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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l+ 철도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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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게시판 (정보, 잡담) 일제 시대에 잘못 놓인 철도 노선 몇가지.
railroad 추천 0 조회 1,332 15.07.04 15:08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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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04 20:25

    첫댓글 노선이 생길 당시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 15.07.05 21:32

    애초부터 호남선철도 깔때 대전분기 아닌 천안에서 분기해서 공주 - 논산 경유해서 가면 좋을텐데요.. 대전 - 논산 선형 나빠서 경쟁성도 떨어집니다.

  • 15.07.05 22:29

    일제 시절의 호남선철도의 경우는 최대한 평지를 잡아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논산-공주 사이에는 아시다시피 계룡산이라는 가파른 산이 있고, 경부선에서 금오산 뚫으면서 돈 많이 들어서 정신이 없었죠(...)

    익산 부근의 호남선은 전주까지 가는건 좋은데 그 다음 광주까지 내려가는게 답이 없었을것 같네요.

  • 작성자 15.07.06 09:03

    그런데 평지로만 가더라도 지금처럼 익산으로 가기보다는 최대한 전주에 가깝게 붙일 수는 있었습니다. 광주송정역처럼 전주 시가지에서는 좀 멀지만 그래도 한 생활권을 경유하도록 하는 건 산지를 지나지 않더라도 가능했죠.

  • 15.07.06 14:02

    어차피 목적 자체가 편리가 아니라 수탈이 목적이었으니 저런 결과가 나온거라 생각됩니다

  • 15.07.06 16:00

    일제시대 호남선은 닥치고 쌀수탈이 목적이라, 군산 접속이 문제였지 전주 따위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제 이후에 다시 놓으려고 해도 나라에 돈도 없었고 호남지역 철도망이 이미 익산 중심으로 짜여있었던 판이라...

  • 작성자 15.07.06 16:57

    호남선은 군산으로 간 노선이 아닙니다.군산이 제일 목표였다면 그냥 군산으로 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익산을 경유한 이유가 군산이었다면 나중에 군산선을 따로 놓은 이유가 설명이 안됩니다.

  • 15.07.06 17:44

    @railroad 호남선-군산선 개통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전-강경 : 1911년
    강경-군산 : 1912년 3월
    이리-김제 : 1912년 10월
    정읍-송정리 : 1914년

    보시다시피 군산 방향이 먼저 생겼고, 그 군산 방향 노선상의 이리역에서 분기형식으로 호남선이 건설된 후 군산선이 호남선의 지선이 된 겁니다. 나중에 따로 놓은게 아니라요.

  • 작성자 15.07.07 08:41

    @EVER_LASTING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네요.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좀 설명하기 힘든 게 군산이 주 목적지라면 익산 경유도 우회인 건 마찬가지(강경에서 임피역까지 바로 가는 게 직선에 가깝죠)이며 호남선을 전주에 더 가깝게 붙이더라도 호남평야의 쌀을 군산이나 목포로 실어나른다는 목적에는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ps:쓰고보니 얼마안되는 거리지만 강경-익산까지 호남선,군산선 선로를 공유하면 공사비를 아낄 수는 있겠군요.

  • 15.07.06 16:02

    "일제 시대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 시대였지만..." 님의 첫번째 전제가 모든 것을 대변해 줍니다. 목적은 "수탈"입니다. 우리 편하자고 놓아준거 절대 아닙니다.

  • 15.07.06 17:50

    일본이 지배를 안 했다면 전주쪽으로 놓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시대가 암울한 시대다 보니...

  • 15.07.06 19:38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좋으라고 철도를 깐 게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위해 깐 거죠. 우리나라의 쌀과 지하자원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깔다보니 우리나라의 사정은 뒷전이었죠. 군사적인 이유도 있었고요. 만주를 통해 중국대륙까지 넘보려고 표준궤(1435mm)로 부설했죠.

  • 15.07.07 14:44

    일제시대때 잘못놓인 철도노선????
    김천이 그 당시 아주 중요한 상업도시인데 왜 김천을 비켜가 조선5대시장이었는데 뭐가 잘못 되었다고 글 올리는지 구미???지금의 구미시내(선산군 구미면???)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선산군의 중심지였던 선산읍을 말하는 것인지??아니면 강건너 25번 국도 노선쪽을 말하는것인지???
    구미의 지리적 위치와 김천의 지리적 위치를봐여 김천은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할 수밖에없어 ..도시 연혁이나 이런것도 좀 살펴보고 김천 분기가 잘못 되었니 어쩌니 하라고 말 하고싶네여..일제가 서울-대전-김천-대구-밀양-부산 노선을 완공했는데 굳이 중부내륙선을 놓을 필요가 없었죠

  • 작성자 15.07.07 14:36

    여기가 디시인 줄 아나보군요. 글투를 바꾸길 바랍니다. 경부선이 있다고 중부내륙선이 필요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서울-부산 연결만 할거라면 중앙선도 필요없었겠죠. 중부내륙선 연선은 경부선과 전혀 다른 곳을 지나므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 15.07.07 14:49

    @railroad 일제의 입장에서는 굳이 돈 쳐 들여서 중부내륙노선을 놓을 필요가 없었겠죠 그리고 일제시대때 오히려 중부내륙선을 놓았다면 서울~충주~점촌~김천 경부선 접속으로 놓였을것입니다 조선5대 상업도시였던 김천을 비켜서 선산으로 가기도 싶지않을것입니다

  • 작성자 15.07.07 16:45

    @도로철도교통허브 김천이 대구,부산으로 가는 길을 우회시킬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는지 살펴보죠.1925년 김천군 인구 139,728, 상주군 167,454, 선산군 인구 73,687 입니다. 반면 대구부,달성군,경산군 인구를 합하면 311,385 입니다. 1944년이 되면 대구권 417,199, 김천군 149,480 으로 차이가 더 커집니다. 경북에서 대구의 위상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조선시대는 도시화 전이기 때문에 모두 농촌이고 김천이 큰 고을이래봤자 꼭 지나가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일제시대에는 그나마 도시화가 좀 되긴 했지만 그때도 김천이 대구,부산 가는 길을 우회시킬 정도로 중요한 도시라고 보기에는 주변 지역들과 인구 차가 별로 안 큽니다.대구,부산이 훨씬 중요하죠.

  • 작성자 15.07.07 16:46

    일제는 나중에 불요불급선이라고 해서 멀쩡한 철도를 폐선시키고 레일을 걷어가기까지 한 걸요. 중부내륙선이 있었다면 그 노선들보다는 더 쓸모가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 15.07.07 21:06

    경북선은 총독부에서 건설한 노선이 아니라 사설철도이지요. 1910년대 말 건설 구상 때부터 김천 지역과 일대 상공업자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구는 염두에 둘 필요없이 김천에서 상주, 점촌, 예천으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고, 안동으로 연결한 것은 그 당시 영주보다는 안동쪽이 영주보다 시장규모도 크고 여러모로 발달된 동네라 그렇습니다. 일제는 사설철도의 건설을 지원하고 독려하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노선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업 문제이므로 뭐라하기가 어려웠지요. 경북선이 1940년이 되어서야 국유화 되니 어차피 걷을 노선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 15.07.07 20:24

    지금 봤을 땐 잘못이라 보일지 몰라도 그 당시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단 과거의 철도 노선 건설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들을 봤을 때도, 지금의 가치관에서나 기준에서는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당시로서는 그게 당연한 논리였고 그의 산물이었던 경우가 많지요. 그 시대의 역사를 파악하고 분석하려면 그 시대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문을 가지신 내용들은 당시 신문기사, 사설, 여러 문헌자료들이 적지 않으니 그것을 읽어보신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 15.07.07 20:31

    - 총독부에서는 지금의 중부내륙선 개념보다도 경부선의 대체 우회 노선으로서 중앙선 건설에 착수한 것은 글쓴분께서도 아시리라 봅니다. 1930년대 중앙선 구상 당시의 논란 중 몇 가지로 먼저, 제천에서 어느 방향으로 연결되느냐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경북선을 통해 재미를 보고 있던 예천쪽에서는 당연히 자기네 동네로 끌어오려고 했고, 영주로 연결시키려는 구상도 있었지요. 결국은 후자로 결정되었지만 말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만 예천으로 연결되었다면 중부내륙선 이야기는.. 그리고 남부쪽에서는 대구로 연결시키려 주장이 많았으나 수포로 돌아가자 대구와 마산을 잇는 노선이라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그랬지요.

  • 15.07.07 20:41

    - 호남선이 전주를 거치게 되었다면 말씀하신대로 참 좋았겠습니다마는, 윗분들께서 말씀하신대로 호남선은 여객 수송도 하긴 했지만 곡물 자원 수탈의 통로 역할이 컸지요. 내지 일본으로의 반출을 위해 항구와의 연계가 중요했으니 군산과 목포쪽이 빠르게 부설되었구요. 그리고 전주는 이미 호남선 전구간의 부설이 완료되던 시점에서 곧 경편철도가 놓여서 역시 당시의 입장에서는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해방 후엔 이리(익산)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로가 다 이어져있는 이상 열차 운행 계통만 손보면 되니 굳이 다시 노선을 뜯을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공사를 위한 자금한계가 너무 뚜렷했다는 점입니다.

  • 15.07.07 20:49

    제가 가지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철도사 지식으로 자꾸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것 같아 무척 죄송하지만, 불요불급선에 대해 언급하자면... 먼저 태평양 전쟁 이후로는 사실상 신규 철도 노선 건설이 노반공사나 구조물 정도까지는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는 대부분 스톱되기에 이릅니다. 주지하다시피 동해북부선 일부구간이나 동해중부선, 광주선 담양 ~ 금지 구간 등이 그랬고, 초점은 오로지 광업 자원을 대규모로 빠르게 반출하기 위한 산업선 건설에 두어지게 됩니다. 북한 지역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의 전용철도나 신규 사설철도도 대체로 그런 목적에서 부설허가가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 15.07.07 20:55

    불요불급선이란 어디까지나 그 시대적 배경에서 그랬다는 것이지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그 이전 시대로서는 그런 노선들의 부설이 전혀 이상한 뻘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경북선이 점촌에서 잘린 건 역시 점촌에서 가은쪽으로 협궤 산업선이 이미 부설되어 석탄을 빼내고 있었기에 그렇고, 금강산선이 전체가 아니라 그.. 창도(맞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네요)부터 내금강까지만 걷은 것도 창도의 광물자원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온 나라의 철도 노선들도 정상적인 여객 수송과 물자 유통이 아닌 전시체제에 있었기에 걷어졌을 따름입니다.

  • 15.07.07 21:02

    @鐵道史學生 이것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례를 하나 들자면... 광주선이 애초부터 그렇게 쓸모없는 노선이었고 이후에 전부 다 걷어낼 줄 알았다면, 일제가 남원 금지까지의 연장을 추진해서 노반과 구조물들을 거의 다 완성시켜놓고 레일만 놓으면 되는 상황까지 만들지도 않았을겁니다.

    결과론적으로 놓고 봐서도 역시 그 당시로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21세기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니 이상하고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그렇기에 이와 같은 주제로 논쟁을 하는게 썩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봅니다. 혹 언짢으셨다면 양해바랍니다.

  • 작성자 15.07.07 21:25

    @鐵道史學生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생산적인 논의는 아닙니다. 이미 지난 과거를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냥 앞으로는 이런 근시안적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미에서 쓴 글입니다.

  • 15.07.08 01:13

    사족이겠지만 일본놈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철길을 깔진 않았겠죠 그리고 식민지 지배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겠죠 이런 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드네요.....결코 따지는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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