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의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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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천수경 본경에 들어가기 전에
천수경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언제 어느 경우에서건
항상 천수경을 지송하고 있고 또 반야심경도독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다 양이 조금 많긴 하지만
`관세음보살 보문품경'이라고 하는 중요한 경을 항상 공부합니다.
이들 세가지 경(經)은
모두 관세음보살님을 주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경[약해서 천수경]에서도
그렇고 반야심경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관음경의 내용도 역시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예찬하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저 오랜 과거로부터
한국불교는 관음신앙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제4권 자장율사조에 보면
자장율사의 아버지가 후사(後嗣)가 없어서 지극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분의 관음상(觀音像)을 조성한 뒤
자장율사를 얻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자장율사는 이렇게 불연(佛緣)이 두터운 집안에서 태어나
아주 대단한 명승으로 발돋움하신 분입니다.
또 신라시대의 의상대사 역시
관음신앙의 대표적인 인물로 많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 낙산사의 홍련암은
의상대사와 관련있는 설화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홍련암에서 의상대사가 목숨을 내건 기도를 한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의상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百花道장發願文)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관음대성을 지극히 받들어 섬깁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관세음보살 대비신주를 외우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하며
다함께 관세음보살님의 원통삼매에 들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스님들께서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하기 전에
`나무 원통교주 관세음보살,
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
나무 원통회상 불보살'을 기도하시는 내용을 들으신 적이 계실 것입니다.
원통(圓通)이란 말은
그 분께 기도 드려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두루 다 통한다는 말입니다.
또 관음 기도를 올릴 때에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이렇게 정근하기도 합니다.
보문시현(普門示現)의 뜻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투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또 원력홍심(願力弘深)이란
원력이 대단히 넓고도 깊으셔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구고구난(救苦救難)
역시 모든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고통과 액난을 소멸시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발원을 관세음보살님 전에 끊임없이 기도 올리면
두루 성취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현실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담겨져 있는
고통들을 제거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열반으로 이끌어 주시는 그러한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자력문, 타력문
관음 신앙에는 대체로 두 가지 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력문(自力門)이고
또 하나는 타력문(他力門)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정말로 열심히 기도 정진하게 되면 깨우침이 돈독해집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참회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 가운데 스스로를 개선 광명 시켜 주는 힘이 발동됩니다.
마음이 세척되고 정화되어지는 그런 능력이 생겨납니다.
그 같은 수행문이 바로 자력문입니다.
자력문을 열심히 닦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공부가 부족하며 제대로 닦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타력문도 함께 펼쳐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 속에 정말로 관세음보살님과 하나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결과 관세음보살님의 가호 지묘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력문의 경우를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바위덩어리를 그대로 바닷물에 던져 넣으면
풍덩 소리를 내며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거운 바위라 하더라도 배 위에 실으면 빠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죄와 업장이 무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이라는 배를 타게 되면
고통의 바다를 건너 부처님의 세계에 닿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加被力)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타력문도 따지고 보면
자력을 바탕으로 한 타력 입니다.
우리 불교는
이렇게 자력문 타력문의 모든 차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불교에서와 같은 자력문의 차원은 전혀 부정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의 죄를 소멸시켜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말입니다.
신교와 구교,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점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들의 종교가 마음이라고 하는 세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기에 신의 뜻이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상은 인간 스스로의 자력문을 철두 철미하게 부정합니다.
Creator[창조주]에 의한
Creature[피조물]는 아무러한 권한도 없습니다.
철두철미한 2원론은
인간의 가능성을 결단코 부정합니다.
불교는 투철한 일원론이기에
마음과 우주의 동질성 속에서 자력문과 타력문 양자를 인정합니다