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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긴긴 연휴, 집에서 먹고자고 살찌고만 하지 말고 그래도 뭐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보드게임 두개를 사서 친구들이랑 해보고 또 집에 와서는 혼자서 보드게임 자폐플레이를 하다보니
문득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MTG는 왜 재밌는 걸까요?
전 중학교 1학년 때 매직을 처음 접했습니다. 게임매거진이라는 잡지였고 12페이지에 달하는 긴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세계의 마법사가 되어 소환수와 마법으로 상대 마법사를 물리친다. >
당시 TRPG 연재에 열광하던 저로써 이 테마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아직 20대인 플레이어들은 D&D의 세계가 당시 중학생에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면 그 당시 우리들에겐 유희왕도, 카드캡쳐 체리도 없었거든요. 피구왕 통키와 드래곤볼, 슬램덩크가 공존하던 그 시절, 당시엔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란 게 없었습니다.
김용의 영웅문 같은 소수의 중국 무협소설들에 열광하던 중학생들에게 JR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너무 어려웠고, TRPG는 재밌어보였지만 막상 해봤더니 뼛속까지 공대생이었던 우리들은, 게임의 연극적 요소들을 전혀 살리지 못했고 결국 그 모임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MTG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MTG는 매우 기계적입니다. 다수의 스텝이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스텝에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죠. TRPG는 인문적이라고 한다면, 정확히 그 대칭점에 MTG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한 그림으로 표현된 명확한 세계, 또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규칙, 몬스터와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 모든 것이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가 꿈꾸던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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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직더게더링의 재미는 멋진 카드 일러스트와 멋진 세계관에서 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카드게임을 하면서 일러스트를 보고 있지 않은 저를 발견했습니다. 드래프트를 하면서 새로운 카드와 그 능력치, 다른 카드와의 시너지를 떠올리고 있더라구요. 그 순간 카드의 멋진 일러스트와 세계관은 뒤로 숨고, 제가 보고 있는 건 게임의 매커니즘이었습니다.
라프코스타의 재미이론에서 "게임의 재미는 반복과 학습에서 온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화려한 일러스트와 매 블럭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는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분명, 눈을 즐겁게 하는 것과 명확한 세계관,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게임에 재미를 더해줍니다. 제가 가장 즐겁게 즐겼던 블럭은 타르커의 칸이었습니다. 제가 부족의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읽었고, 또 3라운드의 드랩 경기를 구체화하여 하나의 소설을 쓰기도 했던 블럭이었습니다.
그 블럭의 기억은 매우 강렬합니다. 이마에 마크를 가지고 태어난 용 무술 쌍둥이 중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동생이 스스로를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나르셋은 보기보다 훨씬 천방지축이고, 또 용발톱 서락은 정말 죽을 고생 다 하면서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이었구요. 서락은 6/6 섬광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힘을 가진 족장입니다. 어느 부족에도 속하지 않은 미치광이 플레인즈 워커 사르칸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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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프코스타의 재미이론과 제가 한 블럭의 스토리를 알아가며 더 즐겁게 드래프트를 했던 기억은 서로 상치되는 면이 있습니다. 반복과 학습에 의한 재미라면, 그 세계와 그 세계를 살아가는 MTG 카드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게임의 재미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즉, 카드게임의 재미는 그 규칙과 시너지에서 오지 일러스트와 스토리에서 오지는 않는다 라는 것이 20대의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런 제 결론에 입각했을 때 Dream Quest( ios)는 매우 재미있어야 하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미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이 게임은 매우 잘 만든 게임입니다. 뚜렷이 다른 특징을 가진 클래스, 반복할 때마다 나아지는 플레이, 또 아주 약간씩 추가되는 스킬들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플레이어를 더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분명 플레이 타임을 보면 제가 재밌음을 느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마치 시금치 같습니다. 먹다보면 나름 맛도 있고 질리지 않고 먹는데, 이거 재밌다고 누구에게 추천해주기는 꺼려지는 것이죠.
Dream Quest와 비교해 봤을 때 MTG의 일러스트와 세계관은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어마어마한 자본으로 만든 시각적, 또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게임이 바로 MTG입니다. 분명 라프코스타는 이 아름다움에 대해 중요시 여기지 않았고, 또 실제로 플레이하면서 이 아름다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미감은 제가 게임을 평가하는 데 어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전 이 아름다움이 주는 건 게임의 '재미'가 아니라 게임의 '가치'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즉, 게임을 하면서 일러스트는 다른 카드와 구분시켜주고, 또 더 빨리 카드를 파악하는 데 기여하는 것 이외에 게임의 재미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드래프트 중에 카드의 능력치에 몰두해도 게임은 재밌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주는 하나의 예이죠. 하지만 한발짝 물러서서 게임을 바라봤을 때, 우리는 그 누구도 '쓸데없는 종이 쪼가리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즉,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 어 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을 주기에 게임의 규칙이라는 것은 너무 멀고 추상적입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또 명확한 구획을 나눠주는 테두리가 바로 우리에게 그 믿음을 주는 거죠.
'이 카드게임은 네가 시간을 보낼만한 게임이야. 그러니 집에가서 빈 주머니에 좌절하지 마'
라고 우리의 무의식에 속삭이는 것은 바로 카드의 미적 퀄리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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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는 글입니다. 저도 역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기도 하구요. 지금까지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1. 내가 어렸을 적엔 그냥 매직이 짱짱이었다.
2. 커서 보니 반복과 학습이 게임을 재밌게 만든다더라.
3. 그럼 매직에 그림 없어도 할래?
4. 아니. 그림 없으면 그 게임 싸보여서 아마 안할 것 같아.
제 생각은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여기까지가 작년까지 저 혼자 생각해왔던 이론이구요. 바로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혼자 두명을 플레이하면 매직이 재미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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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혼자 두명을 플레이하면 매직이 재미없을까?'
이건 꽤 오랬동안 저의 화두였습니다. 잠깐 앱스토어에 올려서 꽤 많이 팔아먹었던 제 어플 - 이제 판매 중지 했으니 검색해도 안 나와요 - 으로 혼자서 두사람 게임을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 봤던 저로써는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타인과 스탠다드 게임을 하면 그렇게 재미있는데 왜 혼자 하면 늘 두판째 잠이 드는가.
최근 전 반지의 제왕 LCG을 하고 있습니다.
반지 원정대를 꾸려서 사우론의 눈에 띄기 전에 퀘스트를 완료하는 내용의 카드게임입니다. 랜덤한 적 카드를 오픈하여 그 카드가 지역이면 반지원정대의 의지력으로 돌파, 그 카드가 몬스터면 전투력을 모아서 물리쳐야 합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신기했던 건, 매직을 혼자서 두사람 플레이하는 것과 다르게 졸리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혼자서 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고, 혼자서 해도 재밌습니다. 그 이유는 카드를 오픈할 때 오는 긴장감에 있습니다.
적 카드를 오픈하기 전에 미리 퀘스트를 보낼 아군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적절성은 오픈한 카드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적이 공격해 올 때 역시 쉐도우 카드라는 걸 추가하여 전투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끊임없이 반복과 학습을 시키되 랜덤한 확률로 내 선택이 잘못될 가능성을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긴장감을 만들고 그 결과 졸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매직과 다른 모든 카드, 보드게임은 이 랜덤성을 아주 쉬운 방법으로 보장합니다. 나와 경쟁하는 다른 플레이어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내 머리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 체계를 가진 다른 플레이어가 있고, 그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내 선택은 유리한 것이 될 수도, 불리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매직더게더링은 아주 중요한 페이소스를 추가해 놓았습니다. 하나는 무한의 조합으로 준비된 랜덤성이라는 것, 두번째는 그 랜덤성의 정당화입니다. 무한의 조합이라는 것은 다수의 카드를 프린트하여 그 중 60장, 혹은 40장을 조합하여 덱을 만든다는 것인데 사실상 무한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린 더 많이 긴장하게 되고 또 더 재밌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한 그 랜덤성의 정당화라는 것은 매번 주사위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카드를 잘 섞어 하나의 덱으로 쌓아 놓는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 쌓여진 덱에서 랜덤성에 대한 억울함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만약 뽑은 카드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덱에 남아있는다면 - 그래서 덱이 늘 60장을 유지한다면 - 우리가 3연속 랜드드로우를 했을 때 아마 더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운 나쁜놈은 안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하지만 60장 덱에서 3장 연속으로 랜드를 드로우하게 된다면, 물론 분노하겠지만, 아주 약간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적어도 랜드 3장이 줄어들었으니 다음엔 랜드 뽑을 확률이 줄어들 거야.
사실 우리는 얼마든지 가상의 상대방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상대방의 손에 거대화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으로 치고 얼마든지 용감하게 내 생물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저 혼자서 자폐플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플레이를 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복과 학습을 통해 어느정도 선택의 규칙을 정했고 그 규칙을 양측 플레이어에게 적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는 재미가 없습니다. 졸리고, 그다지 하고 싶은 놀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 아이폰 어플을 개발할 당시 혼자서 하곤 했던 게임도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였나면 덱리스트를 보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도통 모를 덱을 굴릴때였습니다. 즉, 반복을 통해 학습할 거리가 있는 경우엔 역시 랜덤성에 의한 긴장감이 없어도 즐거울 수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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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든 게임은 긴장감이 필요하다.
6.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은 나와 경쟁하는 상대를 추가하는 것이다.
7. 또한 약간의 랜덤성도 긴장감에 도움이 된다.
8. 하지만 지나친 랜덤성은 학습의욕을 저해시켜 재미를 줄인다.
9. 매직은 매번 새로운 시리즈와 매커니즘을 통해 학습을 통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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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엑스윙-미니어쳐게임, 다이스마스터, 롤포더 갤럭시를 해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작년까지 거의 모든 게임 매커니즘을 섭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게임 매커니즘은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그 모든 생각을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롤포더 갤럭시, 다이스마스터, 쿼리어스에서 차용한
다이스빌딩 매커니즘이 그것이었죠...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이 매커니즘은 여러 종류의 주사위가 MTG의 덱 역할을 합니다. 주사위의 특성상 랜덤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랜덤성을 줄이기 위해서 사용가능한 카드를 플레이어당 크리쳐 8장, 인스턴트 2장으로 제한하고 있죠.
또 이런 게임도 해봤습니다. <엑스윙-미니어쳐 게임.>
이 게임은 제한된 이동방식에 따른 전략성과 히트 혹은 미스를 판단하는 주사위를 이용한 랜덤성을 조합한 게임입니다.
엑스윙을 하다보면 너른 우주를 날아다니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60장 덱의 다채로움에 비할 바가 못되죠.
다이스 마스터는 쉽게 배울 수 있고 또 재밌습니다. 주사위를 굴리고, 어택하고, 또 얻어맞고. 큰 크리쳐 하나 세워놓고 버티는 그런 지루한 대치상황이 덜 생겨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스턴트 효과들이 이미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막상 공격할 때의 긴장감은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주사위를 굴릴 때에 긴장감을 느끼는 대신 공격과 방어에서의 치열한 눈치싸움은 모자란 편입니다.
사실 빈 매장에서 혼자 유희왕 게임룰도 익혀 보았습니다. 근데 깔끔하지 못한 카드 설명과, 이해할수 없이 큰 공격 방어력 수치, 조악한 카드 퀄리티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즉, 유희왕 게임에는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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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은 정말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게임입니다. 십년이 넘게 개선되어온 룰, 어마어마한 카드 퀄리티, 매 블럭마다 어떻게든 밸런스를 잡아가는 능력, 모든 게임 중에 가장 다양한 인터렉션을 가진 게임. 사실상 모든걸 가진 게임이죠. 네. 이 게임은 재미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용 측면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죠. 엑스윙 미니어쳐 게임 코어세트는 오만원, 다이스 마스터 스타터 세트는 2만원, 유희왕 스트럭쳐덱은 7천원입니다. 물론 이 게임들도 확장팩이 있어서 추가하다보면 비용이 커집니다. 하지만 매직더게더링의 인터렉션에 대해 충분히 많이 반복하여 더이상 학습할 것이 없어졌다면 다른 게임들을 가볍게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게임들을 하다가 다시 매직으로 돌아올 때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곤 하거든요. 그리고 더 재밌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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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기대됩니다
좋은 글입니다. :D 하지만 서락은 4/4 섬광이 아니라 6/6의 강력한 섬광(.....)입니다.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기대할게요
제 기억이 틀렸군요. 수정하였습니다.
재밌어요
재밌게 읽었습니당
연휴가 자주있었으면 하는글이네요~♥
수달에 종종오시는 유진님맞으신거죠?
1년 전에 3번쯤 갔는데 기억 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우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