관(2003)에서 기술표준원 표준개발협력기관(COSD, 2008)으로 승격하였다. 13종 치과기자재의 국제표준(ISO)을 한국산업규격(KS)에 도입하여(2009) 국가경쟁력을 높였다. 이어 5종의 KS 대한치과의사협회표준을 획득(2010)해 국가공인치과규격위원회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디치과 내부 기공소에서 발암물질인 베릴륨(Be)기준 함량이 초과된 합금 사용(2011.8. 16, MBC PD수첩)한 것과 무허가 공업용 미백제를 사용한 사실이 보도(SBS, MBC, 2012.4.30)된 것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치협은 싼 가격 등을 이유로 이러한 재료를 직접 구입해 사용한 유디치과의 행태는 국민건강을 책임져야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 저버린 중대한 보건범죄라고 경고했다. (치의신보 2011,8.22). 경찰청에서는 무허가 치아미백제로 시술을 한 유디치과그룹 산하 치과의사와 상담실장 등 43명을 검거하는 한편 해외 체류 중인 김종훈 유디치과그룹 대표를 긴급 수배했다(2012.5.24). 방송에서는 “이번에 적발된 치과들은 위험한 약품을 통해 치아미백을 일명 ‘미끼상품’으로 활용해 왔다”며 “치아미백을 저렴하게 시술해 주는 대신, 비교적 치료비가 비싼 다른 치료를 받도록 유도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유디치과와의 전쟁’에서 치협은 베릴륨 초과 함유 합금과 공업용 과산화수소를 사용한 유디의 부도덕함과 불법성을 폭로하였고, 이를 통해 영리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병의원의 폐해를 보여주었다. 국가 공인 치과규격위원회로 성장하고 있는 치협으로서 모든 치과의사들이 안전하고 표준화된 치과기자재를 사용할 것을 윤리규정에 포함시키고, 이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
4. 정부 주도의 의료자원 분배의 문제
의료보험정책은 의료의 공평한 분배라는 거시적인 의료윤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박정희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국가의 보조금 비율은 최소였다. 의료수가를 관행 수가의 절반 이하로 낮춘 상태에서 출발하였으나, 의사들은 민주화 대신 복지강화를 대안으로 내세운 유신정권에 소극적인 대처조차 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의료보험료를 ‘의료비 할인제도’나 ‘조세’의 일종으로 생각했기에, 보장성 강화에 대한 요구는 높으나 의료보험료 인상안에는 부정적이었다. 이러한 저보험료- 저수가-저급여의 의료보험제도는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은 높일 수 있었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개입을 통해 의료자원의 공평한 분배와 복지에 기여했다는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했다. 정부의 보건복지부분의 예산 비중도 세계 최하위였던 1965년 0.1%에서 2013년 28.2%인 92조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구강보건예산은 1960년 160만원에서 노인틀니급여화가 시행되기 시작한 2012년까지 매우 낮고 행정의 일관성도 부족한 수준이다. 의료보험재정에 대한 국고보조가 부족한 이유로 2000년 건강보험재정적자는 스케일링 보장성 축소로 해결하고, 2012년 ‘노인틀니 급여화’에 대한 보장범위의 번복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보험재정의 고갈이나 보장성 축소 원인을 의사나 치과의사들의 행위별 수가제에 의한 과잉진료나 윤리의식 부족에 따른 부당청구 때문으로 여론몰이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경우,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오보를 거듭 방영해 왔다. KBS-1TV 9시뉴스(1999.10)에서는 ‘진료비 바가지’, ‘스케일링 의료보험 적용 6,000원만 내면 되지만’이라는 오보를 방영하였다. 치협은 스케일링에 제한적으로 보험이 적용되며, 적용시 본인부담금이 12,000-17,000원이라는 사실증빙을 통해 오보를 정정하였다. 2009년에는 SBS 8시 뉴스에서 ‘치과 80% 진료비 부당청구’라는 왜곡보도를 하였다. 치협은 항의를 통해 자료 제공의원실의 사과와 반론보도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의료보험 재정의 부실의 책임을 의료인의 윤리적인 문제로 돌리는 정부와 여론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국민의 경우도 건강보험재정의 확충을 위한 국민적 합의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국민과 정치인 모두 의료보험재정확충에 관한 공론화나 책임 있는 해결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민영보험의 확대와 포괄수가제 도입을 통해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데 골몰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치협을 중심으로 보사부나 의료보험공단의 불합리한 통제를 개선하고, 의료의 질 향상과 합리적인 수가 책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괄수가제가 의료보험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한 현재 치과의사단체가 치과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비용-효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하는 것인 윤리적인지 제언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에서 의료인에 대한 정부와 의료보험공단의 태도는 주로 의료행위를 규격화하여 통제하는 것이었다. 전 의료기관에 강제 적용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고, 의료보험공단이 모든 진료 과정에 개입하여 비용을 통제하였으며, 보건복지부는 행정처벌을 병과하였다. 역사적 변화 속에서도 그 맥락은 지속되고 있다. 1980년 보사부는 의료보험진료에서 진료비 허위 및 과다청구로 문제가 되어 의료보험 요양기관지정이 취소되는 의료기관에는 현행 의료법 규정의 행정처벌을 병과할 방침을 세웠다. 치협은 회원들에게 의료보험진료비 청구서 대행 작성 및 과다청구를 금지하도록 계몽하였다(1982). 의료보험이 전국민에게 확대된 1990년대에도 의료보험통합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고자 의료보험 진료비 부당삭감이 늘어났다. 치협은 의료보험 해설집(1990)을 작성하고, 지난 15년간 중앙심사치과분과위원회의 결정과 유권해석 등에 의한 심사지침을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개선안을 제출(1992.3)하였다. ‘국가정책을 입안하시는 분과 소비자를 보호하시는 분에게 드리는 치과 의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책자도 제작(1992.10)하였다.
이와 더불어 의료보험연합회의 평균진료비에 의한 자율지표관리가 치과의 특수성이 배제된 평균진료비에 의한 것임을 지적해 개선을 요청하였다(1992, 1996). 그러나 의료보험연합회의 심사지침과 행정처분은 점차 강화되어 갔다. 의료보험 요양기관 행정처분 및 지정취소 기준 개정을 통보(1993.5.)하고, 실사거부, 관계서류 미비치 및 미작성으로 실사불능시 재지정 금지 3개월 등의 강화기준을 홍보하였다. 치협은 의료보험연합회에는 심사 요원의 인적 사항과 심사지침의 공개를 요구하였다. 3회에 걸친 ‘중앙진료비 치과분과심사위원회 회의’를 통해 진료비 부당 삭감을 상당 부분 개선하였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심사사례 등을 중심으로 ‘치과 의료보험 해설집’을 발간하였다(1994). 보건복지부도 현지 조사를 통해 의료보험 행정처분을 강화하였다(1996). 치협은 의료보험 행정처분과 관련하여 진료기록부 작성 시 환자의 상태, 진단결과, 치료내용 등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소견을 정확히 작성하고, 또한 진료비심사시 진료기록부와 대조 확인결과 상세한 기록이 없는 경우 진료비 청구내역을 모두 인정할 수 없음을 회원들에게 공지하였다. 치석제거 비급여 범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치석제거로 보험청구를 할 경우 의료보험연합회에서 재정부담을 줄이고자 현지실사를 강화하는 경우도 많았다(1994.10.5.).
이러한 불합리한 통제는 2000년대도 지속되었다. 2007년 정부와 의료보험공단에서 표준진료지침을 제정하려해서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그 이유는 정부가 주도한 표준진료지침이 의료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주로 재정 감축과 행정적 규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에도 난치성 환자의 치료에 적절하게 추가되는 시술이나 재료는 ‘과잉진료’나 ‘부당청구’로 삭감되고 있다. 의료행위를 한대로 청구했을 경우에도 평균진료비를 초과하면 자율시정조치 대상 기관으로 선정한 후 실사를 나왔다. 치협은 의료보험제도와 행정규제의 불합리성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치과의사들이 의료보험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하는 매개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료보험제도는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의 체계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2012년부터는 포괄수가제를 일부 분야에서부터 당연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의료악법 규탄대회’를 열고, 과거 비윤리적 의료행위에 대한 ‘자정선언’도 하고 있다(치의신보, 2012.9.20). 하지만 의사 및 치과의사단체 모두 ‘포괄수가제’가 정책적으로 합의되기 전에 공론화장을 만들거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국민적 공감을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부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의료보험 과다 및 허위청구는 '진실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자율적으로 정화해야 한다. 진료기록부 상세기록 역시 ’환자에 대한 사전 고지와 자율적 결정’에 따라 헌신적으로 치료한 과정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누락없이 기재하고 고의적인 추후 수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의료의 질 향상과 비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전문직업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치과의사 단체는 치과의사들이 양심과 소신껏 보험진료를 하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예방과 질병관리를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의료보험제도개선에 개입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보건행정부서나 건강보험협의체는 의료인에게 타율적으로 의료정책을 따를 것을 의무화하고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보험제도의 실무를 담당하는 의료인들이 자율적으로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하고, 주체적으로 의료정책방안의 합의해나갈 수 있도록 단체의 사회적 교섭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2001년 3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보험의 심각한 재정난을 공표하였다. 보험공단 통합과정에서 재정부실의 책임소재도 불분명하고, 의약분업과 상대가치체계 도입을 통한 수가인상이 재정악화의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2000.7.1시행)에 의거하여 의보수가는 계약제로 바뀌고, 행위별 수가제에 상대가치수가체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상대가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에서 치과보험이 차지하는 비율이 꾸준히 줄어들었다(2001년 5.2%, 2003년 4.6%, 2006년 3.8%, 2010년 3.0%). 치과의 경우 건당진료비의 감소, 보험청구 행위 자체의 감소와 더불어 상대가치체계에 치과 고유의 재료비 원가와 기술행위료, 위험도의 반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랑니발치, 전달마취 후유증으로 인한 지각마비가 빈발하는 것에 비해 치료의 난이도와 위험도를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수가 책정도 문제였다. 치협의 노력에 의해 신의료기술로 디지털 X-ray의 장비․재료 비용이 진료비용으로 반영(1매 110원, 2008)되고, 매복치발치 시 사용되는 bur와 blade와 NI-Ti file의 별도 보상(2009.10.)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측에 지각마비 등의 후유증에 대한 환자에 대한 보상대책 기금 및 기구 설치하라는 요구는 묵살되고 있다. 한편 치협의 노력과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어린이 제1대구치의 치아홈메우기가 보험적용(2009.12.1)이 되기 시작했고, 75세 이상의 노인 틀니 보험적용도 시행되기 시작했다(2012.7.1). 하지만 건강보험재정적자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어, 치과의사 뿐만 아니라 국민과 정부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공론화하는 치과의사 단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치과의사들은 치과의료보험의 접근성 향상 및 공정한 분배,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해 왔으며, 어떻게 윤리적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5. 전문직업성 향상을 위한 치과의료윤리
치과의료윤리 역시 역사적 시기에 따라 의료법이나 제도처럼 표방하는 가치나 행위의 판단기준과 당면한 문제가 조금씩 변해왔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환자의 생명과 구강건강을 이롭게 하는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지켜야 할 절대적인 윤리에 속한다. 현대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적 집단 간 또는 집단 내의 갈등의 양상이 보다 복잡다단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치과의술은 ‘인술’이나 ‘의업봉사’라는 윤리적인 명분과 행동규율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에는 의료윤리가 법적 규제로 대체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이유로 의료인간 경쟁심화로 인한 상업화, 의료분배에 대한 정부 및 의료보험공단 등의 법적 개입과 더불어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료분쟁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해상 치과상담센터에 접수된 치과분쟁 1순위는 3차 신경손상이고, 2순위는 임플란트이다. 치과의사가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동기에서 의료행위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단순한 후유증이나 합병증도 환자가 수긍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의료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행위동기와 시술의 위험도와 성공률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법과 행정처벌은 선의의 희생자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치과의사들 스스로 합리적이고 최선의 문제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전문가단체의 윤리적 심의 권한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학회별로 표준진료지침에 공인된 각 진료기술에 대한 성공률과 실패율을 기재해, 그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치과의사들의 임상능력을 제고하고, 국민들도 구강병 치료결과에 대해 과도한 기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치과의료분쟁이나 치과의료윤리를 국가가 법이나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강화된다면 치과의사들은 타율적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국민과 환자를 돌보는 본질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치과의사들의 중앙단체는 올바른 치과의료제도를 정착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윤리적 자세를 견지하고 사회구성원들간의 절차적 합의 능력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출범한 치과의사윤리위원회가 치과의사 내부의 갈등을 윤리적 규율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진실과 합리성에 근거한 치과의사윤리지침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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